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의 참모습과 유산(遺産)
(부제: 우리나라는 왜 중병에 걸렸는가)
o. 왜 죽기 살기로 싸우는가
우리나라는 군사독재32년이 끝났는데도 한나라당과 조선 중앙 동아일보, 대한민국재향군인회, 제대군인단체가 중심인 국민행동본부 등의 친일과 군사독재수구세력들이 민주평화개혁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며 궤변과 선동 선전으로 정치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군사독재의 참모습과 유산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o. 군사독재의 참 모습
1979년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시민들이 군사독재에 항거할 때 독재자가 부·마 사태를 보는 눈과 1980년5월18일 광주민중학살을 보면 군사독재의 참 모습이 들어난다.
1. 부·마(釜·馬)사태를 보는 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 18일 새벽 부산에 가서 살펴본 결과 구속된 160명중에 학생은 16명에 불과하고 시민이 중심이 된 민중봉기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수십대의 차량이 부서지고 10여개의 파출소가 파괴되는 현장에서 주부들이 데모 대원에게 음료수를 주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권력과 시민의 대규모대결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김재규 부장은 서울로 돌아와 부·마사태가 불순세력의 조종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박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첫째,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이고
둘째, 현 정부에 대한 불신임이며
셋째, 물가고에 대한 반발이고
넷째, 조세불만의 표현인 민중봉기라고 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경청하지도 않고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박대통령은 “서울에서 4·19 같은 데모가 일어나면 내가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때는 최인규(내무부장관) 곽영주(청와대 경호대장) 같은 친구들이 발포를 명령해 사형을 받았지만, 나를 사형에 처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백만명을 죽여도 까딱없었는데, 데모 대원 1·2백만명 죽이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라고 맞장구쳤다.(『김재규 X파일』-「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쏘다」. 김대곤 지음, 산하출판사, 2005년2월28일 발행)의 72-73쪽
2. 5·18광주민중학살
그리고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은 중앙정보부장서리로 겸직하게 되어 천하무적의 실권자가 되더니 정부는 1980년5월17일 밤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확대하고 김대중선생을 비롯한 민주화인사들을 구속하고 5월18일 광주민주화시위대를 폭도로 몰아 수백명을 학살하고 부상자를 많이 발생시키면서 김대중선생을 폭동의 배후조종자로 몰아갔다.
o. 군사독재 32년의 유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사독재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결과 군사독재세력은 반대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인권을 유린하고, 부정선거와 천문학적인 부정부패를 일삼고,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로 권력을 지켜갔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일과 군사독재수구세력은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해 민주평화개혁정부를 친북 좌파 반미라고 붉은 색칠하고, 지역감정과 지역갈등 지역주의를 조장하며, 한나라당은 차떼기부패정당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일과 군사독재수구세력이 군사독재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지 못하고 불의(不義)가 판칠 것이다.
2007년 5월 6일
김 만 식(평화통일시민연대 회원
시집 『박통이 최고라네』 산문집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의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