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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24호-동행] 진료 사각지대 양산하는 노숙인 의료지원제도

[동행]당사자들이 병원, 관공서, 법원, 시설 등을 이용할 때 부딪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전하는 꼭지입니다.

문턱은 높아지고 지원수준은 낮아지는 역진적인 상황
‘노숙인 등’에 대한 의료지원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직접 당사자분을 모시고 진료소로, 병원으로 다녀보게 되면 금세 체득하게 된다. 사전 설명을 하자면, ‘노숙인 등’, 그러니까 거리, 시설, 주거로서 부적절한 곳(이것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규정된 바 없다)에서 생활하는 홈리스에 대한 의료지원은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복지부에서 관장하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이고, 또 하나는 광역지자체에서 관장하는 ‘노숙인 의료보호’다. 이렇게 둘로 쪼개진 시기는 노숙인복지법 시행 이후인데, 제도는 두 개지만 둘을 포개보면 과거보다 도리어 문턱은 높아지고 지원수준은 낮아지는 역진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넘기 힘든 진료소의 문턱
지난 달 20일, 쪽방에 사시는 한 회원분이 박씨를 오토바이에 태워 사무실로 모시고 왔다. 보름 전엔가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다 만난 분으로, 서울역 노숙인 진료소에 가시라 권유했던 적이 있던 분이었다. 당시도 그랬지만 그는 밥을 전혀 넘기지 못하겠고, 기침이 심해 호흡이 어렵다는 증세를 호소하셨다. 쪽방에 살면서 일용직을 나갔으나 3월부터 몸무게가 급속히 빠지기 시작해 일을 나가지 못했고 방세를 마련치 못해 거리에 나온 것이다. 진료소에 왜 가지 않았느냐 채근했더니, 13일과 16일 두 차례나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가보니 무슨 행사가 있어 문이 닫혀 있더라는 것이다. 그 전에 갔을 때는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 물으니 진료소 측에서 컴퓨터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입력이 되지 않는다며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후 확인해보니 진료소측은 그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하였다. 치료를 받았다거나 병원으로 의뢰되지 않은 이상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오토바이에 실려 올 만큼 치료가 절박했던 이가 진료소를 가지 않았을 리는 없다. 더군다나 그날은 진료소가 문을 닫은 것 까지 확인했던 그 아닌가? 진료소가 문을 닫았으니 119를 통해 행려환자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박씨를 모셨다. 방사선 촬영 등 몇 가지 검사를 마친 후 내과 과장을 만났다. 과장은 말에 앞서 긴 숨을 내쉬었다. 한숨이다.
“지금까지 진료하면서 이렇게 지저분한 폐는 처음 봐요”
한쪽 폐는 아예 녹아 없어져버렸고, 다른 한쪽도 겨우 1/4만 남은 상태라는 것이다. 과장은 이 상태로 숨을 쉬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고 한다.

이내 중환자실로
입원을 마친 박씨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전염성이 있는 결핵인지라 1인 격리실에 배치 된 것임에도, 거리에서 노숙하다 이렇게 좋은 방에 들어와 있으니 너무 좋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망가진 폐를 치료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도 삽관을 해야 하는데 판단을 해 달라는 것이다. 산소호흡기를 씌워도 산소 포화도가 90%를 넘지 못해 기계호흡기를 달아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에게 물었더니 내게 물어 결정하라고 했다 한다. 의료적으로 판단하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이런 상황에서 기계호흡기를 달게 되면 이후에 폐가 운동을 멈추게 될 가능성이 있어 독자적 판단은 힘들다고 한다. 폐가 뛰지 않으면 평생 기계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권한을 떠나서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결국 주치의의 의료적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는 기계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로 내려갔다. 손과 발이 묶여 있는데도 얼마나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는지 환의는 다 말려 올라가 있고, 깔린 담요도 헝클어져 있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서울시 노숙인 의료보호제도는 즉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한다
다행, 박씨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그러나 그저 다행이라고 넘길 일은 아니다. 박씨는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무보험자’였다. 그가 진료소에서 거절을 당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울시의 지침, “무보험자에 대한 진료의뢰 시 원칙적으로 금함”이라는 지침으로 그는 진료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서울시는 정기적으로 홈리스를 대상으로 집단 결핵 검진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홈리스들의 생활형태가 결핵에 취약하고 유병률도 높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런 집단 검진보다 결핵 관리에 효과적인 것은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다. 아플 때 제 발로 병원에 찾아가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말이다. 그러기 위해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서울시 노숙인 의료보호제도는 즉시 수술대 위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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