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선거에서 유권자 60.3%는 <기권>으로 저항했다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기권’은 현대적 의미의 ‘선거보이콧’과 연관

지난 10·26 재선거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대구 동구 을 등 4곳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하는 참패를 당함으로써 지도부 퇴진을 포함한 당내 내홍에 휩싸이고 있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전 지역에서 완승함으로써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의 정치적 기반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듯 하다.

이번 선거를 두고 열린우리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보는 시각과는 별개로 투표율과 관련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10·26 재선거 투표율은 지난 4·30 국회의원 재보선 당시 36.4% 보다 다소 높은 39.7%를 기록했지만 자그마치 60%가 넘는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권’을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볼 것인가 혹은 적극적인 의미의 ‘의사표시’로 볼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기권’을 마치 휴일날 놀러가기 위해 투표를 기피하는 사람들의 ‘게으름’처럼 혐의를 두는 관행이 없지 않다. 물론 10·26 재선거 날은 휴일도 아니었지만 역시 기권하는 유권자들이 다수였음은 이런 혐의가 별로 공평한 생각이 아님을 시사한다.

기권하는 유권자들에게 ‘왜 당신은 투표를 하지 않았는가’ 라고 물어보면 답변이 한결같이 비슷하게 나온다.

‘어디 찍을 x이 있어야지’
‘그 x이 그 x이지’
'정치하는 x들은 똑같다‘

만약 유권자들이 게을러서 기권했다면, 핑계에 불과할 이러한 극도의 정치적 불신은 근거 없음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언론에서도 말하듯이 이번 선거결과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성과가 훌륭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상대 정파인 열린우리당이 워낙 실책을 남발하다보니 그리 된 것이다. 따라서 ‘기권’한 유권자들의 속내는 나름대로 존중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기권’을 현대적 의미의 ‘선거보이콧’과 연관시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의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나의 주권을 위임할만한 사람이 전혀 없을 경우 그렇다고 아무나 찍을 수는 없는 까닭에 이런 경우 유권자가 해당 선거를 모른척하고 지나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로 볼 수 있다. 단지 여건상 보이콧을 집단적으로 행사하지 않을 따름이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넘어오면서 민주화의 꽃이라 불리우던 386세대까지 권력의 핵심부에 포진하게 됐지만, 오늘의 정치 상황은 내일을 담보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불확실하다. 또한 날로 극심해가는 빈부의 양극화 사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력들이 과거만 되뇌이며 생존하려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런 정치적 공황 상태에서 60% 이상의 유권자들이 선거를 ‘무시’했음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어쩌면 칭찬받아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현 시기 유권자들이 정치적 불신의 의미로 ‘선거보이콧’을 감행 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기권’이란 형태로 나타났다면 이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적 저항의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10·26 재선거 결과는 다시한번 물밑 민심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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