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논리 해부(2). 장애남성 성거래- 남성권력 아닌 절실함

장애 남성들에게조차 남성권력 운운한 정희진씨의 무례한 주장

다음은 지난 7월 17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희진씨(서강대 강사. 이하 정씨)의 칼럼 ‘성 노동권 유감’에 대한 두 번째 분석 글이다.

정씨는 “성매매 방지법이 장애 남성이나 이주 남성 노동자 등 남성 내부 타자들의 ‘성을 살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늘 제기되는 ‘여론’중 하나다.”라면서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라고 물었다.

아무리 몸이 불편한 남성이라 해도, 일 때문에 외국에서 멀리 집을 떠나온 이주 남성일지라도 여성의 몸을 사는 건 ‘남성들의 권력’이므로 성 행태는 본질상 같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어쩌면 장애 남성과 이주 남성들은 한국의 비장애 남성들과 똑같이 대우해준다는 평등논리로 이해해서,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수도 있겠다.

정씨의 사고가 ‘급진적 여성주의’에 머무는 증상은 성매매 특별법의 엄연한 한 주체인 ‘여성’인 성노동자를 배제하고 남성만 논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일단 남성들 얘기를 뒤로 미루고, 정씨 물음의 주체를 ‘여성’으로 치환하면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으로 바뀐다.

“여성이 성을 팔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정씨와 같은 여성주의자들은 성노동자들이 성을 판매하는 행위인 성노동은 모두 ‘비자발적’이라고 규정하고 싶어하며, 그래야만이 성노동자들의 견해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성노동자들의 ‘자발성’을 애써 축소하려 해보았자 여성부의 2002년 조사 결과는 정직하다.

보건사회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하여 조사한 "성산업구조및 성매매실태 연구"에서 성노동자들의 56.8%가 성매매를 인정받기 원했으며(합법적 규제주의형), 35%가 법에 의한 간섭을 거부했다(비범죄주의형). 이는 92.8%의 성노동자들이 필요에 의해 자발성을 가지고 직업으로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정씨가 남성들만 거론하는 이유는 달리 있다. 정씨는 이미 절대다수 성노동자 여성들의 ‘자발성’을 익히 알고 있으나 굳이 성매매 방지 논리를 전개하려면 이를 모른채 외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을 팔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정씨는 이 땅의 엄연한 삶의 주체인 성노동자들의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성거래는 성노동자들의 권리인지, 남성들의 권력이 만든 결과인지, 남성들의 성욕은 ‘권력’ 그 자체인지 말이다.

장애인 성(性)을 이야기한 국내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에서 결국 집창촌을 찾아가는 중증뇌성마비 장애인 최동수씨(48세)가 얼마만한 ‘권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가 '한번 태어나서 죽으면 언제 다시 태어날지 모르는데, 숫총각으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 라고 절규하는 장면조차 정씨 눈에 권력으로 비추인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최동수씨는 영화에서 오래전 돈을 싸들고 집창촌을 찾았다가 매정한 여성에게 퇴짜를 맞고 돌아온 경험을 참담한 심정으로 고백했다. 굳이 ‘권력’을 말하자면, 이 상황에서 권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노동자인 그 ‘여성’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 끝부분, 관객들은 휠체어를 탄 최동수씨가 과연 집창촌 진입에 성공할 것인가에 숨죽이며 지켜본다. 마침내 최씨가 홍등 안으로 들어간다. 관객들 중 일부는 ‘저렇게 해서라도 그걸 해야 하는 건가’ 라고 고민하며 이 영화의 의도(?)에 짙은 혐의를 두며, 다른 일부는 그의 어려운 성공(?)을 기립박수로 축하한다.

정희진씨는 “장애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남성이 장애 여성에게 성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장애 남성의 성 구매권은 장애 인권 운동을 후퇴시키는 논리가 아닐까?” 라고 쓴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정씨의 단정은 너무 성급하다.

필자는 장애 여성의 인권에 문제(성적인 부분)가 있다면, 남성이 장애 여성에게 성을 제공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증장애인들 중에는 여성계에서 은연중 성거래 대안으로 권장하는 그 흔한 ‘자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무성(無性)적 존재가 아닌 이상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적 대안이 준비된다면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필자는 정씨가 “이제까지 비장애 남성이 누려왔던 권력이자 범죄인 성폭력, 성매매를 장애 남성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 장애 남성과 비장애 남성의 ‘평등’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 부분에서 정씨의 왜곡된 여성주의가 빚은 억지 ‘평등론’을 본다.

예컨대, 핑크 팰리스에서 최동수씨가 집창촌을 찾아간 것은 남성들의 성폭력이나 성범죄(성특법상)와 평등해지려 간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이 너무 ‘절실해서’ 갔다. 그는 잘못하면 성특법으로 잡혀간다고 우려한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정도로 ‘절실함’은 비장했다.

얘기가 다소 빗나갔지만, 성노동자도 다른 이유(경제적 문제)로 너무 절실해서 ‘성노동’이라는 일을 한다. 그리고 최동수씨가 집창촌을 찾았듯이 비장애 남성이나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이 절실함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고급화된 음성적 성매매업소와 달리 집창촌에서의 ‘성거래’는 극도로 열악한 여성들의 경제환경과 서민 남성들의 절실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절실함'을 일약 남성 권력으로 비약시킨 정씨는 비장애 남성들은 물론 장애 남성들에게조차 무례한 논리를 편 셈이다.

영화 속에는 최동수씨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마당에서 흘레붙는 장면이 나온다. 이 모습을 본 최씨가 절규한다.
"난, 개보다 못하다구..개보다.."


* 관련 글 전문 ; 반인권뉴스 란 "[한겨레신문] 성노동권 유감 / 정희진"

안 빈 (한국인권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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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빈낙도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똑같은 성적 욕구를 가진 '절실한' 장애인 여성과 여성 이주 노동자, 농촌 여성 등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외모 지상주의적 한국 사회에서 '여성'적 매력이 없어 애인조차 만들지 못해 성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 하는 여성들의 성은 어떻게 할 건가?

    왜 소수자 문제에서도 그토록 남성 권력적 입장에서만 바라 보는가???

    그들의 성적 욕구를 받아 주어야 하는 또 다른 '여성' 집단을 소수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도 역겨운데 정말 황당하기 이를 때 없다.

    개 보다 못 한 사람들 이 세상엔 참 많다.

  • 조시자

    그래 멀리 떠나와 성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 하는 외국에 나와 있는 한인들이 성매매 업소를 직접 만들고 성매매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해외 원정 성매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한 방송들에서 키리바시 여성들이 스스로 원해서 성매매를 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그렇다면 오래 동안 원양 어선을 타야 하기에 성적 욕구를 풀러 간 한국인 선원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반드시 답을 해 주기를 바란다.

  • 안 빈

    똑같은 성적 욕구를 가진 '절실한' 장애인 여성과 여성 이주 노동자, 농촌 여성 등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외모 지상주의적 한국 사회에서 '여성'적 매력이 없어 애인조차 만들지 못해 성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 하는 여성들의 성은 어떻게 할 건가?
    ----------- 라면,

    그들이 원하는 방식을 사회적 시스템으로 준비하는 게 맞다고 본다. 권리는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다.

  • 안 빈

    키리바시의 사안의 경우, 두 가지 문제가 중첩된다.

    키리바시 여성들의 빈곤문제와 한국 원양어선 선원들의 성구매 문제다.
    이 두 가지가 필요조건으로 만나 이루어진 일이다.


    전자는 키리바시 당국의 빈곤에 대한 정책적 입장과
    해당 여성들의 자발성에 관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고,
    후자는 선원들의 성 해결방식이 자유롭지 못한 국내 제 조건에 대한 이해다.
    원양어선 타는 남성에게 결혼이나 동거로 함께 할 여성을 구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양자가 필요한 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회적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죄가 있다 없다는 식의 접근은 정책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 조시자

    키리바시만의 문제로 좁히니 궤변이 더 심해지는군. 키리바시 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태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끝도 없는 곳들에서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원정 성매매가 자행되고 있는 건 당신도 잘 알 거다.

    자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이 원정 성매매들 모두 다 합리화되는 건가? 키리바시 여성들 강간하거나 강제로 시킨 건 아니란다. 양자가 필요한 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회적 방식? 어처구니 없구만...

    뭐? 권리는 남녀 모두에게 평등하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뭔가? 전 세계 여성들의 성매매 여성화인가? 해외 원정 성매매까지도 미화하는가? 장난하나??

    미성년자까지 애 낳게 하고 성매매하는 걸 두고 죄가 있다 없다의 접근이 필요가 없다라고 지껄이는 그대의 강심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래, 미성년자는 둘째 치고 해외 성매매를 '분석'해야 평가할 수 있다는 썩은 궤변에 치가 떨린다. 인권? 웃기지 말아라.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더 이상 이런 저런 이름으로 여기 저기 성매매 산업을 위해 떠벌이는 짓 이제 그만 하도록 강력하게 경고한다.

  • 안 빈

    키리바시는 원양어선 선원이 대상이다.
    원양어선 선원에 대한 열악한 사회 경제적 수준을 참고하기 바란다.
    미성년자 부분은 분명 문제있다. 이는 시정되어야 한다.


    중국, 베트남, 태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원정 성구매는
    관광객이나 현지 사업자들에게 주로 해당된다.
    이들은 여유가 있는 계층이며 때로는 현지처까지 거느릴 정도다.
    일본인들의 해외 섹스관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양자를 동일시 하는 사고는 일반화의 오류다.
    성을 누릴 자유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 조시자

    그 원정 성구매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계층이면 안 되고 여유가 없는 계층이면 된다는 것인가 뭔가? 정말 재미 있군. 어디에 말도 안 되는 구매자들의 계급 분석인가?? 양자를 동일시 하지 말라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가난한(?) 선원은 그래서라도 성을 누릴 자유를 얻어야 된다는 건가??

    뭔가 착각하나 본데, 원양 어선 선원이라고 그래서 돈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키리바시 수준에서는 그들 한국인들은 엄청난 부를 가진 이들인 것이다. 그녀들도 그러지 않았는가?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 중 부유한 사업가만 성매매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게다가, 그대는 지금까지 그런 잣대보다도 '자발성' 여부만을 문제 삼아 왔었다. 빈곤이야 어느 나라 여성들에게 공통적인 근본 원인인 거고...어쨌든 그 여성들 거의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한국인 해외 원정 성구매자들에게 성을 팔고 있다. 그렇다면 그대의 기준에서는 이를 지지해야 되는 건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해외 성매매 원정에 대해서 통제하고 심지어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국가'는 한국이든 해당 국가든 투쟁의 대상인가??

    착각하나 본데 성을 누릴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성구매'를 '성을 누리'는 걸로 착각하는 이상, 성 구매자들을 엉뚱하게도 계급으로 나누는 척 하면서 옹호하게 된다. 차라리 다 옹호해라. 너무 궁색하고 유치하다.

    양자는 동일시해야 한다.

    다시 묻는다. 그럼 가난한 선원의 성매매는 옳다는 이야기인가?

  • 안 빈

    성욕을 식욕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여성과 남성, 이성애자, 동성애자..성적소수자등)
    존중받아야 할 본능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가난한 선원의 성매매는 옳다는 이야기인가? .. 라는 질문은
    가난한 선원의 성적욕구는 결혼제도나 동거를 통해 해소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로 치환되어야 한다.
    옳다 그르다는 바로 선악구도다.


    부유한 자들의 놀이문화(해외원정 성매매)와 결부시키면 재미없다.
    그들에게 성은 여기저기 널려있지만
    원양어선 선원(가난한 자의 상징쯤으로 보자)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 안빈낙도

    식욕도 존중받아야 할 본능이지만 아무데서나 해결하거나 아무에게서나 앗아가면서까지 해결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지요.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성욕은 더욱 그러합니다.


    애매모호한 궤변은 더 이상 읽기 어려울 정도의 단계에 접어드셨습니다. 누누에게나 존중받아야 할 본능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돈으로 하는 강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난한 선원이라고 전원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닐테지요. 순전히 그들의 성적 욕구만이 님은 안타까운 대상입니까? 그들의 성적 욕구가 풀리기라도 하면 상대가 누구가 되든 상관없습니까? 중요한 건 가난한 남성의 성적 욕구가 풀리는 것이지 그 배설을 받아 내는 여성은 자발적이기만 하면 오케이라는 얘기입니까??


    저는 해외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매매하는 한국 교민들 전혀! 부유하지 않아도 싸서 종종 하고 다닙니다. 다른 데는 불법이라 불안하다고 마피아랑 연결되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 업소에서 말이지요.


    부유한 자들의 놀이 문화요???...재미 없다...소름이 다 돗는군요. 그건 재미 없다 있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성권력의 폭력 문제입니다.

    선악 구도는 님이 하고 있습니다. 열악하면 뭐 더 정당성이 있고 부유하면 뭐 덜 있고 그런 겁니까? 인권 뉴스 하시는 양반이 정말 인권의 잣대가 내 오래된 빤스 고무줄 보다 더 헐렁하시구려.


    근데 한가지 확실한 건, 어느 쪽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만 하시지 단 한 번도 비판을 안 하시네요. 대체 님에게 비판을 해야 마땅한 건 뭡니까?


    보다 보다 못 해 몇 자 적습니다. 성폭력도 도가 너무 지나치시면 문제가 됩니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 젠장

    참세상에 유감이군요. 정희진씨의 글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협소한 필자에다가-필자의 시각 자체가 조야한 듯하기도 하군요-내용의 수준이 너무도 떨어지는 이런 글이 참세상의 어떤 기획의도와 방향에 부합하여 게재된 건지 의문이네요. 이 글은 노해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꼴통 진보마초들보다 훨씬 교묘하고 음흉한, 현재의 성매매와 남성권력의 문제를 대안적인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 존재하기에 일단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똘똘이주의자의 것일 뿐이네요. 과연 안빈이라는 필자가 생각하는 대안과 방향은 무엇일지..아마도 없지 않을런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글은 우리들중 어느 쪽에도 이롭지 않은 부르조아들의 신문에나 게재할 글인 듯 하군요.

  • 안 빈

    글에서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하세요.
    구름잡는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그대가 말하는 부르주아들은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적극 앞장서고 있으니
    이미 그대와 같은 생각입니다.

  • 안 빈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돈으로 하는 강간에 불과한 것???
    이라고 했나요?


    그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에는
    강간해달라는 여자들이 참 많군요.
    33만명 ~ 150 만명 이라니...

  • 지나가다

    성폭력적인 발언 이제 그만 하시죠. 성매매는 돈으로 하는 강간입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네요. 강간범들은 그야말로 아무 여자만 강간하는 경우보다는 자신이 성행위를 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상대를 강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매매 여성들은 그렇게 할 수가 있죠. 아무리 어떤 여성과 동침을 하고 싶다고 해도 사회에서는 처벌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 곳에서는 여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니 아주 정반대로 하고 싶은 여자와 얼마든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죠. 당연히 여성들의 의사에 반하는 돈으로 하는 강간입니다.


    그런데, 그걸 '강간해달라는 여자들이 참 많군요' 식으로 비아냥거리다니. 누가 그게 말 그대로 강간이라고 했습니까? 위에서 많은 분들이 질문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안 하고 부분적인 궁시렁 아주 보기 안 좋습니다.


    젠장 님에게 구체적 운운하지 마세요. 자기는 한 번도 구체적인 문제점에 답도 안 하고 그러면서 쪽팔리지도 않습니까??


    그대의 부르조아적 사고와 성폭력적 반여성적 발언에 이가 갈립니다.

  • 열쇠

    "양자가 필요한 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사회적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것은 성욕이고, 해결은 성욕의 해소를 의미한다. 그 '해결하는 사회적 방식'이 성매매일 수 있을까? 그건 사회적 방식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적 방식이다.

    "극도로 열악한 여성들의 경제환경과 서민 남성들의 절실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 현상은 자본주의의 전형적 현상이다. 돈있는 자가 없는 자를 부리는 것, 우리는 이걸 노동력매매라고 부르고 그 노동이 성일때 그건 성매매다. 그리고 그는 남성을 주체로 만들고, 주체로부터 절실함을 발견하고 권력을 부인한다. '절실한 자는 권력없는 자다.' 안빈의 안이한 생각이다.

    절실한 자는 권력이 없다? 그럴까? 왜? 배고픔이 절실해서, 깨죽도 못 먹어서? 그런데 그게 아니라 흘레붙고 싶은 절실함이다. 어쨌든 절실함은 필요의 논리이고, 욕망의 논리이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른 이들을 뒤틀어놓고 사용하는 것이 필요의 논리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키는가와는 무관하게, 그게 비권력이든지 강제권력이든지 간에, 타자에 대한 폭력이다. 그리고 그는 주체와 대상의 빈 자리에 남성과 여성, 장애와 비장애, 부자와 빈자, 이런 여러 대립쌍을 그려보지만, 왜 빈 자리에 빨려들어가야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왜 빨려들어갈까? 아마 그 대답은, "난, 개보다 못하다구..개보다.." 이렇게 비참한가?

    안빈 있지마세요, 자기 욕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폭력이라는 걸. 욕망하는 자가 장애인이건, 이주노동자건, 이건희건, 노무현이건 간에.

    재밌는 발견, 마초의 논리는 주로 이렇다.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간에, 누구이든지 간에", 그래서 누가 행하는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반대로 내 논리는, "무엇을, 어떻게, 누가?" 그래서 주체의 책임을 묻자는 것. 오늘의 결론, 마초는 책임을 부인한다.

    ps 해결은 간단하지, 두 손 뒀다 뭐하게?

  • 우리는

    우리는 두 손도 좋지만.... 이성도 좋을 수도 있지만... 넘 힘들면 힘든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도 있지요. 때론 그녀들에게 돈을 지불한다해도 ... 가난한 이웃들끼리의 어울림이라고나 할까...

  • 참참

    이 글을 읽고 이후에 달리는 설전을 보고 있으니..
    생각되는는점이.논박을 하려는 정씨가 쓴 글의 원문자체에 성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논할 의향도 능력도 없다고 이미 명시하였다는점... 여기에서 이미 현실문제와의 고리가 많이 희미해진 상태에서 여성학자로서 자신의 현재 입장이 필연적으로 일부 개입되어 자신의 어떤 사상을 펴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사상=입증필요x)
    그것에 비해 좀 과하긴 하지만 가장 못누리는 입장에 처한 남성의 예와 성매매종사자의 매매 규제에 대한 의견리서치 결과를 들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필자에 대해서 논박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대체로 그 문제만 제기 할뿐 그 이면에 감춰진 복합적 현실요소에 대한 고려가 안되어있다. 그래서 마치 그 점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자체가 없다고 까지 느껴지는 감이 있다. 결국 뭐 인터넷에 차고 넘치는 사람들마냥 눈가리고 서로 자기할말만 하는 그런 형국처럼 보인다. 확실한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면 역시 실제 문제점에 집중하는게 옳은 것 같다. 사상도 철학도 현실에의 타파를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 현상을 보자면 성매매가 지구적으로 어떻게든 이어지고 있다는것이 생태적 본능이라고도, 상대의 생계를 담보한 권력에 의한 핍박이라고도 확실히 정의내리는게 쉽지 않다. 이것들이 너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강사씩이나 되는 정씨조차 서두에 이러한 일종의 보험장치를 둔것이라 볼수 있는데.. 이걸 가지고 그렇게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정말 할 말이 없는 것. 스스로한테 물어보고 답하는게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본문에 예시가 된 정말 어떻게 안되는 상황에서의 성욕문제,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은 그저 이 사람이 택할 수 있는 방식이 이것뿐이라는 그 현상 자체 아닐까. 어떻게 쉽게 결론 내릴수가 없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늙은 강아지, 다친 강아지는 선택받기 힘들고,종국적으론 안락사 당할 확률은 한없이 커진다. 이에대해 그건 어쩔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재량이지만.. 같은 사람이라면? 논리나 사상으로는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성욕]이라고 하는것을 얼마든지 컨트롤 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에 속한다고 단정하는 것인지 참 복잡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연애생활, 결혼생활에 있어 [성욕]이 언제부터 조미료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지금 일부 사람들의 논조를 보자면 마치 중세 금욕주의자들이 되살아 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욕망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면?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글에 딴지를 거려는 것인지? 최소한 어떤 제도적 장치라던가. 현실적인 담론을 해야지 무턱대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다니..
    잘 읽어보면 맥이 전혀 없다. 그냥 어떤 존재하지 않는 관념을 만들어서 거기에 기대어 무턱대고 비난만 하고 있다. 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