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시와 에세이가 있는 가을풍경

'70편의 마음 발자국'을 읽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 창비 / 7,000원

 
언어유희가 빛났던 '우울 씨의 일일'을 시작으로 자본주의의 내막을 희화화한 '자본주의의 약속'을 거쳐 함민복 시인이 이른 곳은 '가난한 따뜻함'이 머무는 '경계'의 공간이다. 늙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 세상과 삶에 대한 잔잔한 호명 등이 경계를 넘나든다. 그 넘나드는 자리에 비로소 꽃이 핀다.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진 가난한 어머니와 아들의 눈물겨운 사랑이 담긴 '눈물은 왜 짠가'가 처음 세상에 전해졌을 때의 충격이란 감동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집 곳곳에는 그에 못지않은 절창들이 넘친다. 한줄한줄 시인의 마음의 결을 저며 새긴 듯한 시들을 음미하기엔 지금이 제격이다.
 
따뜻한 가을 햇살 아래에서 시인이 "칠십 편의 마음 발자국"이라고 말한 시들을 읽노라면 살아온 날들의 여독이 스르륵 녹아날 것이다.

그때 내가 본 것을 생각하면 눈이 맵다
끌림 / 이병률 / 달출판사 / 12,000원

 
지난 2005년 발매되면서 여행 에세이란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끌림>의 개정판이 나왔다.
 
5년 전 처음 나왔을 때부터 기존의 정보전달 위주의 여행서들이 갖지 못한 감성을 전달한 <끌림>은 여행과 사랑, 낭만에 목마른 청춘들의 찬가가 되었고, 여행 에세이가 하나의 확고한 장르로 자리 잡은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바이블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에 새로 태어난 <끌림>의 표지 콘셉트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기차역으로 여행 가방을 들고 하나둘씩 도착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작가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직접 구입한 아기자기한 피규어들을 촬영한 것으로, 책을 펼치는 마음을 미리부터 설레게 만든다.
 
여행 산문집 '끌림'의 정서를 전해주는 컴필레이션 음반 '끌림'도 발매한다.

바다 한 잔에 회 한 점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한창훈 / 문학동네 / 13,800원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문도에서 태어나 걸쭉한 남도 입담으로 바다와 섬의 이야기를 우직하고 집요하게 기록해온 작가 한창훈. 그런 그가 온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바다의 기억과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생계형 낚시'40년의 노하우를 엮어 '21세기형 자산어보'를 완성했다.
 
이 책은, 바다와 섬, 그리고 그에 기대 사는 모든 생명들에 관한 생생한 기록 그 자체이다. 한창훈은 이 책에서 온갖 눈이 시린 바다의 풍광들과 활기찬 항구의 감동을 묘사하다가도 "풍경과 저녁밥은 별개의 문제"라며 짐짓 정색하고 다시 생활로 돌아오는 영락없는 '생계형 낚시꾼'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를 따라 민장대 하나 매고 바닷가로 당장 뛰어가 홀로 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해산물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으되, 정작 글 속으로 들어가 보면 바다를 껴안고 바다에 기대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 바다와 섬과 해산물과 사람이 뒤엉켜 눈물과 웃음 한몸에 범벅되어 살아가는 신비한 '인어' 같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느 날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 푸르메 / 12,000원

 
이 책은 생과의 거리, 생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생에 대한 감각 등 많은 것들이 점차 변해가는 속에서 새로이 마주친 작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은 '윤대녕'은 누군가의 자식이자 남편이고 또한 아버지이다.
 
한 사람으로서 작가 윤대녕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 어떻게 변해왔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산문의 향기로 가득한 이 책에는 세월에 따른 변화를 이제는 묵묵히 받아들이며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는 작가의 '소설 밖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냥 놓쳐버리기 아까운 "여름 한나절 뒤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과도 같은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람을 향한 한없이 따뜻한 시선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박완서 / 현대문학 / 12,000원

 
"자신이 싫어하는 나를 누가 좋아해주겠는가.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본문 중에서).
 
소설가 박완서 씨가 4년 동안 쓴 글을 모은 이 산문집은 세대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를 파노라마 같은 온갖 색조로, 그윽하게 뿌리내린 사유의 세계는 그의 작품 원형이 된 자신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솔직 담대한 사실주의 그림과 같은 리얼리티를 담고 있어 더욱 울림이 크다.
 
작가는 등단 40주년이라는 것에 어떤 큰 구속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존재의 영속성에 대한 끝없는 탐구로, 작가가 아직 가지 못한 길, 어딘가에 있을 더 아름다운 길을 찾아 나설 자유를 향한 의지와 내적인 충동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그

시 , 책독책서 , 에세이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임정훈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