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진보-보수 교육감 모두 인권위 권고 안 지켰네

16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청구 자료 분석

한 학생이 고정형 명찰에 담긴 자신의 이름을 스티커로 가려 놓았다. 임정훈 기자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5일)와 신임 교육감들의 취임 100일(8일)에 즈음해 해당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학생인권과 관련한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기자는 지난 9월 10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지난 해 국가인권위의 인권침해 결정으로 개선 권고를 받은 ‘초중고 고정형(부착형) 명찰 착용 실태’와 전북교육청에서 인권 침해 논란을 불렀던 ‘초중고 니코틴측정기 사용 현황(지역/학교명/보유대수/구입단가/구입년도/연간사용횟수)’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각 시도교육청이 공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 경기를 포함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은 물론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한 지역에서도 교육감은 물론 장학사 등 교육 관료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연수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신임 교육감들이 해야 할 일의 윤곽이 한층 분명해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11월 "교복에 명찰을 고정해 부착하도록 하여 학교 밖에서까지 일반인에게 이름이 노출되도록 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할 뿐 아니라 각종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교과부장관과 전국 각 시·도교육감에게 "초·중·고교 학생들의 명찰을 고정하여 부착하게 하는 관행을 시정하고, 이와 관련된 학교규칙 및 학교생활규정이 개선되도록 각급 학교를 지도·감독할 것"을 '권고'했다. 기존의 고정형 부착 명찰을 탈착식으로 바꾸고 이와 관련된 학교 규정을 개선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교과부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당시 이를 수용해 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하라는 공문을 각 해당 초·중·고교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공문만 내려보냈을 뿐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한 지 1년여에 이르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후속 조치를 강구하지 않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에서는 "'초·중·고교 고정형(부착형) 명찰 착용 실태'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당연히 이와 관련한 학교규칙 및 학교생활규정의 개선 여부도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라는 공문만 보냈을 뿐 각 학교에서 이것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도·감독은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관련 통계 자료가 없다는 답변에 이어 "명찰 부착과 관련된 것은 학교장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황당한 내용을 덧붙였다. 인권위의 권고와 이를 수용한 교과부장관, 시·도 교육감의 지침을 학교장이 판단해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경기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개인적인 생각을 적은 것인데 실수로 봐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교육행정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장학사가 이처럼 자신의 임의대로 공문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학교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경북교육청은 한 술 더 떠 사실 관계와 전혀 다른 거짓 자료를 내놓았다. "2010년 3월 기준으로 부착 명찰을 착용하는 학교는 없음"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 조사한 결과 포항, 안동, 칠곡, 구미 등 경북 거의 모든 지역의 상당수 중·고교에서 고정형 명찰을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교육청 관계자 역시 "다음 번에는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말로 잘못을 인정했다.

진보교육감이 들어선 경기도교육청과 서울교육청 등은 정보공개청구 내용을 조사한 바 없다는 이유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임정훈 기자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당선된 지역들도 답변이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전북·광주·전남교육청 역시 "조사를 하지 않아 해당 자료가 없다"는 내용이었고, 강원교육청은 중·고교14개교에서 고정형 명찰을 착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16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인권위의 권고를 적극 수용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고정형 명찰을 탈부착형으로 바꾸고, 이와 관련된 학교규칙 및 학교생활규정이 개선되도록 각급 학교를 지도· 감독해 학생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1년여가 다되도록)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관계기관에 이행을 촉구하겠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편 2009년 전북교육청에서 2억 6000만원을 들여 도내 130개 고교에 도입한다고 밝혀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던 니코틴측정기(Co측정기) 사용 현황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보건법>에 의한 <학교건강검사규칙>에 따르면 "흡연·음주·약물 사용 등에 관한 건강검사는 시·도교육감이 구조화된 설문지를 마련해 학교의 장을 통해 조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금연 지도를 위해 니코틴측정기를 사용하는 것은 법률적인 근거도 없는 인권침해라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니코틴측정기 사용 현황 정보공개청구에 울산, 인천, 서울, 경기, 전남, 광주, 강원교육청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 지역은 "해당 내용을 조사하지 않아 보유하고 있는 자료가 없다"는 공통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는 사실상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니코틴측정기가 단위 학교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전혀 실태를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광주교육청은 여기에 보태어 "니코틴측정기 현황을 조사할 경우 특정업체의 악용 사례 또는 염려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이라는 황당한 설명을 덧붙였다. 특정업체에 상업적 용도로 이용될까를 먼저 염려해 학생들의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니코틴측정기의 인권침해 논란을 촉발시켰던 전북교육청은 13개 고교에 1대당 175만 원짜리 측정기를 도입·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제시했다.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2009년 발표내용 보다 상당히 줄어든 숫자이다.

제주교육청은 증감률을 파악하지 않은 다른 시·도교육청과는 달리 니코틴측정기 도입을 전후한 학생 흡연율 증감 상태를 공개했다. 제주교육청은 "감소는 1~2% 내외 이거나 '효과 미미함'"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니코틴측정기가 학생들의 흡연율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대전교육청은 학생 흡연율이 초등 0%, 중 -43.58%, 고 -70.94% 감소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전 ㅅ고 교사인 이아무개씨는 "니코틴측정기 사용으로 중·고생의 흡연율이 50~70%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건 넌센스다. 학교 현장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전교육청 자료에서 J고의 경우 니코틴측정기를 100대나 보유하고 있다고 돼 있지만 확인 결과 이 학교에는 니코틴측정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교육청이 공개한 자료가 정확한 실태 조사에 근거한 것인지 의구심을 낳는 대목이다.

이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사실상 전국의 모든 시도교육청에서 학교 현장에 대한 접근과 이해 그리고 지도·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해당 업무의 실무자인 장학사(관)들의 소극적인 행태 역시 문제로 드러났다. 진보교육감 지역을 중심으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 있으나 아직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교육감이 학생들의 인권을 개선할 의지가 있고 교육 주체들이 이를 요구한다하더라도 실무에서 이를 담당하는 장학사(관) 등 교육 관료들의 인권감수성이 떨어지고 탁상행정만 반복한다면 학교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진보교육감 지역을 중심으로 학생인권과 교권을 서로 존중하는 학교 문화 만들기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어 보인다. 물론 학생인권조례는 경기에서만 제정됐을 뿐이고 신임 교육감들이 겨우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상황이고 보면 앞으로 현실성 있는 계획과 지도 ․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러한 학교 문화 개선 노력에 소극적인 시도교육청 지역에도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관료들부터 제대로 교육시키고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첫 단추가 돼야 할 것이다. 인권조례가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현장에 제대로 적용하고 지도·감독하는 교육관료들의 인권감수성이 천박한 수준이라면 기대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ㄴ 9월 3일 서울의 한 중학교를 방문한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학생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가슴에 인권위에서 인권침해라고 밝힌 고정형 명찰을 여전히 달고 있다. 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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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청구 , 김상곤 , 곽노현 , 학새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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