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정부의 '교육여건 개선 추진계획'에 따라 "나이든 교사 하나면 젊은 교사 셋을 쓴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교사의 정년이 감축되었고, 엄청난 수의 퇴직자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교사들이 명예퇴직을 선택했고 더불어 학급당 인원수 축소정책이 추진되었다.
당시 정부는 초등교사부족현상을 해결한다며 '임시교원양성소' 설치, 중등교사자격증 소지자에 대한 보수교육안, 특별편입학안 등을 추진하였고 교육대학생들은 2개월이 넘는 동맹휴업, 학생증 반납, 자퇴서 제출 등 강력한 투쟁으로 맞섰다. 초등교육의 정체성 훼손과 장기적 교원수급정책을 요구하는 초등교사와 교육대학생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초등교육발전위원회(초발위)'를 설치하며 상황을 모면하였다.
하지만 교대생을 제외한 채 교육부 2명, 시·도교육청 2명, 교육대학교수 3명, 교원단체 3명, 학부모단체 2명 등으로 구성된 초발위는 자문기구라는 역할의 한계가 이미 존재했다. 결국 그 동안 제기된 초등교육의 개혁과제는 물론이려니와 핵심과제였던 중장기교원수급정책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제안도 없이 2004년 이후 식물위원회로 유지되다 2007년 해체되었다.
2009년, 교육대학생들의 총궐기
2009년 9월25일 서울여의도공원에는 교원수급정책 확립, 인턴교사제 폐지, 교대통폐합 저지, 교육예산 확보를 주장하며 7천여명의 전국 교육대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동맹휴업까지 결행했으니 의지가 결연했다. 예비교사라 불리는 교육대학생들의 주장은 간명했다. MB정부가 청년 실업 해소를 가장한 인턴 교사제와 초등 교육의 위기를 자초하는 전문강사 채용 정책을 제시하면서 오히려 교대 졸업생들이 실업을 걱정하고 비정규직화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예비교사'들이 동맹휴업을 하고 정원 확대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교대 졸업생 두명 중 한명은 실업자로 지내야 하는 이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2003년 5225명이었던 전국 13개 교육대학교의 신입생 정원은 2006년 6225명까지 늘어났고 초등교원임용인원은 2004년 8099명에서 2007년 4049명으로 줄어들었다. 당장 5년 이내의 교원 수급과 양성 인원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 탓이다.
'초등교육발전위원회'의 부활, 하지만…
교과부는 지난 4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초등교육발전위원회」를 부활시켜 2010년 첫 회의를 개최하였다고 밝혔다. 초등교원 수급 계획을 비롯한 양성·자격·임용 정책과 양성기관의 발전에 관한 사항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부활했다는 '초발위'의 구성원을 보면 일말의 기대도 접어야 할 듯하다. 누가 추천하고 누가 임명했는지를 따져 묻고 싶지 않지만 언론계, 경제계를 포함하여 법대교수까지 포함시키면서 '초발위' 부활의 산파였던 예비교사들은 또다시 배제되었고 교원단체는 한국 교총만이 참여했다. 평교사는 1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교육청 추천이다.
2001년 자퇴서 제출, 임용시험 거부까지 고민하며 '초발위'를 탄생시켰던 당시 교육대학생들이 "온몸으로 초등교육의 전문성을 외친 것은 지금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초발위의 위원도 아니요, 교육청 관계자도 아닌 바로 2만의 교대생들의 건강한 분노와 처절한 눈물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라는 주장이 다시금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만으로 구성된 '초발위'가 과연 학령인구 추이에 따른 효과적인 초등교원 인력 수급 계획에 대한 방향성을 정립하고, 초등교원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는 양성과 임용상의 제도 개선에 대한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MB정부의 교육정책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마름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