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노투 탈퇴행렬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
2004년 8월 21일 구미 코오롱 파업투쟁 현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노사정 담합 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전노투’)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현장으로부터 노사정 담합 분쇄!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단결!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복원!”의 기치를 내걸고 의욕적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노투 가맹조직들이 연이어 탈퇴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혼란과 위기의 상황이 도래했다.
탈퇴행렬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노동자의 힘’(이하 ‘노힘’)의 금속연맹 선거에서 사회적 교섭 추진세력인 중앙파, 그리고 국민파와 공동선거운동본부를 꾸린 사실로 인한 내부혼란이다. 5차 운영위에서부터 촉발된 노힘 징계논의는 6차 운영위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7차 운영위에서 노힘이 자진 탈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문제가 봉합되는 듯 했다. 하지만 노힘과 관련된 징계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몇몇 조직에서는 전노투라는 한시적 공투체 질서 속에서는 노힘에 대한 징계가 애당초 불가능하다며 탈퇴하였다.
반면, 노힘에 대한 징계논의와는 무관하게 각 조직이 가지고 있는 기간 전노투 활동에 대한 평가와 이후 전망에 근거하여 탈퇴하는 조직들이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이하 ‘사노신’)과 노동해방학생연대(이하 ‘노학연’)는 전노투 활동에 대해 대동소이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전노투가 자신의 기조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현재의 계급운동의 정세와 조건 자체가 전노투라는 공동투쟁체의 외곽활동이 제대로 성과를 낳지 못하도록 하”기(노학연) 때문이며, 현장 상황과 계급역관계가 전노투의 활동을 그렇게 결과 짓게 하“기(사노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객관적인 정세’가 전노투의 활동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쯤 되면 ‘객관적 정세’만큼이나 억울한 경우는 없다. 사실 원인을 규명하기 힘들 때마다 원인이라고 지목되던 것이 바로 ‘객관적 정세의 어려움’이었다. ‘객관적 정세’라는 이름은 알았으니 이놈은 어떤 놈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노학연은 ”자본의 물리적 탄압과 이데올로기 공세“ 그리고 ”노동운동 내에서 개량주의 정치와 노사협조주의“가 강화되는 것을 객관적 정세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로 인해 ”현장에 건강한 개인 혹은 조직들이 남아 있지만, 오랜 패배의 후과와 전망의 부재로 인해 제대로 된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정세 인식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전개의 결말은 우리에게는 ‘전노투 건설 혹은 강화’로 귀결되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노학연 동지들에게는 ‘전노투 해소’로 귀결된다. 전노투가 건설된 이유가 바로 ”개량주의 정치와 노사협조주의“를 박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민주노총 지도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노동운동 상층뿐만 아니라 현장 수준에서도 안착화되고 있는 노사협조주의적 구조들에 대한 반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지역위원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것은 ”현장에 건강한 개인 혹은 조직들“을 결집시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노학연 동지들은 전노투가 결성된 바로 그 이유를 들고 전노투는 해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가운데 연결고리가 텅 비어있어서 편집상 실수가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든다. 어찌됐든 노학연 동지들은 이와 같은 암울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체계적인 현장의 재조직화“가 요구되며 ”혁명적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원칙과 사상으로 자리 잡“고, 학생들 역시 이를 위해 ”현장으로 이전하여 대중투쟁을 조직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모든 문제에 대해 만병통치약처럼 제시되지만, 이처럼 붕 뜬 대답도 없다. 이 대답이 유효하려면 ”전노투는 현장을 앞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안이 왜 없는가?“라는 질문에 우선적으로 설득력 있는 답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면한 과제, 즉 비정규개악법안 처리를 앞둔 시점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사회적 합의주의 기구로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잠식시키고 상층에서의 교섭에 우선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분쇄와 노사정 담합 분쇄를 위해 계급운동이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노투는 먼 훗날이 아니라 급박한 현재의 정세 속에서 전투적 계급운동 세력에게 부여되는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투체인 만큼, 하나마나한 소리가 아니라 당장 전노투가 현장을 중심으로 운용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개악법안이 언제 처리될지 모르고, 9월 정기국회에서는 노동운동, 노조운동을 아예 말살시켜버리는 노사관계 로드맵이 같이 처리될 예정인데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교섭에 목매달고 있다. 이와 같은 개량주의적 흐름에 대항해온 다른 하나의 구심점인 전노투를 해소하자는 것은 사회적 합의주의적 흐름에 개별적으로 대응하자는 말, 즉 산화하자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급박한 정세가 우선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전노투는 반드시 사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작년 겨울,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주최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던 동국대에서 전노투는 같은 시각에 총파업 조직과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위한 독자집회에 개최하였고, 전국에서 약 1,500여명의 동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다만 지금의 전노투는 현장을 조직할 계획이 마련되지 못했을 뿐이다.
사노신 역시 객관적 정세의 힘을 절대적인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노학연과 비슷한 논지를 보이고 있다. 사노신은 현장노동자신문(이하 ‘현노신’)에서 제출한 전노투 강화방안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데 아직 학생인 우리가 무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비판이 비판 같지 않다. “상황실을 없애고 중앙집행체계를 구성하며 사업장에 ‘한시적 공투체’의 현장분회를 구성하고 ‘한시적 공투체’로 직접 개인회원을 조직하는 그런 ‘한시적 공투체’는 없다.”고 사노신은 주장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에 없었다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노신이 같은 글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선진노동자운동은 붕괴되었고 개별 전투적 활동가들만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인데 각 현장에서 이들과 같은 건강한 활동가들을 포괄하고 있는 단체가 없다면 전노투의 내용과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전노투를 지지하는 **(사업장) 모임’을 만들면 안되는 것인가? 전노투를 지지하는 현대중공업 모임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할 것 없이, 그리고 정치조직에 상관없이 말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상관없이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라는 당면한 계급적이며 사활적인 과제를 위해 뭉친 것이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각개격파당한 현장에서 전노투 활동에 동의하는 활동가들이 원자화되어 홀로 외로이 투쟁하고 있다면, 이들이 개인차원으로 전노투에 가입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닌가? 사노신은 전노투가 현장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이와 같은 방안에도 ‘정치조직적 질서’라는 혐의를 씌워가면서 도대체 현장을 어떻게 조직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한, 개인회원은 자신이 활동할 결의만 된다면 전노투에서 받아주기로 이미 예전에 결정했었던 것인데, 설마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사노신은 “기본적인 현장활동이 전제되지 않는 가운데 벌어지는 상층중심․현장외곽의 활동방식과 소수 활동가들만의 선도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현장(조직)과 정치(조직)을 격리시키는 결과”라는 주장을 하면서 전노투 활동의 한계를 짚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일면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지적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노투라는 공투체를 해소하고 현장을 조직하는데 만전을 기하자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너진 현장을 재조직하고 빼앗긴 현장권력을 우리가 다시 회수하기 위한 일상적인 활동을 배치하는 것은 정치조직의 임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전노투를 해소하고 정치조직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에 충실하자? 아무래도 전노투라는 ‘공투체’의 결성배경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노투와 같은 공투체의 필요성은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의 기능이 정지되면서 제기되었다. 각 사업장에 분포하고 있는 선진활동가 동지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조직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목적은 전노투에 의해 일정정도 달성되었다. 작년 10월 서울대병원에서 전노투가 소집한 현장조직연석회의에는 22개 조직이 참여했으며, 1차 전국현장활동가대회에는 무려 800여명이 결집했다. 위에 언급했듯이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노투 독자집회에 1,500여명이 참여했고 2차 전국현장활동가대회에서는 300여명이 참여했다. 또한, 전노투 건설과정에서 전제되었던 것은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의 기능이 정지됨으로 인해서 총파업 조직과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를 위해 현장조직을 움직이기가 이전보다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시작부터 모두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감안했던 하나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전노투가 현장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아예 방기한 것은 아님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전노투라는 ‘공투체’를 건설한 이유는 각개 정치조직으로 남아있을 때 할 수 없던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정치조직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임무는 공투체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하면 된다. 우리가 보기엔 공투체 활동과 현장 조직은 전혀 배치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 진정 누구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노신은 노힘 축출 문제와 관련하여 “위상과 규약 유무로 한정짓지 말고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간의 적대성’이라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라는 정신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을 제기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앞에서 언급된 현노신의 전노투 강화방안에 대해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간의 적대성’이라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라는 정신에서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고 조직형태적인 관점에 바라보는지 참 궁금하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전노투를 탈퇴하는 동지들은 탈퇴하는데 마땅한 이유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노힘과 관련된 논의과정에서 탈퇴한 동지들은 됐고, 전노투에 대한 조직적 평가와 전망에 기반하여 탈퇴하는 동지들에게 묻는 것이다. 객관적 정세가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전노투가 그 목적이나 기조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이라면 왜 그런 판단이 전노투 강화방안으로 귀결되지 않고 해소로 귀결되는지 설명하라. (전노투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시기와 정세는 변한 것이 없는데 왜 전노투가 불필요해졌는지) 지금 전노투에게 필요한 것은 해소가 아니라 현장을 조직할 수 있는 계획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노투가 해소되어야 하는 때는 현장모임이나 개인마저 조직화할 수 있는 계획이나 역량이 없다고 판단될 때라고 생각한다. 그 판단은 아마도 전노투 전망에 대한 토론회(7월 16일)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한 계획이나 역량마저도 객관적 정세에 의해 규정받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실천적인 의지가 누락된, 그저 죽어있는 정세분석밖에 없을 것이다. 동지들의 활발한 의견개진을 기다린다.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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