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사이에 양자 대화는 없다”라고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말했다고 한다. “북한과 대화는 6자 틀 내에서 가능하며 북이 유엔안보리 결의를 무시할 땐 다음 조치를 찾아야 한다.”라고 언급했다고 한다.(7월 4일자 조선일보 등) 북․미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어떻게 생긴 것이며, 왜 정상적 관계가 수립되지 않고, 긴장과 대립 국면의 교착이니, 악화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가? 1953년 7월의 정전협정 체결 53 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정세 상황부터 보기로 하자.
미국은 9.19 6자회담 공동선언 무시하고 대북 압박
북이 7월 5일 (미국 시각으로는 7월 4일 즉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수발의 미사일을 실험 발사한 것이 새삼 새로운 위기 국면을 조성시킨 원인으로 보아야 하는가? 유엔 안보리를 비롯하여 강대국이 주도한 자리는 북에 대한 제재를 가하라는 요구를 담은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을 제외한 회의를 할 수 있다느니, 무조건적으로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것을 북에 요구한 것으로 보도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9.19 공동성명이 합의된 이래 6자회담 개최를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것은 결코 북이 아니다.
9.19 6자회담 공동성명에 의하면, 첫째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이 6자회담의 목표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북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데 다른 참가국들은 존중을 표시하고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토의하기로 하였다. 경수로를 제공하는 적절한 시기에 대해서 성명 발표 직후 북․미간에 서로 다른 주장이 나왔으나, 차후 6자회담 관련 논의사항이었지 6자회담을 계속 못할 사유는 아니었다. 그러나 북이 강력하게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위폐 문제, 마약 밀매 같은 것을 들고 나와 그 사실성 여부를 가리는데 별도의 토론장에서 조차 공방이 뜨거울 수밖에 없는 사안을 가지고, 북 거래은행에 대한 제재 조치를 하고, 다른 나라들도 같은 제재 조치를 해 달라고 북에 대한 압박 조치를 가했다.
9.19 6자회담 공동성명 2항에서 북, 미는 서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쌍무 정책들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또한 공동성명 제 4항에서 직접적인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개의 연단(포럼)을 차려, 한(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2000년 10월의 북미공동성명에서 합의에 이른 것을 파기한 미국 부시 정권이 관계 정상화의 원점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 사항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북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가한 것이 미국이 아니고 누가 먼저란 말인가? 때문에 북은 ‘제재의 해소’와 관계정상화를 목표로 자위적 국방력, 억지력인 미사일 실험발사를 미국이 가장 기념하고, 축제를 즐기고자 한 시각을 노려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허를 찔린 불러들인 미사일 세례
북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과의 극한 대립, 교착 상태에서 미국의 허를 찌른 것은 명확해 보인다. 미국은 7월 4일 (한국 시각 새벽 3시 30분) 디스커버리호 인공위성에 여성 우주비행사 2인을 태워 독립기념일에 한껏 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부시는 여유 있게 세계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북의 미사일 발사를 예고하고 있던 미국이 북의 미사일을 왜 그 시각에 맞추어 요격을 가하지도 못했단 말인가? 발사된 미사일은 그 순간부터 요격 자체가 안 된다는 말도 있다. 하여튼 디스커버리호를 발사하려는 그 시각에 발사된 북의 미사일로 미국은 심리적으로 허를 찔린 셈이 되었다.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려면 상대방의 정보 억지력을 넘어서야 하는데, 북이 언제 발사할는지 정확한 시각을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알고 있었다면 디스커버리호는 여유 있게 날아갔을 것이고, 세계의 뉴스는 당연히 여성 2인이 탄 디스커버리호 발사에 온통 모든 시선을 집중토록 했을 것이다.
미국은 정보전을 주로 하는 현대전의 상식으로 볼 ㅤㄸㅒㅤ 북의 정보를 사전에 탐지하지 못했고, 북의 정보 억지력에도 허를 찔린 셈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즉각 외교적 해결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고 여전히 상대방 목조르기에 주변 관련국을 동원하여 압박을 가하면서 “북미 양자 대화는 없다”라고 수십 년 써 먹은 봉쇄, 제재 전략을 고수하려 하고 있다.
여론도 무시하는 부시정권의 독선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 여론조차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뉴스위크는 “북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직접적으로 안보를 위협하지도 않을 뿐더러 국제조약을 어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의 그 어떤 군사적 대응도 정당화 될 수 없다”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북의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명백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국제법 위반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이사국은 북의 미사일 발사 이전에 이루어진 인도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미국의 승인 하에 이루어진 것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북과 미국 사이에는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콤뮤니케에서 “미사일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만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북이 미국에 통보한 바 있다. 그러나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콤뮤니케에서 밝힌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한 그 어떤 회담도 한 번 열리지 않고 휴지화 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부시 정부가 ‘악의 축’이니 ‘불량국가’니 하면서 북을 적대시한데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가 1993년과 1994년에 당시 조성된 핵개발 위기 정세의 타결방안으로 북․미 사이에 합의한 공동성명, 기본합의문에서 이행키로 한 것을 지연시키며 끌어오다가, 이를 하나 같이 일방적으로 폐기해버린 것이 미국 부시정부가 아니고 또 다른 누구란 말인가?
되풀이해 살펴 보자.
북․미 양자는 “상대방의 자주권을 상호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1993년 6월 북․미 공동성명) “서로 간에 정치 및 경제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는 데로 나가기로 한다.(금융결제에 대한 제한조치 해소 포함) 상대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상호 관심사로 되는 문제 해결에서 진전을 이루어 가는 데 따라 쌍무관계를 대사급으로 승격시킨다.” (1994년 10월 북,미 기본합의문). 북은 이들 성명과 합의에 따라 핵관련 동결조치를 이행했으나, 관계정상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은 성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클린턴 정부 임기 말에야 6.15 남북공동성명에 의하여 한(조선)반도의 환경이 변화 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북,미 쌍방은 “한(조선) 반도에서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협정체계로 바꾸어 한국(조선)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도들이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다”라고 이른 것 같았다. 수 십 년의 적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것을 공약한다고 했다. “북․미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자주권을 상호 존중하고,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재확언 하면서 호혜적인 협조와 교류를 발전시키기로” 합의하였다.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노력으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북이 미국에 통보한 것도 이 때이다.(2000년 10월 북미 공동콤뮤니케)
판을 뒤집어엎은 결과는
그런데 부시 정부는 왜 같은 문제에 대한 기본합의, 공동성명, 공동콤뮤니케를 뒤집어엎고 다시 뒤로 돌아가자고 하였는가?
그래서 다시 판을 엎어 버리고 뒤로 돌아가서 부시 집권 5년여를 허비하여 똑 같은 결과밖에 얻을 수 없었다면, 동북아에 강요한 전쟁 압박론과 실전에 방불한 군사 연습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진정한 자세를 가져야 했다. 2005년 9월 19일 6자 틀 내에서의 합의사항을 공동성명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서 미국은 최소한의 성의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마땅했었다고 하는 것이 세계의 양식 있는 평화 애호 인민의 똑 같은 심경일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미국은 왜냐?
북이 부족한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흑연감속로 방식의 원전을 개발하는 것이 안보 위협을 준다고 만류하여 경수로 방식의 발전소를 지어 주기로 해 놓고 지연시켜 오다가 이를 중도에 완전 파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부시 정부이다. 대용 에너지(중유)조차 공급을 중단한 것도 부시 정부이다.
다시 말하지만, 2005년의 9.19 6자 공동성명에서 평화적으로 핵에너지를 이용할 북의 권리를 존중하며, 주변 5개국은 북에 대해 에너지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북․미간에는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새삼스럽게 별도의 연단(포럼)을 갖고 논의해 간다고 했지 않았는가? 에너지, 무역, 투자 분야에서 경제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지 제재를 가하겠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9 이후 단 한 차례도 진전된 6자회담을 갖지 않은 터에 대화를 갈망하고 있는 북에 그 탓을 돌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패권논리의 관철 의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9.19공동성명 자체가 휴지조각이라고 강변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외교적 합의가 외교적 수식어라니
정세의 흐름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부시 정부는 어디까지가 폭력의 행사요 어디까지가 외교적 수식사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수십 년간에 걸친 북․미관계에서 자명하게 도달한 결론을 클린턴 정권 하에서 맺어진 것이라고 해서 그 모두 -북,미 공동성명(1993.6), 북,미 기본합의문(1994.10), 북,미 공동콤뮤니케(2000.10)를 엎어버린 것은 국제 외교사에서 주권국가가 취할 태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5년여를 경과하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대화를 통해 협상에 이르자’라고 해놓고 다시 상대방의 목을 졸라 대화의 자리 자체를 봉쇄하려는 것은 강대국의 오만, 패권주의 논리의 관철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이 점에 대해서 미국 부시 정부는 대답해주기 바란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서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까운 근인으로부터 말하면 동구권과 소련의 사회주의체제 몰락 이래 미국 행정부는 북이 고립되어 가까운 시일 내에 붕괴되리라고 가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이 빗나간 것으로 밝혀지자, 북․미 기본합의문에서 양자의 관계를 정상화 하기로 하고 경수로 제공을 약속했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경수로의 제공 시한인 2003년이 다가오기도 전에 서둘러 경수로 건설 약속을 파기했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북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악의 축’ ‘불량국가’로 지목하면서 미국의 군사부문의 MD화를 다그치고, 중동과 동북아의 양대 전역에서 승리한다는 전쟁위협전략을 본격 가동화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부시 정부는 세계 전 지역에 미군이 신속하게 출동,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미군의 재배치 전략, 신속기동군화-한국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미국의 의도를 따르로 있다-를 군사지배정책으로 앞세우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다자간 협상방식인 WTO에서 FTA체결 방식으로 전환, 경제주권을 손쉽게 빼앗아가는 정책을 내 세우는 데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세계 정치-군사, 경제 지배 정책에서 희생되는 나라들은 으레 약소국이 그 대상으로 되었다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미국과 북 사이에서 교전 상태를 중단하면서 맺은 불완전한 정전협정 아래 이미 50 수년. ‘정전협정 후 3개월 이내에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담을 열기로 하자’는 것이 파탄되고, 1957년에는 ‘정전 후 새로운 무기반입금지 규정’이 휴지화(1957년 7월 15일 미국은 남한 주둔 미군이 핵무장을 하겠다는 것을 공개)되는 등 정전협정의 중요사항이 휴지화 되었다. 이래서 북․미 사이에 기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북이 사활적으로 제기하여 계속해온 저간의 역사는 세계사에도 유례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정전협정의 중요 사항이 휴지화 되었으면 어느 일방은 언제든지 다시 전쟁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데, 정작 전쟁의 당사자로 처해지는 남과 북의 쌍방은 이미 ‘남과 북 사이의 불가침에 관한 선언’(1991년)을 발표한 바 있고, 더 이상 적대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우리민족이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개입 없이 자주적으로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가자고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1972년 7.4 남북공동선언)도 30 여 년 전이다. 남북 사이의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잠정적인 민족 내부의 관계로 규정하고 어떤 외세의 개입도 반대하고 있다.(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북․미관계가 교전 쌍방의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53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양자 사이의 협정이나, 기본 합의문, 공동성명, 공동콤뮤니케 등 여러 가지 방식의 합의사항이 원만하게 이행되었다고 하면 우리민족은 결코 지금과 같은 정세 하에 놓여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쟁 후 원인부터 거슬러 말한다면 북․미 쌍방은 보다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3개월 이내에 개최하여 모든 외국군대를 철수하고 한국(조선)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정전협정에서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정전협정 발효 3개월도 안되어 한미동맹조약을 들고 나온 쪽이 이 협정을 먼저 휴지화시켜 버린 것이다.
미국이 침략자인 일본과의 교전 상태에서 항복문서를 받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한 것은 이미 1950년대의 일이다. 물론 미국은 일본을 자기의 핵우산 하에 두기 위해 미․일 동맹체제로 묶어 놓고 있기에 진정하게 대등한 관계라고는 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로 체제를 달리한다고 남베트남에서의 지배전쟁을 10여년이나 계속하여 패퇴하고 난 후 베트남국과 국교관계를 가진 것은 종전 20년 후인 1995년대의 일이다. 경제봉쇄, 해상봉쇄의 대상이었던 사회주의중국과도 수교한 것이 이미 지난 1970년대의 일이다.
미국과 관계를 수립한 이들 나라들은 미국에게 이겼거나, 미국이 이길 수 없을 만큼 강대하고 핵실험을 하여 도저히 위협이 통하지 않는 국가였거나, 경제적으로 강대국화 되고 있어 무시할 수 없었다는 그러한 특징을 다 같이 갖고 있다. 미국 주도의 침략 하에 유린당한 아프카니스탄, 이라크는 자체의 힘이 너무나 열악하여 무너진 경우들이다.
세계사의 진운 법칙이 이러한데 북이 왜 미국에 대하여 관계정상화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모든 노력을 다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문제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국제 정치상의 세력권에서 한반도를 자기의 지배 하에 두려는 미국의 패권 지배논리가 수십 년간에 걸쳐 아직도 그 낡은 허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데 있으며, 자기의 지배권 하에 한반도의 남, 북을 두려고 하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민족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있다.
또한 북은 자기의 체제를 수호하는 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결의로 차 있고, 남과 북은 그 정상들의 만남과 공동성명에서 남과 북, 양 체제가 제안하는 통일 방안의 공통점을 먼저 인정한 기초 위에서 평화적으로 서로를 인정, 존중하고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 지배논리는 결국 남과 북, 어디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있다.
국제여론은 우리민족의 의사와 합치
국제 여론도 모든 나라의 의사를 종합하여 보면 우리민족의 의사와 합치 하고 있다.
1975년 유엔총회는 남쪽에서 유엔사령부의 해체를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강대국의 지배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유엔안보리의 결의로 만들어진 유엔사령부는 아직까지도 해체되지 않고 있으며, 미군은 아직도 유엔사의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러나 기실은 미국 정부의 지휘권 하에 있는 미태평양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 대치 상태의 주력군으로 보다 신속기동군화하려는 재배치 과정 중에 있을 따름이다.
이번에 북 미사일 발사 국면이 일어났을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 사람이 미국이 2002년 12월에 한국에 배치한 이동식조기경보기를 한국정부는 2008년, 또는 2012년까지는 가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군사 기술적으로 선제공격과 미사일요격방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무기 도입에 대한 질문에 한국정부 관리의 말은 명확하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아직 자체적으로 고급정보를 입수할 수 없느냐는 문제가 지적된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러한 이동식조기경보기(같은 시기에 독일에도 배치되었다.)로도 북의 정보억지력을 뚫지 못한다는 데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민족 앞에 놓인 수십 년에 걸친 이러한 군사적 대결 상태 - 특히 북․미 사이의 군사적 대결 상태를 우리민족끼리의 힘으로 종식시키는 데에 조․야 그리고 정부와 국민을 가리지 않고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나서야 한다.
냉전시대 적대하는 체제로서 미, 소 사이에도 상대방에 대사급관계를 두고 서로 주권을 존중하면서 경쟁하는 공존관계였던 것이 지난 역사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은 힘으로 봉쇄하고, 제재를 가하여 자기와 다른 사상에 기반된 서로 다른 체제의 나라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주는 경험적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약소국이라고 해서 대치, 봉쇄하고 침범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지배 권력이 군산복합체제와 석유메이저재벌, 곡물재벌의 이해를 대변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비용을 거기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라는 사정 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정전 54주년을 북․미 정상화 원년으로 되게 하라
우리민족끼리는 서로 다른 체제와 사상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데 왜 미국은 이미 휴지화 되어버린 정전상태를 종결하고 평화협정체제로 나아가기로 말로만 합의하고서 북․미 양자대화를 실질적으로 하지 않았고, 또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에서 공존, 더구나 체제를 달리하는 나라 사이에서의 공존이 미국에게 불리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다고 역사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미국 정부에게 묻고자 한다. 아니 미국의 모든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자 한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53년의 세월에 걸쳐 정전협정 당시 협정 당사자였던 북, 미 사이의 관계가 미국정부가 내건 대북적대시정책, 대북압박정책으로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항의한다. 그런데 밤낮으로 약소국 북이 핵개발하고, 핵을 갖고 있으며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위기를 조성하는 원인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수십 년에 걸쳐 북․미간에 합의한 공동성명과 기본합의서, 그 어느 하나 이행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강변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자 한다.
군사적으로 패권지배를 관철하고서, 이제 한미 FTA 강요로 경제주권마저 패권지배 하려는 미국의 지배 권력, 부시 정부여! 우리민족끼리는 남북 사이에 불가침을 선언하고,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인정 존중하고, 남과 북에서 내놓은 두 개의 통일 방안 중 그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지향하여 나가기로 하고 군사적 대결 상태를 종식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정전협정 이래의 과거를 청산하고 평화체제로 나가려는 길에서 협정쌍방의 한 당사자라 하여 미국정부는 남북의 우리민족이 평화적 통일에의 길에 나서는 데 가장 긴요한 북․미간의 기본관계수립을 거부하기만 할 작정인가? 북․미간의 기본관계가 수립되면 평화적 공존을 담보하는 평화체제의 수립으로 아시아, 태평양을 이으려고 하는 미국에게도 막대한 이득이 올 것임을 우리민족은 미국정부에 지적해 두고자 한다.
미국정부여 대답하라! ‘네가 먼저, 내가 먼저’가 책임의 원흉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 궤변은 이제 그만 종식하고 우리민족에게 정전 54주년은 북․미 기본관계정상화 원년으로 되게 하라. 그도 안 되면 정전 55주년은 꼭 그와 같이 되게 하라.
미국 정부는 이제 답할 차례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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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률님은 통일연대 고문, 통일연대 학술위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