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자 프로메테우스 “성매매여성,노동자인가? (부제 ‘성매매특별법부터 한여연 성노동자의 날 선언까지’ 강준상 기자)에 나온 조이여울 편집장님(조이님)의 인터뷰를 보고 실례를 무릅쓰고 공개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조이님은 아직까지 6월 29일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전성노련)이 출범과 관련하여 “성노동자도 노동자”라는 그들의 “노동자성” 인정 요구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이님은 한국 사회의 성매매 관련 시위에 대해 외국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저로서는 좀 이해하기 곤란한 대목이어서 말씀드립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매매에 대한 입장으로 프랑스, 영국, 덴마크, 브라질 등은 비범죄주의를 채택하여 정부가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네델란드, 독일, 스위스, 멕시코, 캐나다, 미국(네바다주) 등은 합법적 규제주의를 채택해 정부가 법적 허용을 통한 규제정책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나라들에서는 이미 성노동자이거나 준 성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으니 어지간해선 굳이 시위할 일이 없지요.
한편, 대만의 경우에는 성노동자들이 천수이벤 총통의 공창제 폐지 정책에 항의하여 코스와스(COSWAS)를 조직해 싸우고 있고요. 인도 캘커타에서는 남자, 여자, 트랜스젠더 성노동자들의 집단인 DMSC((Durbar Women's Collaborative Committee)가 성노동을 범죄로 취급하지 말 것과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요구하면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어떤 ‘부정적인 다른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으로, 조이님은 집창촌 위주 단속이 문제가 있고 성매매 특별법(성특법) 자체가 집창촌을 없애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점에 공감합니다. 성특법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는 방법은 오직 단속이 용이한 집창촌 밖에는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또 한걸음 더 나아가 여성 권력계가 소위 '집창촌 패쇄법안'을 입법 추진하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조이님의 솔직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특히, “많은 부분 피해자로 간주를 했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거든요” 라고 하신 부분은 성특법의 골간인 “성매매피해여성”이라는 개념에서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신 것 같은데 제 해석이 맞나요. 그렇다면 성특법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으로 봐서 당연히 '폐지대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조이님은 기업의 접대문화가 성매매로 연결이 되는 것을 지적하고 그 부분은 사회악이니 막아야 된다면서 회사가 성접대가 없으면 안 굴러가는 그런 회사라면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쪽은 하나도 안 잡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의 성(性)과 관련된 접대문화는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큰 망신거리입니다. 이 점 저도 당연히 동의하며 구체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이님은 남성들의 접대문화와 관련하여 교육을 거론하면서 “어디에서나 여자들 성을 사게 돼 있는 그 구조는 막아야 된다는 생각”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성교육은 어려서부터 교육시스템 내에서 자연스레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요. 특히 가부장제 하에서 잘못 배운 성(性)인습은 성인이 된 후에 고쳐지기란 상당히 어려우며 “어디에서나” 성을 쉽게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은 매우 위험한 까닭에 '대안적인 정교한 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이님은 대책에서 성매매의 원인이 빈곤에서 비롯된 점을 지적하면서 “여성부가 아무리 예산을 쓴다고 해도 그 이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없고, 기본적으로 지금 각 부처(노동부, 복지부, 건설교통부)가 대안을 내놓을 시기인 것 같애요.”라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조이님은 현재와 같은 정책으로는 그녀들에 대한 자활대책이 미흡한 걸 인정하신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사실 미흡한 정도가 아니라 제가 보기엔 거의 전시행정에 불과하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성노동자(우리는 그녀들의 ‘당당한 인간 선언’을 위해 이 용어를 주장합니다)들의 자활에 조이님의 주장처럼 정부의 모든 부처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예산, 정책우선순위 등) 불가능한 까닭에 우리들의 고민은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정부가 전 역량을 성노동자들에게 투입한다해도 어쩌면 다양한 빈민층 입장에서는 공평치 못한 정책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많습니다.
따라서 성노동자들의 자활문제를 접근하려면 빈민층 자활문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여 정책을 입안 추진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극심한 빈부격차를 겪고 있는 현 10 : 90 혹은 20 : 80 의 사회를 40 : 60 혹은 50 : 50 의 사회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생계형 성매매는 자연히 줄어든다는 말씀이지요. 성노동자들의 삶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지닌 왜곡된 제반 구조의 결과물인 까닭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들은 ‘성과 관련한 인신매매’와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성인인 그녀들에게 ‘자활’ 부분을 강요하지말고 성노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이여울님이 성노동자들에게 인간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진정성은 저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방법론에 있어서는 서로 연구할 가치가 다소 있지만요. 조이님의 견해를 기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건필하시고요. 안녕히 계세요.
2005. 7. 6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