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장에 간다고 따라 가는가
<부제: 극심한 빈부차이는 중병에 걸린 증거>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 젊은이의 총기난사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한 사건은 무엇으로 변명하더라도 합리화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총기를 난사한 젊은이의 글속에서 부자들을 원망하는 말은 그냥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역사상 최고의 경제발전과 문화생활의 허상(虛像)을 보여주고 있다.
빈부차이가 극심하여 함께 가는 공동사회(共同社會)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져서 공동사회라는 말은 형식적인 구호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여북하면 몇 년전 우리나라의 농민지도자 이경해씨가 머나먼 멕시코에서 세계화인지 무엇인지를 반대하며 분신해서 죽고, 운전기사인 허세욱씨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며 분신해서 죽었겠는가.
세계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가.
가진 자들만 더 잘 살 수 있고, 갖지 못한 자는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기업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최대한의 능률과 생산을 노리기 때문에 정규직은 줄어들고, 임금이 적은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늘어나 고통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기업이나 개인이나 많이 쌓기만 할 것인가.
극심한 빈부차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중병에 걸린 세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혼자만 잘 먹고 즐기는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기업을 포함한 부자들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심이 사나워지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의 농업과 농촌 농민, 자연환경을 지키면서 산업을 지키는 중용의 길로 가야 한다.
수출실적을 높이는 데만 매달리지 말고 모두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노력하라는 말이다.
거기에 살아있는 실화가 있지 않은가.
1997년말 IMF경제위기가 닥쳐왔을 때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모두 감원바람이 불었지만 오직 유한킴벌리(주) 문국현 사장만 3교대근무를 4교대근무로 변경하여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근로자를 더 많이 채용했는데 생산과 수출이 증가한 사실은 우리에게 함께 사는 공동사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신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을 비롯하여 모든 사기업이 실천한다면 기업인과 부자를 원망하게 되지도 않을 것이고,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부족한 사람도 감싸는 정신으로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이다.
감원만이 능사(能事)가 아니라는 말이다.
남이 장에 간다고 따라 가는가
유한킴벌리(주) 사장 같은 지혜를 발휘해야 참다운 함께 사는 공동사회가 될 것이다.
2007년 4월 21일
김 만 식 (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시집 『박통이 최고라네 』 산문집『대통령은 아무나 하나』의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