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덕 효 (대표/기자)
[심층취재]철거민 투쟁 현장: 인천 주안주공철거민대책위 이야기<가버린 세월을 탓하지 마라 지나간 청춘일랑 욕하지 마라
아직도 태양은 우리의 머리위에 빛나고 있다
부딪쳐 깨어지는 파도와 같이 산산히 부서져서 다시모여라
어차피 우리는 한배의 운명이니까...>
14일 오후 4시 인천 남구청 앞에는 투쟁가 ‘또다시 앞으로’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산하 인천주안주공철거민대책위원회(위원장 임진숙)가 남구청을 향해 벌이고 있는 방송투쟁 현장이다. 확성기로 남구청을 향해 쉼 없이 투쟁가를 날리는 봉고차는 철대위 재산목록 1호로 평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충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집은 철거해도 사람은 철거할 수 없다“ 남구청 옆 인도 노점 천막에 써놓은 문구가 철대위 회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현수막 가까이 리어카 노점상 여성 두 명이 열심히 붕어빵을 굽고 있다. 철대위 위원장 임진숙 씨(46세)와 부위원장 이해순 씨(49세)다. 소소하지만 붕어빵 판매 수익은 이들의 투쟁기금이 되어 방송차량 연료비 등으로 매우 요긴하게 사용된다.

이들의 철거민 투쟁 경력이 만만치 않다. 벌써 만 2년 6개월째다. 행인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조직부장 김용식 씨(54세)와 연사부장 유경렬 씨(47세)가 그동안 용역과의 충돌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철대위 투쟁 소식을 알리는 길거리 사진전 작업이 분주하다.
구청 내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자 남구청 본관과 강당 사이에 비집고 들어선 낯선 가건물이 보인다. 인천 주안주공철대위 회원들의 거처다. 현재 4가구 13명(학생 4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마도 관공서에 철거민들이 가건물을 지어 들어 온 것은 전국에서 인천시 남구청이 유일할 것이다. 사연이 많은 듯 했다. 임 위원장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우리들은 주안주공아파트 세입자들입니다. 2004년 12월 말경부터 2005년 8월 5일 강제철거 당할 때까지 조합측이 고용한 용역(다원 등)들과의 싸움에서 엄청나게 당했어요. 상황이 벌어지면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은 구경꾼에 불과하니 폭행당해도 속수무책이죠. 72세 할아버지가 용역들에게 방패로 찍혔는가하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제 아들이 집단폭행을 당해 한동안 기부스를 하고 살았어요. 한 동지는 용역들 쇠파이프에 맞아 7바늘이나 꿰매는 등 철대위 회원들 중 몸이 성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영수증만 해도 병원비가 8백만원이 넘어요.”
“강제철거 당한 후 다음날인 6일 이곳에 들어 왔어요. 우리들이 구청을 상대로 주거대책 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하자 투쟁 초기에는 대책이 없다며 모른채 하던 당시 박우섭 남구청장이 나중엔 마지못해 일단 이곳에 텐트를 쳐주겠다고 응한 거죠. 그렇지만 텐트는 거절하고 철대위 회원들이 우리 손으로 직접 가건물을 지었어요. 구청은 부득이 수도와 전기까지 다 제공하게 된 거구요. 지금 저희 동지들 주민등록상 주소는 현 구청이죠. 이곳을 우리는 철거민투쟁의 소중한 성과물로 자부합니다.”

▲남구청 내에 들어선 주안주공철대위 가건물과 실내
주안주공철대위는 2004년 6월 12일 인천시청 앞 발대식을 기점으로 공식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인천시 남구 주안6동 906-1 주안주공아파트 1.2단지 54개동 2380세대가 재건축(시행사: 조합, 시공사: 풍림, 벽산건설)에 들어가면서 졸지에 주거공간을 잃고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 35세대가 주축이 됐다.
철대위는 먼저 인허가권자인 구청측의 기회주의적인 재건축사업 승인에 분노했다. 2003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현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30조4항)은 도시정비 사업시 세입자들에게 주거대책을 세워줄 것을 명시하고 있으나, 구청은 이 법 시행 하루 전인 6월 30일, 세입자 보호대책이 미비한 가운데 서둘러 조합측에게 사업승인을 해준 것이었다.
새 법에 의하면 재건축하려는 3160세대 중 25%인 790세대가 서민을 위한 임대아파트로 지어져야 했지만, 구 법의 적용을 받아 이는 기득권자와 업자들의 몫으로 주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이는 결과적으로 구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구청이 특정 세력의 이해에 편향되었다는 혐의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에서 얼어붙은 보도블록까지 계절을 넘어 싸워야하는 철거민들의 바닥투쟁은 항상 힘들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경과할수록 초기에 가담했던 동지들이 아이들이나 노인 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투쟁에서 이탈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주안주공철대위도 지난 7월까지 식구들이 11세대로 크게 줄었다. 지금은 4세대만이 남아 투쟁 중이다. 장기간 같이 투쟁했음에도 최근 떠나야 했던 7세대와 남은 자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임 위원장의 설명이다.
“동지들은 강제철거 과정에서 입은 약간의 피해배상과 주공에서 매입한 임대주택(다세대)등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떠났어요. 문제는 정당한 피해배상이 아니라 시혜적인‘보상’의 성격이 짙다는 겁니다. 주공이나 구청은 동지들에게 양자간 이루어진 합의에 대해 문서로 어떤 근거도 남기지 않았죠. 이런 방식은 당장은 동지들에게 입막음이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주거권을 항구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다고 봐요. 투쟁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거죠. 지금 남아 투쟁하는 4세대는 ‘피해배상’과 ‘국민임대주택 제공’등 문서로 정확하게 공증되지 않은 약속은 인정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철거민들이 강자들의 말은 함부로 믿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철대위 회원들의 이런 시각은 그간의 전철연 투쟁경력과 무관치 않다. 전철연은 회원들에게 투쟁의 결과 얻어지는 상대방과의 협상에서 반드시 공증문서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대한민국 주권자로서 벌이고 있는 정당한 주거생존권 투쟁이니만큼 상대가 자선이나 시혜의 성격으로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일시적인 조치는 부당하다는 논리다.
최근 상황이 미묘하다. 구청장이 바뀌고 나서 철대위에게 소송을 걸고 철거계고장을 보내는 등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현 이영수 구청장은 한나라당 출신으로 구청에 가건물을 짓도록 인정한 박우섭 전 구청장의 결정이나 철대위 회원들에 대한 주거권 대책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임 위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요즘같이 이런 분위기라면 투쟁을 처음같은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됩니다. 그런데 지금 구청장 입장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돼요. 올해 7월 24일 철대위 동지들 7세대가 나간 조건은 현 이영수 구청장이 개입한 거예요. 그렇다면 내용상 이미 전임자와 인계인수가 이뤄졌다고 봐야 되는 거죠. 지난 10월 25일 구청이 소송을 걸어 인천지법에 간 우리 철대위 회원들은 판사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한 인천 남구 구민으로서의 주거권 대책 요구를 당당하게 주장했습니다.”

▲남구청의 확성기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좌)과 김 조직부장 조카의 철거민 관련 논문(우)
전철연은 방송투쟁으로 유명하다. 각 지역철대위 방송차량에서 울려 퍼지는 민중의 소리인 ‘투쟁가’는 사업승인을 해준 해당 관공서, 주공 등 공기업이나 민간 시공사, 조합을 겨냥한다. 집시법이 개악된 이후 요즘 부쩍 지역의 관공서 등은 “확성기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통해 각 지역 철거민 투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주안주공철대위도 이 때문에 지난 9월 13일 법원에 다녀왔다. 임 위원장의 말이다.
“저희 철대위는 법원에서‘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방송투쟁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다행히 구청 인근지역이 ‘기타지역’이어서 80dB 까지 방송이 가능하다는 판결이 나왔어요. 주거지역이나 학교 인근지역은 65dB 까지 거든요. 65dB 정도면 지나가는 차소리에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좀 시끄러워도 인근 지역민들이 처음보다는 많이 양해해주셔서 고맙지요. 붕어빵 사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투쟁가를 흥얼거리는 분들도 종종 계셔요. 많이 듣다보니 저절로 배우신 모양입니다.”
임 위원장은 지역 철거민 투쟁뿐 아니라 중앙의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총무를 맡아 신생 철거민 지역을 발굴 교육하는 활동가도 겸하고 있다. 무엇이 그녀를 ‘활동가’로 만들었을까.
“처음엔 내 입장만 생각했어요. 그러나 조강특위 활동으로 신개발지역을 다니면서 주거생존권 문제가 비난 나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회구조적 인식으로 발전하게 됐어요. 철대위 투쟁이 지역에서의 역할을 넘어 타지역 철대위나 각 사회단체들과의 연대사업을 통해 운동의 폭을 넓히면서 권력과 자본가들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는 거지요. 서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데 제 활동이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 임진숙 위원장(좌)과 이해순 부위원장(우)
서글서글한 눈매의 부위원장 이해순 씨는 만능 재주꾼이다. 그녀는 철대위에서 방송차량 운전기사이며 주방장이다. 또한 전철연 몸짓패 '해방투사'에서 철거민 동지들에게 멋진 율동을 선사하는 부지런한 친구이기도 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이 씨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즐기는 편인데 어쨌든 말을 아끼는 그녀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철거민 운동을 하다보니 투쟁가 소리나 시가행진 때문에 길거리에서 시민들하고 부딪힐 때가 많아요. 안타깝죠. 그들은 우리들이 투쟁하는 의미를 몰라서 그러는 거잖아요. 작게 보면 철거민들의 일이고 크게 보면 사회를 개혁시키는 운동인데 순간순간 시민들이 다소 불편하다고 해서 우리를 적대시하면 이런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구겠어요. 건설자본가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철거민 투쟁도 업그레이드 되어 사회운동으로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할 테니 지켜봐 주시고요.”
철대위 조직부장을 맡고 있는 김용식 씨는 조적(組積) 전문이다. 전두환이 2백만호 아파트를 건설한다며 개발열풍을 일으켰을 때 그는 재하청 ‘오야지’를 맡아 나름대로 잘 나가던 노가다였다. 그러나 IMF 직후 임금 2천만원을 받지 못하면서 삶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철거민 투쟁은 자신이 모르게 부인이 몰래 먼저 시작했다가 2004년 11월경부터 인계를 받아 뛰고 있다. 과묵하고 믿음직한 장골형의 김 씨는 전철연 각 지역철대위에서 가건물을 짓거나 행사 무대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인물이다. 그의 말이다.
“처음엔 2~3개월 정도 예상하고 투쟁에 참여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철거민 투쟁의 의미를 알고 나서부터는, 제 개인적인 승리가 이뤄진 후라도 사회운동으로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 땅엔 어려운 이웃들이 너무 많잖아요. 저는 철거민 현장에서 민중들이 굴욕과 복종의 세월을 보내는 걸 많이 봤습니다. 상계동, 봉천동, 난곡마을, 성남, 천호동 같은 곳이죠. 조카가 90년대 후반 대전 용두동 철거민 투쟁당시 대전 신학대 학생으로 공대위에 참여했었는데 얼마전 철거민에 관한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더군요. 민중 지향적인 생각을 하고 사는 걸 보니 정말 기뻤습니다. 정부가 허울좋은 임대주택 말고 가난한 서민들이 무난하게 입주할 수 있는 저가의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했으면 좋겠습니다.”
▲ 유경렬 연사부장(좌)과 김용식 조직부장(우)
철대위 연사(연대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유경렬 씨. 유 씨는 전직이 기아자동차 서비스 직원으로 IMF 여파가 몰아치던 1998년에 희망 퇴직했다. 2005년 5월 철거민 지역인 오산 수청동에서 발생한 용역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당시 현장 투쟁을 이유로 10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고 지난 4월달 나와 전철연 철거민 투쟁에 다시 합류했다. 26명이 구속된 수청동 사건은 아직도 4명의 전철연 회원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돼 있으며,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민가협)은 사건 관련자 전원을 '양심수'로 선정한 바 있다. 유 씨는 철거민 투쟁이라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일처럼 관심을 갖는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의 소신을 들어 봤다.
“철거민들은 대개 법없이 살 수 있는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철거현장에서 용역들이 폭력을 행사하면 경찰들은 수수방관해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거죠. 현 정권은 말만 참여정부지 내용상 독재정권과 큰 차가 없다고 봐요. 민중을 주권자로 존중하지 않고 가진 자의 입장에 서있으니 자본가들의 꼭두각시라고나 할까요. 철거민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행정대집행법은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희생없는 사회변혁은 없잖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철거민 투쟁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전국빈민연합(전빈련) 주최 “전국빈민대회”에서는 △강제철거 △노점탄압 중단 △행정대집행법 개악 저지 △세입자 주거권 보장 △무상의료 및 무상교육 실현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 빈곤철폐를 위한 7대 요구가 제기돼 대 정부 성토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서는 철거현장 및 노동탄압 현장에 투입된 용역들에게 100억원 이상의 혈세가 낭비됐음이 보고됐다. 또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노무현 정권이 개발업자와 개발관료들에게 포위되어 소수의 투기세력만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해 국민들의 기대는 절망과 분노로 변했고 꿈과 희망은 사라졌다며 지난 10일 정부를 상대로 ‘아파트값 거품빼기 국민행동'을 선포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와 민중의 뜻을 외면한 무능한 정권이 빚은 ‘빈부양극화 현상’이 그동안 주변부에 머물던 ‘철거민 투쟁’을 사회변혁운동의 중심부로 급속히 이동시키고 있다. ‘아파트에 미친 나라’가 철거민 투쟁가들과 만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며 인천 남구청 내에 빡세게 자리잡은 주안주공철대위의 모습은 오늘 대한민국 부동산투기 공화국과 철거민들의 전면전을 상징한다 해도 하등 손색이 없다.
[한국인권뉴스] ▼ 인천 남구청 내에 있는 주안주공철대위 숙소와 방송차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