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들 짐작하시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당장 닥친 일로는 9/12 로드맵 ‘야합’을 분쇄(?)하기 위해 11월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이 ‘야합’이 벌어지도록, 민노총 집행부가 어정쩡하게 ‘방관’해 왔던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냉혹히 말하면 ‘암묵적/수동적 동조’??). 그런데 이에 대해 책임을 따져묻는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했었다. 오류/과오를 수정해내는 자기 갱신력이 민주노총에는 너무나 취약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리 운동이 무너지고 무기력해졌다 해도, 객관 정세 속에는 ‘다시 용트림할 수 있는 틈새나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나는 그것이 ‘조직혁신’이라고 보는데, 이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산별노조로의 전환’부터 언급한다.
--세상 무슨 일이든 ‘무조건 좋은 일’이란 없다. ‘산별로의 전환’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운동일 때에 좋은 것이지, 위에서 내리꽂는 산별이 좋은 것일 리는 없다(‘무늬만 산별’ ‘묻지 마 산별’).
그것은 ‘기업별 운동’을 그대로 놔둔채 간판만 합쳐서 다는 것이요, 수많은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들을 그대로 바깥에 놔둔 채 지금의 노조원들을 하나로 ‘줄 세우기’나 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바른 말 해대는 소수 세력을 짓누르는 작전만 오히려 기승을 부린다.
---‘산별’을 말하기 전에 전체 운동의 흐름부터 살펴야 한다. ‘기존의 연맹들’은 사실상 기업별 임금투쟁이 주된 일이었고, 전국적 노동자 정치투쟁은 ‘하나의 단체’ 즉 민주노총으로 힘을 모을 때라야 가능하다. 십수 개의 연맹들이 따로따로 ‘에프티에이 투쟁’할 것이 아니잖은가.
--그런데 지금 각각의 ‘업종 연맹’들이 ‘산별’로 전환해 간다는 것은 그 ‘연맹’들로 권력이 집중된다는 말이다. 민주노총의 강화는 동반하지 않고(...‘분담금’도 올려보내지 않고, 등등), 각 연맹들만 권력체가 된다는 것은 빗나간 길이 아닌가? 전국적 노동자정치투쟁은 ‘대충 시늉’이나 벌이고(...‘민주노총’이 역량이 부족하니까...), 실제 활동은 ‘저마다의 경제투쟁’에나 올인하기 마련이다. 아니, 그래 왔던 흐름을 더 강화한다.
--그러므로 ‘직선제 혁신’은 비단 ‘조직 강화와 민주화’라는 뜻만이 아니라 ‘민주노총과 전계급적 정치투쟁의 강화’로 나아갈 ‘조건 마련’이라는 더 큰 뜻이 들어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07년의 시기야말로 ‘민주노총’을 통해 더 가열찬 목소리를 낼 호기가 아니겠는가.
‘간선제’는 기존 정파들이 쑥덕거리며 대의원 몇 백 명 만나러 다니는 것으로 끝난다. 민노총 관료들의 ‘즈그덜끼리의 잔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직선제’는 80만 조합원들에게 ‘민노총의 존재와 민노총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커다란 ‘부흥회’가 된다!! 그 80만 중에는 민노총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이들을 흔들어 깨우는 사업이다.
--인간의 역사를 ‘승리자의 기록’으로만 읽는 사람은 ‘진보파’라 말할 수 없다. ‘노동운동의 역사’도 그 주역들이 벌인 실천을 ‘대충 추인해주는 식’으로 읽는 사람은 노동운동의 안목/진정성이 이미 사라진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늘 변명만 일삼는 ‘노동관료’로 살거나, 조만간에 ‘운동을 청산’하고 안온한 중산층(또는 소시민)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우리가 ‘운동이 놓인 지형이 어렵다’면서, ‘주체들이 더 잘 할 수 있었을 가능성/여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는다면(...“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었겠어?”하고 두둔해주기...),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나와 더불어 운동을 같이 해온 사람들에 대한 ‘상호 비판’을 게을리 한다면,
그 ‘서로 감싸주기’가, 이미 노동운동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들끼리야 통할지 몰라도 바람찬 곳에 살아가는 80%의 비-보장 노동자층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민노총의 직선제, 이미 10년전 초창기에 제기되었고, 올초 선거때 다시 쟁점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우파 집행부조차 스스로 ‘혁신안’으로 제출하기에 이른 것인데, 타성에 젖은 수많은 활동가들이 이렇게 ‘주어진 밥상’조차 자기 것으로 받아안지 못하고 있다.
우파 일부가 ‘직선제 싫다’고 설레발 치는 것이야 그들이 우파이므로 ‘그러려니’ 넘길 수 있다. 우리가 설득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아니므로 그 사람들을 아무리 탄핵해봤자 하릴없는 일. 문제는 좌파의 일부조차 이에 대해 미온적으로 나오는 것이고(...조직혁신안이 제출된 지난 대대가 왜 무산되었을까, 추리해 보라...), 좌파의 또다른 일부도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아프리카의 초원에 사는 사슴떼는 사자가 덤벼들어 자기 중에 한 놈을 잡아가면 잠깐 놀란 눈을 뜨다가 곧 잊어먹고 평화로이 풀뜯기에 다시 몰두한다. 며칠이 지나면 또다른 놈이 잡혀먹고, 다른 친구들은 또 잊어버리겠지....
서서히 가라앉아온 민노총에게는 ‘분발’이 필요한데, 당장 눈앞에 너무나 커다란 실체로 다가온 ‘한미에프티에이’ 같은 것에 맞서는 일 빼고는 별로 ‘분발’들을 하지 않는다. 한미에프티에이저지도, 미국의 군사정치적 압제에 대한 저항과 결합하여 총체적 정치투쟁으로 발전해야 힘을 받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정말로 불길한 조짐이다...),
그 싸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려면 어느 방향으로 ‘분발’해야 할지, 숙고하지 않는다. 나하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다 민노총 간부이므로 그저 ‘팔이 안으로 굽는다’. 아,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너무나 평화를 사랑하여 싸우는 법을 잊어버린 존재여!
지금 돌아가는 꼴을 봐서는, 민노총이 ‘분발’할 기회를 또한번 떠내려 보내는 것 아닐까 싶다. 지금껏은 그래도 온실의 기운을 많이 유지하고 살았는데, 민노총이 07-08국면에서도 변변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시베리아 삭풍이 더 바짝 불어올 터.
그러니 잊지 말자. 세상은 ‘어쩔 수 없는 일’들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어쩔 수 있는 여지들은 여기저기 많이 있는데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하는 것임을.
민노총의 장래는 당신의 어깨 위에 얹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