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엔엘’파는 거의 대부분이 개량화/체제내화의 길을 걸어왔고, 그나마 변혁적 가능성은 ‘피디’파쪽에 더 남아 있을 거라고 나는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 핵실험 사태를 맞아, ‘피디’파가 얼마나 안목도 없고 진정성도 없는지 생생히 드러났다.(...이 사태와 관련해서만큼은 차라리 ‘엔엘’의 발언들이 민중에게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갈 것이다. ‘피디’가 주류로 올라서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전진’의 성명서를 보자. 그들은 ‘원인/이유야 어떻든’ 핵실험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핵실험이 평화를 가져다주기보다 긴장을 높일 거라고 진단한다. 그러니까 ‘합리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단언이다.
→ 그들이 책임있는 정치세력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한다. “그렇게 하게된 이유/과정은 이해하지만, 아무튼 남북미의 정치 각축이 이렇게 ‘바람직하지 못한(자칫하여 군사적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는) 경로’로 가게된 것은 유감이다. 이 사태를 몰아온 것이 미국 패권주의이므로 이에 반대하는 정치행동에 나서자.”
→ ‘전진’은 왜 북한이 이런 경로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易地思之하려는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다. 그러므로 이 성명서는 ‘왜 핵실험이 나쁜가, 어리석은가’를 입증하는 논리로만 가득차 있다. 이 도매금의 비판대로라면 ‘핵실험...아니 핵보유부터’ 대단히 비합리적인 행위인 셈인데, 정말 그럴까? ‘핵실험 강행으로 하여 국가간 전쟁위험이 높아지는 사태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는 것과 별도로, 그들의 ‘벼랑끝 전술’이 자기네 처지를 타개하는 전술로서 ‘아주 어리석은 길’이라고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자신을 겸손하게 되돌아보라. 우리 남한 운동권은 대단히 배부른 안온한 처지에서 이 문제를 농단한다. 이와 달리 북한 지도층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미국과 대항해 왔다. 수천만 곱절은 ‘더 실천적’ 입장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어리석은/비합리적인’ 길로 자칫 빠져들었다가는 정권과 국가의 패망이 기다린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추구해왔다고 봐야하지 않나? 물론 북한 정권과 민중의 처지에서 말이다. 그들이 ‘남한 민중의 운명’까지 헤쳐낼 만큼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북한 외교부의 ‘외교 능력’은 대단히 탄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윤영상씨가 ‘쿠바처럼 갈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데, 그렇게 따져볼 수는 있지만, 경수로 원조 중단, 북미 베를린회담 약속의 배신 등 서방이 배신을 때리고 개혁개방의 길도 밟기 어려워진 1998년 이후의 시점에서 그런 ‘대안’을 들이미는 것은 하릴없는 일이다)
→ 중앙일보에 실린 김영진 교수의 분석을 옮겨온다. “북한은 부시가 중간선거, 이라크와 이란 핵문제 때문에 핵실험에 대해 응징조치로 미국이 군사공격을 감행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국제사회의 제재는 ‘고난의 행군’으로 버틸 각오다. 한동안 시간을 둔 다음 그들은 ‘군축 회담’을 제의할 것인데, 북한 핵포기를 위한 6자 회담이 아니라, (미군 핵을 포함해) 한반도/주변지역의 비핵화를 의제로 ‘새로운’ 다자회담을 내세울 것이다!!!”
물론 이같은 북한의 ‘복안’은 그들 희망대로 실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반도에 어떤 군사충돌이 없으란 법도 없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상황을 타개하는 한 방법이고, 그리하여 ‘모든 핵의 비핵화’를 의제로 내세울 수 있다면 이것은 얼마쯤의 의미있는 진보가 아닌가? ‘전진’이나 한국의 좌파들은 이 길 말고, 상황을 타개할 다른 어떤 방책을 제시해 왔는가? 이 성명서는 ‘에이, 우리 평화롭게 살고 싶었는데 왜 우리를 위험에 빠뜨려?’하는 (소박한 민중의 불만 표출이야 이해할 수 있어도), ‘진보’를 자임하는 정치그룹이 떠들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불만 표출’밖에 담고 있지 않다.
2. ‘참세상’이 발표한 성명서가 ‘그나마’ 낫다.(물론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했고, 남한의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의 고민도 더 있어야 했지만). ‘해방연대’도 한두 구절 굵직한 ‘중간 제목’으로 들어간 내용들이 너무나 경망하다. “너희와 우리는 남남이야, 짜식들아. 너희가 불쌍해서 ‘미국놈한테 다그치는 일’은 해주겠다만, 너희는 ‘잘못했다’고 남한 민중한테 빌어야 돼. 너희와 우리가 어떻게 힘을 합칠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할 생각이 없어. 에이, 민족의 생존을 볼모로 잡은 나쁜 자식들!”
민주노동당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모양인데 그럼 실천을 하기 바란다. 한국 외통부 관리들을 통해, 아니면 신문사 특파원들을 통해 북한 외교부에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는 있다. “7천만 민족의 생존을 볼모로 잡은 정권아, 반성하라.”고. ‘방북’할 계획도 있는 모양인데 ‘자주파’만 가지 말고, ‘평등파’도 가서 공개석상에서 그렇게 비판좀 하라. 그렇게 정말 ‘패륜적인’ 짓을 벌였다면 정말로 그들의 사고구조를 뜯어고쳐야 민족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을까? 이거, 정말로 실천적인 과제 아닐까? 자, 차분히 생각하여 대답해 주기 바란다. 북한정권은 ‘7천만 민족의 생존을 볼모로 잡고 도박게임을’ 벌였는가? 이 말 속에 어떤 ‘수긍할 대목’이 있다고 변명하지 마라. 내가 묻는 것은 ‘이 말 속에 어떤 절실한 문제제기가 들어있느냐’ 여부가 아니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이런 표현으로 못박아 발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온당한 표현이냐’는 거다.
‘주 과녁’을 미국이 아니라 북한으로 잡은 ‘희망사회당’의 정치행위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할 생각도 없다.
3. 진정성 있는 정치/운동집단이라면 민중적 민족적 위기 앞에서 발본의 자기혁신이라도 해야 한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 ‘성명서 발표’인데, 그 성명서에서 ‘미국은 북한제재 하지마라’하고 발표한다 한들 그게 무슨 힘이나 가질까? 미국은 노무현/열우당이 ‘북한 제재 반대’하는 것은 압박으로 느껴도, 무슨무슨 단체나 민노당이 그런 발언 하는 것은 코웃음도 안 친다. 그러므로 ‘그 반대 구절’ 하나 넣은 것으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자부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 대단한 행동을 한 김에, ‘북한을 비판하여 훈수를 두겠다’고 ‘어째서 북한은 나쁜/어리석은 짓을 벌였는지’ 한참 설교하는 것은 정말로 하릴없는 일이다. 이 문제를 ‘정파 다툼’에 활용하려는 마음밖에 읽히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가 이 사태에 어떻게 개입하여 민중적 역량을 모아낼지,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만이 ‘운동가’라 불릴만한 사람이다. 과연 운동권에 정말로 신실한 운동가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나도 부족한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