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대신 평화의 촛불을
올 것은 오고야 만다. 북한의 핵실험은 논란은 결국 한국 '진보진영'에 내재한 깊은 골을 '골방'에서 광장으로 끌어내는 문턱이 되고 있다.
1. 원칙도, 실리도 없는
먼저 본론에 앞서,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 한가지가 있다.
내가 북한의 핵무장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지향해온 반핵원칙도 이유이지만, 덧붙여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침묵이나 옹호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대표하겠다고 자임해 온 남한, 즉 대한민국 민중의 당연한 '위치position'요, '입장position'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애써 망각하는 오류이다. 총을 들고 인질극을 벌이는 사람에게도 그 나름의 절박한 사연이 있을 수 있고, 나아가 범죄발생의 근본원인이 사회구조적 왜곡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인질로 잡은 이의 총을 보고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에 속한다. 대한민국 민중들에게 미국의 큰 핵이건 북한의 작은 핵이건 그 모두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측한 물건에 불과하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존재 기반인 한국 민중의 당연한 반응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말을 걸, 사태 해결에 대한 실용적 이유에서라도 일단 미국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안할 유효한 '대화채널'조차 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가 '반핵평화'이고, 또한 핵 대 핵, 국가무력 대 국가무력이라는 대당을 넘어 평화를 위한 대중적 행동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대한민국 민중이 고유의 조건에 의해 획득하는 이런 직관적 입장은 실상은 아무런 정치적 장애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의 정치적 입장을 일방의 국가무력, 일방의 핵에 대한 옹호로 이끌려는 태도일 것이다. 그것도 대중이 양측 모두를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인지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반대로 이러한 핵과 핵, 국가무력과 국가무력의 대당 그 자체에 대한 대중의 거부야말로 평화를 위한 대중행동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거점이다.
이미 냉전시기 서유럽의 반핵평화 운동은 NATO 핵무기는 반대하되, 소련 핵무기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일관성과 균형감각을 지니지 못한 접근으로는, 그것이 누구의 것이든, 핵 참화의 피해자가 될 서유럽 대중의 반향을 얻을 수 없었다는 역사적 경험을 남겼다. 도리어 유럽의 반핵평화운동은 모든 핵무기에 대한 일관되고 보편적인 반대의 입장을 제기한 후에, '선도적 군축'을 전면적 요구로 내걸 수 있었다. '타산지석'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찍어먹는' 수고를 해봐야 하는가?
일관성도 균형감각도 없는 외눈박이 정치학은 대중적인 평화행동의 구성에 손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진보세력을 원칙과 실용 모두에서 패배하게 만드는 길 일 뿐이다. '미제에 대항하는 핵'을 옹호한다면, 결국 그 결과는 남한에 '북한에 대항하는 핵'이 당당하게 재입국 하는 길을 열어줄 뿐이다. 소련의 핵에 침묵하던 프랑스 공산당이, 그 후 (미국에의 독자성을 운운하며) 프랑스 자국의 핵무장에 대해 사실상 찬성을 해버린 역사의 소극조차도 이미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민주노동당의 내부 논쟁에서 바로 그런 말까지 나와버렸으니까 말이다.
2. "핵 게임"
많은 사람들은 이미 북한의 '공개적 핵 개발' 과정이, 상당부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심화된 경제적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 '국제사회' 즉, 세계시장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국가체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꺼내든 - 매우 도발적인 - 협상카드임은 알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이 측면에서 북한은 단지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당하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핵'이라는 이슈를 통해 이미 수십 년 간 지속된 미국주도의 봉쇄라는 역사적 상황을 역전시키려 시도했던 능동적 행위자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을 둘러싼 북-미간의 협상과 갈등으로 특징지어진 역사적 정세를 담는데 가장 적합한 언어는 '북(조)-미 대결'이나, '북핵문제' 보다, '핵 게임'일지도 모른다.
소련 붕괴 이후 북한이 국가체제의 정상적 유지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국제사회' - 세계시장에의 진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국의 안정적인 세계시장 진입을 좌우할 '서방', 특히 미국과 일본에게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이 또한 북한의 입장이었다. 스스로를 '국제문제'로 만드는 위기적 연출을 통해 시작된 북한의 '핵 게임'은 근본적으로 미국에게 북한을 상대해야 할 '유인' 자체를 만들어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북한이, 특히 그 인민들이 겪은 어려움에는 핵군비 그 자체가 가중시킨 경제적 부담이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과연 그 이외의 선택지가 완전히 없었던 것일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어쩌면, 핵을 통해서만 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 뿐 아니라, 핵 협상을 통한 대미 관계개선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주장 또한 '핵'이라는 카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협상전략의 일부였을 수 있는 것이다.
3. 핵무장 : 오래된 꿈
하지만, 그것이 '군사적 자위를 위한 선택'이든, 혹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카드'라고 말하건 대체로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이 처하게 된 경제적, 외교적 고립만을 주된 배경으로 한 설명이다. 문제는, 실제로 북한의 핵에 대한 구상 그 자체는 훨씬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핵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그 핵 개발의 과정은 실제적으로 가속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북한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한 '핵 게임'이 원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북한 정부가 적어도 부시정부의 적대적 무시정책 속에서 선택했던 경로는 경제적, 외교적 곤경의 해결 없이, 단지 핵보유국만 되는 것이 분명한 경로였다.
그런데, 충분한 성과 없이 핵 개발을 중단한다고 해도 그것이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 그리고 일정한 수준에서 그 현재 정치체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북한이 파국적인 경제적 곤경을 드러낸 '90년대 후반 이후 적어도 두개의 인접국가 - 중국과 남한은 북한의 돌발적 와해를 하나의 걱정거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당장 북미교섭이 난항을 겪는다고 해도 핵의 유무와 무관하게 국가체제의 존속 그 자체를 일정기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지는 의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한 답을 내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그것은, 북한을 비롯한 스탈린주의적 정치체제의 특징상, 외부에서 권력내부의 정치적 역학을 쉽게 관측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4. 북은 '핵 대치'를 각오했을까?
어쨌든, '북핵문제'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에 대해 단순히 가까운 시기 안에 실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만을 따진다면, 나의 견해는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핵무기를 가지건, 안 가지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 미국에게 주는 실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이다. 대신 그 전쟁을 위해 지불해야 할 부담을 따진다면, 심지어 미국조차 비켜갈 수 없는 경제적 쇼크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를테면, 미국 정부 채권의 절반 이상을 동아시아 4개국 -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타이완이 구매한다.) 나아가 부시정부가 의도하는 세계전략, 즉 에너지 패권에 무게 중심을 두고, 대중국 견제를 2차 목표로 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북한에 대한 '무시와 고립'이야말로 그들의 의중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는 정책이다. 게다가, 중국을 상대로 하는 지정학적 압박을 위해서라면 단지 '긴장' 그 자체면 충분하다.
하지만 핵 대치의 국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평화에 반하는 결과로 귀결한다. 이 과정이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 가속화는 물론, 심지어 핵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단지 '우려'로 일축될 수 없다. 동북아시아의 패권적 군사동맹질서에 대한 미국정부의 구상이 지닌 실내용이, '지역동맹국'의 '적극적 분담'을 통해 형성되는 대 중국견제의 '제2전선'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촉진시키는 변수의 하나는 물론, 평화헌법의 폐지에 사활을 건 일본의 우익정치세력이다.) 물론 그 키포인트는 '분담'에 있으며, 과거 지역 미군의 역할 상당부분을 '동맹국'들이 대신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동거하는 '친미자주'는 단순한 언어도단만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그것이 평화와 민중의 삶에 대해 해악적인 것일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예측 가능한 이런 사태전개에 대해 북한 정부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과연 북한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한 '핵 게임'이 실패할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을까? 부시정부가 핵협상 구도를 깨뜨리기 시작한 이후, 북한은 그것에 대응해 긴장의 수위를 함께 높여 가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그 결말이 실제 핵무장이 될 수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사태의 결말이 관계개선 없는 핵무장으로 끝난다면, 북한이 치를 대가는 만만치 않다. 그것을 감수할 만큼의 무엇이 있는 것일까? 10년이 넘는 북한의 핵 게임은 정말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을까? 멀어지는 북-미 관계개선의 전망 뒤로 덩그마니 남은 핵무기는 억지로 떠 맡게된 것일 뿐인가?
어쩌면, 우리는 '북핵'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새로운 핵 대치의 국면에 대한 북한 정부의 '손익계산'이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따져봐야 하는지 모른다. 즉, '핵으로 체제를 옹위한다'는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5. 한반도에는 두개의 국가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북-미간의 핵을 둘러싼 줄다리기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반도 두 국가 간의 관계양상, 그 국가 간 질서의 양상을 생각해 내야 할 지점이다.
이를테면, 북-미간의 관계만을 통해서 핵실험으로 이어진 북한 정부의 일련의 행동들이 미국의 압박과 연관된 것임은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 설명해 줄지 모른다.
하지만, 왜 북한 정부의 행동들이 언제나 스스로 주장해온 '민족공조'의 가치를 평가절하 시키는 방식이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 체제의 급격한 와해를 큰 부담으로 바라보는 주변국이 있음에도, 왜 그 선택은 핵 협상을 통한 북미관계의 개선이 아니라면 고립과 긴장고조를 감수한 핵무장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만 행해졌는지 조차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이는 어쩌면 그동안 현실 국가로서 북한의 행위를 규정하는 국제정치적 변수중 한가지를 언제나 부당하게 논외로 해왔기 때문일 수 있다. 바로 남한과 북한, 한반도 두 국가 사이에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국가 간 질서의 문제이다.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게 되는 한가지 이유는, 과거에 대한 선별과 망각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잠시 '모든 것이 시작된' 1990년대 초로 기억을 돌이켜 보자.
그 시기는 이를테면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구 동독의 서독으로의 병합과 더불어 남한에는 이른바 '공세적 대북정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북한의 경제적, 외교적 고립의 심화 속에서, '햇볕정책'의 조상 뻘이 되는 '연착륙론'이나 '맏형론'등등 이후 남한의 '대북정책'의 기본 틀에 영향을 준 일련의 개념들이 등장한다.
우리(사회)의 선별적 기억력은 주로 남한과 북한 양국의 동시 UN가입이나, 교차승인,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기억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상 동시 UN가입, 교차승인의 '주례'를 맡은 미국정부가 남겨준 한마디는 대체로 노력해서 잊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한국화'라는 묘한 표현 말이다. 물론 당시 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배경으로 말해지는 '한반도문제의 한국화'가 의미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그렇게, 이른바 '북핵위기' 직전, 북한에 대한, 특히 '서방'의 관심은 오직 '언제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단 한가지 문제에 대한 것뿐이었다. 적어도 국제정치적으로 '90년대 초의 북한은 산채로 이미 흡수통합의 식탁에 올라 '맏형'의 지도 하에 '연착륙'을 권고 받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즉, '북핵위기-협상'이 북한에게 남겨준 한가지는, 바로 '90년대 벽두, 이처럼 '남한으로의 흡수통합'의 다른 표현으로서 남한과 그리고 미국, 양국 정부의 입을 통해 공언되었던 '한반도 문제(사실상 '북한 문제')의 한국화'라는 전망을 소멸시켰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이후 북-미 핵협상과 평행하게 진행된 남한의 '햇볕정책' 혹은 '포용정책'은 실상은 북-미 핵 협상을 배경으로만, 그 구도를 전제로 남한의 국제정치적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도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이를테면 '통일주도권'을 각색해 온 것은 본질적으로 국내 정치적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듯, '공조와 화해'의 봄날동안 진행된 남한과 북한의 관계개선, 즉 '민족의 화해와 공조'라는 영역은 북-미관계/핵 협상의 종속변수이지, 그것을 대체하는 항목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특히 북한에게는 더욱 더 그러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중-일을 포괄하는 패권적 중재에서, 동북아 지역안정 자체에 대한 '저평가', 일본을 주요 파트너로 한 대중국 견제로 바뀜으로서 핵 협상과 '민족공조'는 쌍소멸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통일'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화해'나 '평화'로 곧장 번역될 수 없는, 도리어 '통일 - 한반도의 단일 국가권력으로의 (재)통합'이라는 담론이 한반도 두 국가의 패권적 경쟁의 매개물이 되어온 한반도의 국가 간 질서와 분리해서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을 분수령으로 형성된 이러한 패권적-경쟁적 국가 간 질서의 양상은 단지 두 국가의 외적 관계 뿐 아니라, 적극적인 '내면화'에 의해 국내정치의 매트릭스로 기능해 왔다. 물론 남한의 경우, 제한적인 '민주화'가 국내정치를 한반도의 국가간 대립의 양상에서 일정하게 분리하는 작용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준전시체제의 유일지도사상체제를 지속하는 북한은 물론, 남한조차 그동안 역대 자유주의 정권이 남북관계, 그에 대한 주도권을 과장하며 국내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온 것처럼, 그 구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따라서, 총체적인 국가 간 역학에서 열세가 온존하는 이상, 대미 관계개선의 곤경을 '민족공조'로 보충하는 것은 선택될 가능성이 없다. 북한 정부의 입장에서 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가능성이 높지 않은 '미제의 폭격'이나, 지배집단이 아닌 민중들만을 핍박하며, 동시에 모든 것이 '미제의 탓'임을 말하게 해줄 수 있는, '봉쇄와 제재'만이 아닐 수 있다. 그들에게 서로가 '수복해야 할 자국의 일부'임을 주장해온 두 국가의 역사적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는 속에서 남한이 북한의 '후견인'인양 간주되는 상황 또한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냉전 후기의 동-서독 관계였다.)
이는 북한에게 북-미관계/대 '서방' 관계의 개선과 분리된 '민족공조, 민족화해'가 저평가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잠시 신문 지면을 들여다보자. 지금 실제로 남한 내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이 북한 인민들의 고통을 더는데 도움이 안돼서? 그것이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데 해를 입혀서? 아니다, '햇볕'이 충분히 북한을 '벗기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많은 남한 사람들, 특히 남한이 지금 북한 민중이 겪고있는 고통에 대해 인도주의, 혹은 동포애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의 대응방식은 종종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 이유는 결국 북한에게 그들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야 할 상대 중에 남한 보다 더 부담스러운 상대는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6. "착한 핵"은 없다.
결국, 북한이 '독을 독으로 다스리는' 비책으로서, 비핵화를 위해 핵무장을 한다는 주장은 주관적 희망의 투사에 해당한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노무현의 '고뇌'에 대한 그 친위집단의 '해몽'처럼 말이다.
물론,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 게임을 벌인 목표는 잘되면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세계시장에 진입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실패한다고 해도 북한은 핵군비가 현 정치체제의 지속에 대해 모종의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핵은 이미 추락하던 경제상황을 와해국면으로 몰아간 너무도 비싸고 위험한 카드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핵이 아니어도 적어도 남한과 중국은 북한의 급변상황을 우려할 소재로 바라본다. 그러나 핵이 함의하는 현상고착화의 힘은 차원이 다르다. 자, 과연 당신은 북한에 어떤 종류이든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인민들의 안위와 핵 장치에 대한 관리 중 무엇을 먼저 걱정하게 될까?
그 인민들은 또다시 더욱 가혹한 고난의 행군을 강요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북한 정부의 입장에서, 한반도에 다가오는 새로운 핵 대치의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가.
적절한 갈등조절 이상으로 확장되기 힘든 주변국(중국, 한국, 러시아)의 미온적인 이해를 빼고 말한다면, 결국 동북아시아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핵 대치 국면에 대한 진정으로 대립하는 평화의 힘은 한국의 민중적 역량에, 나아가 국제적인 반전평화 세력과의 연대에 있다. 그것에 제대로 접속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전쟁만 아닐 뿐'이지 한반도의 평화와 민중에 대한 테러행위에 다름 아닌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봉쇄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며, 대중을 핵과 핵, 국가무력과 국가무력의 관전자로 전락시키는 일체의 경향에 대항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때문에, 적어도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정치적 오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라도, 미국의 대북 압박과 봉쇄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한가지를 더 이해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북한의 핵무장이 군비경쟁과 긴장조성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라거나, 대중적 반전평화행동에 도리어 악영향을 준다는 정세적 판단만이 아니다. 사실은 그런 모든 상황을 감수하고 진행되는 것이 북한의 핵무장이며, 그것은 지배집단과 민중의 공동이해로서 '국가적 생존'의 방책이기보다는, 그 지배집단의 이해가 우선된 선택이라는 점이다. 즉 처음부터 이 핵 게임 속에는, 새로운 핵 대치의 국면에 대항하는 민중이 지지할 수 있는 '착한 핵'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핵에 의해, 그 절멸의 공포가 전쟁을 억지 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바로 그 자체가 긴장과 대립에 대한 위험한 무감각과 안이함으로 우리를 이끌 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인 채로 포격이 오가는 국지분쟁을 치르지 않았던가? 냉전시기 한반도에서 번성한 무절제한 긴장과 대립의 조성은 무엇에 기반 했었던가. 냉전의 핵우산이 어찌 되든 전면전은 막아줄 것이라는 위험한 기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제국의 핵우산도, 민족의 핵도 아닌, 핵보다 강한 민중의 평화에 대한 염원, 민중의 손에 들린 평화의 촛불일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