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네티즌들의 제보 3건, ‘화려한 휴가’에 대한……
몇 곳에 올려 둔 ‘화려한 휴가’에 대한 논평을 접한 몇몇 네티즌들이 3가지 제보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추가로 올려봅니다.
추가 1 > 과감하게 생략되어버린, 도청 앞 광장에서의 ‘민주화성회’
1980년 5월 광주는 저 유명한 프랑스 ‘파리코뮨’을 훨씬 능가하는 평화와 자치로 유명하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상당한 자치력을 발휘하는데 그 핵심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도청 앞 광장에서 몇 차례 열렸던 ‘민주화성회’다. 전남 도청 앞 분수대를 연단으로 삼아서 몇 차례 진행되었던 이 ‘민주화성회’에서는 ‘누구든 발언하고 모두 함께 토론’했던 자치력의 증명이었다. 또한 평화의 측면으로는 절도사건이나 폭력사건이 몇 건 보고된 것으로 알려진 ‘파리코뮨’ 기간과는 달리, ‘5월 광주’의 10일 동안은 단 1건의 절도사건도 폭력사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이런 광주의 정신을 지칭하여 ‘大同(대동)정신’이라고 불렀다. 1980년대 ‘5월 진상규명투쟁’ 당시에도 이런 ‘대동정신’ 때문인지, 광주에서는 저녁식사는 길거리에서 시민들이 무료로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의 식품들로 해결할 수 있었다.
추가 2 > 시민군 구성의 주요한 한 축, 서민층 축에도 못 들었던 무연고자들
1980년 5월 이전의 광주에는 이른바 ‘넝마주이(등에 큰 대나무통을 매고 다니면서 헉옷이나 폐지를 수집해서 팔았던 사람들)’로 불렸던 무연고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1980년 5월 27일 공수특전단의 도청 진압 이후 완전하고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다른 지역의 ‘넝마주의’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원인으로는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를 떠올려 볼 수도 있겠지만 1980년 5월 27일은 ‘삼청교육대’는커녕 전두환이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1980년 ‘5월 진상규명투쟁’ 당시 광주시민들의 상당수는, 계엄군에 저항하다 사살당해 야상 등에 비밀리에 매장된 ‘암매장자’의 대부분을 바로 이들로 생각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망월동시립공동묘지가 아닌 다른 어느 이름 모를 야산으로 실려가서 암매장 당했다고 알려진 넝마주의 차림의 시민군들……
추가 3 > 축소된 희생자들의 참상, 그리고 고교생
영화에서 미모의 여주인공이 근무하는 병원이 등장하는데 이곳은 ‘광주적십자병원’을 묘사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 ‘광주적십자병원’의 참상은 사상자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왔었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병상 위에 누울 수 있었던 희생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개는 그냥 병실 바닥이나 복도에 누워야했었고 심지어 병원 현관 앞의 주차공간에까지 희생자들이 즐비하게 누워있었다. 당시 ‘광주적십자병원’이 전남도청에서 불과 몇 백 미터 거리에 있던 매우 가까운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공수부대의 도청 앞 집단발포 당시에 도청 옆 노동청 앞의 도로에서 사살 당했던 ‘유일한 고교생’인 대동고등학교 학생의 이름은 ‘전영진’이다. 그리고 그의 부친인 ‘전계량’씨는 이후에 전두환 정권 당시에 ‘5월 유족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노환으로 작고하셨다. 그리고 계엄군이 광주에서 물러간 이후 ‘광주적십자병원’으로 가서 헌혈을 하고 광주천변을 따라서 귀가하던 중에 계엄군의 ‘UH-1H’ 헬기 기총소사로 사망한 여고생은 전남여상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이다. 그리고 이 2학생 중에 ‘전영진’ 학생은 1980년대 말에 그리고 전남여상 학생의 경우 1990년대에 모교에 추모비가 건립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