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아침식사 한 끼 굶었을 뿐인데!
6.23 서울역 공무원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다녀와서
"노동조합의 얼굴인 위원장은
스무날이 넘게 배를 쫄쫄 굶어야 하는 오늘
누구는 올림픽 경기 날도 아닌데
역기를 들어 올리려는지 체육관에 모여 있고
여기 당신네는 서울역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인가요."
온 몸이 나른하다. 아니, 아무런 생각이 없다. 식은땀이 솟는지 옷이 젖는다.
나는 오늘 아침 한 끼를 굶었고, 갓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것 뿐인데 이러는 것이다. 26일째 곡기를 끊어 왔다는 위원장은 어떨까? 몰골인들 오죽할까? 대회장에 들어서면서 내내 그 생각만 했었다. 행사가 시작되었고, 사무처장의 소개와 함께 연단에 오른 위원장의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검게 그을리고 말라 비뚤어진 형상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장장 스물 엿새 동안을 한줌의 소금과 생수에 의지한 채 버틸 수 있는 인내와 투지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런 위원장을 오만과 독선주의자라 하고, 딴 살림을 차리겠다는 사람들은 또 누구라는 말인가?
사실, 토요일이라지만 여느 때처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뉴스를 검색하느라 사이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먼저 온 동지들 몇 몇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건성건성 악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버스 앞좌석에 놓인 물병 하나를 챙겨들고 두어 좌석을 건너뛰어 자리를 하고 앉았다. 매달 20일쯤 받아 보는 월간지의 책장을 넘겨보지만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아침을 거른 탓이겠지!
서울까지 너 다섯 시간.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네 시간. 광주로 돌아서 간다면 다섯 시간. 가다가 중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태워야 한단다. 차창 밖에는 이달 언제쯤 심은 벼 포기들이 땅 맛을 알았는지 제법 푸른빛을 더해간다. 한참을 달려가다 휴게소에 내려 자판기커피 한잔을 뽑아 마시고, 또 달린다. 약속장소인 서울 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다. 먼저 도착한 동지들이 대오를 형성하고 이제 곧 대회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법내니! 법외니! 둘로 나뉘어 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동지들이 반긴다. 2002. 3.23.이후 결의대회니 수련회니 하면서 매번 대해왔던 얼굴들 그대로다. 다시 대하니 반갑기만 하다.
사실. 서울 역에 도착해 점심 먹을 시간이 없는지라 출발하면서 준비해 간 한 줄의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때울 때. 심성 고운 지부차장이 은박지에 쌓인 무언가를 건네준다. 김밥이었다. 하지만, 4대 요구안 쟁취를 위해 20여 일째 곡기를 끊고 단식농성중인 위원장과 광화문 앞 농성장의 동지들을 생각하며 어제 밤 잠들기 전 하루만이라도 굶어보자며 아침을 건너뛰고 왔던지라! 성의(?)를 마다한 것이다.
대회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민족시인 ‘오도엽’ 님의 연대사로 대신한 시 낭송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결국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또, 배에 구멍이 나면 구멍을 막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제일 먼저 도망하는 ‘쥐’처럼 조직의 분열을 조장하고, 딴 살림을 차리려는 또 다른 동지들을 가장 비겁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단병호 의원의 연대사는 진정한 노동운동의 의미를 깨달게 했다.
하지만, 오가는 이로 붐비는 이곳 서울역 광장의 아스팔트가 아닌 체육관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나는 미워할 수 없다. 그것은 조직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 자신 손을 놓고 바라만 봐왔기 때문이다.
"조직이 어려울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라며 "민주노조의 역사적 상징인 공무원노조를 끝까지 사수해 달라" ‘끝까지 공무원노조를 지지 엄호 하겠다“ 라는 민주노총 동지들의 연대사는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어느 편에 서는 것이 떳떳한 길인가를 명확히 인식시켜 주었다.
일련의 행사들이 끝나갈 즈음 연대사가 끝나고 뒤로 나와 한가치 담배 연기로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 대회장 주변을 살피던 사무차장 식사를 하러 가자며 이끈다. 그래도 남자인 내가 이럴 때 배가 고프겠구나! 라면서 밥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따라 나서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해 봤다.
억압과 굴종의 사슬을 끊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발길을 가로막던 유치원에 갓 입학한 딸아이의 모습과 공무원노조출범과 연행, 그리고 그해 초겨울 한양대 진입을 위해 담을 넘던 일, 연가파업, 사무실 폐쇄, 공무원노조에 발을 들여놓고 딴에는 몸부림을 치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혹자들은 ‘다양성’을 운운한다. 또, 전략과 전술을 논한다. 하지만, 이해득실을 먼저 따지고, 유․불리를 논하며 매사를 자신들의 잣대로 사물을 재단하는 정치집단의 행태를 수없이 봐 왔기에 이곳 아스팔트가 아닌 저 건너 체육관 쪽 동지들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라고 단언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동지들을 나는 탓하지 않으리라! 언젠가는 한목소리로 노동해방을 노래하고 해방세상을 향해 두 손 맞잡고 가야할 동지들이기에! 또, 살아온 시간들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기에!
오후 여섯시. 청계천까지의 시가행진과 정리 집회가 끝나고 올라왔던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하기에 차에 올랐다. 넘기다만 작은책 7월호의 책장을 넘겼다. ‘항쟁의 진짜 주역은 누구인가’ 한울노동연구소 하종강 소장님의 기고문이다. 읽어 내려가니 오늘 집회의 사회를 맡았고, 송파구청에서 ‘민주화운동보상신청’ 사실조사를 담당했던 사무처장의 얘기다.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은 올바르게 살겠다고 애쓴 진짜 노동자들이야. 지금 운동권에서 어떤 직책을 갖고 있거나 노동조합 간부도 아닌 사람들, 농성장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구사대나 전경한테 얻어맞고 쫓겨나 그 뒤에는 취업도 안 돼 고생하는 사람들, 진료 받았다는 기록도 없고 활동을 입증해줄 자료도 없는 사람들, 어떻게 좀 유인물 한 장이라도 좀 찾아보시라고 부탁을 해보지만 어디서 구해볼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 ….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진술조서를 최대한 잘 받아주는 일밖에는 없어. 정말 안타까워.”
광주까지 오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 이런 모습이 공무원노동자의 현실이고 진정한 자세일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