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에는 희망이 있다!!
1. 사물을 살피는 눈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양적으로, 겉표면을 살피는 눈길과, 질적으로, 속엣 흐름을 살피는 눈길.
민주노동당이 ‘경선 방식’의 문제를 놓고 몇 달을 토론한 것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아까운 선거운동 기간을 다 흘려 보내는구나” 하고 그 허비(?)한 시간의 양을 따졌을 터이고, “당에 대해 관심이 없던 어중이떠중이들을 다 받아들이면 당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 아닐까?”하고 지금의 당원들과 지금의 조합원들의 겉모습을 비교했으리라.
2. 그러나 우리는 사물을 질적으로, 속엣 흐름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얼핏 겉으로 보면, 같은 의제를 놓고 두 번씩이나(!) 제자리 맴맴하는 듯한 토론을 주고받은 일이 하릴없고 쓰잘데 없는 일 같아 보인다. 하지만 되돌아 서서 자문할 일이다. 대관절 우리는 무엇을 바라서 그 ‘생산성’과 ‘쓰잘데없음’을 견주는 것일까? 대선에서 얼마나 ‘표’를 얻느냐, 그 수치만을 오로지 따질 일인가?
3. 민주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의 정당이다. 그런데 당은 과연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을까? 당은 과연 노동자계급의 정당일까?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 허리에 매어 쓸 수 없듯이, 아무리 대선 일정이 급해도 당이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받드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자기성찰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아니, 당이 당원이라도 제대로 주체로 세우는 식으로 사업하고 있는지부터. 예전에 소련 스탈린정당은 당원과 인민을 온통 ‘수동화’시킨 탓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는가.
4. 당은 엊그제 중앙위가 있기 전에, ‘민중경선 토론’을 지도부회의에서 서둘러 마감하려 했다. 문제제기가 있고 나서야 그 토론 무대가 삼백 명의 중간간부급 중앙위원들에게까지 넓혀졌다. 그만큼 ‘당의 민주화’가 진전된 것이요, 대중조직과의 관계를 그만큼 더 ‘책임있게’ 숙고하고 대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노력만큼 민노당에는 희망이 ‘더’ 생겨났다.
5. 여러 달 전, ‘민중경선’이 중앙위에서 누가 처음 거론했을 때, 경청한 사람이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노총을 받아안자’는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수긍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엊그제는 두 시간의 치열한 토론 끝에 백 명이 ‘그 힘든 과제’를 기꺼이 찬성했다. 찬성하지는 않았어도 나머지 이백 명의 중간 간부들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얻었다. 간부들의 문제의식이 크게 높아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만큼 민노당에는 희망이 더 생겨났다.
6. ‘민중경선’은 당의 다수파로 알려진 ‘엔엘파’를 둘로 분열시켰다. ‘피디파’ 중에도 의견 차이들이 생겨났으리라. 정파들의 분열은 참으로 좋은 징조다. 사람들이 어느 정파가, 그 지도부가 시키는 대로 로봇처럼 따르지 않고, 제 주관과 결심에 따라 의견을 표명했다. “눈 앞의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이합집산하다 보면 그동안 자기들이 선호했던 ‘정파 소속’이라는 관념도 퇴색하게 된다. 정파를 넘어서 서로 소통할 기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착한 엔엘파와 겸손한 피디파가 서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면 당의 단결력은 그만큼 높아지는 것 아니냐. 당 안에서 일하는 즐거움이 배로 늘어나지 않느냐? 어디서 지령 내리는 대로 당 내에서 토론이 붙고, 정확하게 각 패거리집단간의 숫자 차이에 따라 표결이 이뤄진다면 사실 토론이 필요없어진다. 그저 다수결로 직행하고, 소수파는 당을 떠나가면 된다... 커다란 실천을 요구했던 ‘민중경선 제안’이 이렇게 패거리문화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 해도 당에는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7. 어려운 때다. 소중한 희망의 씨앗들을 받아 안는 일이 정말 긴요하다. 중앙위에서 몇 시간을 진지하게 토론했던 중앙위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