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남민전’ 관련 교사의 옥중기가 책으로

이수일 전 위원장,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출간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 표지
‘남민전’이라는 게 있었다. 이름 하여 ‘남조선민족해방선전’. 박정희라는 이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정상적인 법 절차와 행정력이 아닌, 대통령의 권한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던 유신헌법이라는 게 위력을 발휘하던, 이른바 ‘긴급조치’와 ‘막걸리반공법’ 시절에 일어난 최대의 공안사건이라는 게 바로 남민전이다.

세상 사람들이 제법 알은체를 하는 고 김남주 시인,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실세(?) 국민권익위원장 이재오 등도 남민전 ‘관련자’들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2005년 전교조 위원장이었던 이수일 교사. 그도 남민전과 관련해 10년의 옥고를 치렀다.

그가 30여 년 전 그 때의 일을 책으로 썼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부제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에 간 교사 이수일의 삶, 사랑이야기’. 표지와 책 속 그림도 그 시절 감옥에서 직접 그린 것이다. 남민전 관련자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를 간략히 언급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실명을 거론하며 구체적 기록한 것은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이수일 선생은 1978년 서울 정신여중 교사로 재직하던 중 ‘남민전’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1979년)돼 해직된 뒤 10년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전교조 정책위원장과 참교육연구소장 등을 거쳐 제11대 위원장을 지냈다. 해직 20년만인 1999년 서울 잠실고로 복직해 현재 서울 고척고에서 역사 교사로 제자들과 만나고 있다.

“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한 그를 5 ․ 18광주민주화운동이 30돌을 맞던 18일 고척고에서 만났다.
남민전 첫 재판(위)과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보도한 기사

- 책을 쓰게 된 계기는?
“1988년 출소하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나오자마자 교육운동을 했고 특히 전교조 활동하면서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출소 후 20여년이 지났다. 그러다가 공안사건자료 접하면서 새삼스레 시간이 지나면 그것(공안사건자료)밖에 안 남겠다 싶어서 쓰게 됐다. 개인사적으로도 돌아보고 정리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 2006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공안사건의 주인공에서 민주화 인정까지 심정이 어땠나?
“우리 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만큼 세상이 민주화됐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사건 관련자 모두가 신청 ․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인했다고 할까 그런 의미는 있다. 학교 복직(1999년)하면서 복권은 됐다.”

- 제목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이다. 고 김남주 시인이 번역 · 출간했던 프란츠 파농의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원제-검은 피부 흰 가면)’의 여운이 짙은데.
“처음 생각한 건 ‘기록, 학교 갔다 온 이야기’였다.(‘학교’는 감옥의 은어). 지금의 제목은 본문에 들어가는 소제목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정했다. 파농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대변인이었다. 그것과 우리 민족해방운동 동지였던 김남주 시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이수일 선생은“내가 진실로 소망했던 건 괜찮은 한 사람의 시골학교 역사교사로 머리칼 희끗하게 늙어가는 것”이라며 “남민전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유영민 기자

- 책의 시작이 ‘내가 죽은 날’이라는 제목의 체포 당시 장면이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증거로 봐도 될까?
“그런 셈이다. 내 자신도 미처 생각 못한 걸 글을 쓰면서 발견한 게 많은데 워낙 그 당시에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는 상황에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의미나 비중이 컸구나 하는 게 의식 깊이 각인됐음을 발견한다.”

- 그렇다면 잠실고로 복직 됐을 때 트라우마의 현장인 시영아파트를 다시 찾아간 이유는?
운명일까. 잠실고 교무실에서 그 곳이 건너다 보였다. 교사로서 내가 살던 시대를 몸으로 직접 겪어보는 것이 교사로서 수업 과정이라는 의미 부여도 스스로 해 보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성숙하기도 하고 세상을 넓고 깊게 알게 된 수업과정일 수도 있다.”

-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았다. 반성하는 듯 했던 그가 최근 다시 원래의 모습을 보이는 행보를 하고 있는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우리가 반성하지 않은 것처럼 그가 반성하지 않은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변화와 발전이 그만큼은 달라지길 바랐다. 그 정도는 인정하고. 그러나 그가 하수인이니 변명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역사의 발전만큼은 변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한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싶다.”

- 감옥에서 5 ․ 18 당시 관련 인사들도 만났다. 올해가 5 ․ 18 30돌이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5 ․ 18은 운동사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큰 전환점이 됐고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고 국립묘지 안장되는 정도의 성과 있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게다가 기념 행사가 파행으로 치러진 건 역사의 역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 ․ 18정신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았다면 그런 일 있을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나 민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 남민전에 함께 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가는 이재오 씨를 어떻게 평가 하나?
“일제시대에도 그런 분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관 뚜껑 덮어봐야 안다는 말 있지 않나. 누구도 장담 못한다. 우린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지 그 점은 좀 더 두고 봐야한다. 이재오가 다시 어떻게 돌아올 지 누가 알겠나.”
학교 교무실에서 교사로서의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수일 교사의 모습. 임정훈 기자
- 학교생활은 어떤가?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본다면?
“학교에 있다는 건 아이들의 생명력에서 많은 에너지 얻는 것이다. 그건 교사로서 특권이고 행복이다. 반면 학교로 돌아온 행복감도 있지만 교사로서의 고뇌와 좌절은 더 크다.”

- 무엇 때문인가?
“학교 ․ 교육현실이 입시교육이나 이런 게 더 심화돼 교육적 상황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고 내가 그런 상황을 능동적으로 극복할 만큼 교사로서 개인적 역량의 한계도 크다. 환경탓만 할 수 없어 좌절도 매일매일 겪고 있다. 퇴직을 가까이 남겨두고 보니 좀 덜 부끄러운 교사로 마무리하고 싶은데 그저 그런 교사로 끝날까싶은 초조함이 있다. 내가 농촌 출신이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큰 편이라 농촌 학교에서 퇴직하고 싶다. 좀 더 욕심을 내면 황폐한 농촌을 살리고 생태주의적 시대정신의 패러다임을 가꾸어보고 싶다.”

-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다. 좌파 · 빨갱이 운운하는 이념 공세와 전교조 둘러싼 지금의 시국상황을 어떻게 보나?
“새삼스레 얘기할 필요 있겠나. 화병 난 사람도 많다더라. 역사의 큰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강물이 때로는 역류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 냇물은 강물로 강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역사에 대한 믿음은 버릴 수 없다.”

- 이 책을 읽을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태로 보면 지금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취업전선에서 얼마나 시달리고 있나. 우리가 자신에 충실하고 고민하는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자아를 돌볼 수 없을 만큼 더 쥐어짜고 내몰리고 있다. 그땐 겨울공화국이었고 지금은 모든 게 분출되는 여름 같은 시대다.

그러나 그 당시도 선택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소수였다. 어차피 역사는 그런 큰 흐름과 사이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와 그들이 다른 시대를 사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건 어떤 시대에 살든 그 시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인간다운 사회가 되도록 세상의 중심을 옮기려는 노력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믿는 건 문제나 모순이 쌓이면 분노나 더 큰 동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인간’이다. 책에 나오는 여러 인간상이 시대의 산물이다. 내가 직접 만난 이들은 막걸리반공법에 걸린 이들부터 양심수까지 다양하다. 그들에게 얽매이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 면면을 더 중심적으로 봤다. 운동하는 이들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 드러내고 싶었다.

남민전이라는 특정 사건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게 아니다. 독자들도 그런 데 기대를 갖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에서 인간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나 문제의식을 발견했으면 싶다. 운동도 결국 그걸 떠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념이나 사상도 결국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살아있는 인간’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인간답게, 인간적으로 사는 것, 그걸 잃지 않는 것. 이 책은 내 스스로 미워하고 가련히 여기는 내 젊은 날이자 나의 족적이다.”
복권과 민주화운동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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