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채만수 소장(이하 채소장)의 글을 아주 유용하게 봤던(그 당시에 채만수씨는 부소장이었다.) 나로서는 그의 이번 <'성노동자운동'이라는 현실주의> 문건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로 채소장은 노동이론가의 명함에 치명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과장되게는 직업을 잃을 수도 있다.) '글'이라는게 뭔가? 한 번 쓴 글은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책임은 글쓴이를 끝까지 쫓아다니게 되어 있다.
즉, 채소장은 이미 물을 엎질렀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입장을 철회한다면 살 길은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니고 있는 신분이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수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실책을 끝까지 부인하다 결국 쇠고랑을 차겠는가? 과오를 반성하고 입장을 철회하는 시기를 놓친 것도 있겠지만 대중 앞에 자신을 벌거벗기는 결단이 엄두가 나질 않기 때문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채소장이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며 입장을 철회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채소장이 나름대로 공을 들여(?) 쓴 듯한 <'성노동자운동'이라는 현실주의>의 글을 잘 살펴보면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이 알고 있는 성매매와 관련된 학술적 지식이 전혀 인용되고 있지 않다.
A4용지 한 장 정도 논평의 차원을 넘어 각주까지 달아가는 소논문의 형식을 갖춘 그의 글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성노동자 운동을 비판할만한 학술적 근거가 전혀 없다.
둘째, 성노동자 운동에 긍정하는 이론가, 행동가들이 발표한 문건 속 말꼬리잡기에 정신이 없다. 성매매에 관련된 학술적 지식이 전혀 없는 채소장이 선택한건 상대방의 글에서 논리의 허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식의 글쓰기를 그가 선택한 건 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색이 대한민국에 내노라하는 노동이론가가 학술적 지식은 없지.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도 없지. 고민 끝에 그는 논리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상대방의 글의 맥락은 무시한 문장논리로 가엽게 싸우는 것이다. 물론 그의 노력이 가상했던지 어떤 부분에선 상대방의 허점을 비교적 잘 찾아낸 부분도 있다.(이 부분은 조금 있다 설명하자)
셋째, 오직 비판이다. 대안이 없다. 노골적인 실명비판이 시작되는 채소장의 글의 초반부를 난 읽으며 흥미진진했다. "이 사람 이렇게 세게 나오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은 뭘까?"하는 궁금증으로 긴 글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긴 글 어디에서도 대안제시가 없다. 오직 비판만 할 뿐이다. 물론 그 비판이 정당한 것이고 비판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비판이라도 해야지 어쩌겠나? 하지만 그는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노동이론가다.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한 노동이론가를 도대체 어따 써먹을 수 있을까?
넷째, 자신이 무식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글 곳곳에서 논리적 모순, 비약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사실의 왜곡 등을 서슴치 않고 있다.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자.
채소장은 고정갑희 교수가 제기한 "비범죄화 이유"에 대해 무슨 고리대금업자 비유를 들며 고정갑희 교수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데 정말 기가 막힐 일이다. 옆에 있었으면 뭐라 해주고 싶어진다. 그 비유는 완전 코메디일뿐인 비교대상의 오류이다.
그리고 그는 '20세기의 성매매 금지주의는 인권의식이 성장한 노동자․민중의 획득물'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고 있는데 이거 진짜 문제다. 좌파 지식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빅토리아 왕조로 인한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타락 규정, 노동자도 민중도 아닌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기독교 그리고 정치 커넥션으로 이루어진 금지주의 등에 대한 기초 소양은 있어야 할텐데.... 채소장은 기초 소양도 없으니 저런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몇 군데에서 날카로운 비판다운 비판을 하고 있다. 그건 분명 비판할 수 있는 내용이고 한여연을 포함한 성노동자 운동에 지지하는 사회단체도 유념해야할 사항일 것이다.
특히 사회진보연대 김정은씨가 도마에 자주 오르는데, 솔직히 채소장의 집요한 논리적 추궁에 김정은씨의 글은 분명 허점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씨는 성노동을 인정하면서도 자꾸 근절되어야 마땅한 부도덕한 것이라는 두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건 결과적으로 적에게 공격의 실마리를 넘겨주는 꼴이 된다.
또한 채소장은 한여연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데 그건 한여연이 자초한 것이다. 한여연이 업주와 분리된 자치조직이 아닌 업주에 의해 조종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여성단체를 비롯한 채소장과 같은 부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유럽에서의 경험과 성노동자 출신 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성노동자와 업주가 노사관계가 성립되기 이전엔 거의 협업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 실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아직 노사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한국 성노동자들과 업주들은 지금의 운동 초기단계에선 어느정도 공통된 입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운동차원에서 업주들은 조용히 성노동자들의 운명이 잘 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 업주들이 나서서는 안된다.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 그리고 성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노사관계를 업주들은 후에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근데 한여연은 집회를 통해 업주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언론에 내보였고 이는 곧 여성단체들에게 공격의 실마리를 쥐어준 꼴이 됐다. 심지어 한여연의 성노동자 출범식때는 한터 업주 대표라는 강현준씨를 사회자로 내세우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 곧바로 채만수와 같은 이들은 놓치지 않고 공격을 해대는 것이다.
채만수의 어이없는 글에서도 교훈을 얻어야 겠다. 그것이 투쟁하는 자의 기민함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