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의, ‘피 묻은 역사적 진실’ ─<2/3의 부연>



( ── 2/3에 대한 부연 )


10년간 지속된 ‘도청전투’
나는 아직 ‘화려한 휴가’를 관람하지 않았지만 ‘광고 예고편’에 나온 장면에 연출된 군중의 수를 어림잡아 보고는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1980년대 중후반의 가두시위에 대한 내 기억에 의하면 그 정도의 사람 수로는 전남도청 앞 광장이나 금남로(전남도청 정면으로 난 도로명칭)1가를 절대로 채울 수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아스러움은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속의 세트장이 전남도청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도로와 건물은 ‘축소판’이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풀렸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그 전남도청 앞 광장이 1980년대 10년 내내 4천700만이 생활하는 한반도 내에서 휴전선 그 다음으로 살벌하고도 치열한 ‘戰線(전선)’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5월이 돌아오면 ‘5월 항쟁’ 관련 행사의 사회적 파급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전두환 정권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80년대 초반에는 ‘5월 항쟁’ 관련자들이나 유족들을 강제로 관광버스에 실어서 외지로 내돌려버림으로써 ‘5월 항쟁’ 관련 집회·시위·행사의 사회적 파급력을 격감시키려고 했다. 또한 학생운동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는 ‘SY44총류탄(앞쪽이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가운데 부분은 합성목재로 뒷부분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원통형 최루탄으로 총기를 이용해서 발사함 /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이한열의 죽음 중에서 이한열이 바로 이 직격탄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SY44총류탄에 맞아서 사망했었다)’이나 ‘페퍼포그(지랄탄이라는 최루탄의 일종을 65발정도 연달아 발사하던 방탄차량으로 100M정도의 거리에다가 1M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최루안개를 형성시켰다 / 지랄탄 4발을 동시에 발사하던 총기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음)’나 ‘KP-25세열탄(플라스틱 외피로 된 수류탄과 같은 형태 및 작동방식의 최루탄으로 폭발하면서 얇고 날카로운 플라스틱 외피 파편으로 인하여 살점이 베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였고 사과탄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에 의해서 실명까지 하는 희생자도 많았음)’ 그리고 쇠파이프 등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중무장한 ‘백골단(직업 무술경찰들로 구성된 체포조로 흰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4.19혁명 때 있었던 백골단의 명칭에서 비롯되어 붙여진 이름)’ 및 전투경찰에 의해서 ‘전남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1가’는 철통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짱돌·꽃병(주로 소주병에 휘발유와 시너를 섞어 넣고 이불솜으로 심지를 만들어 사용하던 화염병으로 불을 붙였을 경우 심지에서 타들어가는 불꽃을 꽃에 비유하여 부르던 은어)·각목(쇠파이프) 따위로 아마추어적인 무장을 한 시민·학생들은 자신이나 부모들이 낸 세금으로 그러한 프로페셔널한 중무장을 한 전두환의 하수인들을 상대로 매년 5월이면 ‘전남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1가’를 두고 남북이 대치한 휴전선보다도 더 실물적이고 사실적인 戰鬪(전투)를 벌였다. ‘화려한 휴가’에 나오는 그런 정도의 숫자의 대중들로는 ‘전남도청 앞 광장’은커녕 ‘금남로1가’마저도 채우기가 어렵다. 그 정도 숫자의 엑스트라로 금남로1가를 채우는 것도 어디까지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이다. 하물며 2007년 한국의 16개 시·도의 거리와 광장을 다 채우려면……


‘전남도청 앞 광장’은 ‘전남지방경찰청장’의 모가지
매년 5월이면 ‘전남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1가’를 두고 벌이는 시민·학생과 경찰의 이러한 전투는, 어느 한 해 ‘전남도청 앞 광장’이 시민·학생들의 손에 떨어져서 그곳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집회·시위가 벌어지면 그해 ‘전남지방경찰청장’은 모가지가 날아갔다. 혹시라도 시민·학생들이 ‘전남도청 앞 광장’을 접수하지 못하고 ‘금남로1가’정도만 접수해서 집회·시위를 하면 ‘전남지방경찰청장’의 모가지는 그만큼은 조금 더 안전할 수가 있었고 그것마저도 뺏기지 않은 것보다는 덜 안전했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의 5월에도 이 문제의 ‘전남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1가’를 두고 시민·학생들과 경찰의 사활을 건 전투는 매년 이어졌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김영삼 정권에 의해서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복권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비록 그 복권이라는 것의 이름도 ‘민중항쟁’이라는 가치와 이상과 지향을 거세해버린 ‘민주화운동’에 불과했지만……
이런 10년여 간의 가장 실물적이고 사실적이며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5월 진상규명투쟁’과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경험은 전 세계에서 그리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학생운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국의 학생운동을 만들어 냈었다. 물론 점진적으로 행세주의나 관료주의 또는 출세주의나 보신주의로 변질되어 가지만 말이다. 세계사회변혁운동사 속에서도 ‘총기 등에 의한 군사적 무장이 없이 시가지에서 압제자의 공격으로부터 自己大衆(자기대중)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자위권을 발동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의도에 맞게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격 및 퇴각이나 공격 및 방어를 할 수 있는’ 그런 自慰力(자위력)으로서의 ‘붉은 5월대’나 ‘검은 녹두대’ 따위를 보유하고 있었던 곳은 세계이 모든 혁명운동사 속에서 한국의 학생운동이 唯一無二(유일무이)했었다.


덧붙이는 말

여울(전교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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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울


    겁 없이 모형항공기(실제 나는 것)를 구입해서는, 여기에 초소형 카메라를 부착할 목적으로, 이 모형항공기를 리모컨이며 모터까지 모조리 분해해서 재조립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물론 재조립을 잘못해 기계 작동에 오류가 생겨서 분해와 재조립을 반복 한 것일 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글을 원래 생각보다 한참 늦게 올린다. 그리고 위의 글은 원래 계획에는 없던 불쑥 튀어난 온 뜻밖의 글이다. 처음 글을 게시판에 등록할 때 이미 3/3까지 그럴듯하게 글을 완성했었는데, 괜히 추가로 성가신 번거로움을 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째든 모형항공기 아직 못 고쳤다. 스트레스가 저만 혼자서 하늘을 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돈 아까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