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초등생은 빠져라”...해괴한 초등 학예회

인천 한 초등학교, ‘학생 들러리’ 체육관 개관 기념 학예회 눈총

체육관에서 내빈과 학부모들이 음악 연주를 관람하고 있다.


8일 오후 3시 40분, 인천 서구에 있는 ㄱ초 체육관. 체육관 개관 기념 학예회가 시작됐다. 무대에 6학년 1반 학생 30여 명이 올라가 가요에 맞춰 춤을 췄다.

하지만 관람석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이 학교 박 아무개 교장도 자리에 없었다. 대신 2, 4, 6학년 학부모 300여 명이 의자에 앉아서 자녀의 공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예회 시작되자 교장들은 샴페인 파티

학예회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자기 반 교실에서 대기했다.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연습하거나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잤다. 공연을 끝낸 반은 교실 텔레비전을 통해 동료들의 공연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학예회가 시작되자마자 박 아무개 교장은 체육관 옆에 붙어있는 내빈실로 걸어갔다. 주변 학교 교장과 이 학교 학부모 임원들도 따라나섰다. 이들 10여 명은 내빈실에 따로 모여 시루떡 케이크를 자르고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들에겐 학생들의 공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내빈실 안에서는 샴페인이 터졌다.


이 학교 한 교사는 “학예회를 학생들이 직접 보지 못하게 하고 차례가 되면 재롱잔치나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번 학예회는 개관식에 내빈과 학부모를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해 학생들을 들러리 세운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학예회가 진행되는 시각, 10여 명의 남학생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이 가운데 3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학생은 “오전에도 체육관에서 학예회를 보고 싶었지만 담임선생님이 그곳엔 가면 안 된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 학교 1, 3, 5학년은 이미 오전에 학예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전 학예회에서도 학생들은 체육관 관람석 대신 교실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앞서 오후 2시 40분엔 이 지역 전문 공연단이 체육관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학교예산 100여 만 원이 넘게 든 초청공연이었다. 그런데 관람객 300여 명은 대부분 어른들이었다. 주변 학교 교장 15명을 비롯하여 김 아무개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과 장학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교 쪽은 행사 도중 체육관에 준비한 의자에 빈자리가 생기자 6학년 2개 반을 잠깐 앉아있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잠시 후 학부모 참석자가 늘어나자 학생들을 교실로 되돌려 보냈다.

학생들은 학예회 때와 같이 교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음악회 모습을 지켜봤다. 학교 쪽 관계자는 “미디어시대에 맞게 텔레비전으로 관람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 4, 6학년 교실 20여 개 전체를 살펴본 결과 5개 반 가운데 한 반 꼴로 텔레비전을 꺼 놓거나 다른 만화영화를 상영했다. 음악회 중계화면을 켜놓은 반에서도 ‘아이엠 그라운드 게임’ 등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 ‘찬밥’ 비판에 “학부모도 교육수요자”

음악회가 진행되는 시각, 학생들은 TV를 보지 않고 딴청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 학생 수는 869명. 일부 교사들은 “오전 오후로 학년을 나눠 학생을 400명씩 관람시킨다면 충분히 현장에서 학생이 참여하는 학예회가 가능했는데, 교장이 이런 교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학생들은 TV화면을 지켜보며 한 개의 자기 반 학예회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마냥 기다려야 하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에 대해 박 아무개 교장은 “체육관 의자를 치우면 학생들 일부를 수용할 수는 있었겠지만 교육 수요자 중엔 학부모도 있기 때문에 편안한 관람을 위해 학부모들만 체육관에 모신 것”이라면서 “미디어를 통해 학생들도 음악회와 학예회를 다 보았다. 체육관이 좁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해명했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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