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구인사

짭새들은 이곳에서도 노동자들에게 방패를 찍어댔다


천태종삼광사조합원들과 민주노총조합원들 200여명은 10월15일 5시간이상 버스를 타고 구인사를 향했다.




구인사 일주문앞에다 집회신고를 내고 집회를 할예정이었으나, 입구주차장에서 버스가 통제당했다. 일주문까지는 노선버스가 다니는 길이었으나 우리들이 탄 버스는 들어갈수 없었다.



할 수 없어 걸어서 800여미터의 일주문까지의 길을 가려하였다. 그러나 이조차도 동원된 경찰력에 의해서 차단당했다.

이제는 신도들을 구사대로 내세우는 것보다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노조탄압에 앞장세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계산을 스님들은 한 모양이다.




정당한 집회진행을 가로막는 경찰병력의 불법적인 탄압행위는 꽤나 거칠었다. 노선버스조차도 더 이상 통행할수 없었고, 많은 관광객들과 신도들의 통행또한 전면적으로 차단당했다.

길을 열어주지 않아 우리는 경찰병력과의 대치상황에서 집회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집회를 마치고 예정된 대표자면담을 위해 다시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미친 경찰들은 날선 방패를 들이대며 조합원들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아버지뻘, 그리고 할아버지뻘 되는 조합원들이 새파란 경찰들의 방패에 옆구리를 찍히고 머리가 찍혔다. 많은 조합원들이 다치고 피를 흘리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공권력을 동원한 구인사의 스님들은 단 한명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멀리 떨어진 건물지붕위에서 감시카메라를 들이댄채 사진촬영에만 바빳다.

수많은 경찰의 폭력, 날선방패에 많은 노동자 농민들이 죽어갔다.
15일 구인사에서도 이성을 잃고 날뛰는 미친 경찰병력들의 방패날에 의해 노동자들은 머리를 찍히고 허리를 찍히며 죽을뻔한 위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이 대한불교천태종단 총본산인 구인사에서 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스님들이 불러들인 공권력에 의해 벌어졌던 것이다.




광란의 경찰폭력이 진정되자 노동조합의 일부대표자들만이 사찰내부로 면담차 들어갔고, 구인사에서는 책임있는 스님은 나오지 않고 몇몇의 실무담당 스님이 나왔고, 해결책에 대한 답변은 없이 상투적인 말만 하였다. 노조에서는 오늘의 사태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표명하며, 이후 현안문제 해소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종단측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없다면 사태는 걷잡을수 없을 것임을 주지시키며 면담을 종결시키고 경찰과 대치중인 대오로 돌아왔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어두워져 갔고, 조합원들은 면담결과를 보고받으며 투쟁을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구인사투쟁은 준비된 투쟁으로 짭새들의 광란을 묵사발 내고 구인사경내진입을 반드시 관철시켜 악질적인 노조탄압과 인권탄압의 당사자인 종단에 책임을 묻고, 단체협약쟁취를 성사시켜 낼 것이다. 끈질긴 투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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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 경찰 , 삼광사 , 구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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