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뉴스 2006·06·14 10:37
[칼럼]수호지 축구황제 '고구'와 06 독일 월드컵 제대로 보기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로 우리에게 친근한 수호지는 송나라 말 부정부패에 맞서 일어난 108명 영웅호걸의 호쾌한 무용담으로 실제 역사를 근거로 한 이야기다.
이들 유협들은 수령인 송강을 중심으로 양산박에 근거를 두고 조정의 부패와 관료의 비행에 저항하여 민중들의 갈채를 받는데, 여기에는 ‘고구’란 악당이 등장한다. 그는 민중들을 탄압하고 후일 송강을 독살하는 등 악명을 떨친 대표적인 부패관료지만, 권좌에 오른 배경이 흥미롭다. 고구는 품행이 엉망인 시정잡배였는데 축국(오늘의 축구)만큼은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고구가 전수부 태위까지 오른 권력가가 된 것은 단왕야(후일 휘종 황제)가 고구의 축국 묘기에 반해 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축국은 인기 종목이었던 모양이다.
‘박스컵’(박정희 대통령배 축구대회)이란 게 있었다. 이 대회는 1971년 박정희의 엄명으로 창설되어 미얀마(당시 버마), 말레이시아 등 주로 동남 아시아권 몇몇 국가들이 단골로 참가해 당시 흑백TV를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박정희 자신의 철권통치를 위장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으로 유용하게 작동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당시 세간에서는 박스컵을 가르켜 ‘상감마마 사발 따먹기 대회’라고 풍자할 정도였다. 이 대회는 1999년 이후 개최가 안돼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도 이런 현상은 계속됐다. 오히려 ‘2002 한일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가 국내에서 열려 한국이 4강까지 진출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바람에 모든 언론들은 월드컵에만 집중하며 민생 등 주요 현안들이 거의 실종되는 기현상을 보였다. 우민화 정책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세련되게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 13일 오전 6시부터 24시간동안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 총방영 예정 시간은 KBS 1 TV는 14시간 40분, MBC는 18시간, SBS는 21시간으로 집계됐다. 전체 방송시간 중 평균 75%에 달하는 수치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KBS, MBC, SBS 지상파 3사가 사들인 ‘2006 독일 월드컵 축구대회’ 국내 중계권료가 2천5백만달러(약 2백36억원)나 되기 때문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겠지만, 이는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무시한 채 국민들의 ‘애국심’에 기대어 ‘월드컵 특수’만 노리는 장사치(자본)의 광기에 다름 아니다.
13일 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토고를 2:1 로 이김으로써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흥분될 정도로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영 편치 않은 건 왜일까.
이날은 4년 전인 2002년 6월13일은 한·일 월드컵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던 신효순·심미선양이 경기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미군의 탱크에 깔려 숨진 날이다. 우리들의 가슴에 효순이와 미선이는 여전히 촛불로 살아있는가. 가해자 미군들을 무죄방면케 한 한미행정협정은 진전이 있었는가. 또 오늘 긴급한 현안인 FTA같은 이슈들과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민, 노점상, 성노동자, 장애인, 노숙인들의 생존권 문제 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가. 우리들이 결코 월드컵 올인에 빠져선 안되는 이유들이다.
얼마전 토고 선수들이 토고축구협회에 출전수당과 승리수당 등 1인당 2억원에 이르는 포상금 지급문제를 놓고 감정싸움을 벌인데 대해 토고 정부가 “애국심없는 장사꾼”이라며 선수들을 나무랬다. 이 문제는 토고축구협회와 토고 정부의 부패문제 여부와는 별개로, 토고가 1인당 국민총생산이 1500달러인 빈국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진보적이라는 국내 모 일간지의 한 기자가 “‘대사’를 앞둔 선수들을 달래도 부족한 마당에 토고 정부는 오히려 선수들을 ‘돈만 밝히는 장사꾼’으로 몰아세웠다.“고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고 나선 것은 차라리 해프닝이었다.
요즘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며 국제 정치계를 주름잡는 월드컵 세계를 보노라면 수호지가 생각난다. 2006년 오늘 ‘피파’(FIFA)를 900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축구황제 ‘고구’에 비유해보는 건 어떻겠는가. 우리에게 양산박은 존재하는가.(끝)
※ 이 자료는 한국양성평등연대(평등연대)가 제공합니다.
평등연대는 전근대적 가부장제와 부르주아적 급진여성주의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시민네트워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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