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모님의 이야기
얼마전 냉장고가 고장났습니다. 냉동실에 냉기가 새길래 유리테잎을 붙여 쓰다가 큰맘먹고 고치기로 했어요. 시간이 마땅치 않아 시험기간을 이용해 서비스 예약을 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고 교원평가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약속차체를 잊고 말았습니다.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가슴이 답답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착하고 잠시 후 전화가 왔어요. 서비스 아저씨였어요. 사실은 깜빡 잊어 놓고는 약속시간을 꼭 맞춘 듯 전화를 받았죠.
세상에! 너무 죄송했어요.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셔서 연락이 되지 않아 아파트 앞에서 마냥 저를 기다리고 계셨죠. ‘틀림없이 싫은 소리를 듣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전혀 짜증도 안 내시고 아주 친절한 말투와 몸짓으로 아주 꼼꼼히 냉장고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우리 집 냉장고 고장과 전혀 상관없는 요즘 유행하는 고장 원인 등에 대하여....
사실 친절한 것도 좋지만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서비스맨이 오시면 조금 신경이 쓰이거든요. 괜히 불편하기도 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구요. 그냥 빨리 고치고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헌데, 이 분 너무 지나치게(내가 느끼기에) 친절하시고 말을 많이 시키는 거예요.
서비스: “낮에 전화 받았던 아이가 딸아이인가봐요?”
나:“아뇨, 아들인데...”
서비스: “그래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목소리에 애교가 넘치더군요. 평소에 애교가 아주 많은가봐요.”
나:“아.....예~~에...”(불편한 심기가 있지만 그래도..)
서비스: “사모님. 제가 성의껏 완벽하게 고쳐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뭐 다른 것 서비스 받으실 것은 없으십니까?”
나:“예..(냉장고 문짝이 많이 무겁고 버거워 보이길래), 좀 도와드릴까요?”
서비스: “아닙니다. 사모님. 늘 혼자 하던 일이라 괜찮습니다.”
-수리 후 PDA를 들여다 보고 열심히 뭘하시더니 -
“사모님 예전에도 세탁기, 가습기를 수리 받으셨네요.”
나: “예,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니 이것 저것 고장이 나네요.”
서비스:(놀라운 듯한 얼굴로) “그래요, 사모님 그렇게 안보이십니다. ”
-생각보다 젊어 보인다는 뜻이었을 텐데 접대성 멘트임이 너무 분명하여 민망하기까지 하였다-
수리를 마치고 너무 친절하고 열심히 수리해 주신 것 이 고마워 드링크제를 한병 드렸다.
원비인가 영지인가 하는 흔한 드링크제였다. 헌데 서비스 아저씨 너무 지나치게 고마워 하며.
서비스: “아니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민망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맛나게 드신 아저씨, 대금을 받으시고 나가시면 현관에서 많이 곤란해 하시며 말을 건냈습니다.
서비스: “사모님, 너무 친절하시고 좋은 분이라 사적인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나: (머뭇거리며-솔직히 묘한 생각을 했다-)“무슨 부탁이신데요?”
서비스: “사모님 서비스가 끝나고 나면 설문 조사를 하는데요. 깐깐한 사모님들 한테는 감히 말도 못꺼냅니다. 사모님 너무 친절하셔서 부탁드립니다.(사모님소리 이렇게 많이 들어본 적이 없다) 설문조사에 응하실 때 잘 부탁드립니다.”
“<아주 만족한다>하시면- 95점 <만족한다> 하시면-90점, <보통이다>하시면-50점입니다. 평균이 93점(정확하지 않다) 이하면 우린 바로 공장으로 불려갑니다. 거기서 재 연수를 받아야하거든요.“
순간 내 눈앞이 노래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갑자기 아저씨의 왜소한 체격과 빠짝마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낮에도 내내 선생님들과 교원 평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바로 우리, 아니 나의 모습이 아닌가!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아저씨가 괜히 너무 불쌍하고 나 자신이 너무 서글퍼서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꼭 그리하마’ 약속하고 아저씨를 보냈습니다.
약속시간 전에 도착해서 연락도 안되는 나를 마냥 기다린 일, 그리고 마음에도 없었을 접대성 멘트들, 지나칠 정도로 건내오는 말들. 과연 그 아저씨는 낯선 여자와 그렇게 다정히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교원평가후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머니 저 담임입니다. 개인적인 부탁인데요. 이번 평가서에 -아주 만족한다-로 좀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어머니한테는 말도 꺼내기 어려워서요. 어머니만 믿을께요.”
“얘들아. 잘 부탁해. 선생님 평가 잘 받으면 피자 쏠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