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노동자의 힘 기관지를 통해 기고하고 있는 ‘김원호 성폭력사건 그 후 3년, 내 이야기’입니다.
성폭행사건입니다. 만취한 여성에 대한 강간사건.
그에 대한 2차가해 발언은 “동의하에 했다더라”, “피해자에게 회피노력을 물어야 한다”, “30대 여성의 성 에네르기”, “폭력이라는 것은 물리력이 가해진 것을 의미한다”, “원래 성적으로 문란하다”, “왜 공개했냐” 등등입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의 피해경험을 ‘공개’합니다.
내 ‘실명’을 걸고 내(김원호) 사건을 말하고, 그냥 묻혀버린 내(김원호) 사건의 ‘2차가해자 박장근, 김상복’을 ‘공개’하고, 내가 몸담았던 ‘조직’의 가부장성을 폭로합니다.
내가 노힘 기관지를 통해 김원호 성폭력사건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내 지지자들과 불특정 다수가 아닌 김원호 성폭력사건의 2차가해자인 박장근, 김상복과 2차가해를 저지르고도 지목되지 않은 자들. ‘그들’을 향해 말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노힘 기관지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진보넷, 참세상에 내 글을 싣는 이유도 있습니다.
피해자 ‘최지영’의 ‘개인적인’ 피해경험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여성 활동가가 운동사회 성폭력, 가부장제, 권위주위, 엘리트주의에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혔는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반성폭력운동을 고민하는 주체로서 내 경험과 고민을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글을 노힘 기관지에 기고하는 일정에 맞춰 이곳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연재 목차는
하나. 김원호 사법처리
둘. 2차가해자 박장근, 대표되다
셋. 2차가해를 ‘인정’하느니 차라리 ‘도망’친, 2차가해자 김상복
넷. 무수한 2차가해, 그리고 조직적 해결
다섯.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몇 일전 노힘 중앙위에서 한 여성 중앙위원이 발언했습니다.
“피해자가 글 쓰는 거 당연하다. 근데 왜 하필 노힘이냐. 가해자조직인데.(알긴 아는군요) 나 같으면 드럽고 꼴 뵈기 싫어서 다른데 올릴 거 같다. 진보넷 게시판 같은데 쓰지!?” 뭐 이런 발언이었다고 합니다.
진보넷 게시판에 올리는 거 나에겐 별 문제되지 않습니다.
노힘 기관지가 내 글을 싣지 않는다면 진보넷 게시판에 올릴 생각 첨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겐 전혀 문제될 것 없습니다.
그녀의 발언은 나를 배려한 발언이 아닙니다. 그녀는 김원호 성폭력사건 당시에도 “여성도 성을 즐길 줄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냐,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좀 가볍게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자입니다.
김원호 성폭력사건의 가해자들이 이 사건이 널리널리 공유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건 내가 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나는 내 글쓰기를 ‘치유의 글쓰기’라 이름 붙였지만, 어차피 지지의 공간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불특정다수가 들여다보는 사이버공간에도 공개합니다.
지지보다는 공격과 욕설이 난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난 두렵지 않습니다.
노힘에서 겪은 ‘2차가해’는 강간 ‘그 자체’보다 ‘끔찍’했지만, 그 3년 3개월의 기간은 나에게 그것을 돌파할 ‘힘’을 주었습니다.
2차가해보다 더한 3차가해가 판을 쳐도, 지지세력일 것이라 믿었던 조직에게 발등 찍힌 것과 같은 상처는 다신 맛보지 않을 테니 난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년 전처럼 ‘순진’하게 2차가해는 ‘상상’도 하지못한 채 공격받는 게 아니라 이젠 ‘예상’도 하니까. 비록 그것이 상처받지 않으리란 ‘확신’을 주진 못하지만 돌파할 ‘자신’은 주니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한 과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