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투쟁의 꽁무니만 좇는 운동권 지도부
- ‘투쟁방향’ 없는 이랜드 투쟁
비정규 노동자들이 모처럼 일어섰는데
7월 1일 비정규악법의 시행과 더불어, 비정규 노동자들의 크고 작은 저항과 마찰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은 14일 현재, 보름째 매장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이랜드 싸움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임은 넉넉히 예견되는 일이고, 실제로 CBS 조사에서 분규의 원인을 노조(23%)보다 정부나 사용주에게 돌리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56%). ‘동네 아줌마’를 누가 낯선 사회적 강자로 볼 것인가. 인터넷에는 뜨거운 연대의 여론이 올라왔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파업’이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것도 다시 확인한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체험담은 참으로 생생하다. “내가 파업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파업을 하고서야, 세상이 참 부조리하다는 데 눈을 떴어요.” “아이들에게 ‘엄마가 승리하고 돌아가겠다’고 다짐했어요.”
문제는 민노총 민노당이 이들의 싸움을 제대로 지도해내느냐였다. ‘법’이 분규를 불거지게 한 장본인이니 단지 이랜드 뉴코아의 해고 사태만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잖은가. 게다가 이렇게 싸움이 불붙고 여론의 지지도 얻고 있으니 전체 노동자, 시민의 문제로 보편화하기가 수월해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민노총 이석행 집행부가 한 일이라고는 8일의 점거투쟁에 시동을 걸어준 것뿐이었다. 비정규법 저지투쟁을 엄두내지 못하고, 고작 ‘시행령 손보기’에만 매달렸던 민노총으로서 그쯤의 실천은 ‘속죄’ 행위 또는 ‘면피용’ 투쟁에 지나지 않았다. 연대 투쟁도 여러 연맹들에서는 별로 대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동원력이 크지 않은 여러 지역본부에서나 애썼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의 여러 지구당은 이랜드 싸움의 밑불을 지피는 데에 나름의 구실을 해왔다(여러 지구당의 조직화 사업!!).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연대 사업을 하는 데에 (업종/연맹 위주의 민주노총보다) 당이 더 구실을 해냈다. 하지만 문제는 ‘당 전체’가 이 싸움의 투쟁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였다.
노총이든 당 지도부든 이랜드 자본과 어떻게 싸우느냐, 또는 협상하느냐만 골몰했지, 이 싸움을 어떻게 전체 비정규 노동자의 차별 철폐 싸움으로 발전시킬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이석행 위원장은 노동부장관 이상수와의 면담을 다급하게 청하여 별다른 소득도 얻지 못하고 장관의 체면만 세워주었다. 어떻게 이랜드 문제를 ‘마무리’할지만 궁리하지, 이 싸움을 발전시킬 의지가 없다는 무언의 표시 아닌가. ‘매일노동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석행 위원장과 문성현 대표 등이 장관을 만나려고 앞을 다투는 일이 빚어졌다고 하는데, ‘현안 해결’에만 급급했던 그들의 태세를 짐작케 해준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법의 전면재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당 지도부는 이 말을 받아 (대중투쟁을 설계할) 대책회의를 열지 않았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뜻이니, 맥없는 혼자말에 불과하다. 장관이나 사용주를 만나 당장 ‘타협의 실마리 찾기’에 골몰한 사람이나 ‘법 재개정’을 구두선(口頭禪)으로만 되뇐 사람들은 여러 달 전부터 기층 활동가들이 “지도부는 제발 ‘시행령 손질해 생색내기’에 빠지지 말고, ‘악법 철폐, 차별 철폐’ 투쟁에 치열하게 나서달라.”고 부르짖어 온 사실을 떠올려 주기 바란다. 그때는 힘겨워서 못했다 치자. 지금처럼 민중의 연대 손길이 뻗어오는 때에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민중언론 ‘참세상’의 한 논평은 이미 이 싸움이 적지 않은 의의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조직화가 쉽지 않은 서비스판매직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여러 사회단체들의 연대 투쟁도 끌어내어 정규/비정규 분할지배 구도(비정규 신법)에 파탄을 냈다. 전면 재개정 투쟁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말이다. 다 옳은 말이고, 열심히 나서준 여러 노동자, 시민과 활동가들에게 격려를 보내야 마땅하지만 그 논평이 얼마쯤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 어디서도 ‘전면재개정 투쟁에 나서자’고 힘차게 소리내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은 작년도에 에프티에이저지 투쟁, 하노라고 열심히 했다. 그랬으니까, 에프티에이 문제를 ‘반자본주의 싸움’으로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한 셈인가? 에프티에이 저지운동의 흐름은 흐물흐물해져 버렸는데??....)
노동운동에 기백이 살아 있던 시절에는 ‘투방(투쟁 방향)’을 세우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지금의 이랜드 싸움은 ‘투방’도 없이 그저 착한 노동자들의 선심과 민심에 의지하여 지탱되고 있다. 우리가 헤쳐낼 길은 이렇게 기층 노동자와 활동가들만 열심히 절규하는 길 뿐인가? 돛대도, 삿대도 없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