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비정규직, 하늘에서 울다”
‘미디어 참세상’에 접속하여 들어갔다가 민노총 부위원장인 비정규노동자 주봉희가 어제, 까마득히 높은 광고탑 위에 혼자 올라가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이랜드 박성수를 구속하라’고 울부짖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 나는 그가 속으로 울부짖은 말이 무엇일지, 안다. “민주노총아, 어째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싸움을 이렇게밖에 거들지 못하느냐? 비정규부문 담당 부위원장으로서 나는 그저 ‘민주노총도 함께 하고 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 면피용으로 파견한 사람 밖에 아니지 않으냐.”
지난 일요일 홈에버 목동점에서의 투쟁문화제때 그는 대회가 끝날 무렵, 사회자(주최측)과의 사전 상의도 없이 불쑥 나와 마이크를 잡고는 “이 자리에 민주노동당만 있고, 민주노총이 없습니다. 동지들, 잘못했습니다!”하고 외치고는 엎드려 큰 절을 올리고 들어갔다.
* 참세상 동영상은 주봉희가 까마득한 광고탑 위에서 울부짖는 광경이 나올 때 구슬픈 여자의 노래가 잔잔히, 저녁 물살처럼 잔잔히 흘러나왔다. 그러나 나는 주봉희의 슬픔을 ‘슬픈 노래’로 감싸 안는 것은 어쩌면 ‘부정직한 결론’으로 이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사회주의 예술가 브레톨트 브레히트가 그러했듯이 ‘그 슬픔을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주봉희의 몸부림을 의미있게 이어가는 일이 아닐까? 한참 울고 나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후련해진다. 울음은 흔히 자기를 위안하는 행위로 흐를 수 있다.
* 이랜드 싸움과 관련하여, 얼마쯤이라도 투쟁을 거든 사람들은 속으로 스스로 흐뭇해진다. “그래, 나는 나름껏 함께 했어. 아마, 이 싸움도 잘 되겠지.”
그러나 이 일을 제대로 살피려면 관점을 근본적으로 옮겨야 한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싸움을 우리가 어떻게 거드느냐?”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이 싸움에, 이랜드투쟁이 어떻게 결말지어지느냐에 따라 앞으로 ‘자본이 비정규직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될 것이고, 비정규법이 개정되는 내용이 (자본의 주문대로냐, 노동이 주문하는 쪽이냐) 달라질 이 싸움에 민주노총이 어떻게 나서느냐”하는 쪽으로!! “이랜드노동자들이 얼마나 잘 싸우느냐”라는, 잘못된 관점에 설 때는 민주노동당은 ‘그럭저럭 도와주었다’는 표정을 짓고 민주노총도 ‘변변찮았지만 애쓰기는 했다’고 둘러대며 겸연쩍게 달아날 소지가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자기 문제를 어떻게 풀었느냐’라고 정면으로 들이댈 때, 민주노동당도 자랑스런 표정을 짓기 어렵고, 민주노총은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 아마 이랜드 싸움은 십중팔구 패배할 것이다. 주봉희는 울부짖는 행동을 통해, 이 사실을 넌지시 암시해주고 있다. 정말 치열하게 붙어야 할 싸움이 일어났는데도 민주노총이 위력 있는 총파업이나 대중파업을 조직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 싸움을 승리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전면 법개폐가 거론되어야 할 마당에, 사회여론을 유리하게 이끄는 정치사업과 ‘차별 철폐’의 근본 의제를 들어올리는 정치투쟁에 민주노동당이 본때있게 나서지 못하고, 고작해야 ‘현장투쟁 지원’에만 열심인데 이 싸움을 승리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 아닌가? 이랜드 박성수에게 약간의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잖은가. 주봉희는 지도부회의를 열어 ‘총파업’을 논하고 여러 하부 조직들을 닦아세워 투쟁동력을 일으키는 일에 매진해야할 시기에 광고탑 위에 올라갔다. 前者의 실천을 해내지 못하는 무력감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개인적으로 몸부림을 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슬프고 감미로운 노랫가락이 흐를 때 동영상의 스위치를 끄고, 변변하게 승리한 일이 한번도 없는 여지껏의 계급 투쟁 과정을 가슴 저미게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가?
* 아, 추락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 어제 기습적으로 발표된 ‘남북 정상회담’도 민중운동의 앞날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남북의 경제에 숨구멍을 틔우고 긴장완화의 흐름이 더 자리잡는 대신에,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요구는 더 함부로 탄압받을 위험이 높아졌다. 당장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쪽으로 몰려왔을 표들의 상당 부분이 ‘남북 긴장완화/경협’을 이뤄낸 열우당 쪽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남북 긴장완화의 흐름 속에서 민노당과 민노총이 (열우당보다도 더 선명하고 강력하게) 이뤄낼 일이 딱히 없고, 그렇다면 진보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높일 계책이 뾰족하게 나오지 못한다. 이 첩첩산중에서 어느 길을 뚫어야 할까?
* 어느 서러운 비정규 운동가는 퍼붓는 장대비 속에서 울었다. 우리는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남한의 진보운동이 ‘환골 탈태’할 길을 찾아 나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