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지도부의 뼈아픈 자기비판을 촉구한다

32년에 걸친 군사정권 파시즘의 영향력이란 우리들의 일상과 사적인 자아, 공적인 제도 구조들까지 속속들이 파고든 지라, 단지 경제성장만으로 대충 용인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87년을 기점으로 뚜렷이 성장하기 시작한 '민주'세력 역시 사회적 탄압속에서 바로 그 탄압의 논리와 아비투스를 자신의 일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바.

발터 벤야민이 '역사의 진보'를 '뒤걸음질쳐서 앞으로 나아가는 천사'로 비유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 터진 민주노총 지도부의 비리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함시롱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비젼과 아비투스,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탄압의 시절에 횡행했던 그 뻔하고 구린 아비투스를 버리지 못하고 헛뒷걸음질만 친 것이다.

강승규 '개인'의 비리로 민주노총의 전체 역사가 후퇴하지야 않겠지만,

민주노총도 민노당도, '정체성'과 '실질적인 책임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대안적인 최적자로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잘잘못, 업적과 과오를 제쳐두고라도, 노무현 정부가 한국 현대사에서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실질적 전환 문턱점이라는 것이다. 즉, 되돌이킬 수는 없지만, 좀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수도 있고, (역사가 숱하게 갈쳐준대로) 좀더 퇴행적으로 뒷걸음칠 수도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하여, 그 모든 중층결정된 복잡한 권력 관계와 기득권 세력의 목숨을 건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과 끈기에 기반하여,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뚜렷한 비젼이 소위 범'진보'세력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궁핍한 재정에 늘상 허덕이는 자잘한 여성/사회 운동 단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크게 보아 우리 시대는 가부장적 전지구적 가본주의의라는 가속화된 착취 체제로 흘러가겠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해방적인 흐름들을 지속시키고 생성시키기 위해서는,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에 대한 비판보다 더 준열하게 자신을 비판하고, 그러한 자기비판에 기반하여, 보다 급진적인 자기정체성(radical identity in becomings)을 벼려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이후 '개혁' 및 '진보'진영이 보여준 것은, 자기만 옳다는(self-righteous) 자만과 오만때문에, 개혁이나 진보이전의 필수관문인 의제상정과 공적 토론, 협상과 타협의 공간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보수세력의 딴지와 딴청과 발목잡기가 현재 범'개혁', 범'진보'세력이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 일정한 상수이자 상수적인 마찰력/방해세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야말로, '개혁'이든 '진보'든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인식의 지점이어야 하고, 바로 이 점때문에 엄청난 끈기와, 상대방도 거부할 수 없는 영민한 의제설정 및 정치적 협상 능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결국, 소위 크고 작은 '이행기'에 '범'진보'세력이 기존의 사회 구조에 발언권과 정치력을 휘두름시롱 내파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은 새로 태어나는 일, 새로운 정체성과 비젼을 벼려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심장부를 차지하는 것은 책임성의 문제이다. 즉, 우리 시대 '진보'주체들은 '진보'만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탄압의 시대에 '진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책임성을 띠는 '옛'시절과는 달리), 작은 벡터들을 움직여 서서히 큰 벡터들 역시 움직이게 하는, 책임성있는 주체여야 한다.

소위 '계파' 권력 다툼이란 것도 기득권 내부의 세력다툼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1987년 이후로, 그라고 수많은 피흘림과 고통을 통해서 '진보'세력 내부에 일정한 '기득권'이 확립되었다면, 그러한 '기득권'을 협소하게 지켜나가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계파'들 간의 혹은 지도부내의 권력 투쟁은 (그런게 있다면) 그 '기득권'을 더 넓은 대중과 공유함시롱 넓혀 나감으로써 자기 '계파'의, 자신의 권력을 유지, 확장하는 쪽으로 나아가는게 더 낫다. 비록 이것이 열라 보수적인 방식이라 하더라도.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의 지도부는 비도덕적이기 이전에 열라 멍청하다. 자멸을 향해 달려가는. 민주노총 직원들의 총사퇴는 이런 점에서 조직의 사회적 자멸을 막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절박하면서도 책임있는 자세라 할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새로운 비젼과 정체성 벼리기, 책임있는 활동을 펼쳐나가려고 사퇴한 이들과, 일상에서 늘상 현명한 선택을 하는 정치적 주체들인 노동자 대중일 것이다. 노동운동의 지도부는 항상 그것의 뿌리인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비젼과 정체성과, 희망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는 언제나 노동자 대중의 삶에 숨어있다.

민주노총. 지금 자기비판 역능을 시험하는 자리에 섰다. 그간 수많은 피흘림과 개인 활동가들의 자생적 헌신을 통해 얻은, 소위 '지도부'의 '자그마한' 자기 권력에 연연하지 말라. 제발, 준열한 자기비판을 통해서 거듭 나시라. 그것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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