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박근혜를 위한 변명 (정혜신의 '부성 콤플렉스' 진단 관련)
참여정부와 한겨레신문에 호의적인 관계로 널리 알려진 정혜신(정신과 전문의)이 '사람 vs 사람'(개마고원) 펴냈는데, 여기서 정씨가 박근혜(한나라당 대표)를 두고 “부성 콤플렉스 전형"이라고 분석해 화제다.
정씨는 “현실의 아버지가 지나치게 일방적인 경우(매우 권위적, 폭력적이거나 혹은 극도로 약할 때) 신화적인 부성상이 그대로 남아 자식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실제로 박근혜의 삶은 부성 콤플렉스의 공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며 그 특징으로 “극도의 자기절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씨는 박근혜가 “자신의 신화적 아버지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는 거대야당의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보다 왼쪽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심찮게 술안주감으로 씹히는 인물이다. 단지 이번에는 정씨가 ‘부성 콤플렉스’를 가지고 씹었다는 정도의 차이다.
주류 여성계, 정치적 이해 여부 따라 박근혜 평가 제멋대로
흥미로운 것은 그 왼쪽의 인물들이 주류인 곳에서 지난해에 박근혜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우먼타임스·여성계·잡링크 공동선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05년 최고의 여성계 뉴스로 선정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 국회통과'에서 박근혜의 기여도와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송년특집으로 이 작업을 주관한 우먼타임스(시사여성 주간신문)에는 고문으로 장상(전 이대총장), 김명자(국회의원) 등이 있고, 편집위원에는 김신명숙(저널리스트), 유지나(동대 교수), 조은희(전 청와대 비서관) 등 유력한 여성계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박근혜에 대해 정씨가 ‘부성 콤플렉스’라고 분석한 것과 우먼타임스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한국의 여성계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유력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이해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버릴 수도 혹은 취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정씨는 ‘여성정치세력화’의 화두로 박근혜를 ´사유´하자는 논란과 관련하여 김정란(상지대 교수)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박근혜는 자신의 의지와 아무 상관도 없이, 비이성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신화적 아우라에 감싸인 채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 유권자들은 박근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신화의 살아 있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는 박근혜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아니다. 박근혜는 언제나 박근혜의 타자이다"
좋은 말이다. 박근혜에게 덧씌워진 연좌제 같은 내음이 나긴 하지만, 박정희의 후광이 없었다면 그녀는 정치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었기에 박근혜를 ‘타자’로 일컫는 김정란의 지적은 옳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씨나 김정란이나 그들의 비판은 항상 그 지점에서 머물며, 비판 대상이 현 권력 주변에 있을 경우에는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한명숙 총리 지명에 박근혜 만이 유일하게 쓴소리
노 대통령이 한명숙 씨를 총리 내정자로 지명했을 때, 일반 여성계는 물론 박정희 시절부터 보수적인 여성단체로 유명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까지도 ‘최초의 여성총리’ 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도.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이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쓴소리를 한 사람은 박근혜였다. ‘지금 여자냐 남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라고.
아무리 정치적인 함수가 들어간 표현이라 해도, 진보진영도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여성계에서 ‘올해의 인물’로 뽑혔던 박근혜가 내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훌륭하지 않은가.
정씨의 말대로 매우 권위적인 ‘부성 콤프렉스’는 자녀들에게 신화적인 부성상을 물려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단서가 있다. 권위의 배경에 충분한 권력과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화는 존재하지 못한다. 여기서 박근혜의 ‘부성 콤프렉스론’은 조건이 충족된다.
반대로 부성이 ‘폭력적’이거나 ‘극도로 약할 때’ 생기는 ‘부성 콤플렉스’는 자녀들에게 또 다른 증상을 낳게 한다. 부성의 ‘폭력’과 ‘약함’은 한국적 자본주의 하에서 남성들의 사회적 역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폭력’(물리적)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약자(아버지)의 무분별한 분노이며, ‘약함’은 경제적인 원인 등이 계기가 되어 균형(부부간)이 깨진 상태를 의미한다.
박근혜보다 더 위험한 주류 여성계의 ‘부성 콤프렉스’
그러나 한국의 주류 여성계는 이를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지 않고 남성을 강자(가해자)로 여성을 약자(피해자)로 단순화 시킨다. 권력과 자본에 근접한 주류 여성계의 ‘부성 콤프렉스’가 박근혜의 그것보다 더 위험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저지! 범국민대회'에 참가자들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제1의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오히려 사회적 빈곤과 양극화를 확산시키는 '비정규직 확대법'과 '한미FTA'를 막가파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우리는 박정희식 파시즘을 목격하게 된다" 며 노 정권을 정면 비판한 바 있다.
범국민대회의 지적처럼 노 대통령이 박정희식 파시즘을 자행하는 사람이 맞다면, 이런 체제 아래서 노 정권과 한 몸인 여성총리의 후보지명은 대 국민여론 호도용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럴 땐 여야나 여성계를 훌쩍 넘어 박근혜에게서 한 수 배우는 것도 좋아 보인다. 단, 그녀가 말만이 아니라 실제 민중적 입장으로 한걸음씩 나아가길 바라면서.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 지금 길거리에는 비정규직노동자, 실직자, 철거민, 노숙자, 성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기층 민중이 배제된 자리에, 정치판과 대자본 언론이 합작한 스피커에서는 연일 ‘여성’들의 신분상승이야기, 성공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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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건은 한국양성평등연대(평등연대)에서 제공합니다. 평등연대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와 급진적 페미니즘을 극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