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에 ‘안티고네’라고 있지 않은가. 왕과의 싸움에서 제 오빠가 죽었는데, ‘개죽음’으로 묻히는 것을 거부하여 ‘국법’을 위배하고 ‘사람답게’ 장사를 치렀다는 이야기. 제 오빠의 삶이 ‘상징적 파멸’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제 목숨을 건 여자!
---정신분석학에서 ‘사람이 지닌 치열한 (근대적) 주체성’을 설명할 때, 가장 전형적인 본보기로 드는 것이 ‘안티고네의 행위’다. 언제였던가. 지율이 요랬다 조랬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국가당국’에 맞서, 백일간!! 사생결단의 ‘단식’에 들어갔을 때 나는 문득 ‘안티고네’를 떠올렸다. 상징적 죽음과 실제 죽음 사이의 ‘산/죽은’ 영역으로 걸어들어간 그녀!
---며칠전 대구의 전교조 한 초등샘이 지율스님 소식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읽었다. “...스님이 오래전부터 단식해 왔다는 사실을 최근 알고, 도법스님에게 연락하여 ‘지율스님 좀 살려주세요! 단식을 멈추게 좀 해주세요!’하고 간청했더니 ‘아무리 말해도 설득이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단식 80일에, 장운동마저 멈추고 밤이면 고통을 호소한다는 스님 소식을 듣고 나는 울었다...” 한 발 건너 전해들은 어느 누구도 남몰래 눈두덩을 씻었다.
---지난번 스님의 백일 단식은 이 기성 사회에 얼마쯤의 충격을, 일렁임과 깨우침을 주었다. ‘거짓말쟁이’ 소리를 듣기 싫었던 노무현이는 제법 고민 고민하다가 지율스님의 요구대로 ‘환경영향평가 다시 하기’로 결단을 내렸었다.
그뒤로 어찌 되었는지 우리 대부분은 몰랐다. 최근 다시 ‘단식’이 시작된 지 꽤 되었다는 소식에, ‘아, 집요한 성장주의 불도저들이 다시 밀어붙이기를 시도하고 있구나’ 짐작이 갔다. 그런데 기성 사회가 ‘안면 몰수하기로 작심’하여, 이번의 ‘단식’에는 별다르게 꿈쩍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 아무리 처절하게 싸워도 기어이 잊혀져갈, 21세기 한국의 ‘안티고네’여! 봉건 국법보다도 더 완고한, ‘황우석파동’이 까발겨준 환장할 성장물신주의의 倒着症이여!
---그리하여 우리는 운다. 스님 소식을 듣고 나도 운다. 스님의 삶과 죽음과 투쟁을 길이길이 ‘기억’해야할 책무는 바로 우리에게 떨어졌으므로! 우리마저 스님의 삶과 투쟁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마저 ‘상징적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므로!
---수천만의 나치 히틀러들이 저지른 ‘학살’에서 살아남은 한 유태인이 멀리멀리 평화로운 나라로 이민 가지 않고 평생을 그 ‘가스실 수용소’ 곁에 오막살이를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남은 평생 한 일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야만의 역사”를 증언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의 삶은 그 빛바래가는 수용소의 구들장 하나, 벽돌 하나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는 인류역사의 ‘살아있는 유물(遺物)’이 된 것이다!
---진취적 사회흐름이 가라앉고, 인간성 말살의 뒤집힌 세태가 풍미할 때에, 그리하여 인류의 진보적 가치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파, 미친 놈으로 몰릴 때에, 이렇게 고립된 사람들이 마지막 자부심을 걸고 해야할 일은 ‘운동의 살아있는 유물’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성장물신주의 도착증에 다들 사로잡힌 나라에서, 지율스님은 죽어서 천성산을 지키는 장승이 되기로, ‘죽어서 살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리하여 우리네 기억 속에, 이 사회의 상징적 네트워크 속에 끝끝내 들어오기로 결단한 것이리라.
---이수일 (전) 전교조위원장은 불과 열달 전, 지율스님에게 ‘함께 하겠다’고 믿음직하게 약속했다. ‘초록공명’ 씨디 많이 받아다가 교사들끼리 나눠 가졌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쯤으로 지율스님을 살릴 수 있으리라 보는가? 이쯤으로 ‘미친 성장의 불도저’를 멈출 수 있으리라 여겼는가? 지금의 환장하는 사회에서 ‘진취적 사회운동’이 그쯤의 ‘적당한 실천’으로 다시 일어날 거라고 보았는가?
---지율의 단식과 죽음은 (어디 먼데 누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겨눈 행위다. 아직 넓혀내지 못한 우리의 상징적 네트워크에 기입돼야할 행위이다. “정신차려, 이놈들아! 환경을 살리고, 인간성을 살리고, 인류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야 할 놈들이 비실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죽는 거야! 아아, 제발 살려줘! 너희가 이 사회를 뽄때있게 바꿔낼 때라야 地下에서 나도 웃을 수 있어! 제발, 내가 끝끝내 죽는 것만큼은 막아줘!”
---나는 운다. 게으르고 게을러서, 지율이 다그치는 일의 ‘만분의 일’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부끄러운 나는 그 부끄러움을 면피하기 위해 눈시울을 물로 덮는다. 지율의 영혼은 채찍이 되어 우리의 뇌리를 휘갈긴다.
---나는 운다. “저렇게 지율이 죽어서 살았는데 우리가 그의 길을 함께 가지 않고 다른 무슨 수가 있겠느냐.” 지율로 하여, 다시 북극성을 치어다본 나는 우리네 삶의 엄숙함을 깨닫고 삶의 눈물을 흘린다. 전교조 교육노동운동에도 저런 ‘진정성’이 깃들여야 하건만...
---나는 운다. 지율의 육신은 어느새 차디차게 식을 터이고, 얼마가 지나면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깜깜히 잊으리라. 그의 맘속 고독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운다. 하는 일 없이 어느새 세월을 죽인 내 인생이 안쓰러워 나는 꺼이꺼이 운다.
....빛바랜 사진 앞에 숨죽여 울다
박차고 일어섰다
마지막 우러른 비녀산 밤봉우리
외쳐 부르는 노래는 통곡이었네 떠나갔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