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내 고백부터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엔엘’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녀온 사람이다. ‘민족주의’는 진작에 극복돼야할 이념으로 알았고, 다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얼마쯤 진보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단서를 달았을 뿐이다. 한동안은 ‘이병천’류나 ‘노회찬’류가 논리적 담론을 내놓는다고 느꼈다. 근래 들어와 ‘피디’류의 틀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졌던 것이다. 그러니 내게 “김정일이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니?”라든가 “왜 갑자기 민족주의자가 되었니?” 등등으로 다짜고짜 들이대지는 말기 바란다.
‘피디’였다가 갑자기 ‘엔엘’로 180도 태도를 바꾸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지금 민노당 대표 문성현이처럼 그쪽에 가면 ‘권력’을 얻을 수 있을 때. 그러나 나는 무슨 지위고 경력이고 ‘제도적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명성을 쌓은 사람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자리’에서라야 보편성을 대표한다고 한다. 가령 수많은 정착민족들 사이를 ‘유랑’했던 영원한 왕따 ‘유태인’ 중에서 탁월한 사상가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는가)
한편, 사람들 중에는 “엔엘과 피디, 세상 모두는 다 이 둘 중의 하나”라고만 은연중에 여기는 흐름도 있다. 둘 다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함을, 그것이 ‘변증법’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이야기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사람만이 정말로 급진적인 민족통일의 실현에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엔엘파는 ‘민족을 걱정하는 소박한 마음’이 있었다. 그 소박한 마음에는 ‘진정성’이 들어 있다고 인정해줘야 하지 않은가? 그것도 인정해주기를 꺼린다면 그것은 ‘독선’ 즉 “홀로 착하기”라 해야 한다. 그럼 갈라서야 한다.
---‘그 소박한 마음’이 현실의 운동으로 나타난 순간부터는 엔엘파에 대해 이것저것 비판해줄 말이 많다. “너희, 통일운동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현실의 결과’가 뭐니? 놈혀니 꽁무니 따라다니는 운동으로 변변히 이룬 것, 없잖니?”
--피디파는 ‘민족을 걱정하는 마음’이 솔직히 덜했다고 본다. 나 자신의 심리를 되돌아보면 그것을 느낀다. 물론 ‘노동자’를 위하는 마음은 더했으니, 크게 흉이 되는 일은 아니다. 이해해줘야 할 것은 ‘통일로 가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지고, 현실에서는 다른 문제들이 터지고...
--남북이 쉽게 합의할 수 있고 미국도 딴지 걸기 어려운 그런 통일방안이 쉽게 그려지지 않고.... 그러니 ‘통일은 가능한 한 천천히 하는 게 좋다. 여건부터 갖추고...’하는 생각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하기는 ‘민족 사랑’이나 ‘노동자 사랑’이나 둘다 추상적인 감정이다...현실에서는 내 직장의 동료를 사랑하거나 내 새끼들을 사랑하는 감정이 지배적.)
--그런데 ‘북핵 정세’가 불거지면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옛날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았다. “길게 보아서, 결국 풀어야할 문제는 ‘노동해방’ ‘인간 해방’인데, 그거 자꾸 들여다보고, 생태환경, 비정규직... 온갖 의제들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그리고 통일은 천천히 ‘여건’을 갖춰서 하는 게 좋은 일이니, 남/북 문제는 자꾸 은연중에 머리에서 잊혀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귀신 또는 원귀’가 우리를 복수하기 위해 되돌아 왔다!!! “내 문제 풀지 않고서 남녘의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니? 응, 이 목숨 붙어 있다고 껍죽대는 놈들아아앗”
북한동포가 식량 기근을 피하려고 탈북하고, ‘고난의 행군’을 벌이고 해온 그 운명을 ‘우리의 문제’로 치열하게 감싸지 않고서 남한 노동자계급의 미래도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놓치고/잊어먹고/대충 얼버무리고 살아오다가 느닷없이 그 문제가 난입해 들어왔을 때, 불현듯 ‘세상이 참 깊고 깊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도 칸트가 설명해준 ‘숭고(崇高)한 감정의 하나’일까?
얼마 전, 그러니까 북한에서 ‘6자 회담 참가’로 기민하게 한발짝 후퇴하기 바로 며칠 전, 민노당 의원단이 ‘눈치 봐가며’ 북한 방문에 나서기 직전 노회찬 단병호 등등이 대표하는 민노당 평등파(‘전진’이라는 정파)에서는 북한을 아주 준렬하게(또는 교만하게) 꾸짖는 성명서를 냈었는데, 그 비판의 근거를 높이기 위해 “우리는 당신들을 치열하게 엄호해 왔다. 남북 민중의 ‘연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민노당이(특히 평등파가) 성명서 몇 장 외에 얼마나 더 치열한 ’엄호‘를 했는지, 미심쩍지만 그 논의는 그만 두고,
“치열하게 연대하는 방안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치열하게 연대한 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말 치열하게 연대해 왔다면 북한에서 “남한과 중국을 못 믿겠다. 그래서 핵개발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북한 두둔이 아니다. 북한은 남한 노동자계급과 진짜로 연대하는 길을 고민하기보다 김대중/노무현이 도와주겠지...하고 오래 전부터 그 쪽으로 손을 벌려온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
지금 현실에 드러난 결과는 ‘통일운동이고 남북 연대고 다 말짱 도로묵 되고, 사태는 훨씬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좌파는 연대의 청사진으로 ‘평화체제 구축’을 말해 왔다. 아마 ‘평화협정 체결, 상호 군축’ 등의 내용이겠지. 김대중 노무현이가 그거 해낼 실력/돌파력이 못 되는 것은 잘 알 터이고, 그럼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거나 강력한 제 2당 쯤 되면 그렇게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민노당이 크는 것이 먼저다. 남북 평화는 나중”이라는 말. ‘대중적 시위 동력’을 끌어내어 간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정당’에서 받쳐주지 않는 한, 거기서 큰 돌파력은 생기지 못한다.
--그런데 보자. ‘협정..’이라는 거는 얼마쯤의 구속력은 갖지만, 언제든 파기할 수도 있는 거다. ‘남북 협정’이 맺어져도 미국이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벌일 수도 있다! 최근 미국이 내세운 ‘전작권 이양/전략적 유연성 방침’이 그거 아닌가. “그것으로 전쟁을 막아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평화의 길로 가자...’는 호소가 일부 양심적 대중들에게는 다가가도, 관념적인 ‘동포애’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것을 위한 대중운동, 그동안에도 웬만큼은 했다고 봐야 한다.
---남북이 ‘한 나라’ 정확하게 ‘하나의 국가연합’이 되지 않고서 달리 뾰족하게 ‘전쟁’을 막을 길은 없다. ‘한 나라가 되었다. 남북의 민중이 공통된 귀속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한 ‘지각 변동’이 어디 있을까. 서로 남/남의 나라로 있으면서 추상적 동포애/인류애를 발휘하여 ‘평화의 길’을 밀어보는 것과는 게임이 다르지 않은가. (남한 좌파는 그동안 ‘남/남의 나라’로 있으면서, 남한 내 현실에만 주로 주목하면서(통일을 당장의 내 문제로 떠안지 않으면서) “평화체제 구축”이 진전될 수 있을 거라고 바랐다면 그거는 너무 주관적인 기대다.)
--‘하나의 국가 연합’이 될 때, 어떻게 ‘전쟁 억지력’이 생기는지는 ‘또 다른 논의’이므로 생략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난데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동안 (좌파는 관심을 덜 가졌겠지만) 한국 운동권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를 거듭해온 것이다. 남한에서는 ‘북한 연방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해서 비토 놓고, 그래서 진전이 되지 않았고, 근래에는 정세가 계속 나빠져 ‘통일 논의’ 자체를 엄두내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방안은 남북이 쉽게 합의할 수 있고, 이미 일찍이 김대중이가 제안했던 ‘제일 낮은 연합제’. 한동안 엄두 내지 못했던 것을 ‘다시 엄두 내자’는 말이다.
--- 미묘한 대목을 잠깐 짚는다. 남한 좌파는 ‘평화체제 구축’을 말했지, ‘지금 통일하자’고 주장한 적 없다. 그래서 ‘지금 통일하자’는 쪽으로 가는 것은 좌파의 운동적 위신을 얼마쯤 깎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특히 ‘리더급’이나 ‘논객’일수록 선뜻 받아들이기가 감정적으로 어렵다. “왜, 평화체제 구축 가지고는 왜 안 되는데?” 갖가지 복잡한 논의를 끌어들이기 십상이다. ‘운동적 진정성’이 있는 사람들만이 흔쾌하게 예전의 자기 생각을 되살피고 수정할 것이다.
--- 나는 민족주의에 의거하여 ‘남북 통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언젠가는 ‘한/중/일/베트남/태국/필리핀’쯤은 포괄하는 국가연합을 추구함으로써 민족주의/국가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남/북의 국가연합은 아주 당연한 것이 아닐까? 세계 노동자 계급이 하나 되자고 하면서 남북의 노동자계급이 ‘하나 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 불교의 유마힐 경에는 “이웃이 병들었는데 내가 건강할 수는 없다.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고 적혀 있다. 세계 정세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한반도에 와서는, 그 말이 더 이상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현실을 좌우하는 구체적 지침’으로 육박해 온다. 북한 민중이 파탄에 빠지는데, 남한 민중이 진보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남한 노동자계급이 쌓아온 역사적 진전이 모두 날아갈 위험에 맞닥뜨려 있다. 북한 민중을 살리고, 남한 노동자들의 ‘성과’를 보전하는 일만큼 ‘최우선의 과제’가 어디 있을까. 이 과제를 놓고서 “좌파의 위신/주동성을 살리면서 대처할 길은 없을까?”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잔꾀 부리지 말라’고 대꾸하리라. ‘통일안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헤게모니를 더 높이는 길’이라는 반론은 가능할까? 남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성과’를 가장 최선으로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주동성’을 다시 살리는 正道다.
--‘얼마나 힘을 받을까’ 하는 걱정은 당연히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논의도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 논의에 대해, 금세 다 수긍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이를 정당화하는 논거를 찾는 데로 나서지 말고, 논의의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살펴 보기 바란다. ‘대안이 무엇인지’도 함께 숙고하여 함께 제시해야 한다.
--누군가 내게 그랬다. 당신 말이 상당히 와 닿는데, 위급한 사태가 지나면 또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한 발의 후퇴’를 함으로써 긴장은 좀 풀어졌다.(중국이 사납게 쪼아대서 그 부담 때문에 굴복했다. 중국은 과연 누구를 도왔을까? 지금까지 진행으로는 미국이 ‘시간을 벌었다’는 게 된다. 한반도의 ‘긴장도’는 한 단계 높아진 상태에서 계속 지루하게 이 국면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다가 또 긴장이 찾아오고...) 그러니 또 잊어버려도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