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맑시즘을 주창하고 ‘콤뮨’을 말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한때 ‘국민승리 21’에 참여했다가 그 우경화된 노선에 반발하여 탈퇴했다는 것도 기억이 나는데 그렇다면 이른바 ‘좌파’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 그런데 한겨레 10월 6일자에, 차베스 혁명을 둘러싼 지식논쟁으로 그가 글을 쓴 것을 보니 과연 그가 ‘좌파’인지, 아니면 사회주의자인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 의문을 품는 데는 긴 독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의 탈을 쓴 자본주의 혁명일 뿐”이라는 제목부터가, 목구멍에 커다란 가시가 콱 걸리는 것처럼 사람을 콱 막히게 했다. 오동잎 한 잎이 가을을 알리고, 수상야릇한 제목 하나가 그 글의 정체를 말해준다.
* “탈을 썼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나 할까? 예전에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을 거친 다음에야 사회주의를 지향할 수 있다”고 보았던 시절에,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 다시 말해 ‘자본주의 혁명’이란 것이 그렇게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지탄을 받았을까? ‘탈을 썼다’는 말은 그 주체들이 너무나 파렴치하고 부도덕하고 반민중적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는데, 차베스 정권이 아무리 ‘빈부 격차 해소’에 큰 진전이 없었기로서니 그런 지탄받을 말을 들을만하다는 것일까? ‘탈을 썼다’는 말은 스탈린에 의해 박해받은 트로츠키조차도 스탈린을 가리켜 퍼붓지 않은 그런 비난에 속한다. ‘불구 대천’의 원수에게나 쓰는 비난이라는 말이다. 무슨 연유로 차베스 정권은 오세철 교수를 화나게 했을까?
* 오세철 교수는 과연 누구를 편드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다. 글 앞머리에 그는 “올해 5월에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대학생 시위는 일어날 만하니까 일어났다”고 적었다.
“국민총생산도 늘었지만, 그것도 착취를 바탕한 것이며, 특히 협동체와 ‘미션’ 등으로 그럴듯하게 꾸민 비공식 부문의 고용 때문이다.” 이 문장은 참으로 유치 찬란하다. 차베스는 ‘기업가의 정권’이 아니며, 다만 아직도 경제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들에 대해 아직 본격적으로 손을 대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차베스 정권’이 기업들의 착취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업가들이 노동조합을 때려잡을 수 있게 차베스 정권이 앞장섰을 때나 퍼부을 말인데, 오히려 노동조합 간부들 일부는 (지금은 수그러들었지만) 한때 차베스를 쫓아내는 반혁명이 일어났을 때 엉거주춤하게 그 사태에 개입했더랬다.
‘미션 등으로 비공식부문 고용이 늘어난 것’은 대단한 치적은 아닐지 몰라도 ‘비아냥’의 대상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그는 그 고용이 늘어난 것도 비웃었다.
* ‘대학생 시위’를 두둔했는데, 그의 관점을 자못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80년대의 베네주엘라 대학에는 ‘좌파적 학생운동 그룹’이 얼마쯤 형성돼 있었지만, 90년대 후반 들어와서는 대학이 ‘부유층 자제들의 우익 학생운동’의 근거지로 탈바꿈했다. 마치 한국의 명문대학이 강남 아이들 천지로 바뀌었듯이 말이다. 그들은 ‘차베스 축출 반혁명’을 찬성하고 협력한 부분들이다. 오세철 교수는 베네주엘라의 부(富)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을 편들겠다는 것인가?
* 오세철은 베네주엘라 혁명을 오로지 ‘차베스’가 좌지우지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고, 민중운동은 그 ‘들러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미션’은 민중운동가들이 담당하고 있고, 베네주엘라 민중은 ‘차베스라는 지도자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낮다고 중립적인 관찰자들조차 인정하고 있다. 그의 안중에는 베네주엘라 민중운동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니 그의 역사관 변혁관이 과연 어떤 것인지 의문이 간다.
베네주엘라 민중운동의 현장에 가서 몇 달을 살다 온 사람이 전하는 에피소드. 한국으로 떠나오기 직전에 “앞으로도 차베스가 정치를 잘 할 것 같니, 아니니?”하고 같이 지낸 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가 화를 버럭 내더란다. “그래, 차베스가 언제까지나 잘 할지 여부는 모르겠어.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그러나 너는 질문을 잘못했어. 왜 혁명을 차베스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니? 우리 민중이 하는 거야. 차베스도 약간 거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 오세철은 베네주엘라의 변혁 주체세력에 대해 무엇인가 대단히 심기가 불편하다. 그래서 ‘악질 정권’에게나 씀직한 “탈을 썼다”는 표현을 갖다붙였다. 자신이 신봉해온 어떤 정치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원수로 삼은 것’일까? 하기는, 베네주엘라의 활동가들 사이에는 ‘스탈린주의는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이 확고하다고 한다. ‘국가관료들이 휘둘러 대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이 크다는 말이므로, 여전히 ‘국가 사회주의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 트로츠키주의 등등에 대해서도 그들이 별로 호감을 보이지 않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 사실이 화가 난다는 것일까?
** 추가 ; 한겨레신문은 다음 논쟁을 ‘김수행 교수’가 맡을 예정인데, 그는 “차베스 혁명의 미래를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우리는 지배세력의 논객이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그럭저럭 잘 될 거야”하고 말할 때, “너, 왜 예단하니?”하고 눈을 부릅뜨지 않는다. “응, 너는 그런 쪽으로 예측하니? 내 생각은 다르다”고만 말한다. “변혁의 앞날은 밝다”는 쪽의 ‘예단’에 대해서만 눈을 부릅뜬다. 왜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예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인가?
물론 우리는 신중하게 말하는 게 좋다. “그들의 혁명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그 주체들의 ‘태세’가 확고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할 일이다. 그저 ‘알 수 없어요’ 하는 노래만 부를 거라면 무엇하러 애써서 그 문제를 고찰하는 것일까? 그런 맥빠진 불가지론의 글을 누가 ‘유익하다’고 읽을까? 김수행 교수의 태도는 한편으로 ‘고답적’이고 한편으로 ‘무책임’하다.
* 들리는 소문에 ‘제법 한다’ 하는 지식인들이 문국현 캠프로 몰리고 있다 한다. 이른바 ‘좌파’ 경향으로 알았던 사람조차. 왜 그들이 가려면 권영길 캠프로 가지 않고, 문국현 캠프로 갈까? 진보세력 내에는 우파(자주파)만 비틀거리는 게 아니라, 좌파(평등파)조차 대열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좌가 아닐까?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통합력이 급속히 무너진다는 신호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