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괜찮은 좌파에 대한 논평

미디어참세상에 ‘고민택’의 북핵 관련 글이 실렸는데 요약하면,

1. 북핵은 아직 ‘기정사실(실체)’가 되었다하기에는 이르고, 정치적 상징으로 파악해야 한다.
2. 이에 대해 엔엘은 너무 성급하게 ‘핵보유’를 정당화하고 있으며, 반면 좌파 일부는 몰역사적 ‘핵비판’에 성급히 몰두하는 오류를, 다른 좌파 일부는 북체제 문제와 북핵 문제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막연한 일반론만 되뇔 뿐 현실정치에 아무 개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3. 북 체제/정권에 대한 태도와 ‘북핵 문제’는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4. ‘비핵화 일반’의 문제와 북핵 문제는 ‘동북아 비핵화’와 함께 제기되어야 한다.
5.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민족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6. 좌파의 정치적 선택 : 9.19공동성명을 되살리는 투쟁에 즉각 나서라. 한편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안보리 결의안을 규탄하고, 노정권/엔엘진영에게도 이를 되살리는 투쟁에 나서도록 압박/촉구해야 한다.
---전략목표는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인 바, 그 실현은 ‘먼훗날 일’이라고 여기는 정체적/대기론적 정세인식이 그 실천을 가로막는다. 계급역학상 비록 미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양태일지라도 지금보다 동북아 정세를 완화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제국주의 간에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미국의 조건 변화가 있으면 한국 좌파와 노동자계급에게도 기회는 올 수 있다. 07대선, 08총선까지 염두에 둔 ‘공동실천’을 준비하고 좌파 독자적인 ‘의세 설정’에 나설 일이다.

고민택은 ‘노힘’에서 계급정당추진을 여전히 주장하는 소수파 논객이다(노힘 다수파는 ‘당 추진’을 먼훗날의 일로 접고 노동조합의 실천에 몰두하는 노조활동가들). 내 판단에는 ‘기성 노동조합 정치’에 몰두하여 이따금 불협화음을 빚거나 ‘기성판도 추종’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보이는 흐름에 견주어, 그런 대로 순수성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논객에 속한다.(...고민택동지에게는 섭섭한 말이지만, 한국에는 전위정당이건 계급정당이건 무슨 빡센 정당을 새로 만들 실력을 갖춘 데가 적어도 지금은 아무 데도 없다.)
이 글도 그동안 발표된 여러 좌파 문건 중에 제일 낫다. 그동안 내가 틈틈이 제기한 ‘좌/우파 <同時> 비판’을 훌륭히 보강해주는 글이라 여기 소개하고 약간의 논평(비판)을 곁들인다. 본문을 읽고 싶으면, media.jinbo.net를 클릭하여 ‘칼럼’란을 보라.

1. 나는 (그중 괜찮은) 좌파의 글을 빌려, 좌파를 다시 비판하겠다. 진보적인 명제 몇 개만 내세우면 저절로 좌파가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을.
---‘전진’이나 ‘손호철’ 부류에 대해 : “북의 핵보유의 일차적 책임이 미국의 대북 적대에서 비롯되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로서의 ‘북 핵보유’를 ‘일반론 차원의 비핵화’와 바로 연결해 비판하여 몰역사적 관점을 드러냈다. 북핵문제는 단지 비핵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이고 민족문제가 개입해 있다. 북핵이 나쁜 방향으로만 작용할 거라 예단하는 것은 제국주의 논리와 맞닿을 수 있고,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를 포기케 한다(→고민택의 글)

---함부로 북한을 능멸하는 좌파들에 대해 ;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가정은 정말로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북한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외부와의 교류를 필요로 한다.”
“북한이 만약 정권붕괴로 무정부상태를 낳는다면 그것만한 참혹한 비극도 없다. 그러므로 지금 ‘북한 정권을 탄핵하거나 (그 비판을) 북핵 문제와 연동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개입을 포기하는 것이다.”

---“좌파는 훌륭하다/실력있다”는 과잉된 자기충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대해 ;
“좌파는 그동안 민족주의만 열심히 비판했을 뿐, 민족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거나 무능력했다. 아니 민족문제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거나 ‘규명 의지’가 결여돼 있었다. 정치적 기권상태를 장기간 방치했다.”
“북핵 문제는 민족문제일뿐 아니라 계급문제와도 연동돼 있다. ‘계급 문제가 먼저 풀려야 이것도 풀리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남한 계급대중이 쟁취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날아갈 수도 있는 그런 긴급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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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좌/우파 동시 비판’에 관해, 고민택은 다 옳게 말했다. 따져야 할 것은 그의 ‘대안’이다.

--- “9.19공동성명을 되살리는 행동에 나서자”는 제안은 그 자체로는 옳다. 문제는 ‘그 방책’으로 충분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좌파들 많은 부분은 전략적 목표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따질 점은 “그것이 어떤 중간경로들을 거쳐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고민택도 많은 것을 숙고한다. 그의 말 인용/ 좌파의 정치 역량과 실천의 축적은 대단히 미흡하다. 북핵문제에 가려 한미에프티에이가 대중관심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하기보다 북핵문제를 어떻게 돌파하여 한미에트티에이투쟁이 힘을 받을까 고민하자. 현실을 나의 것으로 당장 만들기 어렵다면 현실의 한 복판을 횡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혹시나 ‘노무현 정부의 2중대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민족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려하지는 말라....))

---나는 ‘919공동성명 되살리기’로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평화체제’로 나아갈 ‘중간 경로’에 대한 숙고가 제출돼 있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의 ‘사색’이 암암리에 보여주는 ‘미흡함’을 들추자면, 나는 그 문장들의 ‘주어(主語)’가 문제라고 여긴다. “좌파들은... 이래 왔다. 좌파들은... 이렇게 하자.”
한국의 좌파는 의견그룹과 뿔뿔이 노는 정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민택 자신이 ‘좌파들이 민족문제에 무능력했다’고 자인하지 않는가? 그런 좌파들이 무슨 정세를 돌파하겠는가?
---물론 이렇게 무 자르듯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충분치는 않다. 다음과 같은 대꾸가 준비돼 있을 터이니. “좌파들이 많이 새로 연구해서 새로운 방향을 모으겠다. 그래서 그 비전을 갖고서 우파와 만나 우파들을 설득하겠다. 그래서 좌파가 앞장서서 우파를 견인하여 운동을 만들겠다.”고....
문제는 ‘좌파끼리 (끼리끼리) 먼저’ 모여서 무슨 비전이 나오겠느냐는 거다. 민주노총 정치가 항상 그래왔다. 좌파끼리 먼저 모여서 무슨 연대를 만들고...그럼 그 반사적 경향으로 우파끼리 똘똘 뭉치게 되고....
차라리 고민택은 이렇게 실천방식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나 000은 이런 방침을 선진적으로 제출한다. 이것을 좌파들에게도, 우파들에게도 동시에 설득하겠다. (다시 말해, ‘좌파 연대’의 방침으로 먼저 정해 우파와 협상하지 않겠다.)
‘우파’와 ‘좌파’를 넘어서라는 말이다. 넘어선 곳에 무엇이 있나? 소시민적 두 정파를 넘어선 곳에 변혁의 ‘당파’가 세워져야 하는 거다. 물론,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에는 본때있게 실력을 갖춘 ‘당파’는 어디에도 없다. 그 사실을 물론 직시하면서, 그러나 마치 <고00 자신이 저 혼자서라도 새로운 변혁의 당파를 체현한다>는 그런 자세로써!

--다시 새겨야 할 것은 ‘민족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엄청난 대사업이다. 민족파 혼자, 계급파 혼자 깝죽거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진보진영 전체’가 인식을 업그레이드하여 국민 전체를 설득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좌파가 먼저...’가 아니라 ‘다 함께 논의’해서.
노동자계급이 즈그끼리? 택도 없는 소리, 수많은 중산층을 설득해내서 함께!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나선다’는 말을 정말 겸손하게 써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극히 일부만을 조직했고 그나마도 조직률이 떨어져가는 주제에! 그렇다면 ‘조직돼 있는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중산층이 수긍하고 따라올 수 있는 그런 커다란 방책을 내놓아야 하는 거다---)
관성처럼 살아온 일상 시기에 우리는 강렬한 언어 표현을 쓰기 어렵다. 그러나 엄혹한 정세가 새삼 실감되는 요즘, 나는 다음의 표현이 그렇게 강렬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역사의 부름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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