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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교사이자 시인이기도 한 그는 이 너절한 세상 속에 인간을 지키려는 큰 사랑의 교육이 있어야 하고 교육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희망을 찾으려는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참 시인다운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교육을 지키고 인간의 희망을 찾으려는 치열한 싸움의 현장에서 단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우리 교육이 시장판으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한 싸움의 현장에 시인은 얼굴 한 번 보여준 적 없었다. 전교조가 위기에 처해도 우리 '회원'은 늘 침묵했다. 그런 그가 교직을 그만둔 뒤 3년이 흐른 시점에 전교조가 만드는 신문에 뜬금없이 "한심하게도 나는 평생 당신들의 동지였다"고 사랑 고백을 해놓으니 난감하다.
교과서에 실린 시인이 돈을 따진다고 누가 몰아붙였을까?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아주는 '섬진강 시인'에게 그런 무례를 범했을까? 궁금증은 잠시 덮어두고 그가 말하는, '일방적으로 정하는 강연료'라는 지적에 대해 변명해야 할 것 같다. 현재 전교조는 외부 강사를 초청할 때 강연료로 20만 원을 드리고 있다. 전교조 내부 강사에게는 강연료가 지급되지 않는다. 교과서에 실린 시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내노라하는 분들 모두 강연료로 그것 밖에 드리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강연료가 적어서 강연을 못 하겠다는 분을 나는 아직 뵌 적이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강연 요청할 때 지나치게 뻣뻣하고 불친절했다면 그건 고칠 일이겠다. 전교조 사무실에 근무하는 전임자들의 얼굴이 무심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지적도 새겨들을 말이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했다. 그들의 고된 업무와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잘 알기에 말을 못 할 따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그는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그렇게 교육에 온몸을 바친 사람들이 어느 때 교장이 된 걸 보고 그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 전교조 출신 교사는 교장이 되면 안 되나? 그들이 교장이 되면 교육을, 아이들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을 멈추기라도 한단 말인가?
전북에도 전교조 출신 교장이 있다. 겨우 대여섯 명이다. 그들이 어떤 학교를 만들고 있는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알 것이다. 그들은 교장이 된 지금도 교육을, 아이들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는 교사들이다. 그런 걱정을 밑거름으로 학교를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다. 진보 교육감과 함께 일하는 교사들이 늘어서 곤혹스러워 하실 필요도 없다. 진보 교육감은 혼자 진보가 되는 게 아니다.
그는 얼마 전 한 '부자신문'에 시를 연재했다. 오랫동안 그는 그 신문의 '동지'였다. 그러나 시인이여, 아는가. 그 신문은 당신이 강조한 '교육을 지키고 인간의 희망을 찾으려는 치열한 싸움', 그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적이다. 그런 부조리한 신문과도 영혼을 섞는 시인이 '교육을 지키고 인간의 희망을 찾으려는 치열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생급스레 '동지'라 부르며 지청구를 날리니 그저 황당할 뿐이다. 듣그러운 소리 접고 시인이여, 제 눈의 들보부터 뺄 일이다.
'희망 칼럼'에 절망 칼럼을 싣는 <교육희망>이 자꾸 절망스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