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왜곡된 ‘역사적 진실’
그리고 ‘2007년의 한국사회’
2000년대 한국 지하철의 풍경
요즘의 시대에서 읽혀지는 뚜렷한 대중적인 유행 중의 하나가 ‘영상’이라고 보인다. 서울 지하철을 타면 아주 쉽게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영상단말기의 포로가 되어 있는 어린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풍경 덕분에 디지털 문화에 둔감한 60대 이상의 노년층들도 약간만 눈치가 빠르면 이런 대중 유행 풍조에 대해서 이미 감을 잡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런 광경은 수년 안에 모든 지방 도시의 풍경을 갈아치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부문의 철근콘크리트나 교통부문의 자동차·비행기나 에너지부문의 전기·석유 그리고 디지털의 발명 따위와 같이 1900년대가 만들어 놓은 인류의 문명 중에서도 ‘영화’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당연하게 ‘대중 오락물’의 지존으로 취급되는 위치에 있다. 세계의 초거대자본 또는 (초거대자본에서 독립된)중·소의 ‘영화자본’들의 수가 일일이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많다는 사실이 그 한 증거가 되겠다. 광역시 정도만 되어도 승용차로 5분 이내의 거리에 8~10관 쯤을 갖춘 영화상영관이 3~4개씩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대중유행의 뚜렷한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는 1800년대 독일의 마르크스나,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바티칸이나 티베트의 교황이나 달라이라마도 예측은커녕 상상마저도 전혀 불가능했던 일이다. 2007년의 우리가 그들과는 상당히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년도의 숫자상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을 두고 이르는 말일 것이다.
사실이 아닌 이미지, 그리고 ‘체 게바라’
4천700만의 대중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돈과 시간을 지불하고서 구매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이미지’다. 자칭 ‘운동권(80년대부터 사회변혁운동권을 지칭해 온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5년이든 10년이든 ‘이미지’에만 심취되고 ‘사실’이나 ‘실현가능성’에 대한 차가운 고찰과 직시는 두루뭉실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혁명’을 구상-기획-실천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뭐……” 수준의 ‘데모동호회’ 활동 정도다. 너무 많이 부담스러운 것은 싫으니까! 특히 요즘처럼 제 꼴리는 대로 마음껏 능력껏 사는 自由放任(자유방임)적 개인주의로 요약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문화가 팽배한 리버럴한 시대에는 더욱 그런 ‘이미지’의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것은 이러저러해서 사실성 그리고 현실성이 매우 떨어져!”라고 지적하면 어떤 이는 “영화(·드라마)는 그냥 영화(·드라마)니까 오버하지 마라!”고 핀잔을 주거나 타박을 한다. 그러면서도 모순되게 시리 타인들을 만나면 그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연예 관련의 신문·잡지의 기사 내용까지 커닝해가면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는 ‘감상평’을 늘여 놓는다. 최근 유행하는 최첨단과학의 C·S·I라는 미국 드라마도 그 한 경우다. 이런 현상은 대중들이 시간 또는 돈을 지불하고서 구매하는 것은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동된다고 하겠다.
‘체 게바라’가 유명한 것도 실상은 그러하다. 그가 대중들에게서 유명한 것도 ‘사실’ 때문이 아닌 ‘이미지’ 때문일 뿐인 것이다. 그의 군사전문가로서의 전투력이나 전술역량, 또는 혁명가로서의 사회이론이나 사회철학, 또는 사회변혁의 기획-집행자로서의 실물-현실적인 실력 따위의 ‘사실’들에 대해서는 ‘자칭 운동권’들도 거의 관심이 없다. 그저 쿠바의 권좌를 버리고 볼리비아로 가서 미국의 CIA에 의해서 사살 당한 의사출신의 혁명가(반항아) ‘이미지’ 때문에 그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 뿐이다. 대중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것은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연기자로 유명한 ‘제임스 딘’과 유사한 대중적인 아웃사이더(혁명가) ‘이미지’에 추가로 적당히 정의로운 척 적당히 고상한 척 할 수도 있게끔 해주는 ‘보너스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라는 자본주의 문화상품의 대중화가 가능했던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상당수 ‘데모동호회’ 회원들은 표면적으로 ‘게바라’의 상품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도 ‘게바라’의 실체에 대해서는 무반응이나 무관심일 뿐이니 일반대중과 그들이 다를 것은 내용상으로 볼 때 별로 없다.
대중적 상업 오락물로서의,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도 대중들을 부담스럽게끔 하는 ‘사실’보다는 대중들 스스로의 자기만족적 최면을 유도하는 그런 대중 ‘이미지’에 더 충실했다. 그래야만이 대박이 나서 일단 100억을 투자했다는 ‘한국판 블록버스터’의 이름에 값하는 ‘자본의 회수’가 가능하고, 다음으로는 ‘작품성’이니 ‘연기력’이니 운운되는 이런 저런 ‘영화제’의 상을 받을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째든 곱상한 얼굴의 고현정(삼성가문과 결혼……)과 터프가이 이미지의 최민수(요즘 사채업계 광고로 용돈을 번다)가 주연을 한 ‘모래시계’ 이후 가장 직접적으로 5.18을 다룬 ‘대중오락영화’라는 점은 높이 평가해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인기몰이에서 ‘심형래의 어린이영화’에 진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1980년 이후 3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북한 고정간첩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 벌인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수구-보수-우익적 사실인식에 물든 ‘일해(학살자 전두환의 호로, 전두환 정권 당시 그의 가족들이 ‘일해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어 천문학적 액수의 온갖 비리를 저질렀었다.)공원’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비무장 민간인들에 대한 국군의 무차별 총격장면이 ‘충격’이라는 대중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겠다. 또한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당연히 저항하는 인간의 휴먼드라마니 ‘감동’이라는 대중 이미지도 만들겠다. 물론 그 ‘충격’과 ‘감동’의 ‘이미지’가 얼마만큼의 대박을 터뜨려서 얼마의 ‘투자자금의 회수’를 가능하게 해 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대박’을 위해서, 518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이 숨겨지고 왜곡 당한 채로 영화상영관을 찾는 불특정다수의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진실의 암매장’에 대해서 감사해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모아야 하는 운동권 출신의 ‘신보수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미 청와대 국회 시민운동계 노동운동계 농민운동계 빈민운동계 등 할 것 없이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석권하고 있는 ‘운동권 출신’들 중에서, 출세 또는 입신양명에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모임인 ‘열우당’이나 ‘무슨무슨 대통합 신당’ 따위에 속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만약 이 영화가 대박이 터진다면 다시 또다시 ‘대중적 유행 비슷한 현상의 민주화운동권 대결집’의 가능성이 생겨나고, 그러면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수구·보수·기득권집단인 ‘한나라당’을 상대로 하는 ‘대역전극’을 노려볼 수 있는 꿈같고 몽상같은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 또는 드라마라는 것 그 자체가 태생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사실’이 아닌 매우 철저하게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대중 상업오락물이다 보니, 관객을 부담스럽게 하는 수준의 ‘피 묻은 역사적 진실’ 따위는 대박을 위해서 돈을 위해서 과감하게 숨겨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도 두드러져 보이는 굵직한 역사적 진실의 암매장이나 왜곡이 몇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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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1 ── 5.18광주의 언론 ‘투사회보’
첫 번째는 지워져버린 역사적 진실은 5.18이라는 10일간의 항쟁을 始作(시작)시킨 인쇄물인 ‘투사회보’다. “살인마 전두환이 찢어 죽이자.”는 구호가 나오고 그 구호가 손 글씨로 제작한 현수막에까지 사용될 정도로 잔혹·참담했던 ‘국군에 의한 시민 학살’에 대해서 가장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대응했던 ‘투사회보 제작·배포 그룹’이 통째로 역사적인 암매장을 당해버린 것이다. “6.25전쟁 때도 이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는 할머니들의 증언만큼이나 무시무시했던 ‘시민들에 대한 국군의 무차별 도륙’을 광주시민들에게 폭넓게 인쇄물을 통해서 알려내고, 동시에 부당하고 반인륜적인 폭력에 대한 자위권 발동을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인 저항의 방법까지도 제시했던 ‘투사회보’가 5.18이라는 처절한 항쟁을 ‘始作(시작)’시킨 것이다.
지금 광주광역시의 ‘시외·고속버스 종합터미널’과 ‘현대-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있는 곳이 광천동인데 1980년 당시 이곳은 영세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던 곳이었다.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영세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았던 그곳에 전남대 출신의 윤상원·정재호·박기순 등이 운영하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들불야학’의 강학(야학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학강(야학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녹두서점’이라는 사회과학서점을 ‘편집실’로 삼아 ‘등사기(수작업 인쇄기기)’로 찍어낸 ‘투사회보’는 TV도 전화도 모두 끊겼던 1980년 5월 광주의 유일한 ‘언론’이기도 했다. 참고로 이 ‘투사회보’의 실질적인 운영자였던 윤상원은 당시 비합법 사회변혁운동조직이었던 ‘전민노련’의 조직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2 ── ‘수습’위원회와 ‘투쟁’위원회
야만의 학살에 대하여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의 무장과 저항을 주창한 ‘투사회보’에 의해서 시작된 5.18의 광주에는 2가지 세력이 있었다. 그 하나는 ‘시민수습대책위원회’였고 다른 하나는 ‘민주시민투쟁위원회’였다.
① ‘시민수습대책위원회’
경찰서나 예비군 무기고 그리고 화순탄광에서 획득한 화기를 가지고 공수부대와 교전을 벌이기 시작한 시민들은 전남도청에서 매우 가깝고 당시로서는 광주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전남대병원 옥상에 2대의 중기관총을 설치하여 전남도청을 향해서 일제사격을 가함으로써 결국 공부부대를 전남도청으로부터 퇴각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공수부대가 물러간 ‘해방광주’에서 목사·신부·교수·명망가 등이 모여서 만든 것이 바로 ‘시민수습대책위원회’였다. 글자 그대로 ‘수습’을 목적으로 했던 이들이 주로 했던 일은 ‘투항’을 조건으로 계엄군 측과 협상을 진행했고 그 내용은 주로 ‘체포·구속된 사람들이나 무장한 시민군들에 대한 선처’ 수준의 것들이었다.
투항을 조건으로 선처를 할 계엄군이었다며 처음부터 도륙·학살을 시작하지도 않았었겠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투항’이라는 카드 이외에는 무엇인가를 해낼 생각도 의지도 자신도 없던 그들의 눈에는 그런 엄혹하고도 냉혹한 현실마저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리라고 짐작된다. ‘시민수습대책위원회’의 ‘투항을 전제로 한 선처 요청’은 그들의 몽상과는 달리 계엄군으로부터 아무런 반응도 전혀 얻어내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전남도청에서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② ‘민주시민투쟁위원회’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조용히 전남도청에서 증발해버린 그들의 공백을 매운 것이 바로 이른바 ‘항쟁지도부’로 불리는 ‘민주시민투쟁위원회’였다. ‘투사회보’ 제작진의 윤상원은 TV는 물론 전화까지도 단절되어 철저하게 고립된 광주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외국언론’ 뿐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이 ‘민주시민투쟁위원회’의 대변인을 맞는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 속에 광주의 진실을 남겨두기 위한 ‘죽음 저항’을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야기되어지고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한 미녀 연예인을 앞세워서 묘사한 ‘한 여성의 가두방송’도 바로 이 ‘민주시민투쟁위원회’라는 ‘항쟁지도부’ 조직적인 활동의 일환이었다.
생각해 보라! 공수부대가 전남도청을 공격해 들어갔는데 ‘텅 빈 도청 건물’만이 양민을 학살하고 도륙한 공수부대를 맞았다면, 5.18은 ‘간첩과 부랑자들의 폭동’으로 역사에 기록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힘들지 않은가? 이미 김영삼 정권 때부터 복권되기 시작했음에도 여전히 ‘518은 빨갱이들의 폭동’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일해공원’의 시민들이 있는 2007년의 현실을 볼 때, 1980년 당시 ‘민주시민투쟁위원회’의 결단은 역사적 진실이 암매장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처절한 역사의식의 발현이었다.
③ 한국 신보수주의의 정신적 뿌리,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영화에서는 가톨릭 신부 한분이 ‘항쟁지도부의 전남도청’을 방문하여 27일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 신부는 ‘시민수습대책위원회’의 일원이었던 ‘조비오’ 신부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투항을 전제로 한 수습’이 실패하자 전남도청에서 증발해 버린 사람 중의 하나다. 이후 그는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정치)를 ‘실천-집행’한 김대중 정권이 만든 ‘5.18기념재단’의 초대이사장이 된다. 물론 그 뿐만이 아니다. ‘시민수습대책위원회’의 일원이었던 ‘강신석 목사’ 등도 그 ‘5.18기념재단’의 이사장이 된다.
물론 그분들이 5.18 ‘시민수습대책위원회’ 활동을 팔아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도지사나 시·도의회 의원이나 구청장·군수나 군·구의회 의원을 해먹지는 않았으니 그분들을 나무라거나 타박을 하거나 비판을 할 이유도 그럴 생각도 전혀 일절 없다. 그러나 5.18은 이미 신보수주의를 ‘구상-기획’한 김영삼 정권 때부터 마치 4.19처럼 화석화 박제화 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이미 그 화석화 박제화가 완성된 지 오래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시민수습대책위원회’의 정신은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한국 신보수주의의 뿌리가 되었고 지금도 한국 신보수주의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보인다.
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3 ── 518 당시 고교생의 희생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교사들의 제지를 뚫고 집단적으로 518에 가담했다는 설정은 상업적인 ‘감동’을 만들어 내기 위한 설정인 것으로 보인다. 5.18 때 죽은 고교생은 광주 대동고등학교(현직 국회의원이자 과거 전남대 삼민투 짱이었던 강기정씨의 모교이기도 하다) 재학생이었던 한 학생이 전남도청 옆의 노동청 앞에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 당시에 사살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 ‘해방광주’ 시기에 헌혈을 하고 오다가 헬기(UH-1H, 배트남 민족해방사회주의혁명전쟁이었던 월남전을 소재로 하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헬기)에서 발사된 기총소사(항공기에서 지상으로 퍼붓는 기관총 사격을 지칭하는 용어)를 당해서 사망한 한 여고생의 경우와 유사하게 사망한 경우다 대다수다. 유혈사태를 전해 들으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퇴근해서 올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공수부대의 총격에 사망한 한 임산부와 비슷한…… 또는 저수지에서 목욕을 하다 공수부대의 총격에 사망한 초등학생들과 비슷한……
광주에서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집단적으로 집회·시위에 참가 한 것은 2번 있었다. 한 번은 4.19 때 ‘광주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들의 결사적인 저지에도 불구하고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시작되어 광주·전남의 상당수 고등학교로 번져나갔던 사례가 있고, 다른 한 번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 역시나 ‘광주고등학교’ 학생들 150~200여명이 운동장에서 모여 교사들의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운동장을 빠져나가서 200여 미터를 행진하다 경찰과 30여 분간 대치하다가 자진해산한 사례가 있다. 4.19의 사례는 사진이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87년 6월 항쟁 당시의 경우는 ‘87년 6월 항쟁’ 당시 대학생들에 의해서 복간된 ‘투사회보’에 실리기도 했었다.
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4 ── 시민군의 구성
5.18 당시 ‘항쟁지도부’였던 ‘민주시민투쟁위원회’의 핵심을 맞았던 직업군인들의 전술역량은 지금생각해도 놀라운 것이다. 영화상에는 전남도청 맞은편의 ‘전일빌딩’ 옥상에서 안성기가 중기관총 한 정으로 도청을 향해 발포함으로써 공수부대가 퇴각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 5.18당시 ‘민주시민투쟁위원회’의 위원장과 다른 주요 직책들은 대부분 직업군인 출신의 예비역들이었다는 영화상의 설정은 매우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다. ‘군입대 거부’를 맹목적이고 관념적으로 미화시키며 부질없는 흑백논리로 영웅화시키는 요즘 일부 좌파운동그룹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게 당시 광주시민들의 생명과 안위를 지켜내고 ‘해방광주’를 보위·사수하던 시민군의 절대다수는 군대를 다녀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윤상원도 그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인정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가 맞은 직책이 바로 ‘항쟁지도부의 입’인 대변인이었던 것 같다. 사실 해외여행을 해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주눅 들어서 쫄지만 않는다면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거의 불편함을 못 느끼면서 자유롭게 먹고 입고 자고 심지어는 놀기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윤상원은 당시로서는 무척 들어가기 어려웠던 ‘전남대’ 졸업생에다가 서울 봉천동에서 ‘국민은행’ 은행원으로 근무했다가는 ‘사회변혁운동’을 위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광주로 내려와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을 하면서 비합법 사회변혁운동조직의 조직원으로 활동했었던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묘사된 화염병 제작이나 무기고 습격도 ‘투사회보’의 선동내용이었다. 그러니 영어에 대한 부질없는 콤플렉스도 없고 정치·사회적으로 정연한 논리의 피력이 가능했으며,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항쟁지도부’다운 저항성과 혁명성을 두루 갖춘 그가 ‘외신기자’를 상대하는 ‘광주의 입’인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은 ‘민주시민투쟁위원회’에서 당연한 상식처럼 생각되어졌을 것이다.
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5 ── 시민군의 군사적 전술 역량
어째든 영화에서는 전남도청 맞은편의 ‘전일빌딩’ 옥상에서 안성기가 중기관총으로 도청을 향해 사격함으로써 공수부대가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애국가와 동시의 집단발포’가 이뤄 졌을 때 공수부대는 영화장면에서처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을 맞춰 나란히 서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전일빌딩 옥상’과 ‘도청 옥상’에서도 총격을 가한다. 즉 ‘전일빌딩 옥상’에는 이미 공수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제 공수부대가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당시 광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전남도청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전남대 병원 옥상’에 중기관총 2정을 배치해서 도청을 향해서 집중사격을 가했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전남대 병원 옥상’ 그것도 ‘전남도청’과 매우 가까운 그곳을 간과하고 있었던 한국 최고의 공수특전단 현역 지휘관들이, 시민군 지휘관으로 나선 예비역 직업군인들의 ‘군사적 전술 역량’에게 패배한 것이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향토예비군’의 승리라고 쯤 하는 것이 적절하고 문안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한편 영화에서는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진입할 당시에 전남도청 정면을 통해서 진입했고 전남도청 뒤편은 비어 있어서 택시기사였던 남자주인공이 전남도청 뒤편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계엄군의 작전상황 기록에 따르면 무등산 자락의 조선대 뒷산인 깃대봉으로 퇴각해 있던 공수특전단이 전남도청에 최초로 진입하는데 이들은 전남도청 뒷담을 넘어서 진입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남도청 맞은편 ‘전일빌딩’이 갖는 전남도청 방어전술상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던 시민군 지휘부가 이미 ‘전일빌딩’에도 상당수의 시민군을 배치해 뒀기 때문이다. 실제로 27일 아침 계엄군의 상황을 찍은 외신기자의 비디오 화면이나 기록사진에서도 ‘전일빌딩’에서 끌려 나온 시민군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즉 27일 새벽의 전남도청 방어전투에서도 광주의 평범한 향토예비군들인 시민군은 한국 최강의 현역 공수특전단 지휘부를 능가하는 빈틈없는 ‘군사전술역량’을 보여준 것이다.
끝으로 부질없는 가십거리를 하나만 첨부한다. 택시기사로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이 공수부대에 체포되어 군차량에 실려 가다가는 다리위에서 공수부대 2명을 제압하고 강으로 뛰어들어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데 이것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우선 속 옷차림의 남성은 ‘단독군장(군복무를 했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군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이것을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을 한 군인 단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투화로 한방 질러버리면 게임은 영구히 완전히 무조건 끝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2명을 어떻게…… 또한 어찌어찌 2명의 군인을 제압하고 강으로 뛰어내렸다고 치더라도 공수부대 4~5명의 총격을 피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과거의 M1소총과 지금의 K2소총 사이에 한국군의 기본화기였던 M16A1소총은 각개전투에 있어서 휴대하기는 매우 불편하지만 명중률 하나는 높다. 나도 250M 거리의 사람 머리 크기만 한 표적을 20발 중에 18~19발을 명중시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공수특전대원 5~6명이 불과 10~20M 앞의 표적을 놓쳤을 리가 없다. 저수지에서 목욕하고 있는 초등학생들도 사살했던 명사수들이었으니 말이다.
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6 ──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심야차량 가두방송은 전혀 일절 없었다.
영화에서는 ‘해방광주 최후의 날’인 27일 시민군이 ‘전남도청’ 안에만 있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도 사실이 아니다. 시민군은 금남로 끝부분인 ‘수창초등학교 앞 육교’나 ‘계림초등학교 앞 육교’나 ‘화정동 육교’에도 중기관총과 함께 시민군들을 배치했었다고 한다. 그랬으니 영화 속의 미녀 연예인이 묘사하는 그런 심야의 차량 가두방송이 가능했었지 않겠는가? ‘자살’만을 목적으로 도청에만 모여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그런 방송을 했을 수가 없다. 실제 그 심야 차량 가두방송의 내용은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敗北主義(패배주의)가 아니었다. “우리가 시내 곳곳에서 앞장서서 싸우고 있으니, 시민들이 나와서 인간의 숲을 이뤄주면 계엄군들이 우리들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의 방송이었다. 오락용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여러 지점에서 ‘민주시민투쟁위원회’의 ‘혁명광주’의 정신을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식의 敗北主義(패배주의)와 妥協主義(타협주의)로 변질시키는 내용들이 곳곳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대중 상업오락물과는 다른 실제의 ‘역사적 진실’ 7 ── ‘미국’ 그리고 ‘북한’
영화의 한 장면을 차지하는 부산 앞바다의 ‘미군 항공모함’! 한국사회변혁운동사에서 ‘사회과학의 대중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역사적 사실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전국의 대학가의 학생운동판에서 ‘반미’나 ‘친북’이란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소비에트연방’ 흉내 내기 식의 운동이 1980년대 초반의 대학가 운동권의 전형적이고 일반적이며 대부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광주학살’을 ‘묵인·방관 또는 보호’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영원한 수호천사 미국’이라는 생각들이 바로 이 ‘미군 항공모함’에 의해서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른바 그 유명한 ‘부미방(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난다.(미문화원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을 대피시키면서 방화를 했다는 면에서, 경찰 8명의 목숨을 빼앗은 부산 ‘동의대’의 ‘과실치사’ 방화사건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건이다)
그러나 ‘부미방’에도 불구하고 ‘반미·친북’적 사고나 발언은 운동권 내부에서조차 대학가 술집의 골방에서마저도 금기·금단의 것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사건이 터지면 “철없는 학생들이 한때 세상물정 모르고……”했던 사람들도 ‘반미·친북’의 사건이 발표되면 “저런 역적놈들이……”로 취급할 정도의 사회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그 ‘금기·금단’을 무릅쓴 ‘역적놈들’이 한국학생운동의 절대다수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NL주사파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어째든 영화 속 부산 앞바다의 ‘미군 항공모함’ 장면에서 가톨릭 신부가 제시하는 ‘외국신문’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광주는 TV도 라디오도 전화도 신문도 완전하게 두절된 고립무원의 땅이었기 때문이다.(영화에서는 도청을 접수한 시민군이 TV를 통해서 뉴스를 보고 있던데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 그리고 하나 더 분명하고 또한 그래서 흥미로운 것은 그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곳곳에서 태극기가 사용되었던 518에는 ‘김일성은 오판하지 말라!’는 문장도 현수막으로 제작되어 실제 외신기자의 사진에 찍히기까지 했었을 정도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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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규명투쟁과 ‘운동권’의 대중화
‘시민수습대책위원회’는 그렇지 않았지만, 비합법 사회변혁운동조직의 조직원이었던 윤상원의 ‘민주시민투쟁위원회’는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그들의 선택대로 공수부대에 의해서 사살 당함으로써 ‘5.18광주민중항쟁’을 역사에 무모(?)하고 과격(?)하게 아로 새긴다. 그리고 ‘5.18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투쟁이 1980년대의 대학가와 거리와 광장을 뜨겁게 달군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대학생들은 대부분이 이런 ‘5.18의 세례’를 받았고 이른바 ‘운동권(원래는 사회변혁운동권이었으나 민주화운동권으로도 해석됨)’이라는 단어가 일반대중들 누구나 사용하는 용어가 되게 했다. 물론 그들 중에도 ‘민주시민투쟁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전남대생 ‘박관현’이다. 그는 1981년 ‘광주교도소’에서 43일간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사회민주화’를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다 결국 43일 만에 제 목숨을 내놓는다. 한국 ‘사회변혁운동’의 심장에는 언제나 518 광주의 ‘민주시민투쟁위원회’가 새겨 놓은 피 묻은 역사와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중적으로 대중적으로 퍼져나가던 ‘5.18진상규명투쟁’과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결국 ‘1987년 6월 항쟁’을 ‘87년 7·8·9노동자대투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5.18 당시에 부산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배치하면서까지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묵인(또는 승인)했던 ‘미국’에 대한 반대운동도 일어났다. 결국 이러한 고민과 사고들은 ‘사회과학’적 사고의 대중화를 불러 왔고 대학가에는 이른바 ‘운동권 메이저 캠’의 경우 대학교 한 곳에 2~3곳의 사회과학서점이 성업하기도 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을 주장하는 ‘안병직’씨의 ‘식민지半(반)자본(봉건)주의론’과 ‘反(반)자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는 ‘박현채’씨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생겨나 논쟁하기에 이른다. ‘미국 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이라는 주장을 따르던 絶對多數(절대다수)의 이른바 NL주사파 학생운동권들은 북한에서 수입된 ‘주체사상’의 세례를 받으며 ‘자주·민주·통일’을 외쳤다. 반면에 ‘反(반)자본주의의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주장을 따르며 100년 전의 유럽·러시아 혁명사에 빠져들던 極少數(극소수)의 학생운동권들은 ‘소비에트연방’의 모델을 지향점으로 삼으며 ‘민중·민주·통일’을 외쳤다.
세계사의 지각변동 그리고 한국 사회변혁이론의 지각변동
그러나 100년 전의 유럽·러시아 혁명사에 심취해 있던 이른바 ‘PD’의 투철한 신념과는 정반대로 1991년 ‘소비에트연방’은 불과 100년도 채우지 못하고 붕괴해버렸고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도 중국도 베트남도 모두 모두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해 버렸다. 또한 다수 NL주사파들의 믿음이나 기대와는 다르게 북한에서도 아사자가 30만 가까이 속출했고 어린 꽃제비들은 시장바닥에 버려진 음식물을 주워 먹었으며 부녀자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되는가 하면 탈북을 감행해서 한국으로 와서 정착한 이른바 ‘새터민’의 수만 해서도 이미 1만 명을 훨씬 넘은지가 5년이 넘어선 상황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이론상으로도 ‘미국 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을 주장하던 ‘안병직’씨의 ‘식민지半(반)자본(봉건)주의론’은 본인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오류가 시인됨과 동시에 철회·폐기되었으며, 그와 대조적으로 ‘反(반)자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박현채’씨는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여기서 하나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흥미로운 것은 안병직 씨가 자신의 이론적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철회하면서, “종속적인 한국경제는 필히 붕괴되고 자립적 사회주의 사회가 전개될 것으로 예측했던 것은 이론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자본주의 경제인 한국경제는 어느 정도의 종속성과 자립성을 동시에 갖는 것이 당연하고, 사회주의는 이제 더 이상 전망이 없으며 자본주의 내에서의 발전 밖에 할 수 없다.”라고 표명했었던 사실이다. 이분의 주장에 공감하던 1980년대 중후반의 NL들은 이분이 이런 말을 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관심도 없다. 뿐만이 아니라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자주·민주·통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의 ‘집단 자의식 속의 신앙’ 비슷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들에 대한 대대적이고 전방위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운동권 출신’들
‘수구·보수·기득권세력’에 대한 반감과 염증 그리고 ‘운동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의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운동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사실 그런 경우이고, 과거의 ‘새정치국민회의’니 요즘의 ‘열우당’이니 가장 최근의 ‘무슨무슨대통합신당’이니 하는 따위의 이른바 386국회의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권력에 접근해 들어가면 한국사회가 더 살기 좋고 평등해질 것이라는 철없고 순진한 기대는 여지없이 헛물을 켜고 만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권의 세월 동안 기획-입안-집행 해 온 정책들은 그들이 출세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민중들을 또 다른 새로운 ‘복잡하고 머리 아프고 이론적이고 까다로운’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그들 김·김·노와 운동권 출신들은, 민중들을 정치사회적으로 억압하던 군사독재가 사라져서 생긴 빈자리에 이러한 새롭고 독특한 ‘민중의 적’을 만들어서 민중들에게 선사한다. 그것은 바로 870만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양산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로·통신·에너지·보건의료·교육·상하수도·철도 등의 공공부문 영역에 대한 사유화·시장화·개방화라는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추진하는 정치)’였다. ‘전라도의 대부’인 김대중 정권의 ‘운동권 출신’ 이해찬 씨의 경우만 보더라도 대놓고 당당하게 자신을 신보수주의라고 천명하고 나선지가 이미 10년을 경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투사였었다. 그는 혁명가였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신보수주의’를 대놓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실천해가고 있는 그런, 노동자·민중의 主敵(주적)이 된지가 10년이 넘었다.
‘수구·보수·기득권세력’ 對(대) ‘386운동권 출신의 친북 좌파’
‘수구·보수·기득권세력’들도 이런 ‘신보수주의정책’에 적극 찬동이니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과 속궁합이 잘 맞아서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된다. 다만 하나, 대 북한정책과 미국에 대한 자세에 있어서만 아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두 측면 때문에 서로 상대방에게 ‘수구·보수·기득권세력’이라거나 또는 ‘친북 좌파’라고 비난하면 지지층 유권자들을 현혹시켜서 결집시킨다. ‘수구·보수·기득권세력’로 불리는 한나라당은 ‘때려잡자 김정일’이고 동시에 ‘큰형님의 나라 미국’이라는 입장이며, ‘친북 좌파’로 불리는 386운동권 출신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적당히 이용해 먹자 김정일’이고 동시에 ‘형님의 나라 미국’이라는 입장이다.
‘형님’이나 ‘큰형님’에 별 차이가 없으니 유권자들의 표를 모를 방법은 ‘대 북한정책’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386운동권출신들에게 ‘친북 좌파’라는 표찰을 붙임으로써 아주 손쉽게 수구·보수·기득권 유권자들의 ‘눈먼 표’를 긁어모으고 있다. 또한 386운동권출신들은 2번이고 3번이고 반복해서 ‘반한나라당(수구·보수세력)전선론’을 써먹으면서 ‘6.15남북공동선언’ 따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과거 자주·민주·통일이라는 NL주사파 정치구호의 세뇌를 받았던 민주화운동 지지 유권자들의 ‘눈먼 표’를 긁어모으는 것이다.
‘신보수주의’를 한국사회에 구현해 냄으로써 민중들을 전혀 다른 ‘복잡하고 머리 아프고 이론적이고 까다로운’ 수렁 속으로 빠뜨린 386운동권 출신들이나, ‘신보수주의’를 지지·찬동하는 수구·보수·기득권세력이나 민중들의 주적이기는 매일반이다. 수구·보수·기득권세력의 한나라당이 다시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를 재현해 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에는 더욱 더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기가 어렵게 되어버렸다.
사유재산화·시장화의 세계화와 한국사회의 미래
교통·통신·전기·수도·교육·의료·에너지·식량·문화 등의 모든 공공의 영역까지 모조리 ‘사유재산’화하고 시장화 함으로써 국가·사회 공동체의 公益(공익)을 고려하는 그 모든 요소를 없애고, 교통·통신·전기·수도·교육·의료·식량·문화를 가지고 민중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쳐먹을 수 있도록 장려하는 ‘신자유주의’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신보수주의’정치가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 한국사회가 봉착한 ‘샌드위치 위기(삼성자본의 이건희의 표현으로 일본경제에게 눌리고 중국경제에게 뜯기는 한국경제를 표현한 말)’는 정확한 지적이라고 보인다. 뭔가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경제 질서가 아니면 ‘장기불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정규직의 철폐와 각 부문영역의 공공성 강화’ 따위의 左向左(좌향좌)의 정책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비정규직 유지나 확대 그리고 한-미·EU FTA’ 따위의 右向右(우향우)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현재 선택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 그대로 ‘우향우’고, 민중들을 재물로 하는 이러한 우향우는 그 알량한 ‘운동권출신’들이 앞장서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사회변혁운동권’들 중에는, 노동운동·농민운동·도시빈민운동 그리고 시민운동까지 20년 넘게 그리고 여전히 완전히 석권하고 있는 ‘NL주사파’ 출신들이나 그 영향권 내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신보수주의’를 추진하는 청와대와 국회의 386들에게 남다른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저들처럼 立身揚名(입신양명)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특히 ‘통일’이란 말만 들으면 ‘무조건 반사 신경’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내줘버린다.
1980년대 초반 전국의 학생운동권들 속에서 절대적이고 유일한 강자였던 ‘親(친) 소련 사회주의’ 출신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무능·무기력하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소수자로 전락한지가 20~30년째다. 노동운동·농민운동·도시빈민운동 그리고 시민운동까지 그 어디에서도 변변하게 주류질서를 형성하고 있지를 못하다. 그렇지만 2007년 현재 민중들에게 끼치고 있고 또한 앞으로 끼치게 될 ‘신보수주의’의 悖惡(패악)에 대해서 상당히 사실적으로 잘 예측하고 있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무능·무기력과 非(비)대중성은 1980년대 이후 보여준 그들의 非(비)대중성이나 무능·무기력과 대조해보아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수준이다. 그들이 30년째 읽고 있고 또 읽히고 있는 아카데미즘적인 ‘100년 전의 유럽-러시아 혁명사’도 그리고 그들의 ‘자기만족적 수준의 습관이 일종처럼 하고 있는 헌신적인 활동’도, 우향우를 하고 있는 4700만의 한국사회를 좌향좌 시키기에는 전혀 일절 절대로 가당치 못한 매우 볼품없는 힘(力)이다.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니며 똥도 아니고 된장도 아닌 민노당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제처럼 한국도 결국 ‘구보수:신보수’의 양당체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NL주사파’ 출신들에게는 한국사회의 우향우를 대역전시켜서 좌향좌 시키고자 하는 의지 그자체가 전혀 없고,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그럴만한 실력이나 힘은커녕 노동운동·농민운동·도시빈민운동에서 마저 30년째 비주류생활만 하면서도 자신들의 신앙심과 활동습관에 대해서는 전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맹목성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의 우향우는 계속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자체에 태생적으로 내재된 모순’이 파국을 자초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만약 그 파국이 온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으면 했지, 실력으로 ‘혁명의 시대’가 쟁취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2007년 현재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볼썽사나운 사람들은 의외로 국회의원들이나 노무현이 아니다. 각 부분·영역운동에서의 그럴듯한 한자리를 차지해 봄으로써, 그것을 근거로 하여 하다 못해서 ‘시·도의회 의원’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몽상을 갖고 있는 나이 드신 선배들이 흔해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볼썽사납게 느껴진다. 어른이 어른노릇을 못하고 선배가 선배노릇을 못하면, 또는 어른이나 선배가 없는 사회가 가게 될 곳은 패배의 길 뿐이다. 몇몇 선배와 어른은 입신양명에 성공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2007년 현재 한국사회변혁운동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다.
엔딩 크레딧( 영화 끝날 때의 자막부분)
작년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올해의 ‘오래된 정원’에 이어 사전 예약은커녕 상영시간 조사마저도 없이 그것도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그 큰 상영관에서 10여명만이 있는 조건에서 쾌적하게 영화를 관람했다. 할인카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기가 미안해서 그냥 7,000원 다주고 봤다. 영화 관람료 나에게는 너무 비싸다. DVD 빌려보면 초고화질에 중간에 스톱시키거나 리턴했다가도 볼 수 있고 여러모로 편리한데도 1,500원이면 되는데…… 나로서는 돈이 아깝다. 그 돈으로 술안주나 좋은 것으로 살 것을 그랬다. 내가 아니라도 어차피 돈은 ‘분위기나 이미지’를 즐기고 그래서 영화에 환장한 젊은 친구들이 모아 줄 것이니 말이다. 그들이 롯데시네마니 CGV니 하는 따위의 사실상의 물주니까!
── 끝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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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전교조 조합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