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난 7월 17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희진씨(서강대 강사. 이하 정씨)의 칼럼 ‘성 노동권 유감’에 대한 두 번째 분석 글이다.
정씨는 “성매매 방지법이 장애 남성이나 이주 남성 노동자 등 남성 내부 타자들의 ‘성을 살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늘 제기되는 ‘여론’중 하나다.”라면서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라고 물었다.
아무리 몸이 불편한 남성이라 해도, 일 때문에 외국에서 멀리 집을 떠나온 이주 남성일지라도 여성의 몸을 사는 건 ‘남성들의 권력’이므로 성 행태는 본질상 같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어쩌면 장애 남성과 이주 남성들은 한국의 비장애 남성들과 똑같이 대우해준다는 평등논리로 이해해서, 반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수도 있겠다.
정씨의 사고가 ‘급진적 여성주의’에 머무는 증상은 성매매 특별법의 엄연한 한 주체인 ‘여성’인 성노동자를 배제하고 남성만 논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일단 남성들 얘기를 뒤로 미루고, 정씨 물음의 주체를 ‘여성’으로 치환하면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으로 바뀐다.
“여성이 성을 팔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정씨와 같은 여성주의자들은 성노동자들이 성을 판매하는 행위인 성노동은 모두 ‘비자발적’이라고 규정하고 싶어하며, 그래야만이 성노동자들의 견해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성노동자들의 ‘자발성’을 애써 축소하려 해보았자 여성부의 2002년 조사 결과는 정직하다.
보건사회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하여 조사한 "성산업구조및 성매매실태 연구"에서 성노동자들의 56.8%가 성매매를 인정받기 원했으며(합법적 규제주의형), 35%가 법에 의한 간섭을 거부했다(비범죄주의형). 이는 92.8%의 성노동자들이 필요에 의해 자발성을 가지고 직업으로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정씨가 남성들만 거론하는 이유는 달리 있다. 정씨는 이미 절대다수 성노동자 여성들의 ‘자발성’을 익히 알고 있으나 굳이 성매매 방지 논리를 전개하려면 이를 모른채 외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을 팔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정씨는 이 땅의 엄연한 삶의 주체인 성노동자들의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의무가 있다. 성거래는 성노동자들의 권리인지, 남성들의 권력이 만든 결과인지, 남성들의 성욕은 ‘권력’ 그 자체인지 말이다.
장애인 성(性)을 이야기한 국내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에서 결국 집창촌을 찾아가는 중증뇌성마비 장애인 최동수씨(48세)가 얼마만한 ‘권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가 '한번 태어나서 죽으면 언제 다시 태어날지 모르는데, 숫총각으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다. 억울해!!' 라고 절규하는 장면조차 정씨 눈에 권력으로 비추인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최동수씨는 영화에서 오래전 돈을 싸들고 집창촌을 찾았다가 매정한 여성에게 퇴짜를 맞고 돌아온 경험을 참담한 심정으로 고백했다. 굳이 ‘권력’을 말하자면, 이 상황에서 권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노동자인 그 ‘여성’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 끝부분, 관객들은 휠체어를 탄 최동수씨가 과연 집창촌 진입에 성공할 것인가에 숨죽이며 지켜본다. 마침내 최씨가 홍등 안으로 들어간다. 관객들 중 일부는 ‘저렇게 해서라도 그걸 해야 하는 건가’ 라고 고민하며 이 영화의 의도(?)에 짙은 혐의를 두며, 다른 일부는 그의 어려운 성공(?)을 기립박수로 축하한다.
정희진씨는 “장애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남성이 장애 여성에게 성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장애 남성의 성 구매권은 장애 인권 운동을 후퇴시키는 논리가 아닐까?” 라고 쓴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정씨의 단정은 너무 성급하다.
필자는 장애 여성의 인권에 문제(성적인 부분)가 있다면, 남성이 장애 여성에게 성을 제공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증장애인들 중에는 여성계에서 은연중 성거래 대안으로 권장하는 그 흔한 ‘자위’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무성(無性)적 존재가 아닌 이상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적 대안이 준비된다면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필자는 정씨가 “이제까지 비장애 남성이 누려왔던 권력이자 범죄인 성폭력, 성매매를 장애 남성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 장애 남성과 비장애 남성의 ‘평등’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한 부분에서 정씨의 왜곡된 여성주의가 빚은 억지 ‘평등론’을 본다.
예컨대, 핑크 팰리스에서 최동수씨가 집창촌을 찾아간 것은 남성들의 성폭력이나 성범죄(성특법상)와 평등해지려 간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이 너무 ‘절실해서’ 갔다. 그는 잘못하면 성특법으로 잡혀간다고 우려한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야할 정도로 ‘절실함’은 비장했다.
얘기가 다소 빗나갔지만, 성노동자도 다른 이유(경제적 문제)로 너무 절실해서 ‘성노동’이라는 일을 한다. 그리고 최동수씨가 집창촌을 찾았듯이 비장애 남성이나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이 절실함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고급화된 음성적 성매매업소와 달리 집창촌에서의 ‘성거래’는 극도로 열악한 여성들의 경제환경과 서민 남성들의 절실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절실함'을 일약 남성 권력으로 비약시킨 정씨는 비장애 남성들은 물론 장애 남성들에게조차 무례한 논리를 편 셈이다.
영화 속에는 최동수씨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마당에서 흘레붙는 장면이 나온다. 이 모습을 본 최씨가 절규한다.
"난, 개보다 못하다구..개보다.."
* 관련 글 전문 ; 반인권뉴스 란 "[한겨레신문] 성노동권 유감 / 정희진"
안 빈 (한국인권뉴스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