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본'은 과연 에프티에이를 반대하는 것일까?
5월 25일 협상문 공개발표를 맞아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1차 집중투쟁을 다짐했다. 6월 초중순에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6월 29일 무렵에는 전국 동시다발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17일 ‘미국의 신통상정책과 재협상요구,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범국본이 벌였던 토론회 뒷소식을 들으니 과연 범국본이 FTA를 끝끝내 막아낼 의지를 품고 있는지 우리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미디어 ‘참세상’ 기사의 일부를 옮긴다.
『....이날 이해영 기획단장은 범국본의 선택지로 A) 재협상 반대, B-1) 전면 재협상, B-2) 범국본과 국회 비상시국회의, 정책자문단 등이 분리 대응하는 형태를 제시했는데 토론자들이 B-2) 안에 무게를 실었다. 이 경우 범국본은 명분과 ‘협상 백지화’를 요구해온 운동 단위들을 챙기고, 국회에서 사실상의 ‘재협상’ 요구안을 마련해 협상단에게 요구하며 전술적 보폭을 맞춘다. 이를테면 4대 선결조건 전면 무효화 등 그동안 범국본이 요구해온 내용들을 다시 재협상의 과제로 올리는 싸움을 하자는 것이다....』
4월 2일 ‘협상 타결’이 선언되었을 때, 범국본은 “FTA 원천 무효, 노무현 정권 퇴진”을 부르짖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행동을 벌임으로써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준 사회단체들에게 감사한다”고 TV연설을 통해 전 국민 앞에서 범국본을 치하했다. FTA반대싸움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 치하의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해 했지만, 지금 범국본이 FTA를 대하는 태도를 볼 때 범국본이 여지껏도 전면 반대가 아니라 ‘(국익에) 더 유리한 FTA 체결’을 위해 싸워온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위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자. “범국본은 명분을 챙기고, 국회에서는 재협상의 요구를 내건다...” 말뜻을 한 꺼풀 벗기면 이렇다. 범국본은 ‘전면 반대’를 한다는 겉모습을 계속 보이되, 실제 목표는 ‘협상내용의 개선’에 둔다! 그렇다면 적어도 범국본 지도부는 노무현의 점잖은 공치사에 불쾌해 할 자격이 없지 않은가. ‘원천 무효’와 ‘정권 퇴진’ 주장은 시간만 지나면 가라앉을 감정적 반발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다시 묻는다. 범국본은 지적 재산권의 전면 재협상이 이뤄지고 방송쿼터가 축소되지 않으면, 농업분야 민감 품목의 관세를 그대로 두겠다면, 금융서비스 분야의 단기 세이프 가드를 실속있게 시행하겠다면, 미국이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요구를 철회하겠다면, 다시 말해 ‘국익’에 불리하지 않은 내용으로 합의된다면 한미FTA 체결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토론회에서는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전면 반대”하면 국민들에게 ‘꼴통’집단으로 찍히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다는 따위. 그동안에 그럼 ‘일부 수정이면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저지투쟁을 해왔다는 말인가? 그럴 생각으로 민중에게 싸우자고 했던가?
우리는 한미FTA가 설령 ‘국익’에 유리하다손 치더라도 이를 반대한다. FTA ‘타결’ 무렵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이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냈는데 “FTA를 구조조정에 전략적으로 활용하자”는 말이 그 첫머리를 장식했다. 남한 자본이 두 손 들어 FTA를 찬성했던 셈속은 이것이 아닌가. 범국본은 “협상문이 공개되면 국민 여론을 뒤바꿀 수 있다”고 호언했지만, 더 문제되는 것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양해 각서’들과 ‘이면 합의’다. 노동 분야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노동법 규범을 미국식으로 퇴행시킬 이면의 약속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의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렇게 자본이 노동자를 더 쥐어짜는 계급투쟁이야말로 한미FTA의 본질이요, ‘국익’은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미FTA가 미 제국주의의 패권 질서에 한 걸음 더 복속하는 길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중동에서 수렁에 빠진 미국이 뒷걸음질치는 호기를 낚아채서 ‘평화 협정’뿐 아니라 ‘한미 안보조약’의 폐기도 추구해야 할 판에, 남한 지배세력은 그 폐기는커녕 한미FTA라는 경제동맹을 얹어서 ‘친미의 길’로 더 들어가자고 부르꾀고 있다. 미국이 강요한 ‘전략적 유연성’의 수용과 FTA 체결은 한국이 미국의 패권에 편승하여 아(亞)제국주의 국가로 진출하겠다는 야심의 표현이다. FTA는 우리 한국이 근사하게 자본주의 선진국으로 다시 말해 소(小)제국주의로 발돋움하는 일이니 범국본은 그 부분 개선만 꾀하고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심산인가?
6월 2일은 허세욱 열사의 ‘49제’를 치르는 날이다. 범국본은 ‘FTA 전면 백지화’의 치열한 대결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대학로에 깃발을 들고 나와서는 안 된다. 자신의 투쟁 목표가 노정권의 협상력 높이기에 불과하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순간, 범국본은 투쟁하는 대중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