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 신제국주의 동맹에 스스로 가담하다

노무현 정권, 신제국주의동맹에 스스로 가담하다
-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담긴 뜻

김 철 순


부시 미대통령은 8월 15일 전시 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한국에 이양하는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지원하라”고 미군 당국에 지시했다고 한국군 고위 관계자가 25일 밝혔다. 그는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한국은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한 데 대해 ‘공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부시가 전작권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문제로 인해) 한미 동맹이 균열되고 있다”고 떠들어 온 일부 보수진영의 반발은 이로써 찻잔 속의 태풍처럼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미 두 나라는 9월 14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큰 틀’에서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9월말 한미 안보정책구상회의(SPI) 회의에서 일정표(로드맵) 초안에 합의하고,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이를 최종 확정하여 내년 전반기까지 이행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전작권 환수의 개념은 1978년 한미연합사 창설 이래 유지해온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한미 공동방위체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 내용은 앞으로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한반도 전시 작전을 주도하고, 미군은 이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다(주한미군의 대북 감시 정보자산과 공군력을 지원함). 공동방위체제를 떠맡을 기구로, 양군 사령부의 협조를 꾀할 ‘(가칭)전시/평시 협조본부’의 창설이 거론되고 있다.

수구·보수세력의 ‘3일 천하’

전작권 논란은 조선일보 7월 19일치 보도에서 처음 불거졌다. “미국이 2010년 이전에 한국군에 돌려주겠다”는 뜻을 최근 우리 정부에 공식 통보했다는 요지였다. 조선일보는 “최근 불편해진 한미관계 때문에 한국쪽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가 깔려 있다.”고 단언하여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한국정부의 과오를 탓하고, 조기 이양에 따른 안보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러다가 8월 2일 전직 국방장관들이 ‘환수 반대 모임’을 열었고 11일에는 예비역 장성들이 서울역 앞에 모여 대통령 탄핵/하야운동도 불사하겠노라고 호기롭게 외쳐댔다. 한나라당은 이들 첨병 부대의 돌격을 이어받아 ‘국가안보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윤광웅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내는 한편, 이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할 것을 제창했다. 주요 보수 언론들도 집중포화를 퍼부었으니 중앙일보는 8월 11일치 사설에서 ‘이 문제를 차기 정권으로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현 한미연합사 체제에서도 핵심 정보는 받지 못하는데, 연합사체제마저 해체되면 독자적 작전계획능력도 없고 대북 정보도 없이 어떻게 ‘전시’를 대비하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수구·보수세력의 기세가 한때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았다. ‘전작권’ 의제는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국가안보’를 전매특허처럼 내걸어온 수구·보수세력들을 돕는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23일에는 ‘안보 불안증’을 주체하지 못한 고령의 전 국방장관들이 여당을 찾아가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용기는커녕) “대통령 좀 말려주세요!”라며 체면 불구하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소맷자락에 매달려 읍소하거나 생떼를 부렸지만, 한참 나이 어린 그에게 ‘예의 없다’고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총명한 보수파 인사들은 오래지 않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비상벨을 눌렀다. 16일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한나라당이 덫에 걸렸다!”고 아우성을 놓았는데 ‘자주냐, 사대주의냐’를 따져 묻게 될 ‘전작권 환수’ 이슈는 열린우리당에게 절대로 유리한 의제라는 지적이었다. 중앙일보 18일치 1면 톱기사는 “전작권은 대박 상품이냐?”하고 호들갑스럽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노대통령이 본인 지지율은 10%에 불과한데도 ‘자주/주권’을 선동하는 정치게임을 벌여 전작권 지지율을 50% 안팎으로 높였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 참패 등으로 구석에 몰렸던 노대통령이 전작권 논란으로 ‘국면 전환에 성공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2002년 대선에서 “반미 좀 하면 어때”로 노 대통령이 대박을 터뜨린 뒤로, ‘자주/주권’은 그가 경쟁력을 갖는 정치상품이 되었다는 것이며, 그는 9일 “한국 대통령이 미국 하자는 대로 ‘예, 예’ 하기를 한국 국민이 바랍니까?”라는 도발적 반문으로 자기 지지층을 다시 그러모았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늘 뒷북만 쳐온 한나라당을 짜증스럽게 닦아세웠다. 열린우리당이 의제를 설정하면 따라다니며 ‘반대’만 되뇌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한 발 늦었다. 14일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를 만나 “전작권 이양으로 한미 연합방위능력은 더 강해진다”는 ‘정답 풀이’를 듣고서야 화들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여론조사’도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우리가 언제 국민투표 하자고 그랬냐’고 쭈삣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두 나라, 두 보수세력이 배가 맞을 때

합리적 보수를 자처해온 중앙일보는 어떠했는가. 그동안 중앙일보의 보도 기조는 ‘조선’과 ‘동아’에 견주어 그런 대로 유연(?)했다. 조선과 동아가 ‘북한 헐뜯기’에 여념 없을 때에 중앙은 ‘경제협력에 나서야 한다’ ‘북한 수해피해를 도와야 한다’고 전향적으로 발언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번 사태에서도 중앙은 묘한 ‘기회주의’의 태도를 견지했다. 22일 문창극 칼럼은 ‘때를 알아야 나라가 산다’는 자못 현자(賢者)다운 일갈을 토해냈다. “독립국가라면 자국 군대의 지휘권을 행사함이 당연하다. 그것이 ‘주권’ 문제라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며 자주/예속의 대립구도에서 물러섰다. “전시 작전권도 이미 노태우때 거론한 것이니, 노대통령이 자신의 ‘특허’인양 내세울 일이 아니다.”라고 ‘전작권 공방’에서 밀린 쪽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어느 때가 (환수의) 적당한 때인지’는 엘리트들이 판단할 몫이라며 국민투표를 제기한 한나라당의 어리석음을 짐짓 꾸짖는 한편 “미군이 2선으로 물러나 앉았을 때 북한의 핵위협은 어떻게 막을 것이냐” 분명하게 답을 해야 한다고 노정권에게도 훈시했다. 그 ‘때’를 충동적으로 정하지 말라고, “(정치적) 열세를 한번에 뒤집겠다고 일을 저지르는 것은 경솔하다”고 자못 현자(賢者)답게 노 정권을 타일렀다. 23일치 사설은 훨씬 온유하다. 문제는 ‘졸속 추진’이며, 전작권 환수는 이념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 국가 안위’의 문제이므로, ‘반대 논리도 경청해 달라’는 주문이다. “우리, 서로 으르렁대며 싸울 일이 무에 있냐”는 타협의 호소다. 겉으로야 ‘너, 오기 부리지 마라’고 상대를 얕잡았으나 실제로는 자기들의 체면을 많이 구겼다. 그러니 ‘바다 이야기’가 터지자 수구·보수세력들의 복수의 열정이 벌떼처럼 들끓을 수밖에. ‘국가안보 비상사태’의 데프콘 3은 시부저기 종료되고, 누가 누구를 바닷물에 빠뜨리느냐 씨름하는 즐거운(?) 물놀이 국면으로 재빨리 넘어갔다.

그러니까 중앙일보는 한편으로 수구·보수세력들을 편들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주된 독자층이므로. 그들의 손상된 자존심을 달래려면 노무현의 ‘오기’와 ‘열세를 뒤집으려는 충동’을 비웃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공식 담론을 계속 재방송해야 장사가 된다. “북한의 전쟁 위협이 여전히 무섭다. 다시 말해 그들의 최악의 불장난이 무섭다. 이를 막으려면 우리 군사력이 훨씬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OK'한 일을 반대할 수도 없고, 사실 언젠가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실도 직관으로 안다. 북한의 군사력이 한/미보다 훨씬 열세에 놓여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게 체제를 옮기는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더 이익을 누릴지 정치적 계산에 골몰할 뿐이다. 그 ‘때’란 남한 초국적자본에게 가장 유리한 ‘때’이자, 한/미 두 정권이 서로 배가 맞을 때요, 남한 두 보수정당이 적당히 타협에 이를 때다. 이 현명한 때를 어찌 예견할 수 있으려나?

애시당초 기존 수구·보수세력과 신생(이른바 ‘개혁’) 보수세력 즉 노 대통령 지지세력 간에 별다른 쟁점은 없었다. 미국이 원하는데 어찌 받지 않으랴. 굳이 쟁점이라고는 ‘이양 시기를 다소 늦추느냐, 당기느냐’의 차이였을 뿐이다. 그러니 ‘환수가 옳았느니 여부’나, 심지어 “<환수>와 <단독 행사>, 어느 쪽이 온당한 표현인지” 따위의 논란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로 미군의 전작권 반환과 한미 연합사 해체 계획은 1990년에 발표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에 이미 들어 있었던 것이 중도에 얼마쯤 늦춰졌을 뿐이다.
“환수를 앞당길 것을 누가 (더) 원했느냐” 여부는 우리 민중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지배세력 간에는 자기 분파의 이익을 위해 서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조기 이양’ 요구는 노대통령과 미 국방성(펜타곤)의 합작품이라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은 ‘자주권’을 되찾아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싶었고, 펜타곤은 주한미군을 빼내 이라크에 투입하기를 원했다. ‘조기 이양’이 미국 내에서 최근까지 충분히 합의되지 않았던 터라, 한국의 수구·보수세력들에게 ‘조기 이양 반대’의 논거도 충분했다. 2009년에 이양될지, 더 늦춰질지는 그들끼리 더 조율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수구·보수파의 반발을 달래려면 이른바 ‘자주 국방’을 위해 군사비도 더 늘려야 하고 미국 무기도 더 사들이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에서 ‘환수’를 둘러싸고 벌인 한여름날의 소동을 지켜보면서 워싱턴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이미 이달 중순께 럼즈펠트 미 국방장관이 ‘2009 이양을 희망한다’고 한국쪽에 통보하면서 방위비를 ‘50 대 50’으로 높여줄 것도 요구했다는데(지금은 40% 남짓)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은 한국의 협상력을 오히려 깎아내리는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셈이다.

전작권 환수는 ‘전략적 유연성’ 돕는 방편

전작권 환수는 그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자주/주권 회복’을 말해주는 면이 있으나, 사물이란 그렇게 전체와의 연관에서 떼어내어 살피면 크게 왜곡된다. 그 본질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구의 한 방편이라는 데 있다(반미의 탈을 쓴 친미파 노무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주한미군의 임무는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이동은 ‘한·미 정부의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이 개념을 뿌리째 바꾼다. 주한 미군은 ‘북한의 남침’ 방어 임무를 덜어내고 아시아 어느 분쟁 지역에든 출동할 수 있게 허용된다.

주한 미군이 이렇게 제 맘대로 놀려면 무엇인가 큰 명분을 한국 정부에게 주어야 한다. “너희, 한국군은 너희가 알아서 다스려라! 그 ‘전작권 이양’을 ‘주권 회복’으로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라. 그 대신, 주한미군은 우리가 알아서 굴리겠다.” 이미 ‘흡수 통합’의 대상으로 움추러든 북한과 대결할 부담은 사실상 없어지고, 전세계로 ‘군사 개입’을 넓혀야할 필요가 커진 미국으로서는 주한 미군의 사용을 ‘양국 대통령이 사전 협의’해야 한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조항이 이제는 ‘걸림돌’로 바뀌었다. 그러니 ‘전작권 이양’이 ‘전략적 유연성’ 실현의 필수 보완물이 된 것이다.
‘전작권 이양’은 당연히 ‘한미 연합사 해체’로 귀결된다. 그 뒤에 ‘작전협조 본부’ 같은 어떤 매개기구를 아무리 설립한다 해도 이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4성 장군을 계속 남기겠다’는 부시의 발언은 1회용 달래기일 뿐이다. 주한미군은 냉전시대만큼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못하므로 그 위상이 격하되고 그만큼 주일미군의 가치가 높아진다. 지난 몇 년 미일 군사동맹은 ‘일체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으며, 거꾸로 일본은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등에 업고 ‘군사 무장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한국의 수구·보수세력들은 ‘굳이 한미연합사를 해체하지 않더라도 우리 군의 독립성을 높일 수 있다’고 투덜대거나 심지어 ‘미일동맹에 한미관계가 종속된다’며 제 딴에는 민족주의 감정까지 불러들이지만 다 부질없는 반발이다. 주한미군의 성격을 ‘신속 기동군’으로 바꾸겠다는 터라, 붙박이로 있는 ‘연합사’는 이미 이와 모순되는 개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신제국주의 동맹에 왜 능동적인가

한/미 두 지배층은 언제나 ‘한미 동맹이여, 영원하라!’고 노래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불변함’을 강조해온 두 나라 지배세력에 의해 한미동맹은 변질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아시아 침략을 위한 ‘지역동맹’으로, 주한 미군은 ‘신속 기동군’으로! 한국의 민중이 이 변화에 대해 변변히 저항하지 못할 때, 한미 동맹의 ‘새로운 성격’은 마치 자연법적 질서인 양, 우리의 뇌리를 사로잡을 것이다.
노 대통령 지지세력은 어찌하여 한미동맹의 이같은 ‘변질’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려 하는가? 미국이 ‘전작권 이양’에 선뜻 나선 까닭은 ‘전략적 유연성’을 순탄하게 실현하려는 동기가 으뜸이겠거니와, 한편으로 ‘반미의 탈’을 쓰고 싶어하는 노 대통령에게 맞장구를 쳐줘야 할 필요도 있다(미국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칠 수는 없으므로). 노무현의 반미 이벤트가 단지 허풍이 아니라 그 뒤에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민중의 정치의식(반미 감정)이 높아졌다는 엄연한 물질적 현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주한미군에게 ‘아시아 침략의 기지’를 선뜻 내주겠노라, 결심했던 까닭이 꼭 “한미 동맹에 기대지 않고서는 주식회사 ‘한국’호가 버팅길 마당이 없다.”는 압도적인 대세론 즉 두려움에 짓눌렸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심리도 얼마쯤은 있겠으나 그는 옹졸한 소시민이 아니라 이미 야심찬 ‘자본의 화신’이 되어 있고, 남한 초국적자본들은 그저 ‘해외 초국적자본에 휘둘리기만 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남한 초국적자본들이 ‘한미 FTA’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까닭이 ‘아(亞)제국주의적 진출’의 욕구 때문이라면(이 논증은 또다른 글을 필요로 하지만), 노정권이 ‘전작권 환수’를 능동적으로 주장한 까닭을 단지 ‘자주/주권’을 들먹여 한나라당에 대해 주도권을 쥐려는 정파적 동기 때문이라고만 파악하는 것도 협소한 인식이다. 김성곤 국회 국방위원장이 23일 “한반도 유사시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지려면 군 지휘권을 한국군 사령관이 쥐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 수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정치군사적 고려를 밝힌 바 있으나 이렇게 설명을 보강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다. 더 깊숙한 측면이 있다. 주한미군이 ‘유연’하게 놀겠다는 선언은 북한 침공도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럴 때, 남한 정부는 다행스럽게도(?) 이 잔인한 침략행위에 대해 ‘면피’가 된다. 그러나 이 내용을 더 추가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한 초국적자본들은 일찍부터(미국이 ‘냉전의 쇼윈도’ 남한에 대한 보호막을 거둬들이고부터) 해외 초국적자본들과 경쟁에 돌입해 있었다. 자본 간의 세계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해외로,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진출을 ‘한국군’이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들어 ‘한겨레’를 포함해 중동 소식을 다루는 대다수 언론들의 기사가 자주 퍼뜨리는 정치적 메시지는 “우리도 딴 나라들처럼 자원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원유와 같은 자원 확보 뿐만 아니라 한국자본의 해외진출, 더 나아가 한국 인력의 해외진출이 고령화시대에 대한 대책으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최근 ‘레바논 파병설’은 UN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지만, 앞으로 한국 자본들이 나서서 정부에 ‘파병’을 요청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노무현 정권 들어와서 한국의 군사비가 해마다 9%씩 증액되어 이미 북한의 GDP를 웃돈지 오래라는 사실도 음미해 봐야 한다. 그들이 북한의 국력과 군사력이 바닥을 치고 있음을 모르지 않고, 더욱이 북한을 서둘러 무너뜨리는 짓이 어리석다는 사실도 잘 알지 않는가. 국가정보원의 활동 방향이 ‘대북 정보수집’에서 ‘자본 해외진출의 지원’ 쪽으로 옮겨간 것도 고려에 넣는다면, 그 증강된 군사력이 꼭 북한을 겨냥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너무 소박하다.
(27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럼즈펠트 미 국방장관이 “솔직히, 북한은 한국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드디어’ 실토했다고 한다!) 한 나라가 세계에서 발언권을 높이려면 먼저 힘을 갖춰야 한다는 ‘자강(自强)’의 논리는 19세기 이래로 제국주의를 따라잡으려는 민족부르주아들의 완강한 자기지향성이 아니었던가.
‘전작권 환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뿐 아니라, 자주적 작전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더 많은 군사비 부담을 필요로 한다. 한미 동맹 체제 속에서 ‘자주’ 국방을 거룩한 명분으로 내세우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부담 증가를 떠맡아야 하는데 한국 군부는 2012년까지 해마다 국방비를 수 조원씩 올려 GDP 대비 3% 수준까지 높이자고 호기롭게 들이대는 마당이다. ‘(대북) 안보 비용’으로서야 허황된 것이고 사회복지에 써야할 돈을 떠올리면 ‘비합리적인 거대한 낭비’로 규탄받을 일이지만, 한국이 또다른 소(小)제국주의 국가로 나선다고 가정할 경우에는 이것이 딴에는 그럴싸한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그 길’이 과연 옳고 세계 민중에게 이로운 길인지, 우리 사회의 명운을 놓고 대중적 토론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남한 초국적자본의 해외진출이 ‘20 대 80의 사회’에서 그 ‘20’에게는 얼마쯤이라도 혜택을 배분할 것이라고 볼 때, 아마 간단치 않은 토론이 되리라.


한미동맹부터 문제삼을 때!

요즘 들어 세계는 ‘무장된 세계화’ 정도가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전쟁의 세계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뒤이은 이란 핵문제, 레바논 사태 등 이슬람 세계에 높아지는 전운(戰雲)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내정에 미국을 비롯한 패권국가들이 군사적 개입을 노골화하는 많은 사례들이 이를 방증한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구와 미군 기지의 평택으로의 이전/확장, 그리고 미일 동맹의 일체화는 패권국가 미국의 ‘대 중국 포위전략’을 보아란 듯이 드러내놓은 것 아닌가.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계속 참가하는 한, 머지않아 한국이 높은 순위의 ‘테러 대상 국가’로 꼽히거나, 양안(兩岸) 문제 등으로 미/중간의 마찰이 심해져서 미국이 도발에 나설 경우 그 반격으로 중국군의 ‘평택’ 공습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우리가 내몰릴 수도 있다. 동아시아야말로 ‘전쟁의 세계화’가 극단적으로 나타날 곳이 아니겠는가.
한때 노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그럴싸하게 내세웠다. 중국과 일본/미국 사이에 감히 ‘중재자’로 나서련다는 포부였다. 사실 중국과 한국, 일본이 하나의 협력네트워크로 엮일 때라야 세계 평화의 진전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균형자론’은 우리가 한미일 동맹체계 속에 포섭돼 있는 한에서는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대 중국 포위전략에 한 날개를 맡겠다’는 동참 행동은 미래의 화약고에 섶을 지고 뛰어드는 격이 아닌가.

그런데 한국의 진보운동진영은 미국의 전략 변화에 대해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을까. 평택 투쟁이 그나마 다소의 동력을 얻어 버팅기고 있을 뿐,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나지막히 ‘반대의사’를 중얼거리는 수준 아닌가. ‘전작권’ 문제도 진보진영의 미약한 소리는 ‘환수냐, 환수 반대냐’를 따지는 시끄러운 소리들에 파묻혀버렸다. 전작권 환수를 근본적 차원에서 문제제기하는 강력한 정치행동을 누구도 조직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선뜻 힘을 받을 수야 없겠으나, ‘우리 갈 길’부터 다시 살피자. 한미 동맹의 변질을 강요받는 지금, ‘주한미군 철수’ 요구의 의의를 먼저 되새길 일이다. “북한의 남침을 막으려고 미군이 주둔해온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제는 ‘대북 방어’는 맡지 않고, 신속 기동군으로 남의 나라, 테러전쟁의 기지로 쓰겠다는 말이냐? 이는 약속(한미상호방위조약)과 다르지 않으냐. 그렇다면 이미 실효해버린 한미동맹을 파기하고, 당신들은 이 땅을 떠나라!”

오래 전부터 미국 추종세력들 사이에서는 뒤집혀진 도착증의 논리가 복음이 되어 왔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듣지 않으면 미국은 언제든 주한 미군을 빼내 갈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은 눈물을 머금고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했다.”는 식이다. 이 나라에는 ‘미국이 뒷배를 보아주지 않는 세상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이 형성돼 있다. 마치 약물 중독에 빠진 듯한 그들의 ‘환상 통념’과는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주체성과 담을 쌓은 도착증자들의 환상을 깨지 않고서, 민중의 미래는 열리지 못한다. 그러니 단언하자. “너희가 우리 말 듣지 않겠다면(다시 말해 주한 미군을 ‘방어적 목적’에만 쓰지 않을 요량이면)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이 땅의 주인은 바로 우리여야 한다. 우리는 동아시아 민중의 공영(共榮)을 위해 싸우겠다.” (2006.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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