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매매가 불법이면 자본주의가 범죄구성물

정치권력에 편입된 주류 여성계와는 차별화된 비주류의 차분한 논리 제시

이념적 논리를 갖춘 여성계가 등장하고 있다.

흔히 여성계라 하면 여성단체와 여성부처럼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여성’을 내세워 성매매특별법 같은 법안을 준비하고 제도권내에서 관철시키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사회적 목소리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여성들의 존재가 일반의 시야에 포착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임옥희 공동대표(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하 임)는 서울신문 5월 14일자 [열린세상] 칼럼 (‘청바지를 걸친 중세’)을 통해 기존의 여성계 입장과 크게 대비되는 생각을 내놓았다. 특히 임의 주장이 관변언론으로 일컬어지는 서울신문 지상에 보도됐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임은 21세기 최대 유망 산업이라는 유전공학에 주목했다. 임은 국가가 유전공학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미명하에 자본의 논리를 도입하고 합법화하는데 나설 우려가 있으며,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필수적인 난자의 문제에 있어서 난자 매매 행위가 의료법상 불법이지만 기증하는 것은 합법이자 선행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논리라고 봤다.

임은 성매매에 대해서 “돈으로 거래되지 않는 사랑의 행위는 숭고하지만, 돈이 오가면 범죄 행위가 된다. 여기서 판단 기준은 돈의 교환 유무와 국가의 인정이다. 국가가 '인정'하면 합법이고,'인정'하지 않으면 불법이다.” 라고 지적하면서 “동일한 행위”에도 정치적 판단기준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 공존하는 비논리를 꼬집었다.

임은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한 것'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불법이자 악이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고 선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 자체가 범죄적 구성물이 된다” 며 자본주의 사회가 자신의 아이로니컬한 미덕을 위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도록 묶어놓은 것은 중세적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과 같이 권위주의 정권이 극성을 피우던 당시 여성운동은 반정부적 성격의 민주화운동으로서 일익을 담당했기에 자연스레 민중운동 진영과 함께 호흡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계 상당수가 권력에 편입된 오늘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따라서 임의 이러한 통박은 그간 여성계 권력의 주류에 가리어 침묵하던 비주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는 소중한 의미가 있다. 특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에서 여성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기존 여성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주류 여성계의 반론을 기대해본다.

참고로 여성문화이론연구소(약칭 *여이연)는 지난 4월 [서울여성영화제 국제포럼]"아시아 지역 성매매 현실과 비디오 액티비즘"을 주최한 단체이다. 이 자리에서 쇼히니 고쉬(인도 영화감독)와 왕팡핑(타이완 성매매여성조합 ‘코스와스’ 대표)은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한 바 있다.

여이연은 아시아 지역 성매매 관련 활동가들과 한국의 현장 활동가, 연구자들이 만나 이후 성매매 관련 네트워크를 형성할 토대를 마련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여이연 http://www.gofeminist.org/ 은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려는 목적을 갖고 1997년 제도권 안과 밖의 여성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모임)
덧붙이는 말

<전문은 서울신문 [칼럼] 2005.05.14 [열린세상] 청바지를 걸친 중세 /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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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 성매매 , 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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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

    합법적 규제주의(공창)과 비범죄화는 구분해서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요. 이런 구분에 따르면 대만의 코스와스와 고쉬는 비범죄화를 주장한 것입니다.

  • 주시자

    왕팡핑의 말을 옮깁니다.
    1.“성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들이 범죄자 취급을 당해왔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노동자들의 ‘현실’이란 그들의 기본적인 노동할 권리를 박탈당했거나 또는 최악의 노동 조건을 참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즉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성노동자들이 그들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즉시 해야 할 일은 성노동과 성노동자들을 범죄/범죄자로 보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우선순위로 비범죄화를 거론한 것은 맞습니다>

    2.'천수이벤 총통은 타이완 시민 중산층의 표를 모으기 위해 공창제를 폐지한 것이다. 성노동자들은 당연히 생존권을 요구하며 합법적인 노동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다. 타이완 사회는 들끓었다. 그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오명을 뒤집어 쓴 성노동자들에 대한 불온한 시선을 거두어져야만 한다.'
    <합법적인 노동권은 합법주의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주시자

    하나 더 있군요.
    - 성매매 합법화 외치는 ‘성노동자·후원자 조합’왕팡핑
    “여성의 성매매를 죄악시하는 시각을 바꾸고 성매매를 합법화해, 이들 성매매 여성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타이베이시 다퉁구 닝샤로에 자리잡은 여성단체 ‘성노동자·후원자들의 조합(코스와스,COSWAS)’의 왕팡핑(사진) 비서장은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 시 정부에 줄기차게 성매매 합법화를 요구해 온 활동가다.(한겨레 2004.2.11)

  • marishin

    여이연을 이른바 '여성계'와 굉장히 차이가 있는 단체로 보는 것이 일단 걸리는군요. 여성계의 “타락“과 전혀 다른 측면에서, 여이연식 여성주의 또한 포스트모던적 변이라는 “타락“ 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준에 따라서는, 타락이 아니라 발전이겠죠. 다만 기존 여성계를 비판하는 기준과 여이연을 판단하는 기준이 과연 같은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그게 권력과 재야라는 이분법이라면... 그건 여이연적 여성주의 기준에서도 비판당할 기준 같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성매매를 어떻게 보느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한마디 적었습니다.

    딱 한마디만 덧붙이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에서 여성을 조명한다는 것 또한 이례적이지 않습니다. 기존 여성계 내부에도, 밖에도 자본주의라는 틀로 여성을 조명하는 건, 얼마든지 있었고 지금도 있는 걸로 압니다.

  • 주시자

    '여이연'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식적인 언어(특정 페미니즘)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혜화동 연구소를 만든 이유가 제도권 안에서의 연구가 지니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페미니즘의 '대안문화'라고 칭합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 점에서 여이연은 '문화주의적 페미니즘'을 염두에 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여이연이 성매매와 관련하여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해외사례를 소개하려는 일단의 노력은, 외국의 입법예를 백안시하고 성특법의 강행에만 치중하고 있는 한국의 주류 여성계(급진적 페미니즘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와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과 재야로 보기보다는 권력과 학계 정도의 관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페미니즘에 관한 한, 필자는 아직까지 재야의 위상을 가진 집단을 국내에서 발견한 바 없습니다. '재야'란 치열한 비판과 '투쟁'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주시자

    참고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급진주의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를 결코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의 정치세력화'입니다.

    10월혁명후, 러시아의 여성정치가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외교관이었던 콜론타이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프로레타리아에 대한 페미니스트 진영들 각각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계급투쟁의 문제가 제기되면 언제나 다급하게 놀라 전쟁터를 떠났다. 그들은 이질적인 원인 때문에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보다 친근한 부르주아 자유주의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페미니스트 운동 전체에 침투해있는 부르주아 정신은 평등한 정치적 권리 요구까지 사실은 부르주아적인 색채를 입힐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보편적인 여성들의 요구로 보일테지만..."

  • marishin

    주시자님은, 여성주의 운동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분인 것같은데, 혹시 여성주의 매체 일다라고는 들어보셨나요? 지금 말씀하시는 이런 이야기들은 이미 몇년전, 그리고 지난해인가 올해초인가 이른바 김규항씨의 '주류 여성주의' 발언을 계기로 많이 논의된 내용입니다. 우리나라엔 급진주의와 자유주의 페미니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주의적 페미니즘 경향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여성주의는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그게 비록 자유주의 페미니즘이건 급진주의 페미니즘이건... 매일 매일 구체적으로 부딪히는 자본주의 현실을 피해가면서 존립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폄하가 지나치십니다.

    또 한가지, 명백하게 여이연과, 더 정확하게는 이 단체에서 내는 잡지 '여/성 이론'과 이론적으로 가까운 이념인 미국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를 콜론타이가 말하는 차원에서 다루고 있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미국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한국의 이른바 주류 여성계 또한 자본주의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콜론타이가 10월혁명 전후한 상황의 여성주의에 대해 언급한 것을, 그 이후 수많은 변화를 겪은 여성주의를 평가하는 데 적용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겠죠?

  • 주시자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김규항씨의 '주류 여성주의' 논란이 종료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상황은 오히려 성특법으로 더 악화된 측면이 있으니 말이죠. 선거국면을 떠나 상시적으로 ‘여성(화이트)이 여성(블루)을 죽인다’.. 라는 상황에 부딪힌 것입니다. 김규항씨 개인적 침묵은 현 논란의 유의미성을 잠재울 수 없다고 봅니다.

    다양한 페미니즘이 자본주의 현실을 피해가면서 존립하라는 말씀을 드린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데 대한 지적이었죠. 주류 페미니스트들로 여겨지는 권력 진입 여성들에게서 신자유주의 비판을 보지 못한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국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자본주의를 콜론타이가 말하는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부분..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콜론타이를 지금 적용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왜 페미니즘이 미국의 여성주의 경향에 매몰되어 있는가, 마치 미국의 노동운동 한계가 명백하듯이 말입니다. 문제는 여성주의자들의 부르주와 현상입니다. 어디가나 우리에게 미국은 과제물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