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꽃이 나 보고 웃어
올해 4월13일 오후 등산복차림으로 불암산 길을 걷는데 맞은편에서 젊은 엄마가 어린 남매를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쁜 여자아이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 옆에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보더니 “엄마, 꽃이 나 보고 웃어”라며 무엇을 아는지 진달래꽃을 마냥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린 소녀의 엄마에게 몇 살인데 저렇게 영특하냐고 했더니 다섯 살이란다. 하도 기가 막힐 정도의 표현이라서 “어린나이에 저 정도의 감성과 표현력으로 보아 어른이 되면 훌륭한 시인이 되겠습니다.”라고 한 마디 남기고 헤어졌다.
0. 아귀다툼하는 세상
저렇게 영특한 어린소녀가 자라나서도 그렇게 예쁜 감성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항상 어수선하고 시끄러워 기대하기 힘들 것같다.
시끄럽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아귀다툼하는 세상이라고 보면 될 것같다. 예를 들어 보면 비신사적인 정치투쟁, 부익부빈익빈으로 인한 사회상, 비정규직노동자문제를 사업주와 정규직노동자가 양보하지 않고 해결못하여 발생하는 싸움, 입시지옥으로 변한 학교, 학위장사로 가짜 석사와 박사가 춤추는 세상, 예절과 윤리도덕이 시들어버리는 세상, 김대중정권시절 전국의사들마저 파업한다며 집단 휴업했을 때 급한 환자가 갈곳이 없는 세상에서 인술(仁術)이라는 말은 멀어져 갔다. 하필이면 그때 나는 눈병이 나서 어느 병원에 갔더니 현관문에 걸어놓은 휴업안내판의 네 귀퉁이 빈 공간에 “의사놈들아, 배가 부르다 그거지, 어디 한번, 맛좀 봐라”고 나누어 써 있었다. 박봉에 시달리는 공장노동자도 아닌 고소득층인 의사들마저 그 꼴이었으니 오죽했으면 그런 표현을 했을까.
0.어린소녀의 꿈을 위하여
어린 소녀야, 네가 좀 더 자라 아귀다툼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실망하겠니. 그러므로 네가 세상을 알기 전까지 아귀다툼하는 일들이 모두 사라져 너의 아름다운 감성과 표현력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된다면 네가 어른이 된 뒤에도 “엄마, 꽃이 지금도 나 보고 웃어”라고 하게 되고, 더 나아가 “엄마, 사람들마다 만나면 서로 보고 웃어”라고 하게 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처지를 바꾸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오순도순 양보하고 살아야 아귀다툼하는 세상이 사라진다. 정말 그렇게 할 수는 없을까? 그 놈의 욕심이 죄일까. 노력하면 될 수 있는데 .....
특히 강자편에서 앞장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사회에 평화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싸움이 계속되니까.
강자들이여, 사리사욕(私利私慾)과 우리 사회의 평화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우리 모두 함께 살기 위하여 생각해 보자.
2005년 6월 17일 김만식(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