교육희망

상명하달 교무회의는 가라, '교직원 총회'가 떴다

<탐방> 교직원총회를 의결기구로 만든 광주 치평중학교를 가다

"환경정리 후에 평가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각 학급 특색에 맞게 환경게시판을 꾸미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환경정리 심사 일을 삭제하는 데 수정동의합니다."

순조롭게 이어진 회의는 비로소 토론의 낌새를 보였다. 한 교사가 2호 안건인 '4월중 행사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이다. 4월 계획 가운데 8일로 잡힌 '환경정리 심사일'이 눈에 걸린 모양이다. 안건을 발의한 사람은 교무기획부장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교직원총회에서 한 교사가 안건과 관련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최대현 기자
"제청합니다." 교사들은 곧바로 답했다. 원안에 대한 새로운 안건이 성립됐다.

그러나 수정안과 다른 의견이 나왔다. 한 교사는 "장학사 등 외부의 시선도 있고 하니,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부각시키는 환경정리는 있어야 한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학급 뒤쪽 게시판 정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다른 교사가 일어났다. "학급별로 환경게시판 5개의 판을 구성해야 하는데 2개 판에는 공통적으로 학사력과 그린 실천 등 환경 내용으로 꾸미고 나머지 판은 자율적으로 학급에서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8일을 환경정리 완료일로 하면 어떨까요? 심사는 아니고 환경정리를 그 때까지 끝내는 것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수정안이었다.

삭제 안건을 낸 교사는 "환경 정리를 평하는데 따른 문제제기였어요. 완료일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제 안을 철회할게요"라고 말을 받았다. 8일을 '환경정리 완료일'로 하는 새로운 수정안으로 정리된 것이다.

논의 과정을 지켜보던 의장 정병표 교장은 수정안 표결에 들어갔다. 참가한 교직원 총47명 가운데 과반수인 24명 이상이 찬성에 손을 들어 2호 안건을 통과시켰다. 4월중 행사 계획을 교직원이 논의해 직접 결정하는 순간이다.

광주 치평중 교직원총회는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2시40분에 시작한다. 한 달에 한 번만 한다. 일반적으로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에서 교무회의가 진행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치평중 교사들은 월요일 아침을 학생들과 함께 시작한다.

보통의 교무회의와 차별되는 점은 높아진 회의의 '위상'이다. 행정실 직원을 포함한 모든 교직원이 참가해 학교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교장을 비롯한 교감과 부장교사가 부장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교직원총회가 바로 의결기구다.

이날 첫 번째 안건으로 통과된 '교직원회의운영규칙'을 보면 교직원총회를 '전교직원이 참여하는 정기총회로서 학교발전과 학교의 운영과정, 학생관계 및 제반 관리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하는 의결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부장회의는 교직원총회 아래의 기구로 교직원총회에서 결정된 사업을 추진하는 집행체로 돼 있다.

치평중이 의결기구 형태의 교직원총회를 운영해 온 지는 올해로 3년째. 지난 2008년 3월 전교조 조합원 출신인 정 교장이 내부형 공모제 교장으로 오면서부터다.

정 교장은 "특정 사안을 결정하는 부장회의는 대의기구가 아니다. 부장은 교사들이 선출한 것이 아니라 교장이 임명한 사람들 아닌가. 교사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사들이 많지도 않아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생각을 직접 말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공간에서 함께 결정해 능동적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교무회의의 의결기구화 배경을 설명했다.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결정사항만 전달받던 교사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회의를 하는데 교장이 의장이 돼 진행만 하고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어색했다.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둔 박남순 교사는 "뭐 이렇게 하나. 이래 가지고 회의가 되겠나 싶었다"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한 4번쯤 하고 나니 회의에서 의견을 말하는 게 편해졌다. 학교발전을 위해 선생님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결정하니 책임감이 생겼다.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도 생겼다"고 박 교사는 전했다.

광주 치평중 교직원총회에서'4월 중 행사 계획'안건을 토론한 뒤 참가한 교사들이 표결하고 있다. 최대현 기자
쓴소리를 많이 하는 교사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매년 2명에게 교장이 직접 상품권을 줬다. 지난 2008년 '쓴소리 교사'로 뽑힌 박 교사는 "교직 경력 38년 6개월 동안 교장이 주는 상은 처음이었다. 모든 교직원 앞에서 상을 주는데 정말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교직원총회의 변화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로 이어졌다. 교직원총회에서 결정한 사안을 심의하게 된 학운위가 사실상 최고의결기구가 된 것이다. 교직원총회를 거쳐 올라온 사안을 학운위가 수정 결정해도 따른다. 교장이 다시 바꾸는 경우는 없다.

정 교장은 "(학운위가) 법적으로 심의기구지만 교사와 학부모, 지역민이 함께 논의하는 학운위에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 그래서 최종 의결기구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회를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난 5시10분께 회의가 끝났다. 9개의 안건 처리와 6건의 공지가 이뤄졌다. 4월중 행사 계획을 처리한 뒤 오는 12일 열리는 학운위에서 결정할 학생생활규정에 대한 토론이 길어졌다. 모든 안건과 논의가 끝난 뒤엔 3월에 생일을 맞은 교사들을 축하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케이크를 자르고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올해 치평중으로 옮겨온 정설화 교사는 "이런 형식의 교직원총회 이야기를 듣고 기대반 우려반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참여 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말을 좀 했다"고 웃으며 "신선하다. 교사로서 대우받는 느낌이고 교사의 의견을 듣고 운영을 하는 것이어서 좋다"고 말했다.

교직원총회가 끝난 다음날인 26일 치평중 누리집 '월중행사'에 올라온 4월 계획 가운데 8일은 '환경정리 완료'였다.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곧바로 학교 운영에 반영한 것이다.

공모제 교장 학교로 교직원회의를 의결기구로 운영하는 치평중을 일반화하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교직원회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분명하다. (교육희망)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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