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은 '2중대의 길'로 치달으려는가??

민주노동당은 ‘2중대의 길’로 치달으려는가
---- ‘가치 연정’에 숨은 뜻은?
10월 14일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자신의 대선 운동의 방향을 밝혔다. 앞으로 대선에서 쟁점이 될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이 연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연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
② 한미FTA 국회 비준안이 기습 처리될지 모른다. 진보진영에 비상령을 선포한다.
③ 현장을 돌며 11.11 백만 민중대회를 조직하겠다.
④ 모든 대통령후보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 이행을 약속하라.
⑤ 후보 단일화는 필요하지만 권영길이 중심이 돼야 한다. ‘가치의 연정’을 제안한다.
비정규 철폐, 한미FTA 반대, 평화통일 중에 하나라도 찬성하는 세력과는 협상하겠다.

논란의 핵심은 ‘가치 연정’이 될 터인데, 이에 대한 언급은 당 게시판에 한둘 올라왔을 정도이고, 심상정 의원이 대중연설에서 범여권의 ‘단일화’ 이야기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민주노동당의 방침을 직접 겨냥한 말은 아니었다.
당의 진로를 좌우할 ‘연정’ 방침을 놓고 당 공식회의나 기구(이를테면 집권전략위원회)에서 토론한 바가 있는지 자못 미심쩍다. 혹시 거론은 되었을지 몰라도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으리라 보이고, 더군다나 ‘가치의 연정’ 표현은 금시초문이다. 아마 ‘후보가 곧 당’이라는 불문율(?)에 따라 선대위에서 정했나 보다. 아무튼 다소 늦기는 했으나, 당원 대중들이 이 개념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한다.

기초 사실부터 따지자. 범여권(정동영 신당, 문국현 신당, 민주당)은 ‘후보 단일화’를 바라는가?
‘후보 단일화’가 예전의 김대중 김종필 때나 노무현 정몽준 때만큼 폭발성이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야 어찌 되든 범여권의 처지에서는 ‘단일화’를 밀고 가는 것 말고는 재집권을 보장해줄 뾰죽한 수가 달리 없다는 사실이 너무 크다. 성사될지도 분명하게 단언할 수는 없으나(명분이 작고, 총선과 맞물려 있다), 범여권의 대부분이 바라므로 그 개연성은 꽤 있는 편이다. 문국현은 참신한 이미지를 당분간 내보여야 하므로 한동안은 소극적인 언사를 늘어 놓겠고, 범여권 후보 중에 지지율이 가장 높은 정동영은 단일화 요구가 다소 억울할 수 있겠으나 개혁보수세력 전체의 요구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범여권은 민주노동당까지도 ‘후보 단일화 대상’에 포함시키려고 할까? 아마도 성사 가능성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민노당은 ‘제 발로’ 단일화 무대에 걸어들어 갔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보자면, 범여권이나 이들을 응원하는 시민사회 세력이 미처 목청을 돋우기도 전에 민주노동당 쪽에서 “후보 단일화 협상에 합류할 용의가 있다”고 서두르는 느낌마저 든다. 출정식 연설에서 권후보는 “반한나라당 구도를 위해 나더러 대선을 포기하라는 말은 언어도단”이라고 펄쩍 뛰었지만, ‘가치 연정’이라는 애매모호한 화두가 ‘행간의 뜻’을 말해준다.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는 “문국현과 민노당도 단일화 프레임을 즐기고 있다”고 꼬집고, 민노당이 “가치 연정이라는 희뿌연 개념을 유포시키며 ‘제 발’로 단일화의 자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다”고 분석했다(10. 18일자). 며칠 뒤에는 ‘진보개혁’ 성향의 대학교수 28명이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으니, 원님이 동헌 마루에 올라선 뒤에야 뒤늦게 환영 나팔을 분 격이랄까.
때 맞춰 한 평론가는 후보 단일화에는 당 대 당 통합, 인물 연합, 정책 연합의 세 형태가 있는데 정책 연합이 바람직하다고 멍석을 깔았다.

권영길은 한때 문국현의 경제 공약을 가리켜 ‘이명박의 유한 킴벌리 버전’일 뿐이라 단언하고, “(자신의) 사람 경제와 한미 FTA는 양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며칠도 지나지 않아 “문국현의 실제 기업경영과 비정규직 문제는 나와 생각이 같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연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렇게 편리한 대로 말을 바꾸는 것은 이미 ‘후보 단일화’ 쪽으로 그와 당 지도부의 마음이 기울어 있다는 증좌다.
이는 그가 백만 민중대회를 조직하러 현장을 훑겠다고 다짐한 데서도 짐작이 간다. 지금의 귀중한 시간에 그는 조직된 노동자 농민을 주로 만난다는 말이다. ‘권영길의 만인보를 쓰겠노라’고 그는 자못 고급스럽게 말했지만 ‘파격 행보’라는 얼버무림 뒤에는 당 바깥의 대중을 향하여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즉 공중전)을 ‘많이’ 벌이지 않는다는 뜻이 숨어 있다. ‘고정 표’를 주로 다지면서 ‘후보 단일화’로 당 간부들의 정치적 입신의 활로를 찾겠다는 뜻이 아닌가? 그는 “백만 민중대회와 ‘가치 연정’을 대선 승리의 두 쌍끌이로 한다”고 일찌감치 밝혔다. “우리에게는 확실한 고정표가 있다! 그러니 대선과 총선에서 협력할 방안을 협상해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NLL 문제로 ‘수구 대 개혁’의 각을 세운 것도 흩어진 지지세력을 재결집하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을 정치협상에 불러낼 명분용이라 읽힌다. 노무현은 정치 공학의 대가가 아닌가. 최근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은 내 실수였다’고 한 그의 발언은 누구의 환심을 사려는 계산이었겠는가.

사태가 이러하니, 권영길이 ‘비정규, FTA, 통일’, 세 문제 중에 하나라도 통하는 세력과는 협상에 나서겠다고 한 발언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가치 연정’이란, “어떤 가치를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끼리 함께 한다”는 말이다. ‘어떤 지향과 태도’를 품고 있기만 해도 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NLL 문제를 돌파하려는 ‘태도와 지향’을 노무현이 보였으니, 그 돌파가 성공했든 안 했든 이미 노무현은 권영길에게 합격점을 받지 않았는가? 한미FTA를 원칙으로서 찬성하는 문국현도 ‘졸속 강행은 삼가겠다’고 말한다면 ‘태도’는 신중한 쪽으로 바꾸는 셈이니(게다가 이미 ‘비정규직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다짐하여 후한 점수를 받았으니) 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동영은 당내 경선에서 뽑힌 뒤, ‘차별 없는 성장’ ‘좋은 성장’을 부르짖으며 정치적인 자리를 한 발짝 왼쪽으로 옮겼다. 차별 없는 성장과 권영길의 ‘진보적 성장’ 사이에는 거의 차별이 없는 것 아닐까? 그러니 연립 정부를 세울 논리적 근거는 한둘이 아니다. 그리하여 성립하는 연립 정부는 비록 반쪽짜리일망정 자주파가 오매불망 그리던 ‘자주적 민주정부’를 실현한 것이 아닐까? 어차피 ‘자주적 민주정부’도 흐릿한 개념이니 말이다.

물밑 선거 흥정을 막아라

그런데 ‘가치 연정’의 모색이 말짱 헛된 거품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앞서도 말했듯이,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부터가 성사된다는 보장이 없고, 정동영으로 단일화될 경우는 민주노동당이 끼어들 명분이 더 약해진다. ‘단일화의 밥상’이라는 것이 떡 줄 사람(=국민)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될 수 있다. 당의 위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연립정부 자체도 말풍선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 과정에서 자주파 당원들의 ‘전략적 투표 이탈(=개혁보수세력 비판적 지지)’이든 일반 당원들의 ‘실망 이탈’이든 가속화될지도 모른다(지지자들의 후보 충성도는 권영길이 가장 낮다). 이미 당 내에는 패배감과 방관자 의식이 짙어져서 대선 출정식에 고작해야 팔백 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부득부득 한국노총을 찾아가서 ‘어용 비난’을 사과하고서도 푸대접을 받고, 민주노총에게는 항의를 받는 사태는 이런 당의 상태를 감안해야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민노당 지도부는 표가 될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벌일 태세이니, ‘가치 연정’의 알쏭달쏭한 명분을 내세워 어떤 무원칙한 물밑 거래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잠깐, 선거연합 ‘전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떤 전술이든 꼭 써야 하거나 결코 써서 안 되는 그런 것은 없다. 그것은 ‘전략’의 하위 개념이므로 합당한 전략에 의거한다면 실행할 수도 있다. 정당이 구성원들의 사상적 통일성이 대단히 높고, 얼마쯤이라도 대중적 지지를 확고하게 받고 있을 때에는 이른바 ‘정책 연합’이든, ‘연립 정부’든 수행할 수도 있다. 물론 혁신정당과 보수정당 간의 ‘보혁 연정’은 매우 이질적인 두 세력의 결합이므로 저울질이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왜 선거 연합을 규탄하는 거야? 그거,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하는 반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절대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자기 줏대(=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의 정체성)를 견지해내는 ‘연정’이라야 민주노동당에 득이 되고, 사회운동의 전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가치가 닮았느니 어쩌니’ 하는 얼렁뚱땅 흥정이 민주노동당을 또다시 개혁보수세력의 ‘2중대’로 전락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자본가 세력이 일방적으로 권력을 휘둘러대는 지금의 계급 지형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의석이나 각료 자리 몇 개를 보장받는 대신에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정치 구도에 그대로 말려들 염려가 대단히 높다. ‘보혁 연정’이란 대다수 당원과 지도부가 민주적 사회주의 이념을 튼실하고 견결하게 내면화한 정당이라야 위험을 무릅쓰고 벌여볼만한 전술인데, 솔직히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이 이념을 ‘시렁 위 부처님’으로 밀쳐놓지 않았던가?

‘연정’ 이야기는 왜 나왔는가? 총선의 형세를 보아하니 지역구 당선이 거의 무망하다는 암울한 전망이 배경에 깔려 있다. 어떻게든 정치 사업을 벌여 당 간부들의 정치적 입지를 찾기 위해서다! 간부들 중에는 조직 대중의 지지를 그러모아서 분발해 보자며 달콤하게 꿈을 꾸는 소리도 있지만(정성희의 ‘백만 송이 장미혁명’ : 1만 북소리의 장엄한 행진, 1만 실천단이 백만 대중에게 장미꽃 선물하기), 그런 꿈은 현실의 찬 바람을 만나면 0.1 초도 못되어 식어버린다. 그러니 안쓰러운 정치공학에 매달릴 수밖에. 대선에서는 후보 단일화(사퇴)를 놓고 범여권과 실랑이를 벌일 터이고, 내년 4월의 총선에서는 ‘당의 간판’을 유지하느냐는 문제까지도 물밑에서 논의될지 모른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꾀한다고 20년을 애쓴 덕분에 그나마 마련한 독자적인 진보정당의 거점조차 날아갈지 모르는 판이다. 답답한 것은 당원 대중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정치 굿판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평당원들이 당의 주인으로 나서자. 지도부가 굳이 ‘선거 연합’을 하겠다면 옳은 길이 무엇인지, 공론을 만들어 내자. 정동영 손학규와 그리 다를 바 없는 공문구의 구호 는 밀쳐 놓고 주택과 의료, 교육과 연금 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지금부터라도 토론하고 대안을 제기하자. 이번 대통령선거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원론에서 다시 검토하자. 모두들 경각심을 품어야할 때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가없음

    한마디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