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가장 진보적인 노조연합 '쉬드'의 대표 '아닉 쿠페'를 8일(화) 저녁 7시, 용산철도회관으로 초청합니다. 어느 분이든지 오십시오.
노동자 국제연대의 한 발자욱을 더 나아가기 위해. 아래에 참고자료를 첨부합니다. ------------------------------------------------
아닉 쿠페와 ‘쉬드’ 노조연합의 이모저모
1. 발자취
가) 아닉 쿠페의 견고한 경험
아닉 쿠페는 1968년 유럽에 ‘5월 혁명’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점거하고 행진 대열의 선두에서 팔레즈 거리를 성큼성큼 걷던 15살의 청소년이었다.
그는 드골주의를 지지하던 소매상의 ‘딸’로 태어났지만, 부정의와 폭력에 맞서는 분노야말로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힘이라는 깨달음을 일찍이 얻었다.
깐Caen 단과대학의 현대문학 전공으로 입학한 뒤 그는 급진적 마오(모택동)주의 그룹에 들어갔다. 2학년때 학업을 그만 두고 슈퍼마킷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다. 그 당시 세상에 눈뜬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투쟁하고 혁명을 앞당기는 일이었지, 대학 졸업장을 얻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혁명을 꿈꾸었을 뿐, “맑스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지금도 이론 따지기와 뜬구름 잡는 논쟁은 그의 취향이 아니다. “나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론가라기보다 행동가 유형이다.”
그가 몸담았던 정치그룹이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수치스러울 만큼 신중하게, 아무 소리 못하고 단체를 떠난 반면, 그는 1978년, ‘조직의 남성 우위론자들의 관행을 거부하는 글’을 발표하여 능동적으로 다른 길을 찾았다.
1976년 그는 유치원 교사로 일했고,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투쟁했다. 1978년에 그는 지금도 ‘적’을 두고 있는 체신부의 재무팀에 입사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열정을 노조 운동에 들이부었다.
“노조는 ‘연대’의 공간이고, 아직 가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집단적 저항의 수단이요, 실천을 통해 얻는 개인적/집단적 해방의 학교이다. 사회 문제에 열려 있는, 사회 참여적인 노조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는 CFDT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CFDT는 예전의 활력 넘치던 노조가 아니었다. 86년부터 기층과 지도부 간의 간격이 커졌다. 낙담한 활동가들이 조용히 노동조합을 떠나거나, 아니면 굽실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는 조합원들의 ‘각성’에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1988년 11월 스트라스부르 대회는 그의 희망에 경종을 울렸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CFDT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들과 우리는 동지라 여겼는데, 그들이 우리를 우리 사무실에서 내몰았다.”
그러나 곧바로 행복한 사건이 실현되었다. 그해 11월 SUD-PTT가 가슴 두근거리며 돛을 올렸고, 다음해 그가 속한 직장 부서인 ‘파리의 재무팀’ 직장평의회 선거에서 SUD는 16%를 얻어냈다.
그에게 SUD의 건설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전설적인 경험’이다.
나) 아닠 쿠페가 주도한 SUD-PTT(체신)
* 1981년 사회당 미테랑 정권이 수립된 뒤로, 사회운동이 ‘휴가’에 들어갔다. 사회당지지 CFDT는 ‘긴축정책’에 지지를 보냈고, ‘정권과 동반자 관계’로 옮아갔다. 68혁명 직후 CFDT에 들어온 활동가들 중에 ‘노동자 자주경영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사람들은 ‘위기관리 노조운동’의 흐름 속에 길을 찾지 못했다.
88년 재집권한 사회당정부는 (선거중에는 민영화 안 한다고 약속했다가) 집권하자마자 ‘우체국 민영화’에 착수했다. 노동자의 반대운동이 밑에서 일어났는데 CFDT 지도부는 이를 묵살하고 투쟁파 활동가들을 밀고하고, 제명했다. 제명된 사람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1989년 “SUD연대단결민주-PTT(우편전신전화국)”, 그리고 간호사들의 “CRC조직결집건설-Sante-Sociaux사회보건”을 건설했다.
sud-ptt는 첫 2년을 조직사업에 매진한 뒤,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의제에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주민의 투표권’에 찬성했고, 걸프전쟁에 반대했다. ‘김우중’ 체포조가 파리에 갔을 때 드골공항까지 마중나가 지원했다. (‘동업적 조합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3세계 빚 탕감’ 켐페인을 주도했고, 체신부와 ‘프랑스 텔레콤’의 민영화 반대투쟁에 나섰다.
(5개의 노조연맹이 노동자 대표성을 독점한 현실에서) sud-ptt의 대표성을 얻어내는 지리한 정치적/법률적 투쟁을 벌여 2000년 ‘이사회’ 선거에서는 체신부에서 (노동자 투표의) 21%, 프랑스 텔레콤에서 28%를 얻었다.
그들은 94년 ‘실업자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동참했는데, 97년에는 (부르디외가 ‘사회적 기적’이라 표현한) 거대 행진과 점거운동이 성사되었다. ‘유산과 피임권 연합’ 창설에 동참했고, 보스니아와 멕시코 차파티스타를 도왔으며 ‘전화통신 규제완화’를 반대했다. 95년 12월, 정부의 ‘공공부문 축소’에 반대하는 운동에 동참했다.
다) solidaires 노조연합의 성장
CFDT로부터 탈퇴가 가속화되어, 96년에는 sud-rail철도, sud-alsthorm, sud-metaux금속, sud-chimie화학, sud-education교육, 등등이 출범했다.
처음엔 10개의 직종별 조직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32개 조직을 재규합하고 전국 영토의 절반 넘게 자리잡았다. 01년말에 8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하고 직종별 선거에서 25만표를 얻었다.
노조연합은 세계여성운동, 실업반대 유럽운동, 반세계화운동에 참가했고 탄압받는 농민들을 지지했다. 98년에는 코페르니쿠스재단 창설과 ‘ATTAC’ 출범에 한 몫 했다.
기성의 5개 노조연맹에서는 sud의 출범이 ‘잠깐 일어났다가 사그라질 좌파적 도약’일 뿐이라며 ‘진입 장벽’을 쌓고, 기존의 ‘노조대표성 규정’이 신참자의 전진을 옥죄기도 하지만 99년 시애틀의 반세계화 투쟁 이후, 새로운 운동에 대한지지 기반은 넓어져 가고 있다.
2. 정체성
1) 지향과 이념의 측면
• 프랑스 노동운동의 지형.
== 민주노조(CFDT) : 신자유주의를 인정하는 토대위에서 일정한 완화와 개혁을 주장.
== 노동총동맹(CGT) :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기는 하나 일면 투쟁, 일면 협상을 통한 기존 조합원들 이익 지키기 중심의 방향.
== 쉬드(SUD) : 자본을 넘어 사회적 필요와 공공적 성격을 중심으로 새롭게 운동을 재편하려는 지향.
• 쉬드(SUD)는 1988년 미테랑 사회당 정권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출범했고,
1995년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공공파업을 통해 ‘세’를 확보했다.
반자본주의적 지향이 (상층 지도부만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2) 요구와 투쟁의 측면
• 요구가 <진취적인가 아닌가>
가령 1988년 체신 민영화를 위한 ‘우체국 개혁’을, 민주노조(CFDT)는 적절한 현대화라고 찬성했고,
노동총동맹(CGT)은 <무조건 거부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수세적인 전략을 취했다.
민주노조(CFDT)는 현대화와 고객지향이라는 슬로건 아래 민영화된 기업에서 제 존재기반을 찾았다면,
노동총동맹(CGT)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관료주의적인 국가독점체제를 옹호했다.
이에 대해 쉬드(SUD)는 우체국, 통신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가 돈 있는 고객에게만 봉사하는 수익사업으로 전환하는 것도, 그리고 공공부문을 현재와 같이 유지하는 것도 둘 다 반대한다.
<공공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쇄신하고 활력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화나 민영화가 아니라, 노동자들과 이용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주장한다.
쉬드-교원노조는 ‘신자유주의적 학교 반대’,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부르짖고
쉬드-철도노조는 모든 운수기관을 통합한 공공교통체계를 요구한다.
쉬드-제약노조는 제약회사의 이윤논리를 공격하면서(‘보건은 상품이 아니다’, ‘인간에게 유용한 생산을’), 가난한 나라에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하는 운동과 에이즈반대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 사회분야와 연대하면서 사회문제에 발언하는 것을 중시한다. 유전자 조작콩 반대운동, 실업자운동, 불법체류자운동 등에서 다른 노조들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기 조합원이 아닌 일반노동자들의 의사를 최대한 대변한다(법과 협약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한다.
유럽헌법 반대운동 등과 같이 반신자유주의적 정치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한다.
아탁(ATTAC) 등 시민단체와 연대투쟁도 열심히 한다. ‘경제투쟁’에 머무르지 않는다.
• 쉬드(SUD)가 진취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프랑스 <노동운동이 당면한> 문제들이 있다.
기존 프랑스 노동운동의 주력은 공공부문과 대공장 노동자들로서, 이들은 현재 <노동자들 가운데 일종의 특권적 위치>에 있다.
그동안 프랑스 사회가 쟁취해 온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이 요즘 들어 이러한 특권적 노동자층에 집중된 탓에, 자기들 이익을 챙기는 투쟁만으로는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더러, 공식 실업률이 20%가 넘는 젊은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이주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없다.
-- 사회적 필요나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나 투쟁으로 방향을 잡지 않고서는 노동운동이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기 때문.
3) 조직의 측면
• 가장 큰 문제의식은 민주주의 문제.
쉬드(SUD) 창립 자체가 민주노조(CFDT) 지도부의 우경적 노선과 관료주의적 횡포에 의해 파업 투쟁에 참가한 수백 명의 조합원들을 제명한 데서 비롯되었다.
노동총동맹(CGT) 등도 관료주의라는 점에서 별반 다를 바 없어
그들은 기존 다른 조직으로 가지 않고 새로운 독립 노조를 만드는 데로 방향 전환했다.
•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쉬드-체신노조(SUD-PTT)는 규약에 전임자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있고,
쉬드-철도노조(SUD-Rail)는 6년 이상 전임을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프랑스 노동운동에서 전임자는 보통 40-50년 씩 근무한다고 함).
그리고 위원장을 두지 않고 중앙상임위원들이 상호 동등한 위치에서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한다.
-- 위원장은 법적으로 신고하기 위한 형식적인 지위에 불과하다.
또한 전국연합체인 쉬드연합노조(SUD Solisdaires)는 노조 규모에 관계없이 한 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예를 들면 17,000명의 체신, 8,000명의 철도, 800명의 기상대는 조합원수와 관계없이 각각 1표씩 행사함).
다수결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 하나의 지방노조에서라도 반대한다면 서명하지 않는다.”고.
• 기존의 노동조합들이 정부나 자본가와 협상한 내용을 대체로 비밀에 붙여온 반면,
쉬드(SUD)는 협상과정이나 현안문제 등을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선전물로 알리고 투쟁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에 대하여 일반 노동자들의 지지도가 높다.
- 쉬드(SUD)가 짧은 기간에 성공을 거둔 비결은 노동자들이 요구하면 직접 발로 뛰면서 구체적인 지원과 지도를 성심성의껏 해온 것이라고 자평한다.
기존 노조들에 비해서 수나 재정, 열성조합원수, 기술적 장치 등이 열악한 데도 불구하고!
--‘쉬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운동은, 연대(solidarity)라는 가치 지향과 분리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요즘 민주노총 선거에서 제기되는 ‘조합 민주주의’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가치 지향과 내용이 없는 속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수결이냐 아니냐 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에서 논란이 벌어진다.
<노조 규모가 크든 작든 1표씩 행사>하는 사고방식은 서로를 하나의 주체로 생각하고 상호 존중하며 그런 속에서 연대하는 기풍 속에서만 나올 발상이다.
• 쉬드-철도노조에서 1명의 조직 전담자를 따로 배치하여 민간하청회사 청소노동자들을 조직했다는 사례가 돋보이는 것은 ‘비정규직 돕기’를 ‘말로만’ 하는 데가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 : "우리가 어떤 대안을 찾아서 적용했다기보다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해 국철(SNCF) 노동자들의 지지도가 점차 높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길이 바른 길이 아닌가 나타내주는 지표라 생각합니다.")
4) 전망(... 06년 2월 7일의 ‘시위’를 겪고...)
• 2월 7일(화) 치러진 3만 명 규모의 젊은 청년 학생들이 주도한 CPE법(최초연수고용계약법) 반대투쟁이 이후 프랑스 노동운동의 전망을 나타내준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이라 할 수 있는 CPE법은 26살 미만의 젊은 노동자들이 최초로 취업할 경우 2년 동안 절반의 임금으로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일종의 연수법안으로 이 기간동안 당연히 노조에 가입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2년 후 계속 고용된다는 보장도 없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법이다.
이에 대해 젊은 청년 학생들(실업계 고등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이 주도하고 노동조합이나 정당, 기타 시민단체들은 지원하는 형태의 시위가 이 날 벌어진 것이다. 이 기간이 스키 바캉스 기간이고 대학생들도 보충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적은 수가 참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3만 명 중 2만 명 이상이 젊은 청년 학생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주체도 정당과 연관된 소수의 운동권 학생들이 아니라 보통의 일반 학생들이 몇 개월 동안 토론해서 준비한 투쟁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위가 대단히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노조나 정당에서 참가한 노동자들은 거의 늙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으로 점잖게 따라가는 수준이었지만,
젊은 청년 학생들의 대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호와 노래와 춤과 함성 등이 어우러지는
살맛나는 축제 판 및 시위행진이었다.
• 한국의 청년 학생들이 관념적인 통일운동이나 등록금 인상반대 투쟁 등에 급급하면서,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취업 경쟁으로 대항하는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느껴졌다.
이미 젊은 청년 학생들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프랑스 노동운동의 앞날을 밝게 한다.
이러한 젊은 청년 학생들의 상승하는 분위기는 68혁명의 진원지였던 낭뜨 대학에서도 일부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사안이 아닌 한 대학가에 대자보등이 붙지 않는데, 상당 정도의 선전물 등이 부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 그리고 유럽헌법 반대투쟁 등을 통해서 그동안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점차 투표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사회운동과 정치운동 등에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적으로 저항세력들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고 분석하는 공산당 간부의 말을 통해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대중적 확산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5) 프랑스 노동운동에서 특징적인 점
• 대표성의 문제 ; 프랑스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퇴직노동자들을 빼면 실질적으로는 6%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운동에서는 이러한 낮은 조직률을 보고 프랑스 노동운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운동이 이렇게 <낮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전체 프랑스 노동자들을 대표하고 대변할 수 있는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제도인 <대표 노동조합을 뽑는> 선거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노조의 추천을 받아 입후보하는 종업원 대표(personnel delegation) 선거와 작업장평의회(workers council) 선거라는 독특한 2개의 선거가 있는데,
이 선거는 20인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이면 조합원, 비조합원 관계없이 투표를 하여,
표를 얻은 비율대로 대표 노동조합의 순위를 정하는, 일종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그래서 쉬드-철도노조(SUD-Rail)가 17%를 얻어서 2위 노동조합이 되었다는 것은,
현재 법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전국적 대표노동조합인 5개 노동조합들과 경쟁하여,
전체 종업원의 17% 지지를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제도 때문에 총 2,200만 전체 노동자들 중, 투표 자격이 없는 2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800만 명을 뺀 나머지 1,400만 노동자들이 투표해서, 노동조합에 대한 지지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노조 조직률과는 관계없이 최소한 1,400만 노동자들의 의사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 단순히 노조 조직률만으로 판단해서는,
낮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총파업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고,
교섭 적용률이 매우 높은 현상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 노조와 정당과의 관계 ;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과의 관계와는 달리 노조와 정당 간에 완전히 독립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노동조합이 어느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든지 하는 것조차 현재는 금기 사항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프랑스 노동조합들과 정당들 간의 밀접했던 과거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된 계기는 1981년 사회당 집권 이후 좌파연합정권에 참여한 좌파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하여 여당이기 때문에 아무런 반대도 못하면서,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 공산당은 지난 번 대선에서 3.7%밖에 득표하지 못하여, 이렇게 가다가는 노동총동맹(CGT)도 동반 몰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더욱 더
노동총동맹(CGT)과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관계를 끊기까지 했다.
쉬드(SUD)가 성공한 이유 중의 하나로 민주노조(CFDT), 노동총동맹(CGT) 등과는 달리
<정당들과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한 것을 꼽고 있는 것을 보면,
신자유주의에 대해 좌파정당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그 근본원인인 듯하다.
이런 점에서 “정당과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당연시”하는 논리에 대해서 원점에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쉬드(SUD)가 정당과의 관계에서 독립적인 입장을 견지한다고 할 때,
앞으로 반자본주의적인 정치투쟁을 어떤 조직 수단을 가지고 할 것인지에 대해 상당히 궁금하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자본주의에 대항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조합조직만으로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조직 형태를 구상하는 것인지.... 아마 ‘모색 중’이란 말이 정답이리라. (부르주아적 국가형태의 일종인 국가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였듯이, 자본주의적 조직형태의 하나에 불과한 노동조합과 정당이라는 형식으로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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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드연합노조 : 개인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알렌 아당입니다. 텔레커뮤니케이션 국제담당입니다. 저는 장 루이입니다. PTT 중에서 우체국 편지담당입니다. 쉬드연합노조의 국제담당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닉 꾸페입니다. 쉬드연합노조 전국 대변인입니다. 저는 원래 우체국 집배원 출신이고 노조에서 회계도 담당했었습니다. 쉬드연합노조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세실 공다르이고 SUD 우체국 포스트 담당입니다. 우리 네 사람과 베르벤느가 국제담당 전체 멤버입니다. 저는 베르벤느 안젤리입니다. PTT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 담당입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습니다. 2000년에 ASEM 반대투쟁을 위해 서울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우 사장 체포조가 왔을 때 공항에 나갔습니다.
쉬드연합노조 : 쉬드(SUD) 노조는 1989년에 창립했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에는 노조가 여러 개 있었습니다. 당시 PTT가 정부산하 공(公)노조였고 우리는 민주노조(CFDT)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프랑스에서 아주 중요한 노조였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좌파진영의 노조였고 사회문제나 자율관리를 주장하던 노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갑자기 우경화되고 자유주의 쪽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1988년은 체신과 병원이 국영기업으로부터 민간기업으로 변화를 추구하던 시기였습니다.
1988년에 민영화 반대 투쟁을 했고, 그 당시 우리는 같이 출발했는데 세실이 가장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민주노조(CFDT) 본부에서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지도부와 조합원 수백 명을 쫓아냈습니다.
당시 우리는 민영화 반대 뿐 아니라 또한 민주노조(CFDT) 본부 지도부의 우경화 노선에도 반대했습니다. 그 때 조합원에서 또는 직책에서 퇴출당한 우리가 새로운 노조를 만든 것이 쉬드(SUD)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세 개의 가치는 S(solidairity), U(unity), D(democracy)이며, 동시에 실업자나 사회적 권한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국제 연대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통일단결(U)의 가치는 힘을 축적하기 위해 단일해야 하고, 노동자끼리의 단합이면서 사회적인 단합을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민주주의(D)의 가치는 노조 내의 내부적 민주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민주노조(CFDT)의 관료조직에 많은 고통을 받아서 이 가치를 선정했습니다. 민주주의(D)의 가치는 노조조직과 일반 비노조원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노조 조직률이 10% 미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조원이 아닌 일반 노동자들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파업을 하게 될 때나 사용자와 협약을 맺을 때 민주주의(D)의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이 세 개의 가치로 쉬드-체신노조(SUD-PTT)라는 노조를 1989년에 처음 만들었습니다. 당시 보건노조는 연대하지는 않았으나 노조 내에서 일부 우리와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제명되고, 이 사람들이 새로운 노조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쉬드-보건노조(SUD-SANTE SOCIAUX)로 되었습니다.
지금까지가 1단계였다면, 2단계는 1995년 대규모의 2개월간 시위 때부터 입니다. 당시 좌파 정부가 퇴직자, 사회보장제, 공공부문 분야에서 우경화되었기 때문에 다 함께 투쟁에 참가했습니다. 공공부문에서 사회운동에 상당히 많이 참여했습니다. 특히 철도노조가 참가했고, 민간부문에서도 미슐렝, 프낙(도서부문), 상업분야, 교육분야 등에서 참여했습니다.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민주노조(CFDT)였는데, 그 외에 노동총동맹(CGT), 노동자의 힘(FO) 등의 다른 노조에서도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기성 자기 노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우리 노조로 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우리와는 다르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독립노조가 있었습니다. 이 노조들은 연합체(Confederation)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독립노조는 재무 담당하는 부분들과 국영은행들에서 존재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사태 때 급진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쉬드(SUD)와 독립노조가 손을 잡고 만든 게 쉬드연합노조(SUD Solidaires)입니다. 제가 현재 여기 대표입니다.
연구소 : 그렇다면 쉬드연합노조(SUD Solidaires)의 성격은 연합체입니까? 노조의 전국단위 상급단체입니까? 아니면 공동투쟁체입니까?
쉬드연합노조 : 그 어느 것으로도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연합(Confederation)은 노동총동맹(CGT), 민주노조(CFDT)와 다릅니다. 대체로 직종을 넘어선(interprofessional) 연합으로, 다양한 직종의 노조들이 조정·협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연합체로서 위에서 명령하는 것이 아닌 상호적인 관계입니다.
연구소 : 수평적 연대입니까?
쉬드연합노조 : 수평적이긴 하지만, 또한 42개 노조로 조직된 전국 조직체입니다. 그러나 감독하는 기능은 아닙니다. 전국의 대부분의 도(道)에 쉬드연합노조의 지역지부가 있습니다. 기존의 연합체(confederation)와 우리 조직과 다른 점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조합 프로젝트를 말씀드리면 투쟁에 목적을 두고 있는데, 세 가지 요소를 대변합니다. 우리는 우리 노조 조합원의 이익만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도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현재 자유주의(liberalism)로 나타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주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회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게 간단치 않습니다. 특히 동구 현실사회주의 실패 이후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회를 변혁(transformation)하는데 초점을 두고 계속해서 뭔가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의 투쟁에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이 다른 사회단체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적이고 초국적 차원으로 나가야 하고, 여러 국제적 포럼에도 참가해야 합니다.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로 연대(Solidaire)라는 것의 내적 의미를 말씀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민주적으로 어떻게 합의에 도달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될 때 다수결이냐 소수냐 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42개 노조가 있는데 노조가 크건 작건 규모에 관계없이 한 표를 행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쉬드-체신(PTT)은 17,000명, 쉬드-철도는 8,000명, 일기예보 하는 곳은 800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기 한 표씩만 행사합니다. 이래야 진정한 연합(union)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연합(union)이지만 각 노조 내부적으로는 완전히 자유롭게 독자적인 결정을 합니다. 쉬드연합노조(Solidaires)는 현재 8만 명의 조합원을 갖고 있습니다. 대의원 선출할 때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두 분야가 있는데, 공공부문은 40만의 노동자가 있고, 민간부문은 50만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노조 조직율은 10%이지만 선거 때는 다른 노동자들도 참가합니다.
예를 들어 철도(RAIL)의 경우 노동총동맹(CGT) 1위, 쉬드-철도노조(SUD-Rail)는 2위입니다. 체신(PTT)의 경우도 노동총동맹(CGT)이 1위, 쉬드-체신노조(SUD-PTT)가 2위입니다. 노동총동맹(CGT)은 당연히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노조이고 수도 가장 많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프랑스에서 중요한 문제인데 <대표성>입니다. 프랑스 노동법에 의하면 현재 5개 노조만이 전국적 대표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총동맹(CGT)이나 민주노조(CFDT)가 장악하고 있는 곳에서 새로 노조를 만들어 가지고 쉬드연합노조에 가입하려고 해도, 사장이 거부하거나 기존 노조 조직에서 노동재판에 회부해 버리면 쉬드연합노조로 오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예를 들면 행정위원회에 소송이 붙어서 3년을 끌다가 재판에 이겨 쉬드-체신노조(SUD PTT)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토탈’이라는 회사에서 새로운 노조를 만들어 가지고 쉬드-체신노조(SUD-PTT)로 오려 했는데, 2년 동안 재판한 결과 어제 승소해서 쉬드-체신노조(SUD PTT)로 오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기성노조에서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조합원들이 새로 쉬드연합노조에 가입하려 하면 온갖 방법으로 방해하면서 막으려고 하는 등 반민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쉬드연합노조는 공공부문에서 기독민주동맹(CFTC), 관리감독직 노조(CGC)와 대표성 문제를 두고 상당한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이 두 조직은 고위 간부위원회가 정부와 협상을 하나 우리는 아직까지 거기에 참가할 자격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책에 우리의 역사나 사회적 프로젝트 등 지나간 과정들이 쉽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바랍니다.
연구소 : 대표성(delegation)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공공부문 40만, 민간 50만 노동자라고 하셨는데 노동자가 이보다 더 많지 않습니까? 무슨 뜻인지?
쉬드연합노조 : 프랑스에는 선거가 2종류 있습니다. 노조의 추천을 받아 입후보하는 종업원 대표(personnel delegation) 선거와 작업장평의회(workers council) 선거입니다. 이것을 흔히 직장선거(professional election)라고 합니다. 3년마다 선거를 합니다. 20명 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모든 회사에서 모든 노동자가 투표합니다. 공공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선거 때가 되면 모든 노조에서 후보를 냅니다. 그러면 종업원들이 선거를 합니다.
우리도 42개 노조가 있어 각자 후보를 내기 때문에 좀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우리 쉬드연합노조가 선거에서 40만 명 종업원들의 표를 얻었습니다. 쉬드-체신노조(SUD PTT)는 체신노조에 후보를 냈고 쉬드-철도노조(SUD RAIL)도 철도노조에 후보를 냈습니다. 그리고 쉬드연합노조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노조도 후보를 냈기 때문에 우리끼리 경쟁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이름으로 표를 얻은 것이 공공부분과 민간부문 합쳐서 40만 명이었습니다. 약 2천2백만 종업원 중에서 20명 미만은 약 800만 명입니다. 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2,200만 종업원 중에서 (실제로는 투표권이 있는 1400만 종업원 중에서) 40만표를 얻었습니다. 현재의 법에 따를 경우 우리가 후보를 내지 못한 분야가 너무 많았습니다. (앞에 예를 들었던) ‘토탈’이라는 회사는 재판 중이어서 후보를 내지 못했는데 다음에는 후보를 낼 수 있습니다. 쉬드-체신노조는 ‘프랑스 텔레콤’에서 1,000명의 종업원 대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표는 3만표를 얻었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 쉬드연합노조를 지지하는 노조원들은 해고된 사람이 많아서 어려움이 많고 실제 얻은 비율로 보면 우리는 상당히 강합니다.
연구소 : 다른 곳의 조직율이 떨어지는 것에 비해서 쉬드연합노조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근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떠한 활동방식을 갖고 있고 중간간부 프로그램은 어떤가요?
쉬드연합노조 : 그게 우리 성공의 비밀이기도 한데요....(웃음). 처음에는 우리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쉬드연합노조가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겸손할 필요도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노조도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프로그램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른 노조도 비정규직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쉬드연합노조에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프랑스 노조운동은 남성들이 지배해 왔는데 그것도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 성공의 비밀을 말씀드린다면 우리 쉬드연합노조가 발로 계속 뛰면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노조는 두루뭉실한 데 비해 우리는 아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또한 다른 사회분야와 연대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발언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노조에 비해서 아주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수, 재정, 열성조합원 수, 기구 등에서 아주 불리했었습니다. 그러나 대 사회분야 활동(유전자 조작콩 반대 운동, 실업자 운동, 불법 체류자 운동)에 다른 노조에 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 자체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노조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 관련법이나 사용자와 협상할 때 다른 노조는 보통 비밀에 부쳤으나, 우리는 협상과정이나 현안문제를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하라고 선전물을 내면서 투쟁한 것이 노동자들에게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중간간부 양성에 대해서 학교라든지 공식적인 조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원하면 직접 달려가서 면담하면서 우리의 체험을 설명해 주고, 우리 노조가 추구하는 가치를 잘 설명해 줍니다. 이 때 차별화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노동자가 원할 때, 노조 간부가 원할 때, 예컨대 대의원이나 공장 평의회 대표인 경우 그 수준에 맞게 그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현장에 가서 대화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하는 방식입니다. 쉬드-체신노조(SUD PTT)에서도 교육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쉬드-체신노조 규약에 의하면 노조 전국 전임자가 10년까지는 중임되지만, 10년 지나면 반드시 자기가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른 노조는 평생 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는 원래 노조의 전통이 그랬습니다. 전국 체험을 하고 자기의 현장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고, 돌아가고, 그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프랑스 시민단체, 노조, 정당의 경우 한 사람이 간부를 맡으면 40-50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세대간의 관계가 단절되고, 다른 사람들의 능력 배양을 차단하는 점을 우리가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왜 사오십 년 동안 계속 전임을 하게 되었는가를 보면, 오히려 사장들도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협상을 여러 번 같이 하다 보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원만하게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전문성>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전임자를 바꿀 때 대표자가 전문성이 없더라도 평조합원의 목소리를 반영하게 되면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나 강한 면모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과 노조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정당 조직과 <독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프랑스의 노조와 정당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노동총동맹(CGT)은 프랑스 공산당과, 민주노조(CFDT)와 노동자의 힘(FO)은 사회당과 굉장히 밀접했었습니다. 1981년 좌파 사회당 정부가 들어선 후, 노조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정당들이 여당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여당이 되고 나니까 정부가 반사회적 정책을 전개해도 노조가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당조직과 관계를 맺지 않는 원칙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노조원 중 정당 당원이 물론 있지만, 당의 색깔이나 당의 이익을 노조 내에서 관철하거나 대변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정부나 정당과 요구사항을 가지고 협상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정당에 대해서 선호도를 표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특정 정당과 밀접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 이슈가 나왔을 때, 어떤 정당과도 목적이 맞으면 함께 참여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헌법에 우리는 반대했는데, 그 때 다른 정당들과 같이 연대해서 반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헌법이 자유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부분이 있어서 우리는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단체 중에서 아탁(ATTAC) 같은 단체가 우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으면 같이 연대해서 투쟁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고 어떤 정당과도 등거리관계이기 때문에, 목적이 같으면 어느 정당과도 연대해서 같이 투쟁할 수 있습니다.
연구소 : 쉬드가 공공부문에는 많이 진출한 것 같은데, 노동총동맹(CGT)이 장악하고 있는 곳에는 많이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쪽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은 무엇입니까? 개인주의화된 20-30대 젊은 비(非)노조원층을 조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어려움을 느끼고 계신지요? 한국에서도 젊은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질문합니다.
쉬드연합노조 : 민간분야와 젊은 청년문제를 뭉뚱그려서 제가 답변해 보겠습니다. 국영기업이던 ‘프랑스 텔레콤’은 이제 민간기업이 되었습니다. 경쟁회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중 1명이 전국위원이었는데 우리가 콜센터를 운영해 보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전화도 많이 하고 도움도 요청하고 해서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조직이 어려운 것이 젊은 층은 개인주의적인 면도 있고,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할 자격이 없어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노조가 새로 만들어질 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를 들어 장 루이 같은 경우 쉬드연합노조 안에 없는 산업분야인 자동차 산업의 시트로앵 회사의 젊은 친구들이 노조를 만들고 싶다고 찾아오면, 우리는 자동차노조에 관한 전문성이 없고, 체신, 금융 지도자들이지만 같이 가서 연대를 합니다. 유인물을 나누어 주거나 전국대의원 선거할 때 체험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재판이 붙을 경우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변호사를 사서 서류작성 등에서 최대한 도움을 준다거나, 특히 노조 만들 때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없는 분야인 화학분야, 주로 제약회사의 노조 창립 등을 도와서 그 노조를 통해 다른 회사로 새끼를 치는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쉬드-철도노조(SUD RAIL)는 분명히 공공부문입니다. 그러나 철도에서 청소하는 회사는 민간 하청회사인데, 쉬드-철도노조에서 1명을 전담시켜 청소회사에 노조가 만들어지도록 모든 것을 지원하여 노조를 만드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것은 공공분야에서 민간분야를 지원하여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청소회사의 대부분이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서 노조 만드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쉬드(SUD) 노조는 재정상태가 충분하지 않고, 법적인 문제(재판)에서 다른 노조에 비해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적어 어려움이 많습니다. ‘프랑스 체신’이 미묘한 상태인데, 어떤 분야(집배원)는 완전히 민영화해버렸고 비정규직입니다. 기성노조는 이런 비정규직에 관심이 없는데, 우리는 그 쪽을 중점 지원해서 노조로 묶어내고 지지를 받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 노동총동맹(CGT)에 대한 평가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청년실업운동이 노조가 청년들을 노조 틀 속으로 사람을 충원하고 묶어내는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로 실천되고 영향력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쉬드연합노조 : 노동총동맹(CGT)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하며, 중요한 노조이고, 많은 열성당원을 가지고 있고,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부나 사용자와 협상하는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많은 부분 찬성하고 또 같이 연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가 노동총동맹(CGT)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2003년 큰 사회운동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정부의 퇴직자 정책에 찬성하지 않고 총파업을 하자고 제안했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총동맹(CGT) 지도부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전국에 파업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때 운동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노동총동맹(CGT)에 책임이 있습니다.
총파업을 할 수 있는 시점에서 노동총동맹(CGT)이 너무 소극적으로 나와 실패로 끝난 점을 우리는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노동총동맹(CGT)은 정부와의 관계는 잘 굴러가나, 다른 노조와의 관계는 원만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노동총동맹(CGT)은 민주노조(CFDT)와 자주 공동보조를 취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민주노조(CFDT)는 완전히 우경화된 노조이고, 투쟁하지 않는 노조인데 그들과 공동보조를 하는 점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또 하나 노동총동맹(CGT)은 종파주의(섹티즘)라고 비판할 수 있겠는데, 자기 조합원이라든가 자기노조의 이익에 매몰되는 점이 강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노동총동맹(CGT)은 프랑스 공산당과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노동총동맹(CGT)의 간부가 때로는 공산당의 간부를 전국 차원에서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 겸임하기도 해서 독립성 유지가 너무나 힘들었던 것입니다.
현재 노동총동맹(CGT) 고위 간부들은 20-30년 전의 생각으로 지금도 운동하고 있고, 때로는 공산당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생각에 젖어 독립성을 가지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노동총동맹(CGT) 지도부를 보면 베르나르 티보가 위원장이고, 경제전문가인 장 크리스토퍼 디구는 핵심 참모입니다. 이들의 비투쟁적이고 협상을 선호하는 면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노동총동맹(CGT)은 사실은 우리와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면서도 강력한 라이벌로서 경쟁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총동맹(CGT) 내부에서는 토론이 굉장히 활발하고 논쟁도 많습니다. 금년 3, 4월경 전국대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작년의 경우 노동총동맹(CGT) 위원장 베르나르 티보는 유럽헌법에 찬성하는 소수파였습니다. 그런데 노동총동맹(CGT) 노조원이면서 아탁(ATTAC)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관계가 아주 긴밀합니다.
연구소 : 실례가 안 된다면 규약을 얻을 수 있나요? 노동총동맹(CGT)이 정부와 결탁해 법안을 만드는 상황에서 실제로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공공부문이 민영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의제는 어떤 것을 제기하고 있는지요?
쉬드연합노조 : 지난번에 전국대회를 해서 여기 대회 자료집에 다 들어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쉬드연합노조는 정부나 사용자와 서명을 한 적은 없습니다. 좀 있으면 우리도 할 텐데, 모두에게 묻고 단 하나의 가맹노조에서라도 반대를 한다면 우리는 서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쉬드연합노조는 전국연합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쉬드-체신노조(SUD-PTT)나 쉬드-금융노조와 관련된 문제라면 그쪽 부문에서 최종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중앙 지도부가 아니라), 밑에서 토론하고 합의하여 계속 올라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다수결의 원칙에 의거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 신자유주의 반대와 관련하여 반자본주의라는 이념적 지향을 어떻게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는지, 쉬드 노조가 탄생하게 된 정치경제적 배경은 무엇인지(미테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결과로 추측되
는데), 그리고 다른 정당조직들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나중에 추가로 시간을 내어줄 수 있습니까?
* 쉬드연합노조와의 점심식사
쉬드연합노조 : 민주노조(CFDT)는 요즘 아주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습니다. 공식 조합원수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솔직하게 하는데 다른 곳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소 : 프랑스는 젊은 친구들이 시위에 많이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쉬드연합노조 : 왜냐하면 시위의 주제가 젊은 대학생들의 연수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체입니다. 우리 노조와 정당은 지원하는 것이었고, 주체는 학생들이면서 학생으로부터 임금노동자로 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연구소 : 시위문화가 한국과 다른 것 같습니다.
쉬드연합노조 :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완전히 당나라 군대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분노하게 되면 우리도 다릅니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들이 한국처럼 조끼 입고 시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 시위는 굉장히 보기 좋습니다. 국제연대와 협력, 노조주의를 위해서, 그리고 자유주의 반대를 위해서 건배합시다.
연구소 : 구호 외치는 것이 리드미칼한 게 대단히 듣기 좋습니다.
쉬드연합노조 : 1995년 12월 대규모 시위에서 나온 구호들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 구호들을 외치고 있습니다.
연구소 : 시위가 매우 역동적입니다.
쉬드연합노조 : 풍선 달아가지고 분위기를 띄우고 하는 게 프랑스 시위문화입니다. 저희도 한국 시위에 대해서 인상적으로 느낀 적이 있습니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막대기를 들고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구소 : 시위대를 지키기 위한 자위 차원입니다.
쉬드연합노조 : 저는 잘 이해합니다. 프랑스와 같은 경우도 때로는 경찰들이 간혹 폭력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것으로 촉발되어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소방대원들, 어부들, 농부들이 시위할 경우는 좀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만 시위할 경우도 상당히 날카롭습니다. 그리고 금속노조도 격렬합니다.
연구소 : 어제와 같은 시위의 경우 그 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쉬드연합노조 : 언제나 경찰 추산과 우리 추산은 다릅니다. 3만 명 가량 됩니다. 그 정도는 큰 것이 아닙니다. 1995년에는 50만, 100만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신문이나 라디오, TV 등에서는 정치현안을 중심에 두고 하는데, 참가자 수가 얼마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제 시위의 규모는 전국적으로는 30-40만 정도입니다. 1995년 12월 시위 때는 알렝 쥐페가 수상이었는데, 그 사람이 시위대가 200만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리니까 사람들이 매일 가서 그럼 한 번 사람 숫자 세어보라고 시위한 적도 있습니다. 대열에 참가하지 않지만 옆에서 구경하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