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 "약한고리"는 노무현정권이다.
1. 한국을 뒤흔든 120분
단 두 편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한국사회 전체를 들끓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저 미디어의 위력을 말할 문제는 아니다. "KBS 스페셜"과 MBC의 "PD 수첩"이 폭로한 것은 단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아니었다. 대중에게 그 두 편의 보도내용이 의미했던 바는, 그 속에서 보여진 FTA, 그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NAFTA 협정을 맺은 멕시코, 캐나다의 진실과, 그 협정을 준비해온 한국정부의 행적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오던 대중들 스스로의 불안과 의구심이 현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기묘하게도 소위 '87년 체제'의 최종 산물로 간주되는 노무현 정권의 임기후반 최대 역점사업인 한미 FTA를 둘러싼 분위기는 마치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지는 1987년의 그것을 닮아있다. '87년 벽두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폭로가 그러했듯, 이 두 편의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은 자신들이 마음속 깊이, 심지어는 거의 무의식의 영역에 감추어 두었던 불안과 의혹을 현실로서 돌려 받은 것이다. ; 그 정부는 여건의 어려움 때문에 충분히 뜻을 펴지 못한 나의 편이 아니었고, 무능해서 나의 필요를 충족해주지 못한 정부조차 아니었다. 그 정부는 나의 삶에 무관심하며, 자신들의 치적과 소수의 부를 위해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택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2. "FTA >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권 '명운'과 한미 FTA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문제, 더 근본적인 문제인가, 둘 중 어느 것에 대항하는 투쟁이 더 근본적인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같은 이유로 노무현 정권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나는 '후자'가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것은 '흔한 말'로 FTA나 비정규직 문제 쪽이 '민중의 직접적 이해', 혹은 '계급적 문제' 라는 이유가 아니다. 그것은 두 사안이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관리체제를 거치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지배체제 - 신자유주의 경쟁국가로의 이행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비정규직 관련법을 둘러싼 사회적 투쟁 속에서 이미 감지할 수 있었던 바,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치장했건 간에, 그들이 행한 실제의 '역사적 역할'은 IMF관리체제로부터 시작된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마무리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노동의 (초과)유연화에 대한 제도화로서 비정규직 입법문제와,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사유화 운동에 초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한미 FTA'이다.
(물론, 우리는 노무현 정권과 그 정권에 몸담은 소위 '386세대' 명망가들이 부여받은/부여잡은 '역사적 역할'의 다른 한 축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조응하는 '냉전이후 한반도 질서 구성'에서 발견할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개성공단과 한미 FTA를 연결 지으려는 어처구니없는 시도보다 이들의 '하위 제국주의적'인 상상력을 말해주는 것도 없다.)
3. 사이코드라마, '기업하기 좋은 나라'
물론, 지금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직 법안 개악시도에 이어) 한미FTA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집착을 보이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한 건에 대한 유혹'으로 귀착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조기 레임덕'을 만회하려는 지극히 불순한 시도로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갑작스레 생각나는 것 하나는 노무현 정부의 조기 레임덕은 결코 국가보안법이나 사학법등 이른바 개혁입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역시 납득하기 쉽지 않지만) '정권의 명운'을 건 과업으로 주창되던 "행정수도이전"이 난항을 겪으면서부터 시작된 것에 가깝다. 게다가 그 후 노무현 정권이 부여잡았던 '한 건'의 꺼리들은 이를테면, 비정규직 법안 개악, 황우석 사태, 그리고 한미FTA이다. 대체 왜 다 이 모양들인 것일까.
이미 비정규직 법안 문제 등에서 비슷한 태도를 보인 바 있지만, 노무현 정부가 그 정권차원의 진의가 무엇인지 조차 불분명한 한미 FTA에 대해 보여주는 불가해한 고집과 독선은 대체 무엇에 기인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상당부분 그들의 대 자본관계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 혹은 '원죄의식'의 산물일지 모른다. 노무현 정권과 특히 그 주변에 포진했던 소위'386-민주화 세대'는, 정치인생 동안 적잖은 시간을 스스로의 '전향'에 대한 자기합리화와 변명에 할애해왔다. 소위 '내부에서의 개혁'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변명'이 자본과의 우호관계를 독점하려는 강경 우파의 모략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그 무한루프 속에서 노무현 정부와 그 주변의 386 명망가들은 스스로가 건 주문에 의해 자기최면에 빠져든 셈이다. 그리고 그 자기최면이 이들을 강경우파를 밀어내고 자본의 신임을 독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몰고 간다. 이들의 상상 속 극장에서는 마치 마피아에 위장 잠입한 형사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의 충성을 시험하려는 보스의 명령에 따라 동료 형사를 살해하는 비극적인 느와르가 상영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영화는 사실 범죄영화라기 보다는 '사이코드라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진짜 경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자본과의 우호관계를 독점하고픈 이들의 소망은 별로 이루어질 가망이 없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오랜 동안 자본과의 전통적 유대를 지녀온 강경우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와 그 주변의 386 명망가들이 얼마나 열렬한 짝사랑과 충성의 서약을 하던 그것은 자본가들에게 오랜 친분관계를 정리할 대단한 유인이 되지 못한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와 같은 인재(人災) 수준의 무리수를 감행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재 한미 FTA 추진과정이 지닌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약점이다.
4. 오만과 독선, 또는 빈 수레의 소음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모든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한미 FTA에 대해 고집을 부리는 것에는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 그것은 흔히 말해지는 '오만과 독선'인데, 노무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그 정권의 성립과정에서부터 각인된 경향이다.
노무현 정부는 애당초 구 민주당 정권의 수명연장을 위해 발탁된 '새 얼굴'에 불과했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 개인의 인기와 이미지만으로 자산으로 뭉친 '친노세력'이 내부 파워게임을 벌리다 엉겁결에 자신들의 정치적 본가에서 독립하게 된 것이 지금 참여정부의 본질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과 그 친위세력이 그동안 '국민'의 이름을 팔아 파워게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에 골몰해 온 것은 '얼굴만의 정권'으로 출발한 이 정권의 타고난 속성이다. 그리고 지난 3년여 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들이 조변석개로 요동쳐 온 것도, 그 요동의 결과가 대체로 고위 관료집단의 관성에 따라 흘러간 것도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애당초 그들이 원하는 것의 핵심이 '우리를 얼굴마담으로 인정하라'는 투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슨 짓을 저지르건, 그 정권의 출발이 개인의 인기와 이미지만을 자산으로 삼은 것이었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층의 저항'에는 순순히 물러나도, 도리어 '국민적 반발'에 대해서는 유달리 옹고집과 독선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국민의 이름을 팔 수 없을 때이다. 때문에 거꾸로 그들은 군부독재자들 이상으로 '국민의 요구'로 자신들의 정책이 바뀌는 것을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그것이 적당히, 마구잡이로 추진한 정책이라 해도 말이다. 즉 한 순간이라도 스스로의 행위와 '국민의 의사'가 다르거나 대립될 가능성이 확인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오기와 독선'의 본질이다.
자신들이 틀릴 가능성, 오류의 가능성이 확인되는 것 자체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정권의 성립과정에서부터 각인된 심리상태인 이상, 우리는 이 정권의 학습능력을 절대로 신뢰할 수 없다. 사안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만으로 이 정권의 태도가 바뀔 수 있다고 신뢰할 근거가 없다.
그리고 이미 앞서 말했듯, 나는 '한미 FTA'가 노무현 정권의 안위보다 더 큰 문제, 더 중대한 정치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적 요청을 수용하거나,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는 데 극도로 인색한 것이 노무현 정부의 태생에 각인된 경향인 이상, 국민 대다수, 전체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한미 FTA를 저지하는데 있어 가장 유효한 방법은 그들에게 한미 FTA와 정권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미 FTA 저지투쟁은 노무현 정권 의 안위를 직접 겨냥한 투쟁, 즉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이 될 때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5. 약한고리 - 노무현 정권
게다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강경우파 정치세력에게 노무현 정부의 곤경은 언제나 반가운 소식이다. 강경우파가 자본가들과의 유대관계에 있어 역사적 비교우위를 지닌 이상, 노무현 정부의 친 재벌적, 친 자본가적 행태는 그들의 지위에 별다른 위협이 될 수 없고, 거꾸로 노무현 정부가 친재벌적 정책을 실행한다고 해서 강경우파가 노무현 정부에게 적극적인 협조세력으로 나갈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즉 이들로서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노무현 정부가 한나라당 같은 일을 해준 것'이며, 그들이 옳았음을 노무현 정권도 시인했다는 것이 되며, 따라서 한나라당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에서 실패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미숙한 정권의 또 한번의 무리수에 의한 실패'로서, 정치적 경쟁자의 낙마이기에 과히 나쁠 것이 없는 소식이 된다. 강경우파가 한미 FTA에 목을 멘 노무현 정권의 태도와 대비되게 묘한 관망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닌 자본과의 유대 관계에서 '역사적 비교열위'는 그들이 결정적으로 정치적 경쟁자인 강경우파를 밀어낼 수 없게 만든다. 동시에 그들이 실행하고 있는, 실행하려는 그리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인 이상, 그것은 언제나 생활조건의 악화로 인한 대중적 불만을 그 정부에게 되돌려 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과의 상생을 즐기는 동안 그들의 정치개혁 담론은 긴박한 생활의 고통에 밀려 잊혀져 버렸고, 기대감과 의미부여가 사라진 정치개혁 담론은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부시정부의 변함 없는 적대적 무시정책과 그에 대응한 북조선의 핵 보유선언, 미사일 실험 등은 이 정권의 최후의 정치적 피난처이던 '대북정책'의 약효를 현저하게 약화시켰다.
그리고, 강경우파와 사이비 개혁주의자들의 정치적 경쟁관계는 의사당과 청와대의 '자리 수'가 유한 한 이상, 계속될 것이다. 친자본가 정치세력과 진보세력이 글자 그대로 정권을 놓고 경합하는 상황이라도 오지 않는 한 말이다. 때문에 노무현 정권 그 자체가 대중의 공격 대상이 되는 상황이라면, 강경우파가 노무현 정권을 구조하려 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바로 그런 처지의 노무현 정권이 레임덕을 벗어나려는 일념만으로, 심지어 정권 내부에서조차 이탈과 반발을 만들며 추진하는 '한 건'이 지금 추진되는 한미 FTA의 정치적 위치이다.
즉 한국사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완결판으로서 한미 FTA가 지닌 결정적인 '약한고리'는 바로 그 추진 주체인 '노무현 정권'에 있다.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FTA 저지투쟁은 그것이 명료하고 공개적으로 정권의 '생존권'에 대한 도전을 담을 때 가장 많은 성공가능성을 지닐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도', 혹은 '다음 정권에서도' 그것이 추진될 수 있다는 것 은 도리어 한미 FTA 저지투쟁에서 '노무현 정권 퇴진'이 내걸려야 할 논거이다. 그 누구에게라도 가장 확실한 경고는 한미 FTA를 추진하다 정치적 위기를 맞은 어떤 정권의 사례 일 테니까 말이다.
6. 민중의 안위인가, 정권의 안위인가
한 시대를 풍미하던 자유주의적 정치개혁 담론은 이제 그 시신마저 유기적 분해가 끝났다. 그것은 지구적 신자유주의의 등장 속에서 '지체된 정치적 민주화'를 추구하다, 어느새 신자유주의에 의해 고무된 '정치투명성 제고'로 유전자 변형되고, 끝내는 개발독재의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쟁국가'로의 이행에 디딤돌이 된 후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그들의 '민주화 투쟁 경력'은 노스탈지어 상품이라는 점에서 강경우파가 내세운 '옛 독재자의 딸'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대중이 자유주의적 정치개혁세력을 궁극적으로 버린 이유는 결국 '인간은 먹어야 살고, 그래서 구체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수많은 노동대중, 빈곤대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한미 FTA 라는 사회적 핵폭탄을 손에 들고 오직 정권의 위업만을 바라보며, 무모한 도박을 감행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의도가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이곳 대한민국의 민중에게 남한 판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을 부르짖으며 한미 FTA를 강매하려는 언어도단의 '민족화해의지'가 가져올 것은 이번에는 대한민국 그 자체를 부를 독점한 소수의 나라와, 한층 폭력화된 빈곤과 배제에 내몰린 다수 민중의 유배지로 '분단'시킬 것이다.
한미 FTA 반대투쟁의 전면에 '노무현 정권 퇴진'을 내걸자. 그들에게 한미 FTA라는 민중에 대한 폭거가 중단되지 않으면, 그들의 정권유지가 중단될 것임을 똑똑히 말 해 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