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들의 당이냐, 노동자 대중의 당이냐?
- ‘민중경선’ 부결이 담고 있는 뜻 -
지난 16일 대전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제3차 중앙위원회에서는 ‘대선후보 선출방안(민중참여경선제)을 위한 임시 당대회 소집 결의의 건’이 298명 중에 106명의 찬성만을 얻어 부결됐다. ‘판갈이’ 뉴스에 따르면 반대쪽은 “취지와 충정은 이해하지만 지난 당대회 결정을 번복을 동의할 수 없다”는 반론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 결정이 갖는 정치적인 뜻을 살피고 앞날을 간단히 전망해 본다.
우선 반론들이 옹색하다.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공식 요청하고 각 산별 대표들이 호소문까지 제출한 안건을, 내용의 타당성은 따지지 않고 그 자체가 논란 거리인 ‘절차’의 문제를 들어 외면한 것은 당당한 답변이라 보기 어렵다. 민중경선제의 타당성은 굳이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없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말했듯이 “당원 5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과 민주노총 80만이 가세하는 것, 어느 쪽이 더 힘을 얻느냐?”는 상식적인 질문 하나로 족하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할 만큼 바쁘고 어려운 일을 ‘더 유리하게 치르자’고 내놓는 제안을 왜 그들이 한사코 도리질하는지가 오히려 궁금해진다.
‘민중경선 부결’이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인지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태생적 관계’만 잠깐 떠올려도 분명해진다. 민주노동당 바깥의 ‘좌파’들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풀 것을 틈만 나면 요구해 왔고, 근래에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이 주장을 다시 디밀었다. 민주노총과 당이 ‘남 남’이라고 두 번이나 못박았으니 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지 않겠는가? 국민파 일부의 출세주의자들이 이 결정을 좋은 구실로 삼아서 다른 개혁보수정당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았는가?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당 관료들은 민중경선의 물꼬가 트이면 자기들의 당내 입지가 언제 어떻게 허물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진성당원제’를 구실 삼아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대선보다 총선에서 입지를 챙기고, ‘비례대표’ 자리를 따내는 일에 사실 관심이 대부분 쏠린다. 사석에서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렇게 염불보다 잿밥을 챙기니까, 당 바깥에서 딴 살림을 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구실을 선사한다. “당 안과 당 바깥은 서로 ‘남’이다, 뿔뿔이 제 갈 길 가자!”
양화(良貨)가 내쫓기고 악화(惡貨)가 총애 받다
그날의 중앙위원회는 민중경선은 배척했으면서 진보대연합은 기꺼이 받아 안았다. 그동안 진보세력 사이에서는 ‘진보대연합’ 담론이 어떤 대단한 사업인 양 너무 높게 자리매김되어 왔다. 당 바깥의 좌파나 시민운동 세력과 어떻게든 관계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 그럴싸한 ‘해법’으로 ‘제휴 협상’을 피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그저 운동권 지도부끼리 모여 앉아서 정치공학적인 셈속을 서로 따지는 일에 불과하고, 명분을 피할 수 없으니 억지로 마주 앉는 면도 없지 않다. 민중에게 뚜렷한 대안 세력으로 변변히 일어서지 못하는 무기력함의 문제를 ‘진보대연합’의 정치공학으로 뚫어낸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당 바깥의 좌파들과 크게 어우러지는 숙제는 오히려 ‘민중경선’으로 풀 때라야 제대로 풀린다. 이미 출정식을 치른 권,노,심 세 후보와 ‘노동자의 힘’이든 ‘희망사회당’이든 당 바깥의 후보가 8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모시고 함께 그들의 심판을 구하는 길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의 테두리를 한껏 넓힐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야 여러 정치조직이 난립해 있는 운동권의 이합집산도 판갈이해낼 수 있지 않은가?
진보대연합은 ‘후보 단일화’를 거치게 되어 있는데 ‘여론 조사’ 같은 것을 쓰지 않고는 성사하기가 어렵다. 중앙위에서는 ‘진보 신당’을 창당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민노당 후보가 간택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번갯불에 새 정당을 구워낼 수 있다고 하니, 이런 사탕발림으로 다른 세력들에게 믿음을 살 수 있겠는가. ‘전진’ 그룹이 ‘묻지 마, 선거인단!’을 소리 높여 성토할 때에는 정치적 정체성을 묽히는 이런 맹탕의 정치 개념을 한껏 비판해 놓고, ‘진보대연합’에 와서는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왜 그런 규탄의 소리가 슬며시 가라앉았는가. 노동자계급을 치열하게 끌어안는 정도(正道)의 계급정치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상층 정치테이블을 열심히 꾸려보자’는 방안으로 생색을 내고 있으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내지 않았는가.
정파 구도가 무너져 내리는 좋은 징조
민중경선의 표결은 NL과 PD의 ‘정파 구도’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민중경선은 PD 대다수뿐 아니라 NL 우파들도 반대했다. 엔엘 우파들은 원래 ‘개방형 경선’에 관심이 있었지, ‘민중 경선’은 마지못해 받아 안았을 뿐이었다(울산연합, 인천연합 등). 이번 중앙위를 계기로, 엔엘파는 민중경선파와 진보대연합파로 칼같이 갈린 셈인데, 우리는 정파가 이렇게 둘로 셋으로 뿔뿔이 갈리는 현상을 무척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그래야 ‘정파에 줄 서기’를 하지 않고 제 머리로 현안에 대해 생각하고 결단할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날 터이고, 그래야 운동권 ‘주체들의 자세’가 반듯해지고 실력도 크게 늘어서 운동의 새 흐름을 일굴 수 있으니 말이다.
‘반대 192 대 찬성 106’의 구도는 무슨 뜻을 함축한 구도인가? 여지껏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간부들과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의 정당으로 운영돼 왔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당에 와서 발언권을 얻었지만, 의무감으로 당에 ‘적’을 올린 노동조합 중간 활동가들은 대부분 ‘수동적 당원’으로 머물러 있었다. “당의 일이야 24시간 당 사업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더 잘 하겠지. 우리는 밀어주기만 할 뿐.” 이런 겸양(?)의 태도가 “정치는 당 간부들이 대신해 주는 것”이라는 통념을 은연중에 북돋아 왔다. “민중경선을 주장한 35%”의 중앙위원은 “(노조 간부만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까지도 당의 주체로 세우자”는 혁신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다. 어떻게든 노동자계급의 마음을 사려면 지금 민주노동당은 (머리에 쥐 나도록) 분발해야 할 때다. 이런 때에 ‘당내 입지 유지’를 위해 혁신을 퇴짜 놓는 사람들을 ‘당료질서 두둔파’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은 여지껏처럼 ‘간부 집단’이 좌우하는 당으로 남을 것이냐, 밑으로부터 노동자 대중의 참여를 끌어내는 당으로 발돋움할 것이냐,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그동안 당에 실망하고 떠나간 당원이 만 명이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민노당 내 당료 담합세력은 이번 중앙위를 고비로 하여 ‘민중경선’의 주장이 찌그러들었으리라 여기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 참에 밑으로부터 어떤 골치 아픈 움직임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은근히 바란다. 그런데 ‘민중 경선’의 밑바닥에 깔린 운동의 문제의식이 사라질 수 있을까? 옹졸한 ‘우리 당원끼리’주의가 ‘배타적 지지 철회하라’는 유령(?)을 불러내지 않을까?
106명은 큰 숫자다!
‘패권’만 따지는 사람에게 찬성 35%는 분명히 작은 숫자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을 움 틔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는 사람들에게 찬성 35%는 감동을 자아내는 숫자다. 중앙위에서 처음 이 제안이 나왔을 때에는 동조자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백 명’의 숫자가 늘어났으니 엄청난 진전이 아닌가. 당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토론이 대의원에게로, 당원에게로 확산돼 간다고 생각해 보라. 당의 미래는 오로지 이 부분에 달려 있다.
당 게시판에는 중앙위의 옹졸한 결정에 탄식하고 당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틈틈이 올라 왔다. “당이 노동자 민중의 현장과 가슴에서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기존의 정파 구도 대신에 정말로 건강한 ‘분리 선’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민중참여경선파여, 진보대연합파에 날을 세워라!....”
걱정은 나눌수록 줄어든다. 끝없이 걱정을 나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