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 막지 못하면 무너진다

20문 20답

“전교조의 사활-” 교원평가 문답



1. 당신들은 ‘교원 평가’를 반대하는가?
--- 그렇다 반대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우리는 ‘모든’ 평가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금 교육부가 내놓은 ‘교원평가’를 반대한다. 공교육 부실의 주된 원인을 ‘교원 개개인의 자질’ 문제로 떠넘기는 얕은 수에 지나지 않아서이다, 교원 개개인을 어거지로 등급을 매겨 서로 갈라놓고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개별’ 평가에 반대하는 것이다.
--- ‘그래 교사들에게도 평가가 필요한데,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안되지’라고 지레 한 발 뒤로 빼기에 앞서 지금 과연 무슨 요량으로 교원평가제를 들여오려 아득바득 애쓰는지 따져물어야 한다. 전교조 사업을 펼칠 때도 평가라는 과정은 반드시 뒤따라야 하듯이, 학교 ․ 교사의 교육활동에서도 ‘평가’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기능을 위해 평가가 이루어지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는 평가의 과잉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것도 점수경쟁을 유발하는 평가 본래의 목적을 아예 상실한 기이한 평가장치와 그 기능으로 인해서이다. 교원평가의 찬반을 가르기에 앞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기능을 위해서 평가를 하려는지에 우리는 늘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학생을 교육하기 보다는 통제하는 수단, 피드백을 위해서보다는 서열화를 위한 수단, 교우 관계를 왜곡시키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감돌게 하는 묘한 수단이 지금의 평가이다. 대안적 평가를 모색하지도 않고서 잘못된 평가의 틀을 고스란히 교사들에게도 들이밀어 ‘너희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식이기에 우리는 반대한다.
--- 덧붙인다. 정부가 들여오고자 하는 교원평가는 자신의 책임은 내팽개친 채 교사들을 옭아매는 통제와 구조조정의 수단이다. 그렇기에 교사들에게 성찰을 통한 더나은 교사로서의 길을 열어주기는 커녕, 가슴 졸이면서 눈치만 보게 만든다. 시장논리에 처해 있는 학원 강사들이 교육적이라 할 수 없는 ‘점수 올려주기, 인기 얻기’를 위해 골몰하는 풍경이 학교에서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 ‘다면평가’라는 ‘합리적인 모양새’를 갖추어 눈치볼 사람을 늘이고 ‘무능력자’로 찍히지 않기 위해 전전 긍긍하게 된다.

2.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 일본에서도 ‘교원 평가’를 추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추진한 나라가 몇이 있지만, 하지 않는 나라가 더 많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의 사례를 ‘모범’이라 말하지 말라. 그들 나라에서도 반대가 많다(그들 나라에서 차터스쿨 등 한때 선보였다가 현실에서 무리함이 드러나서 후퇴한 교육개혁안도 많다). 미국과 일본이 경제 강대국일지는 몰라도, 사회복지와 교육복지는 결코 선진국이 못 된다. 미국의 이른바 교육경쟁력은 그들의 경제패권 지위로 하여 끌어들인 외국유학생 덕을 톡톡히 받고 있지 않은가. 외국에서 배우려면 ‘교원평가’ 이야기가 입 밖에도 나오지 않는 독일에서 배우라. 이미 영미형 자본주의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자기반성의 소리가 정부 일각에서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들 나라들은 모두 교원평가를 성과급, 연봉제와 연결시켰다는 점을 기억하라.


3. 당신들은 자질이 부족한 교원들에 대해 국민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것을 모르는가?
---- 원성이 높은 대상은 성추행, 심한 모욕과 체벌, 금품수수를 저지르는 일부 교원들이다. 이는 교원평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징계하느냐는 문제다. 이들을 일러 ‘부적격 교원’이라 해야 옳다. 획일적인 평가 도구로 하위에 속한 이들을 부적격으로 낙인찍는 건 곤란하다. 7차 교육과정은 ‘특별보충’이랍시고 예산을 먼저 배정하고 무조건 하위 몇%를 나머지 학습을 시키라는 폭력을 저질렀다. 이 사고에서 그들은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부진아로 학생들을 낙인찍듯이 교사들도 부적격으로 함부로 낙인찍으려 들지 말라. ‘부적격’의 기준부터 분명히 하라.
---- 또한, 진짜 ‘부적격자’는 수업 평가를 한다고 드러나는 게 아니다. 교원평가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겨서 학부모들의 여론을 얻으려 들지 말라. 학교의 미묘한 문화와 비민주적 의사소통구조가 문제이고 뻔히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 아닌가. 임용과정에서 경쟁만 시켜 골라뽑기만 할 뿐 튼실한 양성체제는 갖추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교사들에게 돌리려는 건 후안무치다.
---- 부실한 양성 체제와 사립학교 교원 채용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과 재단의 전횡, 왜곡된 의사소통구조, 관리자의 책임방기로 교사직을 유지해온 ‘부적격자’는 단위학교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에 징계요구권을, 학교운영위원회에 징계 1차 심의권을 부여하여 징계권을 현실화할 일이다.
---- 드물게는 정신질환자와 같이, 업무수행이 곤란한 교원들도 있을 수 있다. 아주 드물게! 이들을 방치하는 문제는 무사안일한 관료들에게 따질 일이요, 교원평가와는 전혀 무관하다.

4. 그들 말고도, 실력이 없거나 자질 향상에 게으른 교사들이 많지 않은가?
① 교사의 실력/전문성이 해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전문성/실력 부족’ 교원이 많다면 이는 교원양성과 임용 과정이 무척 엉성했다는 뜻이고, 양성임용과정을 제대로 다잡는 것이 옳은 해결책이다.
② 다만, 기왕에 배출된 교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돕는 것이 ‘과도기적 조치’일 터인데, 이는 현장교원 자율연수체제 장려를 통해 북돋는 것이 순리이다.
③ 학부모들과 관료들이 문제삼는 ‘실력/전문성’이 과연 무엇이지도 우리 교사들은 생각해야 한다. 학력신장을 정책목표로 삼고 학교폭력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여기에서 교사들한테 주문하는 ‘실력/전문성’은 아이들을 (때로는 폭력-여러가지일 수 있다-을 써서라도) 잘 드잡이해서 성적을 높이는데 유능함을 발휘하는 ‘입시형’ 교사가 되라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이런 왜곡된 기준을 평가라는 폭력을 동원하여 강요하기에 앞서 기준부터 뜯어고치는 게 순리다.

5. 이를테면 미적분을 변변히 가르치지 못하는 수학 교사도 있다. 이렇게 전문성 부족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자율연수’로 극복된다는 말인가?
① 그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실사부터 하고서 말하라. 그런데 그 실사는 학부모와 학생의 판단을 빌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② 미적분 영역은 초중고 수학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영역에 속한다. 예전의 교원양성과정이 미흡하여 그런 일이 생겨났다면 ‘과도기 조치’로서 ‘고교 → 중학’으로 인사교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순리다.
③ 교과전문성이 부족한 경우는 대부분 교과 폐쇄(교련)나 축소로 하여, 부전공 연수를 통해 교과를 바꾼 교원들의 경우다. 또한 조령모개식, 유연화 목적의 교원정책으로 인해 중등교사를 초등으로 임용하고, 단기 속성으로 자격 소지자를 양산하는 일을 정부에서 저질렀다. 이 문제는 굳이 교원평가제도를 요란스럽게 들여오지 않아도 파악할 수 있고, 이미 파악된 문제다. 이들에게는 ‘전공 연수’를 더 받을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고 당사자들도 기꺼이 더 연수받으려할 것이다.

6. 교원들의 실력과 열성이 부족하지 않으냐는 학부모, 학생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지 않은가?
①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는 학부모회와 학생회를 서둘러 법제화하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이들이 학급운영과 수업, 학교계획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말할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수평적 관계 형성을 통한 허심탄회한 의사소통 구조 이 속에서의 의견 수렴은 교사들에게 좋은 자극과 격려가 된다. 다만, 교원 개개인을 (내쫓는 것을 전제로) 따로따로 점수를 매겨서 ‘평가’하는 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② 교원들의 열성을 꺾는 것은 평가의 부재 탓이 아니다. 평가는 ‘근평’이라는 형태로 나름의 통제장치로서 있었고 그것이 만들어낸 부작용은 학부모들조차 아는 사실이다. 열성을 가지고 담임으로서의 역할과 수업을 잘해보려고 애쓰는 교사들에게 관료들은 ‘교장의 명을 따르라’ ‘절차를 밟아서 하라’고 윽박질렀던 것이 불과 몇 해 전이고 여전히 이런 풍토는 남아있다. 교육과정을 편성할 권한도, 가르친 자가 전문성을 발휘하여 평가할 틈도 전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정신없이 쏟아지는 잘못된 정책들은 학교현장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실적을 위한 잡무처리로 노동강도가 강화되었고 ‘교사가 밥’인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온 탓에 교사들은 스스로 자발성을 거세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그래서 ‘무기력증’에 빠진 듯한 교사가 많아 보이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라. 노동강도가 아니라 노동의 질이 문제다. 교원평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근평이 몇몇 ‘승진지향적’ 교사들에게 효과를 본 것이라면 교원평가는 모든 교사들을 ‘시키는 대로만’ 하는 수동적 풍토, 무사안일과 눈치보도록 만드는 거푸집이다.

7. 왜 그렇게 집요하게 개별 평가를 반대하는가?
① 교원노동은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평가자의 주관을 피할 수 없어 악용되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극우 정치풍토가 만연된 일본에서는 ‘기미가요, 히네마루’를 거부한 양심교사가 ‘부적격 교원’으로 주로 낙인찍힌다.
② 일률적 기준에 의해 평가할 경우, 교육활동이 그 좁은 틀 안으로 제한되고 왜곡되기 쉽다. 영미에서는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교원평가를 연계짓는데, 평가의 객관성을 따지다 보면 영미의 방식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는 전인적 교육을 지향해야할 공교육을 학업성취 향상에로 편협하게 몰아서, ‘지필고사 성적경쟁 바람’만 일으킨다. 영미에서는 그 부담으로 하여 성적조작 비리가 흔한 일이 되었다. 당신들은 그런 교육을 원하는가?
③ 학교교육은 저마다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여 한다. 서로 비판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원간 경쟁이 반드시 뒤따르는 교원평가는 교원간의 협력구조를 깨뜨린다. 영국에서는 이렇게 삭막해진 교원 풍토를 견디지 못하여 교직 이직률이 높고, 교직이 ‘꺼리는 직업’의 하나가 되었다.
④ 겉으로는 ‘교원자질과 학교 교육력 향상’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업적주의 보수와 인사제도 개편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구호는 이데올로기다.
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개선은 교육부가 마련한 개개인에 대한 다면방식의, 그리고 자료를 평가관리위원회가 수합해서 등급을 매기는 평가 시스템에서라면 아예 포기해야 한다. 눈치가 보이니깐 긴장해서 더 잘 할 거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서로 ‘평가’를 무기를 휘두르게 될 가능성이 99%다. 지금의 입시로 대별되는 선발시스템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평가’이다. 학부모들은 여전히 학교운영위원의 자식들에게 수행평가가 유리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아무리 인간적이어도 냉정하게 평가결과를 산출하면 ‘나쁜 선생’이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1,2점으로 대학이 바뀌고 배우자가 바뀌는 마당에 예민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교사들을 개별 평가하여 결과를 산출하고 등급을 매기게 되면 교사들은 당연히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보여줬던 왜곡된 행위와 생각들에 갖히게 되고 만다. 그래서 교원평가는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도 결코 ‘유리한’ 게 아니다.

8.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절차를 마련하면 되지 않겠는가?
---- 일본의 악용 사례를 떠올리라.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다보면, 학생들의 시험성적(학업성취도)와 연계지어 교원을 점수매기겠다는 식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몇 해전 학업성취도 평가에 우리 학교가 표집학교로 정해졌다는 소릴 듣고 평가원에 전화를 걸었다. ‘교사들의 교육활동의 결과는 학생들의 평가결과’라는 것이 그 사람의 이론적 견해였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전화로 길게 언쟁을 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 지금 교육학자들과 관료들의 생각이다. ‘교사의 노동의 산출물은 학생들의 성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초기 도입당시에는 대체로 ‘느슨’해보여서 ‘이걸 어따 써’라는 느긋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바로 평가를 도입하려는 쪽의 작전이다. 그들에게 신념화된 교육이론이 바로 이런 것이라면 결국 교사들은 ‘학생의 성적’으로 승부해야 할 날이 반드시 오게 된다. 하루의 수업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면 교사들의 모든 수업을 비디오로 찍어서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가장 채택하기 쉽고 그들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교사의 성과를 직접 연계시키는 것이다.
---- 더불어, 학생들을 교사 나름대로 애써 기준을 마련한다 해도 불만은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교사들에게도 평가의 객관성, 공정성, 신뢰성을 들먹이는 게 관료들이고, 학부모들이고, 학생들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의 전문적일지라도 주관적으로 보이는 평가는 교사 스스로 지양하고 명확히 점수화가 가능한 측정 위주의 단순한 평가를 지향하게 된다. 수학은 쪽지 시험을 주로 치러서 수행평가 항목으로 하고, 체육은 폼이나 향상된 정도보다는 기록을 재는 것이 속 편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원평가는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교육부가 제시한 평가틀은 불만을 자초하게 되어 있다. 교원평가 도입을 막지 못하면 ‘보다 합리적인 평가체제 구축’의 단계로 간다. 객관성에 대한 요구와 ‘학생의 성적이 곧 교사들의 교육활동의 가장 명백한 결과’라는 교육관이 결합되는 순간, 교사들은 자신들이 담당한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봉급과 등급이 달라진다.
---- 이것이 초래하는 가장 불행한 결과는 교사들이 자기도 모르게 ‘특정학생들을 소외’시키는데 가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성적은 아무리 교사들이 코피 쏟으면서 가르쳐도 쉽사리 오르는 게 아니다. 학급평균을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부잘하는 반’을 고르는 것이고, 시험문제를 은근히 알려주는 것이다. 평가원이 시행하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있는 전날 ‘학교에서는 너는 내일 가정학습을 해라’라는 ‘권고’를 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미국의 차터 스쿨들이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써먹은 수법이었음을 기억하자.

9. 정부는 “‘교원평가’를 구조조정과 연계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① 이미 구조조정과 연계해온 국가들에서 모델링했으면서 그렇게 부인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② “‘재교육’을 더 받으라는 것이지, 내쫓자는 말은 아니다”라는 변명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재교육’ 명령을 받는 사람은 이미 교단에서 무능력자로 낙인찍혀서 큰 사회적 심리적 타격을 받고, 사실상 자진사퇴 압박을 느낀다. 학부모들과 학생들 사이에 ‘저 교사는 재교육을 받았대’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담임교체 요구와 교과담당 교사 교체요구에 그 교사는 직면하게 될 수 있다. 담임과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게 된 교사가 그 수모를 이겨내며 학교에 출근할 수 있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견디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실제로, 일본에서 재교육 대상자 중에 다시 학교로 복귀한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 내쫓기 위한 수단이 ‘재교육’이라는 포장임을 잊지 말자. 강제 퇴직만 해고가 아니다. 스스로 마지 못해 나가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이미 기업들이 즐겨 사용한 정리해고 방식이었음도 상기하자.
➂ (피평가) 당사자에게 ‘원자료 공개’ 아닌, 평가지표별 점수를 제공하겠단다. 수업 자기계발 자료로는 ‘원자료’가 쓸모있지, ‘점수’는 보수와 인사개편 자료로 쓰일 뿐이다.
➃ 평가결과를 ‘자기반성의 계기’로 쓰라고 해놓고 ‘이의제기권’을 설정한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는 새로운 근무평정도구로 삼겠다는 속셈의 표현이다.
➄ 평가관리기구를 학교와 교육청에 별도로 설치한 것도 성과급, 자격증 갱신제 등과 연계하려는 속셈의 표현이다. 미국 등에서 일반화된 제도가 이것이다.

10. 교사들이야 설령 ‘부담’을 느낀다 해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교원평가’가 좋은 것 아닌가?
--- 학교에 여러 가지 솔직한 의견피력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 대다수 학부모들이야 학교측(교장, 교사)에게 무엇인가 따가운 비판의 소리를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할 것이다. 그래서 심정적으로 ‘교원평가’를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므로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비판적인 지적’을 제시할 수 있는 ‘자리’ 만들기는 숙고할 일이다.
--- 그러나 그렇게 매겨진 평가가 교원의 자존심을 구겨뜨리고, ‘무능교사’ 낙인이 찍혀 ‘사실상 퇴출’로 내몰린다고 상상해보라. 평가가 정확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악의적 주관이 개입하여 억울하게 ‘무능교사’로 내몰리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럴 가능성 때문에 틀림없이 교사들은 주눅이 들어, 비굴한 눈치작전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학업성취와 연계’하니까 학생들 성적을 올리려고 문제를 미리 가르쳐주는 등, 갖은 비리가 다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 부정적인 양상들을 무릅쓰면서까지 ‘점수 매기기’를 강행해야 옳은가?
--- 왜 평가하는가? 평가의 목적은 전문성이 부족한 교원에게 실력양성의 기회를 갖게 하고, 열성이 부족한 교원에게 분발하도록 촉구하려는 것이 아닌가? ‘퇴출 및 사회적 경멸’로 이어질 점수 매기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력부족 교원을 가려낼 수 없는가?
--- 교원 전문성의 영역에는 비단 교과실력뿐 아니라 학급경영, 아이들 상담/지도 능력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 영역을 엄밀하게 계량화할 수 있는가? 교사들에게 시간과 권한을 주라. 그리고 교사들끼리 대화하고 서로 배울 기회를 늘리라. 그것이 가장 좋은 자극제로서 교사들을 서로 북돋울 수 있다. 이건 경험이 말해주는 진리이다.

11. 전교조의 대안은 무엇인가?
① 먼저, 교육부에게 충고한다. ‘평가제도’를 따지기 전에, 교원양성과 임용의 내실화를 먼저 고민하라. 그 문제가 풀리면 ‘교원의 자질 향상’ 문제는 아주 작은 사안이 될 것이다.
② 둘째, 교육부는 마치 그동안 ‘교원평가’가 없었다는 듯이 요란하게 떠드는데, 이미 교원 ‘근무평정’이 있어 왔다. 관료적 통제의 도구로 쓰여온 ‘근무평정’부터 없애고, 학교자치(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 법제화)와 교장 선출보직제도를 들여오라. 교원이 승진의 조바심을 접고 가르치는 소임(수업, 학급운영)에 전념할 때, 교원자율연수의 풍토가 획기적으로 마련된다.
③ 교사들을 싸잡아 비난하여 교원평가 강행의 구실로 삼지 마라. 인성에 결함이 있는 일부 교원의 문제는 ‘학교내 징계 요구권’을 보장하여 민주적 장치로서 견제하게 하라.
④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집단적으로 토론/비판을 나누는 ‘학교 종합평가제’로 나아가자. 교사/학생 간에, 같은 교과/학년끼리, 교사/학부모 간에 <‘평가회’를 정례화하여> 수업과 학급운영, 학교계획에 대해 토론/비판을 공유한다. 혹여 미흡한 점이 있는 교원들은 이 과정에서 비판받고 분발하게끔 촉구한다. 관료적으로 부과되는 ‘평가’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스스로 더 분발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은 학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또다른 ‘교육운동’의 계기가 될 것이다.

12. ‘학교종합평가제’는 막연한 그림이 아닌가?
① 작년 OECD 한국교원정책 검토단이 제시한 ‘한국 교원정책진단과 정책권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평가의 초점은 교사 개인에게만 전적으로 맞춰져서는 안되며, 전체로서 학교에 평가의 중심이 놓여야 한다. 더구나 평가는 처벌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교육개선의 도구로 쓰여야 한다.” 우리의 ‘학교종합평가제’는 이 권고를 구체화한 것으로, 먼저 시작되어야할 것은 ‘방향성 설정’이다.
② 교사가 스스로 학생들에게 ‘평가 받는 일’은 이미 일부 교원이 자발적으로 실천해왔다. 교원들에게 높은 책무의식과 자부심을 고취해준다면 교원들 간의 ‘평가회’가 활성화되기는 아주 쉽다. 평교사를 교육 내실화의 주체로 내세우려면 학교 민주화가 한 걸음 더 진전되어야 한다.
** 근평부터 없애라는 따위, ‘전제’를 문제삼는 논리는 부분적 반론일 뿐이다. 가장 정공법은 ‘지금의 평가 관행들로도 충분하다==동료장학, 학교계획 토론, 교과협의회 등’ ‘새로운 것 없어도 된다’를 한 목소리로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13. 우리의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면 반대하기가 곤란하지 않은가? 여론의 포화를 일단 피해야 되지 않겠는가?

언제 임용고시가 교사임용의 대안이었던가? 대안이 없어서 임용고사를 막아내지 못하였던가? 임용고시를 실시하고자 하는 교육부의 의도는 당시 너무나 명백하였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리해고제 도입이 당시 imf 극복의 대안이 아닌 것처럼, 정규직의 임금동결이 비정규직 보호의 방안이 아닌 것처럼 이 문제는 단연코 대안의 문제가 아니다. 교원평가와 학교자치, 승진제도 개선은 논리적으로 연계되지만 별개의 문제이다. 교원평가의 대안은 교원평가의 폐지이다. 즉, 교육부도 이를 논리적으로가 아니라 무조건 하겠다고 덤비는 것이 현 상황이라는 것이다.


➀ 대안이 왜 없는가? ‘동료장학’과 ‘교과협의회’의 활성화,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서 돌려서 의견 받기 등. 그동안 뚜렷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자율연수, 자기개혁의 풍토’를 북돋아서 하면 된다. 소수의 ‘수퍼 교사’만이 수업을 잘할 수 있는 구조라면 교원평가를 도입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상한 편법들(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수업지도안 그럴 듯하게 만들기, 파워포인트로 번쩍번쩍 보이기식 수업하기, 급기야는 문제 알려주기, 가정학습 권고하기...)만 난무하게 된다. 모든 교사들이 잘 할 수 있도록 근무여건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좋은 교사되기가 에베레스트 산 오르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라면 그건 교육체제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➁ 대안이 뚜렷하든, 안 하든 우리가 맞서게 될 그 무엇이 있고 또 그것이 명백해 교육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제도라면 당연히 들여와서는 안 된다. 대안이 부재 혹은 부실하니까 싸움을 접자는 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➂ 여론은 어차피 불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패배감에 젖어 무릎 꿇을 일이 아니다. 학부모들에게 사려깊게 진실을 알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레 겁부터 먹을 텐가? 교원평가의 최대 피해자는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민중의 아이들이다. 그들부터 설득하자.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한 지역의 교육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부터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래서 교원평가를 저지하려는 교사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그들이 발표하게 조직하자.

14. ‘근평’이 폐지된다면 ‘교원평가안’ 자체는 일정하게 ‘절충’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대단한 착각이다. 근평폐지는 민주적 학교구조 형성을 위해 주장해온 것인 반면 교원평가는 수업과 성적 그리고 이른바 ‘승진포기교사’ 마저도 통제의 틀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이다. 종이 조합원의 마음도 ‘탈퇴할까 말까’로 불안하게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조직감소가 우려된다면 노조는 교사들의 자존과 자리를 지키는 보루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데이터와 근거 확보 장치이다. 여우를 쫓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다.

15. 교장, 교감도 평가를 받는 점은 긍정적이지 않은가?
---교사는 점수로 환산되어 전달되고, 교장, 교감은 ‘원자료’ 그대로 전달된다. 누가 작성했는지 노출되는데 거리낌없이 평가하기 어렵다. 특별히 교장 교감이 교원들에게 원성을 사는 경우가 아니고는 냉철하게 평가하게 되지 않는다.
--- 교장, 교감의 학교운영의 잘잘못은 교사회의 법제화를 통해 민주적 학교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지는 것이 서로 자연스런 일이다. 이를 굳이 ‘평가’의 장으로 끌어들여 봤자, 대부분의 경우 ‘봐주기 평가’로 미봉되기 마련이다.
--- ‘교장 교감’에 대한 평가는 교원평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명분용’ 악세사리이다. 또, 당연히 하급자보다 상급자를 엄격하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의 아이들과 학생들 교사들을 괴롭히는 교육부부터 평가받으라고 외칠 일이다.
--- 수업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순간 교장, 교감은 ‘호재’를 만난다. 수업이 없는 교장, 교감은 시간이 많다. 악독한 이사도라(24시간 학교를 도는 교장, 교감)들은 이제 교실 문까지 벌컥 열고 들어와 수업을 ‘관찰’하게 될 명분을 얻게 된다. 자기가 눈의 가시로 여기는 교사의 수업시간을 항시 침범하면서 ‘옥의 티’라도 찾으려 애쓸 것이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악용할 교장, 교감들은 부지기수이다.

16. 도입 가능성이 없고, 도입시 형식화되어 ‘잡무’만 늘 것이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 잡무가 는다는 예측은 옳을 수 있지만, 반대하는 중심이유이자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전망하는 이유로 꼽기엔 인식 자체가 의심스럽다. 이것은 교육부의 교원평가 방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될 수 있으나 이는 저지의 이유가 아니라 ‘수정’의 문제일 따름이다. 네이스도 ‘업무증가’로 반대했다면 저지라는 성과는 얻지 못한 채 ‘입력항목 축소’ 정도에서 타협되었을 것이다.
--- 도입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이번의 ‘안’이 법제화될 안으로서 적절치 않을 수는 있으나 교육부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지라도 도입할 의사가 있다.

17. 평가의 과녁은 ‘부적격교사’이니 일반 선량한 교원들은 걱정할 일이 아니다? 특히, 전교조 교사들은 수업을 열심히 잘 하니 오히려 자신있다?
--부적격교원(이른바 “능력개발 필요 교원”)은 해마다 일정 수를 계속 지목하게 되어 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동료교사들 누구나 불신하는 극소수 교원’이 지목될 것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그 대상 범위는 늘어난다. 언젠가는 당신 자신도 그 대상자로 지목될 것이다. (이 제도를 몇 해만 시행하고 그만둘 것이라면 또 모르겠다) 사과 무더기 중에서 안 좋은 사과를 골라내는 행위의 결과나 마찬가지다. 결국은 모조리 안좋은 사과로 골라내게 되어 있지 않은가.

18. 전교조의 대안을 제시하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다?
--- 강력한 공세의 비법은 대안만 가지고는 안 된다. 대안은 싸움에 임하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북돋는다는 점에서 필요하고 또 ‘공교육개편’이라는 대장정을 위해 매시기의 저지 사안에 결합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기본을 망각한 채 대안 탓만 하면 시기도 놓치고 대오도 흐트러진다. 신속하게 움직여서 정확한 본질의 폭로와 강고한 대오의 형성 유지, 더불어 학부모에 대한 치열한 설득작업을 저들보다 강하게 펼치는 것이 투쟁의 abc임을 잊지 말자. 대안을 제시한다고 만사가 해결된다는 “지혜로운 투쟁”의 허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교원평가는 어느덧 우리 옆의 현실로 다가와 있을 것이다.

19. 열심히 참실활동을 하는 전교조에 유리한 게 아닌가?
교육부의 평가는 11월 연 1회의 공개수업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참여하는 학교관리자들과 학교측 학부모들(학부모회 대표나 운영위원들일 것으로 보임)이 과연 어떤 기준으로 수업을 평가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현재 근평점수는 전교조라는 이유로 대부분 조합원들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교감, 부장들, 학부모임원들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평가를 할 경우 그 결과는 뻔하다. 문제는 근평은 어차피 교장 교감이 평가하고 인사이동 이외에 큰 위력을 미치지 못하지만 교원평가는 교사를 우수교사와 능력개발교사로 구분하고 있기에 그 자체만으로 상당히 위협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교사평가는 평가결과를 공개하기 때문에 소문이 무성한 학교 문화속에서 버티기 힘들다. 사립학교나 소수 조합원들이 버티는 학교, 나이많은 조합원들은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직활동 위축, 조직 탈퇴로> 나아갈 것이다.

20. 막아낼 수 있는가?
언제 문규현 신부가 가능성을 보고 삼보일보를 했는가? 지율스님이 언제 가능성을 보고 100일을 굶었는가? 지율 스님은 그냥 막아내지 못하면 굶어 죽으려고 했다.
교원평가는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교사- 학생- 학부모의 근본적인 관계를 파괴하고 교사 노동을 통제하고 전교조운동을 무기력시키려 음모이다. 그런데 앉아서 이길 가능성만을 점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금은 위기다. 위기인데 위기라고 느끼지 못하는 지금은 바로 모라토리엄 선언 직전과 같다. 그러나 교원평가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면 이긴다. 네이스 투쟁은 이길 가능성이 높아서 이긴 것이 아니라 이겨야만 하기 때문에 이긴 싸움이다. 부안 싸움이 승리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 여당이 모든 교사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재보궐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여당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의 의지와 힘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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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내용을 좀 압축적으로 정리해 주셨으면 좋았을걸..
    너무 길어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