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권리”는 언어적 유희일 뿐
성노동자들의 경제문제 해결할 현실적 대안으로 아무런 쓸모 없어
다음은 지난 7월 17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희진씨(서강대 강사. 이하 정씨)의 칼럼 ‘성 노동권 유감’에 대한 세 번째 분석 글이다.
정씨는 여성들이 남성 기준에 도전하면서 공적 영역 중심의 기존 노동 개념을 확장, 재구성해 온 분야로 “‘감정 노동’이나 ‘성 노동’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즉 “사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그 관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며 ‘성과 사랑’을 노동으로 분명하게 지목했다. 그는 또 ‘성 노동’은 물론 ‘가사노동’의 정치적 의미는 “여성의 노동을 가시화, 사회화하기 위한 것”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정씨의 ‘여성의 사회화’ 주장을 상당부분 존중한다. 그러나 정씨에게는 ‘성과 사랑’의 노동성에 이어 ‘가사노동’을 언급됨으로써, ‘성과 사랑’의 노동성을 인정받기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일부일처제’를 염두에 둔 듯한 다음 표현으로 인해 불안하다.
“즉, ‘여성의 사회 진출’처럼, ‘사적’ 영역의 노동에 남성들도 진출하여 남녀가 함께 성별 분업을 극복하자는 것이지, 여성이 계속 ‘성 노동’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씨가 바라는 ‘성 노동’ 주장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위한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럼 ‘가사노동’의 경우처럼 남성들과 대등하게 사회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억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성 노동’의 현장은 어디인가. 정씨에게 그곳은 독신가정, 비혼자(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동성애자, 여타 성적소수자들은 물론 ‘성 노동’으로 생활하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현장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일부일처제’밖에 없다. 여성주의자인 정씨가 ‘여성의 사회화’를 가로막고 있는 대상으로 ‘남성’을 유일한 목표로 삼다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진보적 여성주의에서조차 진부한 영역으로 여기고 있는 ‘일부일처제’로 회귀한 셈이다. 참고로, 성인인구 중 미혼인구(배우자가 없는 사람들)비율은 무려 40% 이상에 달한다.
이는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바뀌면서 다양한 가족개념보다 전통적인 개념의 혼인관계를 우대하는 정책(예: 건강한 가족)으로 나오자 여성계 내부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권력계에 진입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의 정책이 빚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다. 그의 남성 적대적 사고를 보자.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섹스는 노동이고 몸은 자원이라는 주장이 전혀 아닌 것이다.”
정씨의 “남성과 달리”라는 표현은 ‘남성은 섹스가 노동이고 몸이 자원’이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호스트 바’에서 일하는 남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성노동자’인 여성은 인정할 수 없다? 아니면, 가족관계에서 남편과 아내는 섹스에서의 위계가 현저하게 다르다? 평등주의자인 정씨의 논리가 오류에 빠지고 있다. 그는 이어 한국의 진보진영을 맹공한다.
“지금 ‘진보’ 진영이 주장해야 할 것은 “여성의 성 노동권”이 아니라, 성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필자는 정씨에게 ‘민주성노동자연대’가 발표한 12대 강령 중 성노동자들이 쟁취 목표로 삼은 “생존권, 노동권, 건강권”을 연구하기를 권한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정씨가 말하는 “성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권리”는 선언적인 의미나 언어적 유희로 가능할 뿐, 성노동자들이 안고 있는 “무거운 경제문제”를 해결할 현실적 대안으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정씨는 “이날 대회(*6.29 성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가했던 ‘진보’ 세력의 모습은, 노동 시장의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해온 여성운동의 목소리에는 그토록 인색” 했다고 힐난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한국의 ‘여성운동’이,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민중운동’에 왜 그토록 합류하길 꺼리는지 그들의 계급적 한계에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다.
“(진보진영은) ’성 노동’ 주장에는 반색하는 제도언론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정씨의 혼란스런 물음은 왜 진보진영이 ‘성노동자운동’을 지지해야 하는지 ‘민중성(빈곤한 여성)’에 관한 본질을 놓친데서 비롯된 것이다. 제도언론은 현 시기 성노동자들에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으며, 권력과 민중정서 사이에서 시류에 따라 그냥 양줄타기를 하고 있다. 정씨의 최종 결론이다.
“‘성 노동권’ 주장은 복잡한 성매매 문제 ‘해결책’치고는 너무나 진부한, 따라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발상이다.”
그렇지 않다. ‘성노동자운동’은 빈곤한 여성들이 도덕과 권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온갖 사회적 오명과 낙인을 거부하고, 인간 존엄의 주체로 당당하게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다. ‘자발적인 성노동’과 ‘탈 성노동’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것은 성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누구도 그들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
성노동운동 출범은 자신들이 처한 역경을 사회과학적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매우 현실적인 선택인 것이다.
안 빈 (한국인권뉴스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