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코뮤날레]상업적 성노동 여성들은 오히려 가부장제 해체의 전위

[편집부]

"왜 다른 방식의 노동력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거래될 수 있다고 보면서 성적 노동은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가, 상업적 성노동 여성들은 오히려 가부장제 해체의 전위"[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박이은실 활동가]

▲6월 28일 서강대에서 열린 영 코뮤날레 세션 ‘성매매 성노동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성매매 특별법(성특법)의 모순으로 점화된 성노동 및 성담론 논쟁이 진보진영 내에서 심층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6월 28일 서강대(다산관)에서 열린 맑스코뮤날레 학술문화제에서 '영 코뮤날레' 세션('성매매 성노동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토론자로 나온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박이은실 활동가는 성특법을 비롯하여, 주류여성계는 물론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거론되고 있는 ’성매매 폐절론‘을 염두에 둔 듯 “가족 내에서 폭력과 살인같은 인권침해가 부지기수로 일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해체하자는 말은 왜 나오지 않는가?” 등의 비유로 힐난했다. 박이은실은 또 “강제적 성매매를 성매매 논의에서 더 이상 함께 논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면서 “강제적 성관계가 성관계가 아니라 폭력의 범주에서 다뤄져야 하듯, 강제적 성매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폭력의 범주에서 범죄로 다뤄져야“한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성노동도 똑같이 인간의 몸이 매개가 되는 것인데도 왜 다른 방식의 노동력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거래될 수 있다고 보면서 성적 노동은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가?”,“성적 서비스의 거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성매매는 남자가 여자를 ‘처’로 삼고 여자에 대한 성적 전유권을 인정받던 그 때부터 이미 진행된 것으로 봐야하지는 않나?”고 반문하면서 “‘처’도 어떤 의미에서는 ‘남편’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계를 부양받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박이은실은 “가부장제 내가 아니라 가부장제 밖에서 적극적 거래를 통해 남성을 상대하는 상업적 성노동 여성들은 오히려 가부장제 해체의 전위에 선 이들은 아닐까?”라는 유의미한 화두를 던진 뒤 “(결혼제도 내 이성애 여성들은) 자신들은 성을 팔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순결, 순수, 정조와 같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며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성노동자들과 연대하기를 꺼려할지도 모른다”며 성특법이 지닌 친가부장제적 성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음은 박이은실의 발제 전문이다.

▲'영 코뮤날레'에서 발표하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박이은실 활동가 ['영 코뮤날레' 포럼 발제문] 성/노동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은 인권침해적, 착취적, 성별화된 노동이기 때문에 근절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 - 가족 내에서 폭력과 살인같은 인권침해가 부지기수로 일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해체하자는 말은 왜 나오지 않는가? - 멸치잡이배에 인신매매되어 강제노동을 하는 어부들이 있을 때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얘기하고 이들의 피해자성을 얘기하면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멸치잡이 자체를 폐지하자는 말은 왜 나오지 않았는가? - 성별로 차별화된 성별화된 노동이 문제라면 가사노동, 돌봄노동, 육아노동 등의 노동은 왜 폐지해야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 “노동은 신성하다?” 맞고도 틀린 말? 성이 문제인가 노동이 문제인가? 생계를 위해 성매매업에 계속 종사하겠다는 성노동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자들을 무조건 피해자화하는 시각이 팽배한 데에는 무엇보다도 성매매를 ‘직접적인 강제’에 의해 즉, 인신매매와 강압 등이 동원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만 보거나 혹은 ‘구조적인 강제’, 즉,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차별적이고 한정된 사회적 자원 (예: 교육의 기회, 취업의 기회 등)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로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강제적 성매매를 성매매 논의에서 더 이상 함께 논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강제적 성관계가 성관계가 아니라 폭력의 범주에서 다뤄져야 하듯, 강제적 성매매 또한 같은 맥락에서 폭력의 범주에서 범죄로 다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강제적 성매매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즉 강간과 폭력, 인신매매같은 문제를 인권문제 차원에서 개입해야 할 것으로 분리해 놓고 보면, 성매매에 대한 논쟁에서 불거지는 보다 바탕에 깔려있는 시각의 차이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즉, 성매매 자체, 그리고 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보는가에서 오는 시각의 차이이다. 성노동도 똑같이 인간의 몸이 매개가 되는 것인데도 왜 다른 방식의 노동력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거래될 수 있다고 보면서 성적 노동은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는가? 성적 서비스의 거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성매매는 남자가 여자를 ‘처’로 삼고 여자에 대한 성적 전유권을 인정받던 그 때부터 이미 진행된 것으로 봐야하지는 않나? ‘처’도 어떤 의미에서는 ‘남편’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계를 부양받는 것으로 봐야한다. 이에 대해 보부아르는 ‘처의 성행위와 창부의 성행위가 같다’고 보았고, 다른 것이 있다면, 처는 한 남자와 종신계약을 맺는 대신 창부는 여러 남자와 일시적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보았다. 처의 성노동은 단지 상업적인 것이 아닐 따름이다. 그렇다면 왜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성적 전문 경험과 지식을 가진 ‘성전문가’로 보다는 ‘함부로 몸을 굴리는’ 여자로 재현되는가? 나는 이것이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전유권, 즉 남성이 여성에 대한 성적 권력을 독점하는 문제와 이로 인한 결과로 빚어진 혹은 이와 쌍으로 함께 발생한 성애의 위계화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성/노동/성노동 성매매 담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섹슈얼리티’이다. 성매매 담론에서 성에 대한 직접적인 담론을 시작해야 하는 까닭은 첫째, 우리가 서와 섹슈얼리티을 중심으로 한 위계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도 위계화된 섹슈얼리티의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셋째,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이런 위계가 여성들 사이에 그리고 이성애 여성과 성소수자들, 특히 레즈비언과 양성애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저해하는 궁극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이성애를 강제해야지만 유지될 수 있는 속성상 강제적 이성애적 가부장제라고 명명하지 않을 때에도 이미 그 안에 이성애에 대한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성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는 남자들은 결혼제도를 통해 점유한 여자들에 대한 성적 전유권을 사회적으로 용인받은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남자의 외도는 용서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남성들의 단단한 성문화적 연대를 기반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성, 즉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성에 대한 접근을 지속한다. ▲'가부장제 안에서의 이성애 여성 간 위계적인 대남성 역할 기대 유형 결론 남성의 성적 권력 전유를 통해 유지되는 섹슈얼리티의 위계 구조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성, 이성애와 결혼제도 안의 성만을 용인하는 사회가 이것에 보내는 절대적 지지, 그리고 여자에게만 공공연히 강요되는 순결, 정절, 순수, 모성 등의 단단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공고하고도 튼튼한 가부장제도의 버팀목이 되어왔다. 가부장제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성과 인정되지 않는 성을 위계적으로 이분화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성에 대한 전유권을 남성에게 주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성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을 통해 유지되는 제도라면, 가부장제 내가 아니라 가부장제 밖에서 적극적 거래를 통해 남성을 상대하는 상업적 성노동 여성들은 오히려 가부장제 해체의 전위에 선 이들은 아닐까? 결혼제도 속에서 가부장제의 보호와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는 이성애 여성들은 자신들은 성을 팔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순결, 순수, 정조와 같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며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성노동자들과 연대하기를 꺼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자신들의 성은 거래되지 않은 성인가에 대한 자문을 신중히 해보아야 한다.

[한국인권뉴스 200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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