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보전 직불제 목표가격 인하를 반대한다.’ ‘정부 쌀 작황조사 못 믿겠다.’ ‘자연재해 지역 피해 벼를 특별 매입해라!’ ‘대북 쌀 지원을 법제화 해라!’
쌀과 관련한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되면, 왜 이리 쌀쌀맞게 들리는지! 또, 그렇게만 와 닿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로 시작되는 릴케의 시(가을날)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난여름은 위대(?)할 만큼 혹독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기온 여파인지 여름내 아스팔트를 달구더니 立秋가 지나 處暑무렵까지 비가 내렸다. 추석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내습한 태풍 ‘나리’는 악몽 그 자체였다. 이래저래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쌀 농사꾼을 포함한 약자들에게는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그런 해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올 같으면 이 짓도 못 해 먹겠어!’ 평소 격의 없이 지내는 한 젊은 친구가 서류를 떼러 왔다가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서더니 무의식중에 내뱉는다. 자조 섞인 ‘이 짓도 못해 먹겠어!’라는 한마디에는 처절했던 여름날의 흔적들이 그대로 베어 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얘기를! 사실이 그렇다. 9월 한 달 동안의 강우량이 419 mm나 되고 비가 내린 날이 17일이나 되었다. 대자연의 심술(?) 앞에 초라하고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러니 곡식들인들 제대로 여물기나 했을까?
이는 쭉정이 뿐인 나락뿐만이 아니었다. 과일들이 그렇고 밭곡식도 그랬다. 끝물 수확을 앞둔 고추밭에는 탄저병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어른 한 뼘도 더 되는 고추들이 꼭지가 빠진 채 나뒹굴었고, 미처 털어내지 못한 참깨다발은 밭고랑 어딘가에서 썩어갔다. 또, 나락대신 심었던 논 콩은 잎만 무성한 채 생기다만 꼬투리에 곰팡이가 하얗게 피어났다. 겨우겨우 모양새를 갖춰가던 과일들은 때깔이 들기도 전에 강풍에 나뒹굴었다. 한 마디로 처참함과 참담함 그 자체였다.
두어 해 전에 歸農을 하여 ‘수확시기를 남 보다 앞당겨 햅쌀로 출하하고 후작을 준비하면 어떨까?’ 하며 조생종 벼를 심었다는 친구가 찾아왔다. 태풍 ‘나리’가 비껴만 갔어도 본전(?)은 건질 수 있었을 테인데! 하늘을 원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숙기가 다 돼 물꼬를 자르고 수확을 준비하려던 찰나에 태풍이 덮친 것이다. 흥건하게 고인 논바닥은 고사하고 폭탄을 맞은 것처럼 벼 포기들이 뒤엉켜 논바닥은 참상함의 극치를 더하더라는 것이다.
‘즈미 쓰버럴~ 비라도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보름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비가 내리더라는 것이다. 수확시기를 놓친 벼 이삭에서 파랗게 싹이 돋아 수확을 한다고 해도 기계 삯도 안 나올 것 같아 논바닥만 마르면 불이라도 처지르고 갈아엎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한다. 참으로 애가 터질 일이다. 듣고 있자니 남의 일 같지가 않고 미처 버릴 것만 같았다.
금년도 쌀 예상 생산량이 1980년 이후 2003년도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450만여 톤에 그칠 거라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생산량이 줄어든 원인 역시 이상기후 때문이란다. 문제는 생산량이 줄면 가격이 오르는 경제원리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얘기한다. 예년에 비해 조생종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난 데다 출수이후 굳은 날씨 탓에 청미와 쭉쟁이가 많아서 도정율이 지난해보다 떨어지고, 또 품질도 형편이 없어서 도정업자들이 매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또, 더 큰 원인은 내년부터 새로 적용하게 될 쌀 소득보전 목표가격을 정해야 되는데, 정부의 구상이 올려도 시원찮을 목표가격을 현재의 금액(17만83원. 80kg정곡기준)보다 5.2%나 낮은 16만1,265원에 맞춰 놓고 ‘쌀의 공급과잉을 막고 쌀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낮출 수 밖에 없다.’라며 저울질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켜 볼 일이다. 문제는 목표가격을 떨어뜨리겠다는 마당에 어느 양곡상들이 나서서 나락을 사들이겠는가? 어찌 보면 정부가 쌀값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싫어 텔레비전 수상기 채널을 돌리니,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국감상황이 방송되고 있었다. 평소 보수꼴통(?)집단이라며 도매가로 싸잡아 매도(?)를 했던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제법 귀를 솔깃하게 한다. 대선과 총선을 의식한 탓일까? 농업과 농촌, 농민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與野가 따로 없었다. 자정이 넘도록 지켜보며 농민단체가 농협을 불신하고 정부를 원망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도 같았다.
전국 쌀 유통량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농협중앙회가 신용사업에만 몰두한 채 정작 농민 조합원들의 하소연에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니! 과연 누구를 위한 농협이고,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아직 채 가을걷이도 끝나지 않았는데, 농민단체가 투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4대 핵심요구안’을 내건 11월11일 100만 민중대회가 그것이다. 대형현수막을 마을 어귀에 내걸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대오결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녹을 먹는다고는하나 이런 이들을 나무라고 하거나 만류할 수마는 없다. 오죽했으면 이럴까? 무엇보다 ‘구조조정’ 이라는 듣기에는 섬뜩한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는 정부 관료의 모습이 무엇보다 식상하기 때문이다. (2007. 10. 24. 공무원노동자 )

