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 서울 미아리 성매매업소집결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이 숨지고 한명이 중태에 빠졌다. 전날 성매매 여성으로부터 도움요청까지 받은 경찰이 건물을 둘러본 후 일어난 일이었다. 또 지난 7일에는 업주를 상대로, 성매매로 인한 ꡐ질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ꡑ을 진행 중이던 한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했다. 보건소 진료가 정기적으로 있었지만 성병 감염 유무만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라 암 말기에 이르도록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2일 서울여성영화제 국제포럼 <아시아지역 성매매 현실과 비디오 액티비즘>이 열렸다. 여기에서 많은 아시아 성매매현장 활동가들은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강하게 했다. 그 이전 3 ․5 여성의 날 거리행진에서는 ‘전국 성노동자 준비위’인 한여연의 출범식이 있기도 했다. 이처럼 성매매 여성의 현실에 기반한 다양한 요구가 그 동안의 반성매매 운동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고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매매 여성들을 성산업의 구조적 ‘피해’여성으로 규정, 탈성매매 지원을 골자로 한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에도 성매매로 인한 폐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 또한, 법 시행과 거의 동시에 현재까지도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의 질긴 고리에서 빠져나오기란 그리 쉽지 않음을, 성매매가 법과 단속을 통해 단시간 내에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또 그간 성매매 근절/반대를 핵심으로, ‘성매매방지법 제정운동’을 해왔던 반성매매 운동에 새로운 논의와 운동방식들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성매매 ‘피해’ 여성 규정하기
그간 한국의 성매매 운동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착취적인 성산업 구조를 드러내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성매매 ‘피해’여성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여성들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논리를 공격하고, 성산업의 억압적인 피해 사례를 제시하고, 자발과 강제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성매매가 여성을 억압하고 노예화하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성을 파는 여성은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피해자’이자, 성적 권력의 ‘피해자’이며, 직접적으로는 성산업의 ‘피해자’이다.
이러한 인식은 자발과 강제의 틀을 넘어서 성매매를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 성매매 여성들과의 자매애적인 시선과 관계맺음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여성들은 성매매의 현장에서나 아닌 곳에서나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 정체성의 한계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을 고정적으로 단일하게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성매매 공간 안에 살고 있는 여성들을 대상화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성매매방지법 시행 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해, 많은 여성단체들과 여성주의 담론은 그녀들을 연대할 수 있는 주체로 생각하기 보다는 대상화 한 측면이 없지 않다.
생존권 보장 집회 현장의 여성들을 단순히 업주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하여, 여전히 업주와의 유착관계를 밝히기만 한다면 성매매 여성들도 결국은 현재 성매매 근절운동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또 한편에서는 성매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합법적인 장치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두고 의아해하고, 한편에서는 문제집단화하는 경향이 있어왔음이 사실이다.
이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더 이상 자신을 피해자로서 규정하지 않을 때,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그녀들과 ‘어떻게 관계맺음’ 할 수 있을지 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부족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제는 성매매 여성을 이해하고 반성매매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데에 있어 ‘피해자 정체성’ 논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는 진정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
이제 문제는 ‘성매매를 어떻게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성매매 여성을 ‘피해’ 여성으로 고정적으로 보고, 그녀들의 행동과 목소리에 의아하기만 하고 정작 이해와 만남이 가능할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이 되고 나서, 더 이상 ‘공공연히 성매매를 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은 확장되었고,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 조금씩 열려지고는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매매는 계속되고 있고, 성매매의 현장에서 여성들의 목숨과 신체에 대한 위협들 또한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면서 성매매를 일방적으로 단속하기만 하고 자신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지 않는 정부와 여성단체들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다층적이고 복잡한 현실들을 단시간 내에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이다. 다만 현재는 그간의 성매매근절/반대의 단일 담론이 성매매 여성들을 수동적인 피해자로, 때로는 문제집단화 하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들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 민감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생존권을 주장하는 여성들과 ‘어떻게 함께 성매매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의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성매매 근절’만을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성매매 여성들의 존재와 현실을 인정하면서 성매매를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인가?”로 문제의식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당장에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들은 질병으로, 화재로,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매매 근절’만을 외치는 것은 추상적인 ‘담론’에 그칠 뿐이다.
반성매매 운동의 목적은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그녀들을 주체로 세우는 것이고, 또 페미니즘 운동은 이제까지 비가시화 된 여성들의 공간을 마련하고 그녀들의/우리들의 관계를 다시 써나가야 한다. 지금은 보다 긴 호흡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성매매반대 운동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으면서 그녀들과의 새로운 관계맺음의 방식을 고민하는 논의들과 운동방식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안원리를 고민하는 서울대 페미니스트 모임 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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